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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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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산업(石油産業, petroleum industry)은 석유를 탐사·개발 및 채굴·수송·정제·판매하는 산업이다.

19세기 중엽(1859년) 미국에서 탄생한 근대 석유 산업은 20세기 초에는 1차 에너지 공급량의 10% 미만을 담당하였던 것이 1980년대에는 80% 수준을 육박하는 거대한 규모로 발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경영 규모와 체제를 지니는 산업 형태의 출발이 되었다. 즉, 탄소(炭素)성분인 광물성 연료로 에너지 산업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석유산업은 자원으로서의 부존 상태가 지구상에 편재되어 있는 한편, 에너지의 소비 성향에 따라 산업적 여건에 차이가 있어 산유국과 소비국의 구분이 있고, 국제적인 대규모 사업체가 성립되고 있다.

역사[편집]

1870년 록펠러는 미국 클리블랜드에 오하이오 스탠다드 석유회사(하루 600배럴 생산으로 미국 시장의 4%를 점유한 최대 정유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정유업의 성공은 철도운임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강력한 거대 화주가 되어 철도회사를 압도하기 위해 잇따라 정유공장을 흡수•합병하여 정유 기업집단을 이룩하였다. 수 년 후에는 송유관과 철도화차까지 매입함으로써 1882년 미국의 원유정제 및 판매시장의 90%를 독점하는 스탠다드 오일 트러스트로 성장하였다. 원유의 생산, 수송, 정제에 이르는 모든 사업을 관리•통제하는 일관체제를 갖고 있는 거대기업을 트러스트라고 부른 것은 스탠다드 석유회사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러스트라는 말은 점차 나쁜 의미로 변질되었고, 이 회사의 성장은 근대 석유산업 성립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스탠다드오일 트러스트는 1911년 반트러스트법에 의해 34개 회사로 분할되었는데. 이 때 분할된 일부 회사가 엑슨, 모빌 등으로 발전했다. 또한 1901년 미국 텍사스주 스핀들 톱 지역에서 하루 10만 배럴을 생산하는 거대한 유전이 발견되어 후에 걸프텍사코라는 석유회사의 탄생을 가져왔다.

유럽에서는 1890년 로얄더치 석유회사가 등장하여 석유산업의 국제화가 이루어졌다. 동남아 지역에서 활동하던 로얄더치는 1907년 수송 및 판매부문을 전담하던 쉘 운수무역회사와 합병하여 로얄더치쉘이 되었다. 중동지역 최초로 이란에서 석유를 발견한 영국인 다아시는 페르시아 왕국으로부터 60년간 배타적 조광권을 획득하고 1908년에 페르시아석유회사를 설립했다. 동사는 1954년 이란의 석유 국유화 분쟁 시 회사명을 BP(영국석유회사)로 변경하였다. 이처럼 세계 유전지역을 기반으로 석유기업들이 탄생하여 석유메이저로 성장하게 되었다.

슈퍼메이저 탄생의 흐름

메이저(International Major Oil Company)란 과거 미국의 록펠러가 설립한 스탠다드 오일 트러스트회사가 1911년 반독점금지법에 의해 수십 개 회사로 해체된 후 석유산업을 주도하던 대기업 형태의 석유회사들을 일컫는 명칭이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석유의 탐사, 개발, 수송, 정제 및 판매의 전 사업분야에 걸쳐 일관체제를 갖추고 폭넓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거대한 다국적 석유회사를 말한다. 반면 스탠다드오일에서 분리•독립한 모든 회사를 '독립계(Independent)'라고 불렀다. 이들 독립계 회사 가운데 일부는 종합 일관체제를 갖춘 회사로 성장하여 메이저 반열에 오르기도 하였는데, '독립계'라는 용어는 처음에는 메이저 그룹에 포함되지 않은 미국계 석유회사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석유산업의 상류부문인 탐사•개발 사업만을 담당하는 기업을 의미하게 되었다. 메이저는 일반적으로 ‘Seven Sisters’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즉 미국계 엑슨, 모빌, 걸프, 텍사코, 세브론의 5개 메이저 회사와 영국계 BP 그리고 영국, 네덜란드 합작기업 로열더치쉘의 7개 거대 석유회사를 지칭하는 것이다. 프랑스 국영석유회사인 토탈을 추가하여 8개 메이저로 불리기도 했다.

한국의 석유산업 역사[편집]

석유와의 만남[편집]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조선 후기의 학자 황현의 『매천야록』에 나타난 기록들을 보면 대략 1880년경으로 추측된다. 『매천야록』을 보면 이런 기록이 나온다. 『석유는 영국이나 미국 같은 서양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바닷속에서 난다고도 하고, 혹은 석탄에서 만든다고도 하고, 혹은 돌을 삶아서 그 물을 받은 것이라고 하여 그 설이 다르다. ∙∙∙(중략)∙∙∙ 우리나라에서 석유는 경진년인 1880년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그 색깔이 불그스레하고 냄새가 심했으나, 한 홉이면 열흘을 밝힐 수 있었다. 몇 년 후 그 색깔이 희어지고 냄새도 덜 났지만, 화력이 떨어져 한 홉으로 3,4일 밤을 밝힐 수 있었다.』

이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고종 17년인 1880년(경진년)임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기록에는 역시 1880년 승려 이동인이 개화파 인사들을 따라 일본에 건너가 일본의 큰 도시를 다니며 신식문명을 견학하다가 석유와 석유램프, 성냥을 들여와 사용했다고도 전하고 있다. 개화기 조선의 미국 공사 알렌이 지은 『Korea Fact & Fancy』의 연표에 따르면 1898년 서울 시가지에 석유등이 점등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석유등에 의한 최초의 가로조명으로 생각된다.

개화로 말미암아 석유문명의 혜택을 받기 시작했지만 서구 열강들의 시장 지배도 시작되었다. 1897년 알렌은 우리 조정으로부터 이권을 무더기로 따냈다. 이를 통해 당시 미국의 최대 석유회사이던 스탠다드 오일의 석유가 당시로써는 국내 유일의 석유였고 이것을 '솔표'라는 상표를 붙여 판매했다. 스탠다드 오일은 인천 월미도에 석유저장소 건립허가를 받아냈고, 그해 말에 조선 최초의 석유저장탱크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월미도엔 ‘남산만한 서양 기름통’과 '서양 기름선'을 구경하기 위해 인파가 밀려들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 미국산 석유만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1902년까지는 미국 석유 외에 일본 석유와 러시아 석유가 판매경쟁을 벌이지만, 미국 석유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와중에 일본 상인들이 질이 떨어지는 일본 석유에다 미국 석유를 몰래 섞어서 판매하는 상표도용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스탠다드 오일이 독점하던 석유시장은 1920년 이후 미국의 텍사코와 영국의 쉘이 들어오면서 치열한 3파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

1930년대에 일본이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면서 미국, 영국 등과 마찰을 빚게 되자 석유공급에 이상기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34년 일본은 산업물자의 통제와 함께 석유도 6개월분을 미리 보유•비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석유업령'을 공포하였다. 또한 대륙침략의 발판기지로 한반도를 병참 기지화한 일본은 1935년 조선석유를 설립하고 연산 30만 톤(하루 약 6천 배럴) 규모의 원산정유공장을 건설했다. 1938년 원산공장이 완공된 후 조선석유는 미국에서 전용 유조선으로 원유를 운송하여 정제했다. 그러나 일본이 석유를 국책화하면서 육군의 강력한 지원으로 급속히 육성시키려는 기미를 보이자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공급을 제한하였고, 마지막에는 석유수출을 금지하자 일본은 석유수급에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재빨리 수마트라, 자바 등을 점령하고 남방석유자원을 확보했지만 모든 선박이 해군용으로 징발되어 남방석유를 실어오는데 필요한 선박 부족문제에 봉착하였다. 더구나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미군 비행기의 폭격이 잦아져서 석유수송이 더욱 어려워지자 원산정유공장은 결국 가동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해방 이후 미군은 군정청 산하에 석유제품의 수입 및 배급 기능을 담당하는 석유배급 대행회사(PDA : Petroleum Distribution Agency)를 설립하였고, 국내 석유제품 공급은 이 대행회사를 통해 시행되었다. 또한 조선석유도 미군정의 관리를 받게 되었으며, 1949년에는 모든 석유류의 저장과 판매 업무를 주관하는 대한석유저장주식회사(KOSCO, Korea Oil Storage Co.)가 설립되었다. KOSCO는 6.25 전쟁의 발발로 스탠다드 오일, 칼텍스, 쉘의 석유류 판매회사가 철수함에 따라 석유제품의 직접 판매를 전담하게 되었다. 1955년 5월 정부는 점차 늘어나는 석유류 수요에 대비하여 한미 석유운영협정을 체결하여 석유제품의 취급, 저장 및 관리를 규정하게 되었다. 이 협정은 한국, 미국 및 대한석유저장회사의 3자 협정으로 한국이 도입하는 석유류 제품의 외화조달을 미국정부가 보장하고, 3대 메이저에 의해 구성되었던 대한석유저장회사가 석유제품의 인수, 저장, 배급을 담당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1964년 대한석유공사(현 SK에너지)가 그 시설과 업무를 인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석유산업의 발전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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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유산업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출범과 함께 시작하였다.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의 혼란을 겪고 난 이후 점차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안정되자 정부는 경제자립과 국민생활 향상을 위하여 경제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첫 단계로서 제1차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주요 목표로는 첫째, 자립경제체제의 확립과 공업생산기반의 확충, 둘째, 생산시설의 근대화, 셋째, 수입대체산업의 육성지원, 넷째, 고도성장기반으로서의 수출산업 개발 육성, 다섯째, 중소기업 지원의 다각화 등을 설정했다. 이러한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을 설정함에 따라 정부는 무엇보다도 석유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없이는 이 계획의 성공적인 추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국가경제의 기간산업으로 또한 수입대체산업의 핵심사업으로 정유공장 건설을 최우선사업으로 채택하였다. 경제성장을 위한 공업화 과정에서는 그에 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 공급은 필수불가결한 요건일 뿐 아니라, 에너지 수급구조 개편으로 석탄을 대신할 석유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국내 석유류 공급은 외국법인인 대한석유저장회사(KOSCO)에 독점되어 있었고, 더구나 AID원조자금에 의지하고 있으면서 비싼 석유류 완제품만을 수입하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여건하에서 원유를 수입, 가공할 수 있는 정유공장의 건설은 외화 절약뿐만 아니라 종래의 통제배급에 따른 소비억제정책을 지양하고 공업화를 위한 안정적 에너지공급체제로의 근본적인 방향전환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964년 4월 1일 일산 3만 5천 배럴 규모의 대한석유공사(현 SK에너지) 울산 정유공장이 국내 최초로 가동을 시작하였다. 울산 정유공장의 가동으로 석유의 국내 안정공급이 가능해짐에 따라 산업생산은 물론 국민생활측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의 주종 에너지원은 석탄이었다. 그러나 울산 정유공장이 가동을 시작한 이후 석유가 경제개발을 위한 산업 동력원으로서 본격 공급되기 시작하자 총에너지 소비에서 석유의 점유율이 급격히 높아져갔다. 1962년에 9.8%에 불과했던 석유 점유율은 1971년에는 50.6%를 차지하여 국내 에너지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1978년에 최고 63.3%까지 기록하였던 석유점유율은 이후 차츰 낮아져 2018년 기준 38.4%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석유는 현재까지 주종 에너지원으로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과 자동차 보급 확대 등에 따라 수송용 및 석유화학 원료용으로 소비되는 석유 소비 규모는 계속 늘고 있지만, 산업 및 발전부문에서 LNG와 원자력으로의 수요 전환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제능력 추이를 보면, 1964년 SK에너지 전신인 유공의 일산 35천 배럴로 시작된 국내 정제능력은 경제개발계획이 진행됨에 따라서 유공의 설비증설과 호남정유공장 준공으로 1969년 18만 B/D로 늘어났다. 1973년 1차와 2차 석유위기가 있었던 1970년대에는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시책에 따라서 원유 정제설비 증설이 이루어져 1980년까지 64만B/D를 기록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전반기까지 경제성장에 따른 석유수요 증가에 맞추어 대규모 정제설비 증설이 이루어져서 1996년에 국내 총 정제능력은 2,438만B/D에 이르렀다. 당시에는 정부에 허가를 받은 정제능력과 실제 공장설계 정제능력 사이에 차이가 있어서 100% 이상의 가동률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2004년에서야 허가규모와 실제규모 상의 차이를 현실화하였다. 2000년대 초 이후 고유가 추세가 지속되면서 정유회사들은 대부분 중질유의 2차 정제시설인 고도화 정제설비 투자에 나서며 정제능력을 확장하였다. 그 결과 2018년 말 국내 총 정제능력은 3,204천B/D를 기록하였다.

석유 자원의 개발[편집]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국제 원유 시장의 변동에 따라 경제 전반에 걸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이에 대체 에너지개발, 소비절약, 비축분 확대 등 각종의 에너지 공급기반 강화가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적극적인 방안으로 자주적 조달기반 확보를 위한 국내외 유전개발 투자·참여가 추진되고 있다. 1978년 6월 22일 한일 대륙붕 협정의 비준으로 대륙붕 탐사가 시작되었고, 같은해 12월 한국석유개발공사법이 제정·공포되어 1979년 3월 3일 한국석유개발공사를 설립, 해외유전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1998년 7월 울산광역시 남동쪽 해상 58km지점 대륙붕 6-1광구에서 동해-1 가스전을 발견했고, 한국석유공사는 2004년 7월부터 2021년 12월말 생산종료될 때까지 천연가스 4100만배럴(원유 환산시), 초경질유 390만배럴을 생산하였다.

정유회사의 발전[편집]

SK에너지

SK에너지는 1962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 최대 정유회사이다. 정부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최우선과제로 정유공장을 건설하기로 하고 「대한석유공사법」을 제정, 같은 해 10월 대한석유공사를 설립하였다. 대한석유공사는 미국 걸프사와 자금 및 원유공급계약 등을 골자로 한 계약을 성사시켜 1963년 12월, 울산에 정유공장을 준공하였다. 이후 1960년대 후반 국내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 급증으로 시설확장 및 석유화학사업 진출을 위한 투자자금을 미국계 메이저석유회사 걸프(Gulf)의 지분 확대를 통해 조달함으로써 1970년에 회사경영권이 정부에서 걸프(Gulf)에 넘어갔다. 그러나 걸프(Gulf)는 1•2차 석유위기로 원유공급능력 악화 등 경영여건이 악화되자 대한석유공사 주식 50%를 우리 정부에 인도하고 1980년 8월 우리나라에서 전면 철수하였다. 이에 정부는 국제 석유정세에 신속한 대처와 건실한 경영을 위하여 대한석유공사를 민영화하기로 결정하고 주식회사 선경을 대상자로 선정하였다. 선경은 1982년 대한석유공사의 사명을 ㈜유공으로 변경했으며, 1997년에 SK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이후 2007년 7월에 지주회사(SK주식회사)와 사업회사(SK에너지)로 분할하였고, 2008년 2월에는 자회사인 SK인천정유(1970년 설립된 경인에너지가 전신)와 합병을 완료하였다. SK에너지는 이후에 전문분야 사업에 대하여 분사를 시행하여 현재는 SK이노베이션(중간지주회사), SK에너지(석유산업), SK종합화학(화학사업), SK루브리컨츠(윤활유사업), SK인천석유화학(석유•화학사업),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트레이딩사업), SK아이이테크놀로지(소재사업)로 체계를 이루고 있다.

GS칼텍스

GS칼텍스는 1967년 대한민국 최초로 설립된 민간 정유회사이다.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계획에 이어 제2차 계획을 공업화에 초점을 맞추어 추진하였으며, 공업화에 필수적인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1966년 제2정유공장 실수요자를 공모 하였다. 일찍부터 정유사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던 럭키는 국내 시장에 관심이 많던 미국 칼텍스사와 손잡고 공모에 응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었으며 이듬해 호남정유를 설립하였다. 설립 초기 합작사의 이점을 살려 공장 및 저유소 건설과 수송•판매망 구축, 원유 공급, 선진경영제도 도입 등 성장토대를 구축한 GS칼텍스는 1986년부터 한국측 단독경영체제를 출범하여 안정적인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GS칼텍스는 1969년 여수제1공장과 인천윤활유공장을 준공한 이래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석유, 석유화학, 윤활유 등 중화학공업을 선도하며 반세기 동안 국가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왔다. 1981년 국내 정유업계 최초로 임가공 수출을 시작해 1983년 국내 정유사 최초로 2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다. 2008년 150억불, 2011년 200억불 수출 달성에 이어 2012년에는 정유업계 최초이자 국내 기업 가운데 두 번째로 250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다. 1996년 LG칼텍스정유로 사명을 변경하였으며 2005년 3월 LG그룹으로부터 분리되어 GS칼텍스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GS칼텍스는 정유 및 석유화학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노력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에쓰-오일

에쓰-오일의 전신은 1976년, 쌍용그룹과 이란국영석유공사(NIOC) 간의 합작투자로 설립된 한이석유였다. 1980년 이란의 회교혁명으로 인해 NIOC가 철수하면서 이란 측 소유주식을 쌍용그룹이 전량 인수하고 쌍용정유로 상호를 변경했다. 1991년,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이자 세계최대의 석유기업인 사우디 아람코(Saudi Aramco)가 35%의 지분을 취득하여 당시 28.4%의 지분을 보유한 쌍용그룹과 공동경영을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 중반 선제적으로 중질유 분해 시설을 완공하고 PX공장을 건설하는 등 대규모 투자와 함께 경쟁력과 수익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1999년 쌍용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28.4%의 지분을 자사주로 매입하고 계열분리를 하면서 이듬해인 2000년, 사명을 현재의 에쓰-오일(S-OIL)로 변경하였다. 2007년 에쓰-오일이 자사주로 보유하고 있던 28.4%의 지분을 한진그룹이 매입하고 사우디 아람코와 공동경영에 참여했으나, 2015년 사우디 아람코가 한진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전량을 매입하면서 63.4%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단독경영하고 있다. 2018년 잔사유 고도화 시설 및 올레핀 다운스트림 프로젝트를 완공하며 석유화학 다운스트림 사업으로의 진출을 본격화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존경받는 에너지•화학 기업'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HD현대오일뱅크

극동석유공업㈜는 고급윤활유를 주로 공급해온 회사로서 일대 도약을 모색하기 위해 세계적인 메이저인 로열더치쉘과 합작투자 및 차관공여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고 1969년 상호를 국동쉘석유㈜로 변경했다. 극동쉘석유는 1977년에 극동석유주식회사로 상호 변경하고, 쉘이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합작계약이 해지되자 쉘의 지분 50%를 현대가 매입하였다. 1988년 상호를 다시 극동정유주식회사로 변경한 후 1989년에 대산 등지에 정유공장을 준공하였고 현대그룹이 1993년에 극동정유를 인수하게 됨으로써 현대정유주식회사가 탄생하였다. 2002년 사명을 현대정유에서 현대오일뱅크로 변경하였으며 2010년 현대중공업그룹 계열로 편입되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속적인 신사업 발굴과 합작 사업을 통한 공장 개선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1996년 대산공장에 하루 20만 배럴 규모의 원유정제 설비를 증설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고 2019년 국내 업계 최초로 고도화율 40.6%를 기록하였다. 현대오일뱅크는 일본 코스모석유와 합작하여 현대코스모를 설립하고 석유화학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였으며 롯데케미칼과 국내 최초 정유사-석유화학사 합작법인인 현대케미칼을 설립하여 콘덴세이트 정제 및 MX 제조를 시작하였다. 또한 쉘과 합작하여 현대쉘베이스오일을 설립하고 친환경 윤활기유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오일터미널을 설립하여 국내 정유회사 최초로 상업용 탱크터미널 사업에 진출하였고, 2016년 OCI와 합작하여 현대오씨아이를 설립하고 국내 정유사 중 처음으로 카본블랙사업에 진출하였다.

석유 생산국과 소비국[편집]

석유 생산국은 보통 산유국 또는 석유 수출국으로 불리는 국가로서, 베네수엘라·이란·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이라크·리비아·알제리·인도네시아 등이 있으며, 이들은 석유 수입에 의존하여 개발 도상 국가 나아가서는 세계 상위의 개인 평균 소득 국가로 진출하였다. 특히 1960년대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Oranization of Petroleum Export Country)를 결성, 외국자본이 지배하던 석유회사의 국유화, 이익 배분율의 상향 조정 등을 취하고 있으며, 산유국들의 자국정제주의 채택은 석유 수출국에서 석유 제품 수출국으로의 전환이 전망되고 있다.

석유 생산국에 대하여 시장을 제공하는 국가들인 소비국 또는 수입국은 산유국 이외의 모든 국가가 해당된다 하겠으나, 일반적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것으로 믿어지는 러시아·캐나다·멕시코·미국 등을 제외한 유럽 제국과 한국·일본·중국 등 동양 국가를 말한다.

미국은 1960년대 이후 국내 석유 수요의 급증으로 수입석유 의존도가 증대, 1970년~1980년대 수입의존율이 35% 안팎이었다가 1990년대 걸쳐 2003년에는 60%까지 증가하여 , 자국내 대륙붕 석유 개발이나 대체 에너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최대 석유수입국으로 반전하였다. 그러다가 2010년대부터 셰일 가스등 비전통 석유자원 개발로 미국내 석유매장량과 생산량이 급증하여서 수입의존율이 대폭 낮아졌다.

석유 수출국 기구의 공세[편집]

중동 지역을 주축으로 한 산유국의 공동 기구인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최종적인 확인매장량은 물론 연간생산량과 수요의 균형에서 공급 부족 현상에 있음을 고려, 산유국의 이익 배당 비율과 석유의 수출 가격을 매년 인상하기 위한 협의를 제기하고 있어 석유소비국으로서는 이를 OPEC의 공세라 부르고 있다. 연례적인 OPEC 공세는 석유 산업의 원가 상승을 불가피하게 하는 한편, 조정 협의의 장기화로 인한 공급상의 불안정을 초래, 산유국과 소비국 사이의 장기적인 타결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석유 자원의 분포[편집]

1993년말 현재 전세계의 원유 확인 매장량은 9,991억 2,400만 배럴이다. 원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전 세계 매장량의 25.2%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 지역 매장량이 65.2%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1996년 말 현재 가맹국이 5대 산유국을 포함, 12개국인 석유수출기구(OPEC)가 세계 석유매장량의 70%, 생산량의 38%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대부터 오일셰일, 오일샌드 등 비전통 석유자원이 본격 개발되면서 전세계 원유 확인 매장량과 생산량은 2019년 기준 각각 1조 7,339억 배럴과 9,519.2만 b/d까지 증가하였다. 가채년수(매장량/생산량)는 약 50년이다.

해당기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 지역 매장량이 전 세계 매장량의 48.1%까지 줄어들었다. 국가별로 정리하면, 베네수엘라가 전체의 17.5%(3,038억 배럴)를 보유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가 17.2%(2,976억 배럴), 캐나다가 9.8%(1,697억 배럴), 이란이 9.0%(1,556억 배럴), 이라크가 8.4%(1,450억 배럴), 러시아가 6.2%(1,072억 배럴)를 차지하고 있다.

석유산업의 특성[편집]

석유산업 구조

석유산업이란 석유(원유와 석유제품을 포괄적으로 지칭)를 상품이나 소재로 하는 산업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상류부문(Upstream)과 하류부문(Downstream)으로 구분된다. 최근에는 셰일오일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유전에서 추출된 1차 생산물을 수송하여 원유 및 부산물을 분류, 처리하고 수송, 저장을 담당하는 산업이 발달하면서 관련 산업들을 중류부문(Midstream)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류부문은 그 이후의 단계, 즉, 원유의 수송과 정제를 통한 석유제품 생산과 제품판매의 단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석유메이저(국제석유자본)나 거대 국영석유회사들은 상류부문과 하류부문을 포괄해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상류부문에는 참여하지 않고 원유를 구매, 정제하여 •석유제품을 판매하는, 즉 하류부문만 담당하는 산업을 정유산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석유산업의 영역구분이 점점 모호해 지고 있다. 석유회사들은 인수합병을 통하여 더욱 대형화되어, 상류•하류의 수직적 통합 외에 석유화학, 더 나아가 대체에너지 개발 등 종합 에너지산업을 지향하는 것이 최근의 세계적인 추세이다. 석유기업들은 부가가치를 높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석유가격의 급격한 변동을 흡수하고, 치열한 석유자원 확보 전쟁에서 살아남아 원유의 안정적 확보 및 공급을 가능케 하는 필요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석유산업은 서로 관련된 여러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제품차원과 경영차원에서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① 자본집약적 장치산업

초기 단계에 막대한 투자비가 소요된다. 필수 전략물자를 공급하는 산업으로서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생산•공급시설, 환경 친화적 연료를 생산하기 위한 환경시설, 그리고 급격한 가격변동이나 공급장애를 대비한 전략 비축 운용 등 막대한 투자가 소요되는 장치산업이다.

② 공익성이 높은 산업

석유는 국가 경제 및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물자이므로 안정적인 공급이 최우선의 과제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원유를 도입하여 자국에서 석유제품을 생산•공급하는 ‘소비지정제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③ 석유제품의 연산성

원료(원유)를 투입하면 휘발유, 등유, 경유, 벙커C유, 나프타, LPG 등 연관 석유제품이 동시에 생산되므로 특정 석유제품만의 생산이나 감산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제품별 개별원가 산출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제품에 따라서는 원가 이하의 역마진 제품의 생산도 불가피하므로 정제설비의 적정 가동률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④ 높은 원료비 비중

우리나라의 경우,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원료비가 세전 공장도 가격의 80% 이상을 차지하여, 정유회사가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작다.

국제 석유 자본[편집]

자원의 편재와 세계적인 수요의 증가 및 개발 자금의 대규모성 등으로 인한 석유 산업의 특성은 국제적인 규모의 기업을 이루게 하고 있다. 따라서 메이저 컴퍼니(international major oil companies)로 불리는 국제석유자본들은 그들의 자본·기술·경영력을 바탕으로 산유국과 소비국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경영력과 정치정세의 판단력으로써 낮은 원가의 원유와 빈틈없는 시장성(market position)을 세계 주요지역에서 유지, 세계 석유 산업의 지배 계급으로 인정되고 있는 국제 석유 자본도 1970년대에 산유국과 소비국의 자국화주의에 부딪혀 시련을 받게 되었다.

주요 국제 석유 자본으로서 메이저 컴퍼니로 인정되는 회사로는 미국의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 Co.), 텍사코(Texaco Inc.), 걸프 오일(Gulp Oil Corp.), 캘리포니아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 Co. of California)을 미롯, 영국의 브리티시 석유(British Petroleum Co. Ltd), 영국과 네덜란드의 합작회사인 로열 더치 셸(Royal Dutch Shell Petroleum Co.) 및 프랑스의 프랑스 석유(CFP, Cie Francaise Des Petroles) 등이 있다.

석유산업의 경영 형태[편집]

국제적인 상관성을 유지함으로써 가능했던 근대 석유산업은 수요·공급·자금과 생산방법 등에서 다른 산업에 볼 수 없는 경영상의 특성을 나타내게 하고 있다. 근대적인 석유산업은 석유를 채취, 최종소비자에게 공급하기까지에는 다음 4부문의 기능으로 성립된다.

① 원유의 생산

석유를 발견하기 위한 탐광시추·유전개발·석유채취 등 3단계로 구분된다.

② 원유의 정제

원유를 휘발유·등유·경유의 제품으로 분류하는 일로서 석유화학도 포함될 수 있다.

③ 제품의 판매

공장도판매·도매·소매를 포함하며, 제품을 정유공장에서 대수요처·주유소 등에 공급하는 과정으로 저장시설이 따르게 된다.

④ 원유 및 제품의 수송

①의 원유생산과 ②의 석유정제, 또는 석유정제와 ③의 제품판매를 연결시키는 과정 석유산업의 경영형태는 이러한 기능적 부문의 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은 2가지 유형으로 대별될 수 있다.

수직적 통합[편집]

석유의 생산·정제·판매·수송 등 4개 기능부문 중 2개 기능 이상을 담당하고 있을 때 이를 '수직적 통합' 또는 '기능적 통합'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수직적 통합은 석유정제와 이에 관련된 수송수단으로서의 파이프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으며, 4개 기능부문을 모두 경영하는 완전통합 회사도 있다.

수평적 통합[편집]

앞에서 말한 석유산업의 기능 가운데 동일부문을 전국적 또는 국제적으로 대규모화하거나 계열화 경영체제로 운영하는 것을 '수평적 통합' 또는 '지리적 통합'이라 하는데, 선진 석유산업국이라 할 미국에 있어서는 석유정제의 경우 상위(上位) 20개 회사가 전체의 85% 수준을 점유하고 있으며, 일본에 있어서도 27개 석유정제회사 중 상위 6개사가 55%의 집중도를 나타내고 있다.

선진 석유 산업국의 경영 형태[편집]

미국·영국·네덜란드 등 석유산업부문의 선진국가들은 국내는 물론 중동지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유전개발·석유생산에 자본·기술면에서 참여함으로써 원유의 생산에서 최종제품의 판매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인 일관체제를 형성, 각사의 계열·방계회사로서 세계 각지에 석유회사와 판매망을 가지고 있으며, 자체적인 수송 선단을 보유하거나 석유수송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선진 석유산업국들은 석유자원의 편재성과 매장량에 비한 세계수요의 증가 등에 비추어 새로운 유전의 개발에 적극적인 자본참여를 행하고 있어, 이들 선진국의 경영형태는 전 세계적인 경영요인과 석유산업 및 관련부문 전반에 걸친 규모와 범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신흥 석유 산업국의 경영 형태[편집]

선진국가로부터 석유정제제품을 수입하던 개발도상국가들은 에너지 수요의 증가와 석유제품 비중의 증대에 따라 자국정제주의를 채택, 국제석유자본의 소비지정제주의와 함께 점차적으로 개발도상국의 석유산업을 발흥시켰다. 그러나 석유산업에 있어서의 국제석유자본·선진국가의 지배력 또는 영향력에 의해 대부분의 신참국가들은 국제석유자본 또는 그 산하의 계열회사들과 합작투자방식으로 정제공장을 건설, 원유의 공급·수송 등 상류사업부문은 전적으로 국제석유자본에 의존하는 실태에 있다. 따라서 석유산업에 있어서 원유의 공급·수송이 갖는 비중의 크기와 자본집약적 산업이란 특징 때문에 이들 신참 석유산업국에 있어서의 석유회사는 50대 50의 주식비율로 설립되었다 하더라도 실제적인 경영면에 있어서는 국제석유자본들이 중요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신참 석유산업국에 있어서는 민족자본에 의한 석유산업기반의 육성이 중요한 산업정책과제로 되어 있다.

석유 산업의 다국적화[편집]

석유자원의 편재성과 대규모 자본집약적 장치산업이란 특성은 국제적인 자본의 참여를 초래할 뿐 아니라 산유국과 소비국에 밀접한 상관성을 갖는 제3국의 참여를 필요로 하게 된다. 따라서 주로 메이저컴퍼니간에 이루어지는 자본·기술·생산·판매 등의 합작이나 공동참여는 새로 설립되는 회사를 다국적 기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즉 A국과 B국의 공동출자로 C국에 석유생산부문의 회사를 설립하면서 C국의 자본을 약간 참여시킴으로써 C국 국적을 얻어 설립된 K회사는 다시 F국의 정제공장에 원유공급을 책임진다는 조건으로 G국의 회사와 F국의 정유공장에 공동출자로 참여하는 경우, 실질적으로는 A·B·C·F·G등 5개국의 공동출자가 되며, 이들 5개국 기업은 이익처분·위험부담 등의 목적에서 서로가 공동출자국을 이용할 수 있다는 데서 다국적 기업이 출현하고 있다. 특히 석유산업에 있어서는 세계적으로 석유산업이 주요 산유국이 아닌 수개 선진국에 의하여 발전되었다는 점과 후진국가들이 특정 단일국에만 의존하는 석유산업 발족을 기피함으로써 다국적 기업의 출현을 촉진하고 있다.

환경 영향[편집]

수질 오염[편집]

일부 석유 산업 운영은 정제 및 기름 유출의 부산물을 통한 수질 오염의 원인이 되었다. 수압파쇄로 인해 셰일 가스 추출이 크게 증가했지만, 이 가스 추출로 인해 화학물질이 지하수로 흘러 들어가 지하수 오염이 증가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믿음과 증거가 있다. 지하 탱크와 버려진 정유소의 누출도 주변 지역의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 정제된 석유를 구성하는 탄화수소는 생분해에 강하며 오염된 토양에 수년 동안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 석유 탄화수소 오염 물질의 생물학적 정화는 종종 호기성 분해를 통해 사용된다. 최근에는 식물 정화 및 열 정화와 같은 다른 생물학적 정화 방법이 탐구되고 있다.

해양오염[편집]

대형 유조선에 의한 원유 수입, 연안 해운을 이용한 국내 해상수송 등에 있어서 유조선의 장기 계선으로 인한 해상 교통의 정체와 유류의 하역 작업이나 선박 사고에 의한 해수오염(海水汚染) 등 공해성 요인을 지니고 있다.

대기오염[편집]

석유산업은 지상 오존(스모그) 형성에 기여하는 화학 물질 그룹인 휘발성 유기 화합물(VOC)의 가장 큰 산업 배출원이다. 화석 연료의 연소는 부산물로 온실 가스 및 기타 대기 오염 물질을 생성한다. 오염 물질에는 질소 산화물, 이산화황, 휘발성 유기 화합물 및 중금속이 포함된다. 연구원들은 석유 화학 산업이 여름보다 겨울에 더 많은 양의 지상 오존 오염을 일으킬 수 있음을 발견했다.

기후 변화[편집]

화석 연료로 인한 온실가스는 기후 변화를 주도한다. 이미 1959년 미국 석유 산업 45주년을 맞아 미국 석유 연구소(American Petroleum Institute)가 주최 한 심포지엄에서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는 지구 기후 변화의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에드워드 텔러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온실 효과를 일으키고 더 많은 화석 연료를 태우면 만년설이 녹고 뉴욕이 물에 잠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88년 유엔에 의해 설립된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20세기 중반 이후 관찰된 온도 상승의 대부분을 담당한다고 결론 지었다. 기후 변화 우려의 결과로 많은 대체 에너지 애호가들이 태양열 및 풍력과 같은 다른 에너지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최근의 견해는 일부 석유 애호가들이 산업의 진정한 미래에 대해 회의적이다.

OPEC[편집]

OPEC은 석유수출국기구(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se) 의 약자로서 2018년 현재 원유를 수출하는 15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다국적 기구를 말한다. OPEC은 1960년 9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베네수엘라 등 5개 회원국으로 결성되었으며 1965년 이후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본부를 두고 있다. 2017년 말 현재 OPEC은 전세계 석유 확인매장량의 약 72%, 세계 석유생산량의 약 43%를 차지하여 국제유가 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OPEC은 전형적인 국제적 생산카르텔 조직으로 총회에서 회원국들의 석유정책을 조정하고 통합하여 회원국별로 원유 생산량을 할당함으로써 원유수출을 통한 회원국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초창기에는 당시 세계 석유시장을 거의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석유메이저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메이저회사들의 시장지배력이 없어진 후에는 세계 석유소비국들로 이루어진 경제협력기구인 OECD에 대응하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서방 주요선진국들로 구성된 OECD는 산하에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를 두고 있다. OPEC은 최근 IEA와 세계 석유시장 안정을 위한 협력 차원에서 전문가들간의 관련 회의를 개최하여 석유시장의 동향과 시장안정방안 등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OPEC은 최고 의결기관인 총회를 두고 있고 총회의장을 협의를 통해 선출한다. OPEC 기구상 최고책임자는 사무총장으로 산하에 사무국과 연구소, 기타 OPEC 홍보 등 지원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OPEC은 총회에서 전원합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한다. OPEC의 결정은 국제석유시장 및 국제관계에서도 큰 영향력을 미쳐왔다. 특히 전쟁이나 대규모 시민소요 발생은 때때로 석유공급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는 석유금수로 초래된 1차 오일쇼크와 이란혁명으로 야기된 2차 오일쇼크 등 1970년대 2차례 석유위기를 통해 공급중단으로 인하여 전세계가 유가폭등을 경험한 바 있다. 1980년대 OPEC은 목표생산량제도를 채택하였는데, 이는 총회에서 전체생산량을 결정하고, 회원국별 원유생산량을 배정하는 방식이다. 석유 비수기에 목표생산량을 줄이면 가격이 오르고 겨울철 성수기에 목표생산량을 늘리면 가격이 하락하는 기대효과를 반영한 제도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이후 중국이라는 거대 석유수입국이 석유시장에 등장하면서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어 OPEC의 목표생산량 제도는 더 이상 유효한 정책수단이 되지 못하였다. 최근 2013년 이후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세계 석유시장이 공급과잉 상황으로 변화되자 OPEC은 감산을 추진하였고, 2016년 11월 회원국별 경제적 여건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하루 12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합의하였다. 특히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들도 감산에 참여하여 55만 8천배럴을 추가 감산하기로 합의하였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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