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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토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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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토폴 위치
세바스토폴

세바스토폴(러시아어: Севастополь, 우크라이나어: Севастополь, 크림 타타르어: Акъяр 아크야르 / Aqyar, 그리스어: Σεβαστούπολη, 영어: Sevastopol, 문화어: 쎄바스또뽈)은 크림반도(Crimean Peninsula) 남서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이다. 면적은 864km², 인구는 약 55만명으로 크림반도 최대의 도시이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러시아 세바스토폴 연방시(사실상) 또는 우크라이나 세바스토폴 특별시(국제적인 승인)를 구성한다. 참고로 크림반도는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얻어낸 영토임으로 러시아에 합병되었지만 절대 다수의 국가와 유엔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흑해 함대(黑海艦隊)가 주둔하고 있다.[1]

개요[편집]

세바스토폴은 흑해(Black Sea)에 접해 있는 해안 도시로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였으나,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당시 크림공화국과 함께 러시아로 편입된 도시로, 러시아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세바스토폴은 흑해 북부 연안에서 오데사 다음 가는 두번째로 큰 항구 도시이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수도키이우와 함께 행정적으로 특별한 지위를 가졌었다. 세바스토폴은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로 정착지가 만들어졌지만, 지금의 도시가 세워진 것은 18세기 러시아 제국의 함대 기지가 건설되면서부터다. 1804년 러시아 흑해 함대의 기지가 설치되었는데 크림 전쟁 때에는 이 요새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어 349일 간에 걸친 농성이 유명하다. 1905년 혁명 때 전함 포템킨 호의 반란이 일어났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250일 간 포위를 당하여 도시가 많이 파괴되었다. 구소련 시대부터 해군 사령부가 주둔해온 전략적 위치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영토분쟁의 주요 대상지이기도 하다. 군항으로서의 입지가 탁월해서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이 곳에 해군 기지를 세워 놓았다. 러시아 입장에선 남의 나라 땅이다 보니 2042년까지 임차하는 형식을 취했다. 2014년 3월에 세바스토폴 의회가 크림 자치공화국과 함께 폭탄 선언을 했다. 우크라이나로부터 벗어나 러시아로 편입하겠다는 것으로 우크라이나 정부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이라 우크라이나-크림 자치 공화국-러시아간 긴장이 고조되었다. 3월 18일에는 러시아가 크림공화국과 세바스토폴의 합병을 승인하는 조약에 서명하여 세바스토폴은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어 러시아의 3번째 연방시가 되었다. 도시는 1804년부터 오랫동안 러시아 흑해함대의 본거지였다. 이 때문에 크림반도 내에서도 군사적으로 중요한 별도의 도시로 간주돼, 구소련 체제하에서는 외부에 폐쇄된 도시였다. 어류 가공업, 기계 공업 등이 성하고 군사 박물관, 역사·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대서양인도양 방면의 원양 어업 기지이며 여름과 겨울 모두 대체로 온화한 세바스토폴은 흑해 연안의 휴양 도시로 유명하다. 해양생물학 연구가 활발한 곳이기도 하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세바스토폴은 크림반도의 남서쪽 끄트머리의 곶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시가지는 대부분 이 지역의 서쪽과 세바스토폴만(灣)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이 지역의 해안선은 대부분 바위 투성이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벨베크(Belbek)강, 초르나(Chorna)강, 그리고 카차(Kacha)강이 세바스토폴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으며, 크림반도의 대표적인 산맥들도 모두 이 지역에 걸쳐 있다.

세바스토폴은 습한 아열대성 기후다. 여름 평균 기온이 22℃ 안팎으로, 해양성 기후와 경계에 있다. 연평균 낮 기온은 15~16℃, 밤 기온은 약 9℃다. 가장 추운 1월과 2월의 평균 낮 기온이 5~6℃, 밤 기온도 1℃로 따뜻한 편이다. 7월과 8월 평균 낮 기온은 26℃, 밤 기온은 19℃이다. 바다의 연평균 수온은 14.2℃로, 2월 평균은 7℃, 8월 평균은 24℃이다. 연평균 강우량은 약 400mm이며, 연간 일조시간은 약 2,345시간이다.[3]

역사[편집]

도시의 건설[편집]

세바스토폴 인근에는 기원전 5세기경부터 그리스 식민지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어로 반도(半島)를 뜻하는 케르소네소스라는 이름의 도시였다. 케르소네소스는 처음에는 독립된 도시국가로, 나중에는 보스포루스 왕국(Kingdom of the Cimmerian Bosporus)의 지배를 받으며 거의 2000년 동안 존재했다. 케르소네소스는 13세기와 14세기에 투르크 및 몽골계 타타르족으로 이뤄진 킵차크한국의 습격을 여러 차례 받으며 완전히 폐허가 됐다. 그래서 지금의 세바스토폴은 고대나 중세의 그리스 도시와 전혀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도시 외곽에 남아 있는 유적지는 인기 있는 관광 명소 중 하나다.

현재의 세바스토폴은 1783년 러시아 제국이 해군 기지로 쓰기 위해 건설한 군사도시이다. 1784년 2월에는 예카테리나 2세가 포템킨 공작에게 그 곳에 요새를 짓도록 명령하고 그리스어로 '세바스토폴'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세바스토폴은 그리스어로 '덕망있는(세바스토스: σεβαστός) 도시(폴리스: πόλις)'라는 뜻이다. 그리스와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는 도시임에도 그리스어식 이름이 붙은 도시인데, 세바스토폴 외에도 심페로폴, 마리우폴, 스타브로폴, 헤르손, 오데사, 티라스폴, 멜리토폴 등 흑해 연안의 옛 러시아 제국 영토에는 유독 그리스식 지명이 많다. 이 지명들의 공통점은 예카테리나 2세가 건설한 도시들이란 것인데 제3의 로마를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그리스 계획의 일환으로 크림 칸국 일대를 정복한 후, 해당 지역이 옛 그리스와 로마제국의 영토였던 것을 반영해서 그 지역에 여러 도시들을 건설할 때 마다 그리스식 이름을 붙였다. 세바스토스는 그리스어로 라틴어 '아우구스투스'에 동치되는 단어다. 따라서 예카테리나 황제의 도시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단, 해당지역이 그리스-로마의 영토였던것이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런지 지명 비정은 당시 지명과는 영 안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러시아 제국-소련 시기[편집]

계속된 확장을 거쳐 1788년부터는 중요 해군 기지가 되었고, 상업 항구로서도 기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온화한 기후 덕에 러시아인에게는 바다 휴양지로도 알려져 있다. 이 곳이 가장 잘 알려진 것은 2번의 전투의 격전지이다. 첫번째 전투는 크림 전쟁 중에 벌어진 세바스토폴 공방전이다. 이 전투는 1854년~1855년에 걸쳐 세바스토폴에서 벌어졌는데, 러시아 제국군이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 오스만 제국군에 맞서 피터지게 싸웠지만 결국 패해서 세바스토폴을 버리고 퇴각했다. 이런 전란 속에서도 세바스토폴은 점점 발전하여 1897년에는 인구 5만 3천 명을 기록했고, 소련이 들어선 후에도 계속 발전하여 2차 대전 직전인 1940년에는 인구 10만을 돌파했다.

두번째 세바스토폴 공방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1년에 일어났다. 전략적 요충지다 보니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도 역시 대규모 공방전이 일어난 것이다. 이 전투에서 소련군은 나치 독일에 맞서 처절히 저항했으나 결국 패했다. 세바스토폴은 이 전투를 기려 영웅 도시로 지정되었다. 나치의 점령으로부터 1944년 소련이 세바스토폴을 수복했을 때 인구는 1만 1천 명으로 줄어버렸다. 그러나 승전 후 세바스토폴은 재건되었고 1959년에는 인구 14만 8천 명을 기록했다. 이후 1967년에는 인구 20만, 1979년에는 30만을 기록하였다.

1954년에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관할에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관할로 이전되었다. 1955년 10월 29일 세바스토폴에 정박 중이던 소련 해군 함정 노보로시스크(Новороссийск)가 폭발 침몰하여 608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1957년에는 인근의 발라클라바라는 도시와 합병되었다. 이 도시에는 소련의 중요한 잠수함 기지가 있었다. 적 공격을 막기 위해 지하에 기지를 만들어 놨는데, 핵폭탄에 직격으로 맞아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매우 중요하다 보니 도시 주민 거의 전부가 잠수함 관련 일을 했던 적도 있다. 엄청난 보안이 요구되었기에 외부에 살던 가족들조차 웬만한 사유로는 방문을 허락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잠수함 기지는 폐쇄에 들어갔고, 1996년 마지막 러시아 잠수함이 기지를 떠나면서 폐쇄가 완료되었다. 소련 시절에는 폐쇄 도시였다. 외부인이 방문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세바스토폴이 아니라 소련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소련 붕괴 후에는 사라졌다. 참고로 우크라이나에는 세바스토폴을 비롯하여 총 18개의 폐쇄 도시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통치기[편집]

세바스토폴은 우크라이나의 특별행정구역이었는데, 러시아계가 많이 사는 데다가 러시아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기에 우크라이나 vs 러시아+세바스토폴이라는 갈등 관계가 생겨났다.

1991년까지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소련이라는 한 나라의 일부였으므로 갈등의 요소가 없었다. 문제는 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근본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세바스토폴 지배를 인정하지 않아 왔다. 1992년 12월에는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 국회의원들을 제국주의자라 비난했던 일도 있었다. 러시아 연방의회가 세바스토폴의 지위를 명확히 정의하도록 의원들이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얼마 안 있어 크림공화국에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대리인 사무실지점이 생겼고, 이에 대해 러시아 연방의회 지부에 소속된 사람들이 반대 시위를 벌였다. 1993년 7월 10일 러시아 의회는 세바스토폴을 ‘연방 러시아 도시’로 선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997년 5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평화 우호 조약을 체결했다. 러시아는 이 조약을 통해 세바스토폴 및 크림반도의 기지와 설비를 2017년까지 20년간 전세 임차하고 그 뒤 5년마다 갱신하는 형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대신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와 세바스토폴이 우크라이나 땅임을 조약에 명시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이로서 세바스토폴의 소속에 대한 갈등은 일단락되었으나, 러시아는 여전히 세바스토폴은 러시아의 일부이며 단지 일시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상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2008년에는 모스크바 시장이 세바스토폴은 다시 러시아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합병에 대비해 3천 4백만 불이라는 예산을 할당해 놓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는 세바스토폴로부터 한 2,000km 정도 떨어져 있다.[4]

2010년 4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싼값에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우크라이나는 2017년 이후에도 25년간(2042년까지) 러시아 해군에 크림반도의 시설을 빌려주고 그 임대 기간을 5년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의회는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져 격렬히 싸웠다. 결론은 총 투표의 52% 찬성표로 아슬아슬하게 조약 비준하였다. 반면 러시아 의회는 98%라는 높은 찬성률로 별 이견 없이 조약을 비준했다. 한편 인구 면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30만 명대 초중반에서 정체 상태였으나, 2010년 34만 명을 기록한 이후 2014년에는 39만 3304명을 기록했다.

러시아 연방으로 귀속[편집]

2014년 3월 6일, 우크라이나가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의 폭정과 유로마이단으로 혼란한 틈을 타 세바스트폴 의회는 세바스토폴이 러시아의 연방 일원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3월 11일에는 세바스트폴과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가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하여 크림공화국으로 통일한 후 러시아 연방에 가입하는 절차를 밟는다고 공동 선언했다. 선언에 따르면 주민 투표가 가결되는 대로 통일되어 크림공화국으로 독립한 뒤 러시아 연방에 가입하겠다고 선포했다. 이 선언을 확정하는 주민 투표는 2014년 3월 16일에 열렸고, 결국 압도적인 찬성표가 나왔다. 3월 17일 크림 의회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러시아로 편입 허락을 요청했고, 3월 18일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크림공화국과 세바스토폴을 러시아 연방으로 편입시키는 조약에 서명했다. 편입조약은 세바스토폴을 다시 크림공화국에서 분리하여 연방시의 지위를 준다고 규정한다. 러시아 측의 지원, 혹은 적어도 공감대가 있었기에 이 모든 합병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2017년 세바스토폴을 배경으로 한 200루블 신권이 발행되었다. 2010년 이후의 인구 성장세가 계속되어 2016년에는 인구 40만을 돌파했고 2021년에는 50만을 돌파했다.[5]

교통[편집]

19세기에 들어 도시는 빠르게 발전했으며, 1875년 철도가 생긴 이후에 도시의 성장속도는 더 급격해졌다. 세바스토폴에는 전 시대에 걸쳐 언제나 항구가 위치해 있었다. 현재 세바스토폴에는 많은 버스 정류장과 벨벡공항이 위치해 있다. 벨벡공항은 모스크바의 도모데도보 국제공항과 키이우와의 항공노선을 정기 운항을 하며, 소규모 전세기들 또한 이 공항을 이용하고 있다.

1898년부터 세바스토폴 시민들은 제정(帝政) 러시아 시대의 첫 번째 교통수단 중 하나인 전동차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1925년에는 세바스토폴과 발라클라바를 연결하는 도시 간선이 생겼다. 전쟁 당시 이 간선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어 없어졌다. 지형의 높낮이 차이가 크고 전동차 선로 간격이 좁아 이용이 불편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세바스토폴 해방 이후에도 전동차 운행 재개에 대한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쟁 때 손실되지 않은 전동차 철로는 전시되어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세바스토폴〉, 《위키백과》
  2. 세바스토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세바스토폴(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4. 세바스토폴〉, 《요다위키》
  5. 세바스토폴〉,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러시아유럽 같이 보기[편집]

러시아유럽 행정구역
러시아유럽 도시
러시아유럽 바다
러시아유럽 지리
러시아유럽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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