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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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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릴란드 국기

소말릴란드(소말리어: Jamhuuriyadda Soomaaliland, 아랍어: جمهورية ارض الصومال , 영어: Republic of Somaliland)는 소말리아 반도 북부에 있는 미승인 국가이다. 1991년 5월에 옛 영국령 소말릴란드 지역을 중심으로 소말릴란드 공화국이 소말리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수도는 하르게이사이다.

소말리아에서는 2012년 8월 20일 연방제 수립 전까지 소말릴란드 자체를 인정하지 않다가 연방제 수립 후 소말리아의 연방 행정구역으로 편입시켰으나 소말릴란드 정부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현재 유엔 비회원국인 중화민국만이 승인하고 있다.

개요[편집]

  • 수도: 하르게이사
  • 면적: 137,600km²
  • 인구: 3,508,180명(2017)
  • 공용어: 소말리어, 아랍어
  • 정치체제: 미승인 국가, 공화제, 대통령제
  • 대통령: 무세 비히 압디

역사[편집]

1960년 6월 26일 영국령 소말릴란드는 5일 후인 7월 1일에 독립하는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와 연합할 계획으로 영국으로부터 잠깐 독립했고,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가 독립하면서 소말리아로 합쳐졌다.

하지만 하르게이사를 비롯한 전 영국령 소말릴란드 지역은 모가디슈를 비롯한 소말리아 남부에 비해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소외되어 둘 사이 갈등이 빚어졌다. 이런 갈등은 1969년에 무함마드 시아드 바레 대통령이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심화되었다. 바레는 오가덴 전쟁의 여파로 소말리아 전역이 혼란스런 마당에 자신의 씨족인 다로드-마레한 족에게 권력을 몰아주고 다른 씨족을 차별하기 시작했다. 이에 격렬하게 반발한 여러 씨족들 중 3대 씨족인 하비에 족, 다로드 족, 이사크 족이 각자 반군을 구성하고 연합해 바레 정권에 대항했다.

1986년 시아드 바레가 친위대를 동원해 다른 씨족에 대한 탄압에 박차를 가하자 내전도 심화되었는데, 1987년 소말리아 정부는 이사크 족을 상대로 체계적인 씨족 학살을 주도해 1989년까지 소말릴란드 지역에서 수만 명의 이사크 족이 사망하고 50만에 달하는 난민이 에티오피아로 몰렸다. 1988년 5월, 소말릴란드의 중심 도시(소말리아 전체에서도 둘째, 셋째 가는 도시)인 하르게이사와 부라오가 소말리아 공군에게 폭격당해 거의 완전 파괴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소말리아국민운동은 구성원이 이사크 족인 정치 투쟁에 가까웠으나, 학살 이후 씨족 단위로 소말리아국민운동에 가담하게 됐다.

1991년 반 시아드 바레 연합은 수도인 모가디슈를 장악하고 바레 정권을 붕괴시켰지만 내부의 권력 투쟁이 격화되면서 결국 내란으로 번졌다. 이 와중에 1991년 소말리아국민운동은 독립을 선언했고, 소말리아국민운동의 지도자였던 투르(Abdirahman Ahmed Ali Tuur)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 당시만 해도 소말릴란드는 소말리아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는데, 정부의 통제력은 약했고 관세와 같은 이권을 두고 씨족끼리 전투가 빈번했다. 결국 1992년 베르베라 항구의 이권을 둘러싸고 일어난 내전에서 크게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1993년, 보라마(Boorama)에 소말릴란드 전 씨족이 모여 3달간의 평화 협상을 벌였다. 협상 결과 각 씨족은 민병대를 해체하고 무기를 회수하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원로들의 투표를 통해 바레의 쿠데타 이전까지 소말리아의 총리였던 에갈(Muhammad Haji Ibrahim Egal)이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무장 해제는 대부분의 씨족에서 원만하게 진행됐으나, 이전 집권 세력이던 하바르 유니스(Habar Yunis) 씨족은 대통령 선출, 특히 베르베르 항구 및 하르게이사 공항의 관세 이권이 정부로 이양되는 것에 반발해 무장 해제를 거부했다. 결국 1994년 또다시 내전이 발발했고, 1996년 10월 하르게이사에서 열린 평화 협상을 통해서야 진정되었다. 이때 소말릴란드 헌법이 정립됐으며, 복수정당제, 무장 해제 완수가 결의된다. 2001년 주민 투표를 통해 소말릴란드 헌법이 통과되고 2003년 최초로 대통령 선거가 치뤄진 이래, 무력을 동반한 큰 분쟁은 벌어지지 않아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정치[편집]

독립한 이후 2001년 다당제를 도입하였고, 2003년 행정부를 구성, 2005년 의회를 구성하였다. 공인 정당은 3개로 한정되며, 매 10년마다 정당 3개를 선택하는 선거를 치룬다. 이는 정당 수를 제한함으로써 씨족별 정당이 난립하는 것을 막고 각 씨족이 정치를 위해 협력하게 유도한 것이다. 총 득표율에서 상위 3위에 드는 정당이 공인되며, 각 정당은 총 득표율과 별개로 여섯 선거구 중 최소 네 선거구에서 20% 이상의 득표를 해야 한다. 이 또한 정당이 특정 씨족을 대표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의원 후보는 정당에 속해야 하며, 대통령 선거 시엔 각 정당에서 후보를 1명씩 보내 3명이 경쟁하게 된다.

입법부는 양원제로 의회와 원로원(구르티, Guurti)으로 구분된다. 둘 다 82명의 의석을 가지고 있으며, 임기는 5년이다. 의원은 총선을 통해 선출되며, 원로는 씨족의 비례대표로 구성된다.

원로원, 곧 구르티는 원로들이 특별히 모이는 회의란 뜻으로, 현대 소말릴란드의 구르티는 1988년 바레의 학살 이후 이사크 족이 소집한 원로 회의에서 유래했다. 이후 1993년 평화 협상으로 상설화됐으며, 이사크 족뿐만 아니라 모든 씨족의 원로가 원로원에 참여하게 됐다. 원로원은 분쟁을 조정하거나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을 심사하는 일을 맡는다. 또한 원로원은 소말릴란드라는 국가의 정통성을 상징한다. 전통적으로 씨족사회였고 영국 식민지 시대에도 영국은 구 체제를 인정하는 간접적 통치를 했기 때문에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서의 정통성이 부족했다. 원로원을 씨족의 대표로 채워 원로원은 소말릴란드의 씨족들을 대표하는 기관이 됨으로서 국가의 정통성을 상징하게 된 것이다.

2003년 최초로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으며, 이 선거에서 큘미헤당의 아흐메드 모하메스 시라아뇨가 49%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17년 대통령 선거는 세계 최초로 홍채인식 확인절차를 도입했다. 3명의 후보가 출마했으며 대선 이슈는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독립을 인정받을 것인가?"라고 한다. 대선 결과는 집권당인 평화통합개발당의 무세 비히 압디가 55.1%의 득표율을 얻어 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부정선거 논란으로 시위가 일어 2명이 숨졌다.

2021년 5월 31일, 2005년 의회 구성 이후 처음으로 의원 선거를 치뤘다. 가뭄 같은 현생 문제를 비롯해 선거 절차에 대한 논쟁으로 계속 지연됐었는데, 지방 선거나 대선은 어떻게든 치루는 와중에도 의원 선거는 16년 만에야 시행됐다. 65.3%의 투표율을 보여준 의원 선거는 두 야당의 연정으로 인한 집권 여당의 패배로 결정됐고, 관련 부처 내 권력 이양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경제[편집]

비공식 환율은 달러 당 6,000에서 6,500 실링 수준. 여담으로 1,000 실링 동전의 뒷면은 소말릴란드의 국장 대신 소말리아의 국장이 그려져 있다. 현재는 화폐 제조 기술이 없어 영국에서 수입 해오는 중이며, 인플레이션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지만 영국과의 관계 개선 및 기술 탐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여러 나라에 , 염소, 낙타 등의 가축수출하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다. 소말리아 측에서 이 문제로 사우디아라비아에 항의했으나 가축 수입을 잠시동안 중단했다가 재개했을 뿐이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장은 소말릴란드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도 없고 가축을 싼 값에 사는 것뿐이니 소말리아가 그 값에 팔 수 있다면 사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소말리아도 연방 자치 행정구역인 푼틀란드를 통해 가축을 싸게 팔고 있다.

또한 레바논,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과일을 수입하면서 아랍 동맹의 여러 나라와 경제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 아직까지 그들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다.

현재 미승인국이라는 현실과 기술의 부족으로 인해 소말릴란드 실링의 가치가 매우 떨어지기에 국민의 25%가 전자화폐를 쓸 정도로 전자화폐 거래가 활발하다고 한다.

에티오피아가 소말릴란드 베르베라항에 출자했다.

2021년 5월, DP World라는 두바이 소재 기업이 소말릴란드와 베르베라 항구에 한화 약 5,000억 원(4억 4,000만 달러) 규모의 항구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소말릴란드에 대한 투자 금액으로는 역대 최대이며, 지역 무역 중심지로 개발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 상황이다.

기타[편집]

1991년에 독립을 선언했으나 아직 어떠한 국가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한 완전한 미승인국이다. 하지만 국가적 요소는 모두 갖추었고, 자국의 화폐까지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독립국이다. 오히려 혼란한 정세인 소말리아보다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분리주의에 부정적인 국제 여론에 의해 승인이 주저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소말리아의 자치 지역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최근에는 해적납치를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소말릴란드는 소말릴란드의 구성 부족들이 정부와 함께 치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나 소말리아 반군 세력에 의한 테러로 인한 위험이 있다. [아프리카]] 국가 중 남아프리카공화국 다음으로 군과 경찰에 여성의 비율이 높다. 2010년 6월 26일 푼틀란드에서 넘어온 민병대가 투표소를 습격하여 일부 투표소가 일찍 문을 닫는 일이 있었다.

소말릴란드 지도[편집]

소말릴란드 주변 지도[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프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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