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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해시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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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4를 들고 있는 스티브 잡스 (2010년)
애플(Apple)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는 미국 애플(Apple) 사의 설립자 겸 CEO를 지낸 사업가이다.

약력

  • 1955년 2월 24일 :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직후 보육원으로 보내졌다가 폴 잡스(Paul Jobs)와 클라라 잡스(Clara Jobs) 부부가 입양한다. 양아버지는 뛰어난 손재주를 가진 기계공이었다. 훗날 회고에서 스티브는 양아버지에게 전기, 전자의 기본을 배웠다고 기술한다.
  • 1960년 : 샌프란시스코 남쪽, 당시 살구나무와 자두나무로 뒤덮인 과수원 마을 마운틴뷰로 이사한다.
  • 1972년 : 오리건 주 리드 대학에 입학하지만, 첫 학기를 마치고 중퇴한다.
  • 1974년 : 고향으로 돌아와 컴퓨터 동호회에 가입하여 스티브 워즈니악과 친구가 된다. 두 젊은이는 함께 아타리(Atari)에 입사해 컴퓨터 게임 디자인 일을 한다.
  • 1976년 :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집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를 창업한다.
  • 1977년 : 애플Ⅱ 퍼스널 컴퓨터를 선보인다.
  • 1978년~1983년 : 퍼스널 컴퓨터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애플 컴퓨터는 연 150%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지만 곧이어 등장한 IBM PC에 밀려난다.
  • 1979년 : 제록스사 팔로알토 연구소를 방문하여 알토 컴퓨터 시제품을 보고 GUI, 윈도우, 메뉴 등으로 이루어진 운영 체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 1980년 : 애플 컴퓨터를 주식시장에 상장한다.
  • 1983년 : 펩시콜라 미주 본사 사장 존 스컬리(John Sculley)를 애플 컴퓨터 대표이사로 영입한다.
  • 1984년 : 1백 명의 연구개발팀을 이끌고 출시한 매킨토시를 프로 미식축구 결승전 슈퍼볼 마지막 경기 광고와 함께 선보인다. 매킨토시는 '골리앗'IBM PC를 이기는 '다윗'맥으로 알려지며 출판업계의 지각 변동을 불러온다.
  • 1985년 : 스컬리 사장이 주동하는 세력에 의해 이사회에서 밀려난다. 당시 20억 달러 규모로 커진 애플 컴퓨터 창업자는 겨우 1억 5천만 달러를 손에 쥐고 분노하며 떠나간다.
  • 1986년 : 영화 스타워즈 감독으로부터 루커스 영화사 컴퓨터 그래픽스 사업 부문을 떼어 인수한다. 루커스 영화사 부사장이자 동업자 에드 캣멀(Ed Catmull)이 기술 담당 사장을 맡고 함께 픽사(Pixar)라는 이름으로 출발한다.
  • 1989년 : 새로운 컴퓨터 회사 넥스트(NeXT)를 설립하여 객체 지향 프로그램 시장을 겨냥한다. 애플을 떠나 8년간 또 하나의 성공 신화를 위해 노력하지만 넥스트는 실패한다. 훗날 고백에서 잡스는 애플의 성공 모델을 그대로 복사하려 했던 실수를 인정한다.
  • 1993년 : 애플 컴퓨터의 실적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자 이사회는 스컬리 사장을 해임하고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를 영입한다. 강력한 칩을 탑재한 파워 PC 라인을 출시해 성공하지만, PDA 전자수첩 뉴턴(Newton)은 실패로 끝난다.
  • 1995년 : 픽사를 주식시장에 상장해 1억 4천만 달러를 끌어들이면서 그해 최고 화제를 일으킨 넷스케이프(Netscape)를 제치고 최대 규모 주식 공개 기업으로 떠오른다. 사상 최초로 완전 디지털 기술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가 전 세계적으로 3억 4천 2백만 달러 수입을 기록하며 최대 히트작에 오른다. 휴가 중 하와이에서 오라클 창업자 로렌스 엘리슨과 만나 애플 컴퓨터 탈환을 상의한다.
  • 1996년 : 스핀들러 사장이 사임하고 내셔널 세미컨덕터(Semiconductor)사 CEO를 지낸 길 아멜리오(Gil Amelio)가 애플의 CEO로 취임한다. 아멜리오 사장은 곧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새로운 컴퓨터 운영 체계 소프트웨어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이 소문을 전해 들은 잡스는 아멜리오 사장을 만나 넥스트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권유한다. 두 사람이 비밀 협상을 한 끝에 12월 애플이 넥스트를 4억 달러에 사들이는 결정을 발표한다.
  • 1997년 : 애플이 넥스트 인수를 순조롭게 마무리 지은 후 잡스는 애플 컴퓨터로 복귀한다. 7월 아멜리오 사장이 사임하는데, 잡스가 이사회를 설득하여 그를 쫓아낸 것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온다. 저널리스트로서 잡스의 전기를 쓰고 있던 앨런 도이치먼(Alan Deutschman)은 그의 복귀를 가리켜 책 제목을 '스티브 잡스의 재림 (The Second Coming of Steve Jobs)'이라고 짓는다.
  • 1998년 : 교육 기관 및 학생들을 겨냥한 산뜻한 디자인과 낮은 가격을 내세운 아이맥(iMac)을 출시한다. 초창기 애플의 혁신 지향 특성을 되살리려는 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 2001년 : 픽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가 상영 9일째 1억 달러 매표 실적을 올리면서 만화 영화 역사상 가장 빠른 1억 달러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다. 1월 애플 컴퓨터는 음악 다운로드 사이트 아이튠즈(iTunes)를 개설한다. 첫 주에 27만 5천 곡을 파는 기록을 세우며 매킨토시 사용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낸다. 10월에는 아이팟(iPod)이라는 MP3 기기를 출시한다. 잡스는 제품 시연회에서 "아이팟으로 인해 음악을 듣는 경험이 바뀔 것이다. 애플 컴퓨터는 아이팟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세상을 열었다."라고 선언한다.
  • 2002년 : 3월 애플컴퓨터는 10GB 용량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에 2천 곡을 담을 수 있는 2세대 아이팟을 출시한다. 5월에는 픽사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가 개봉 첫 주 7020만 달러 흥행 기록을 세우고 극장 상영 수입만 총 8억 달러를 넘기는 세계 기록을 세운다.
  • 2003년 : 10월 아이튠즈 윈도우용 소프트웨어를 출시하며 시장을 확장한다. 윈도우 시장 진출 첫 주에 150만 곡을 판매하는데, 잡스에 따르면 이 기록은 냅스터(미국의 음악 파일 교환 사이트)의 30만 곡에 비해 5배다. 12월 말까지 누계 2천 5백만 곡 판매를 기록하는 아이튠즈는 '타임'이 선정한 2003년 가장 멋진 발명품에 뽑힌다.
  • 2004년 : 1월 애플 컴퓨터는 아이팟 크기를 줄인 아이팟 미니(iPod Mini)를 출시한다. 청소년들에게 어필하도록 오리지널 아이팟보다 반으로 줄인 크기에 무게는 3.6온스(약 102그램), 그리고 1천 곡을 담을 수 있다. HP가 만드는 컴퓨터에 아이튠즈를 장착하는 전략적 제휴를 시작한다. [1]

종교

오토가와 고분 치노(乙川弘文)

잡스는 1960년대 히피 문화의 중심이었던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라면서 이의 영향을 받았고 선불교 등에 깊이 심취했다. 1973년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 대학교 철학과를 한 학기만 다니고 중퇴한 후, 오리건 주 올인원팜(All in one farm)이라는 사과 농장에서 히피 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그곳에 기거하던 일본 불교 승려인 오토가와 고분 치노(乙川弘文)를 만나 불교에 입문했다. 1974년 잡스는 인도여행을 통해 불교에 대해 깊게 공부했으며, 그는“이것(불교를 접한 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2] 일부에선 아이팟 등의 단순한 디자인이 선의 정신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도 나온다.[3]이후 잡스의 결혼식 주례도 오토가와 고분이 했다. 그 이후, 회사가 잘 안 되자, 잡스는 출가하여 승려가 되려고 고민했었다. 하지만 스님이 반대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오토가와 고분이 2002년 사망할 때 까지, 잡스는 항상 그를 정신적으로 의지했다. 애플이란 회사명, 애플 제품의 매우 단순한 디자인, 사과농장, 불교는 매우 큰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4]

생애

195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으나, 출생 직후 양부모에게 입양되었다. 등록금이 없어 미국 리드 대학교(Reed College)를 중퇴하고, 아타리(Atari)라는 전자게임회사에 다니다가 퇴사하고, 불교 사상에 심취하여 몇 달씩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 산맥 일대를 여행했다.

1976년 어린 시절 동네 형이었던 천재 프로그래머인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과 함께 애플(Apple) 회사를 공동 창업했다. 애플1(Apple I), 애플2(Apple II), 매킨토시(Macintosh) 등 개인 PC의 폭발적 판매로 인해 일약 억만장자가 되었다. 하지만 괴팍한 성격과 독설로 인해 주변 동료들과 불화가 잦았고, 결국 본인이 영입한 부사장인 존 스컬리(John Sculley)에 의해 이사회에서 해고를 당했다.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는 이후 넥스트(NeXT)라는 프로그램 개발 회사를 세우고, 조지 루카스(George Lucas) 감독으로부터 픽사(Pixar)를 인수하여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에 몰두했다. 수익이 거의 없어서 사실상 빈털터리가 되었던 스티브 잡스는 토이 스토리(Toy Story) 등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여 월트 디즈니(Walt Disney)사에 거액에 인수되면서 다시 억만장자가 되었다. 또한 넥스트 회사가 애플에 인수되면서, 자신이 창업했던 애플에 복귀할 수 있었다.

2001년 스티브 잡스는 mp3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아이팟(iPod) 제품을 개발하여 히트를 했다. 2003년 사파리(Safari) 웹브라우저를 개발했다. 2004년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2007년 아이폰(iPhone)이라는 스마트폰을 개발하여 세계적인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아이패드(iPad) 등 연이은 성공으로,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 회사는 시가 총액으로 세계 1위의 기업이 되었다.

2011년 췌장암이 악화하여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직후 스티브 잡스의 일생을 다룬 전기가 출판되었다.

각주

  1. cmgpg,〈스티브 잡스의 약력 - 세상을 변화시킨 우리 시대 최고의 비즈니스 리더〉, 《네이버 블로그》, 2013-06-01
  2. 박선호 기자, 〈(스티브 잡스 사망)입양아·애플 창업·암 투병…‘천재’잡스의 일생 〉, 《문화일보》, 2011-10-06
  3. 양미영 기자, 〈(잡스 사망)풍운아 잡스 잠들다..드라마같았던 삶〉, 《이데일리》, 2011-10-06
  4. 스티브 잡스〉, 《위키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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