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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스페인어: España 에스파냐) 또는 '''스페인 왕국'''(스페인어: Reino de España 레이노 데 에스파냐)은 유럽의 남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국가]]이다. 수도는 '''[[마드리드]]'''(Madrid)이다.  
 
'''스페인'''(스페인어: España 에스파냐) 또는 '''스페인 왕국'''(스페인어: Reino de España 레이노 데 에스파냐)은 유럽의 남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국가]]이다. 수도는 '''[[마드리드]]'''(Madrid)이다.  
  
스페인의 영토는 [[이베리아 반도]]에 걸쳐져 있으며, [[대서양]]에 위치한 [[카나리아제도]]와 [[지중해]]에 위치한 [[발레아레스제도]] 역시 스페인 영토이다. 스페인은 세우타, 멜리야, 페뇽데벨레스데라고메라와 같이 [[아프리카]]에 영토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스페인은 유럽 국가 중 아프리카 국가와 유일하게 육지상 국경이 있는 나라이다. [[알보란해]]에 있는 플라사스 데 소베라니아 역시 스페인 영토이다. 스페인 본토는 동쪽과 남쪽이 지중해에 접하고 있으며, 유일하게 [[영국]]의 [[지브롤터만]]이 육지 국경이다. 북쪽의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안도라와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북쪽 바다는 비스케이만을 접한다. 서쪽으로는 [[포르투갈]]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쪽 바다는 [[대서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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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영토는 [[이베리아 반도]]에 걸쳐져 있으며, [[대서양]]에 위치한 [[카나리아 제도]]와 [[지중해]]에 위치한 [[발레아레스 제도]] 역시 스페인 영토이다. 스페인은 세우타, 멜리야, 페뇽데벨레스데라고메라와 같이 [[아프리카]]에 영토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스페인은 유럽 국가 중 아프리카 국가와 유일하게 육지상 국경이 있는 나라이다. [[알보란해]]에 있는 플라사스 데 소베라니아 역시 스페인 영토이다. 스페인 본토는 동쪽과 남쪽이 지중해에 접하고 있으며, 유일하게 [[영국]]의 [[지브롤터만]]이 육지 국경이다. 북쪽의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안도라와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북쪽 바다는 비스케이만을 접한다. 서쪽으로는 [[포르투갈]]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쪽 바다는 [[대서양]]이다.
  
 
많은 소왕국들이 8세기 초부터 이슬람 세력에 지배당하다가 이슬람으로부터 실지회복(失地回復)을 꾀하는 국토회복운동이 1492년 성공함으로써 통일이 이루어졌다.
 
많은 소왕국들이 8세기 초부터 이슬람 세력에 지배당하다가 이슬람으로부터 실지회복(失地回復)을 꾀하는 국토회복운동이 1492년 성공함으로써 통일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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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51번째로 큰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면적은 50만 4,782km²이다. 본토는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하는데, 그밖에 지중해와 대서양의 제도, 두 개의 자치시인 세우타와 멜리야가 있다. 본토의 1/3 정도가 산지이며, 평균 해발 고도 660미터로 유럽을 통틀어 스위스 다음가는 고산 국가이기도 하다. 북부에는 피레네 산맥, 대서양 연안 지방에는 [[칸타브리아 산맥]], 남부에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중앙부에는 [[메세타 고원]](이베리아 고원)이 있다. 과달키비르 강, 과디아나 강을 비롯해 에브로 강, 두에로 강 등이 스페인의 주요 강이다.
 
세계에서 51번째로 큰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면적은 50만 4,782km²이다. 본토는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하는데, 그밖에 지중해와 대서양의 제도, 두 개의 자치시인 세우타와 멜리야가 있다. 본토의 1/3 정도가 산지이며, 평균 해발 고도 660미터로 유럽을 통틀어 스위스 다음가는 고산 국가이기도 하다. 북부에는 피레네 산맥, 대서양 연안 지방에는 [[칸타브리아 산맥]], 남부에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중앙부에는 [[메세타 고원]](이베리아 고원)이 있다. 과달키비르 강, 과디아나 강을 비롯해 에브로 강, 두에로 강 등이 스페인의 주요 강이다.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은 토지가 비옥해 예로부터 포도 및 오렌지, 올리브 재배가 이루어졌으며, 이슬람의 지배를 오래 받아 아직도 아랍 문화의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다. 스페인 본토의 동쪽을 보면 큰 섬이 몇 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요르카섬]]을 비롯한 [[발레아레스제도]]라 불리는 이곳은 지중해에서 가장 각광받는 [[휴양지]] 중 하나이며, 1950년대 스페인 정부의 관광 개발 정책에 힘입어 관광업이 계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성장했다. [[세우타]]와 [[멜리야]]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스페인령으로 [[모로코]]와 인접하는 한편 [[지브롤터해협]]의 중요 항구인 [[지브롤터]]는 영국령이다. [[비다소아강]]의 작은 섬인 [[피센섬]]은 프랑스와 공동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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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은 토지가 비옥해 예로부터 포도 및 오렌지, 올리브 재배가 이루어졌으며, 이슬람의 지배를 오래 받아 아직도 아랍 문화의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다. 스페인 본토의 동쪽을 보면 큰 섬이 몇 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요르카섬을 비롯한 발레아레스 제도라 불리는 이곳은 지중해에서 가장 각광받는 휴양지 중 하나이며, 1950년대 스페인 정부의 관광 개발 정책에 힘입어 관광업이 계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성장했다. 세우타와 멜리야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스페인령으로 모로코와 인접하는 한편 지브롤터 해협의 중요 항구인 지브롤터는 영국령이다. 비다소아 강의 작은 섬인 피센 섬은 프랑스와 공동 관리한다.
  
 
서쪽으로는 포르투갈과 접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 및 안도라 공국과 접하고 있다. 또한 피레네 근처에 있는 인구 약 1200명 규모의 리비아(Llívia)라는 마을은 프랑스 영토에 둘러싸여 있기도 하다.
 
서쪽으로는 포르투갈과 접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 및 안도라 공국과 접하고 있다. 또한 피레네 근처에 있는 인구 약 1200명 규모의 리비아(Llívia)라는 마을은 프랑스 영토에 둘러싸여 있기도 하다.
  
 
=== 섬 ===
 
=== 섬 ===
[[파일:카나리아 제도의 테이데 산.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jpg|썸네일|300픽셀|카나리아제도의 테이데 산.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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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카나리아 제도의 테이데 산.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jpg|썸네일|300픽셀|카나리아 제도의 테이데 산.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파일:팔마 데 마요르카.jpg|썸네일|300픽셀|팔마 데 마요르카]]
 
[[파일:팔마 데 마요르카.jpg|썸네일|300픽셀|팔마 데 마요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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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영토에는 발레아레스 제도와 카나리아 제도 그리고 지중해 및 지브롤터 해협 근처에 접하는 여러 무인도가 포함된다. 지중해의 도서 영토를 두고 Plazas de soberanía로 칭하며 차파리나스 제도, 알보란 섬, 페레힐 섬 등을 포함한다. 비다소아 강에 있는 피전트 섬은 스페인과 프랑스가 공통으로 점유하고 있다.
스페인의 영토에는 [[발레아레스제도]]와 [[카나리아제도]] 그리고 [[지중해]] [[지브롤터해협]] 근처에 접하는 여러 [[무인도]]가 포함된다. 지중해의 도서 영토를 두고 Plazas de soberanía로 칭하며 [[차파리나스제도]], [[알보란섬]], [[페레힐섬]] 등을 포함한다. [[비다소아강]]에 있는 [[피전트섬]]은 스페인과 [[프랑스]]가 공통으로 점유하고 있다.
 
 
 
 
* 1. 테네리페 899,833
 
* 1. 테네리페 899,833
 
* 2. 마요르카 862,397
 
* 2. 마요르카 862,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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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과 강 ===
 
=== 산과 강 ===
이베리아 반도에 속한 스페인 본토는 산악 지형이 두드러 지며 산악 지형을 중심으로 고지대 평원이 분포한다. 피레네 산맥을 잇는 산지로는 칸타브리아 산맥, 시스테마 이베리코, 시스테마 센트랄, 톨레도 산맥, 시에라 모레나 등이 있으며 최고봉 3,478m인 물아센(Mulhacén)이 있는 시스테마 페니베티고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위치하고 있다. 이 봉우리는 스페인 본토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서 스페인 전 영토를 포함하여 최고봉은 [[카나리아제도]]의 화산인 [[테이데이]]다. 메세타 고원은 스페인 중앙부에 위치한 고지대 평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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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에 속한 스페인 본토는 산악 지형이 두드러 지며 산악 지형을 중심으로 고지대 평원이 분포한다. 피레네 산맥을 잇는 산지로는 칸타브리아 산맥, 시스테마 이베리코, 시스테마 센트랄, 톨레도 산맥, 시에라 모레나 등이 있으며 최고봉 3,478m인 물아센(Mulhacén)이 있는 시스테마 페니베티고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위치하고 있다. 이 봉우리는 스페인 본토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서 스페인 전 영토를 포함하여 최고봉은 카나리아 제도의 화산인 테이데이다. 메세타 고원은 스페인 중앙부에 위치한 고지대 평원이다.
  
주요 강으로는 [[에브로강]], [[두에로강]], [[타구스강]]을 비롯해 [[과디아나강]], [[과달키비르강]]이 있다. 충적 평야는 대부분 해안가에 분포하며 과달키비르강에 위치한 안달루시아 지방의 [[충적평야]]가 가장 넓고 비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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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강으로는 [[에브로 강]], [[두에로 강]], [[타구스 강]]을 비롯해 [[과디아나 강]], [[과달키비르 강]]이 있다. 충적 평야는 대부분 해안가에 분포하며 과달키비르 강에 위치한 안달루시아 지방의 충적평야가 가장 넓고 비옥하다.
  
 
=== 기후 ===
 
=== 기후 ===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그렇듯이 1년 내내 햇볕이 따사롭고 놀기 좋은 해변을 많이 갖고 있다. 덕분에 관광 분야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스페인을 찾은 해외 관광객은 8,300만 명으로 세계 2위, 관광 수입은 80조원으로 세계 2위다. 독일 등 북유럽 노인들이 은퇴 후 살고 싶은 나라 1순위다. 실제로 [[말라가]]나 [[마요르카섬]] 경치 좋고 살기 좋은 동네에서는 독일, 영국 등에서 은퇴 후 이민으로 정착한 [[노인]]들을 흔히 만나볼 수 있다. 심지어 식당 메뉴에도 [[독일어]]가 병기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각종 편견에서 마요르카는 반쯤 독일 땅 취급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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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그렇듯이 1년 내내 햇볕이 따사롭고 놀기 좋은 해변을 많이 갖고 있다. 덕분에 관광 분야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스페인을 찾은 해외 관광객은 8,300만 명으로 세계 2위, 관광 수입은 80조원으로 세계 2위다. 독일 등 북유럽 노인들이 은퇴 후 살고 싶은 나라 1순위다. 실제로 말라가나 마요르카 섬 경치좋고 살기 좋은 동네에서는 독일, 영국 등에서 은퇴 후 이민으로 정착한 노인들을 흔히 만나볼 수 있다. 심지어 식당 메뉴에도 독일어가 병기되어 있을 정도. 그래서 각종 편견에서 마요르카는 반쯤 독일 땅 취급당하고 있다.
  
 
지중해에 면한 남유럽 국가라는 이유 때문에 일년 내내 따스하고 햇볕 강한 기후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스페인은 넓은 국가라 기후가 꽤 다양한 편이다. 북부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습하면서 서늘하고 남부와 내륙 지방은 중동과 북아프리카가 연상될만큼 덥고 건조하다.
 
지중해에 면한 남유럽 국가라는 이유 때문에 일년 내내 따스하고 햇볕 강한 기후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스페인은 넓은 국가라 기후가 꽤 다양한 편이다. 북부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습하면서 서늘하고 남부와 내륙 지방은 중동과 북아프리카가 연상될만큼 덥고 건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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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8세기부터 스페인을 다스린 무어인의 알 안달루스는 주변의 토후국들과 경쟁하느라 결국에 기독교 세력의 팽창을 도와주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 다만 1085년 톨레도를 점령하면서 북쪽 지역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계속해서 국토 회복 운동이 남쪽 방향으로 향한다. 종교적으로 이때까지는 극심한 탄압이 이뤄지지 않아서 몇 안 되는 모스크나 이슬람 사원만이 교회로 바뀌었다. 이미 무어인이 스페인 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무어인의 예술과 건축, 음식 등 고유의 문화는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18] 막대한 위력을 떨치던 이슬람 세력은 기독교 세력에게 코르도바 지역을 시작으로 1236년 지금의 세비야까지 내주고 만다. 잠시 동안 여러 상황을 겪은 스페인은 유럽 전체를 집어 삼킨 흑사병으로 1348년 무렵에는 극도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슬람 세력을 지원하던 마리니드 왕조는 13~14세기에 다발적으로 무슬림의 규약을 부활시키기 위해 재침공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마리니드 왕조는 13세기 중엽부터 15세기까지 스페인 남부와 지금의 모로코를 통치하였다.
 
한편 8세기부터 스페인을 다스린 무어인의 알 안달루스는 주변의 토후국들과 경쟁하느라 결국에 기독교 세력의 팽창을 도와주는 일을 저지르고 만다. 다만 1085년 톨레도를 점령하면서 북쪽 지역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계속해서 국토 회복 운동이 남쪽 방향으로 향한다. 종교적으로 이때까지는 극심한 탄압이 이뤄지지 않아서 몇 안 되는 모스크나 이슬람 사원만이 교회로 바뀌었다. 이미 무어인이 스페인 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무어인의 예술과 건축, 음식 등 고유의 문화는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18] 막대한 위력을 떨치던 이슬람 세력은 기독교 세력에게 코르도바 지역을 시작으로 1236년 지금의 세비야까지 내주고 만다. 잠시 동안 여러 상황을 겪은 스페인은 유럽 전체를 집어 삼킨 흑사병으로 1348년 무렵에는 극도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슬람 세력을 지원하던 마리니드 왕조는 13~14세기에 다발적으로 무슬림의 규약을 부활시키기 위해 재침공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마리니드 왕조는 13세기 중엽부터 15세기까지 스페인 남부와 지금의 모로코를 통치하였다.
  
1469년 아라곤의 왕위 후계자 페르난도와 카스티야의 왕위 계승 후계자 이사벨의 결혼으로 공동 국왕이 지배하는 왕국이 성립됐다. 두 사람의 공동 왕국 출범 이후, 스페인은 1479년 카나리아제도를 복속하고 1492년 무슬림의 마지막 보루이던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781년 간의 스페인 내 무슬림 지배를 종식시키고 통일을 이루었다. 이 시기에 스페인에는 팔렌치아 대학과 살라만카 대학 등이 설립된다. 이들 학교는 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이른 시기에 설립된 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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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9년 아라곤의 왕위 후계자 페르난도와 카스티야의 왕위 계승 후계자 이사벨의 결혼으로 공동 국왕이 지배하는 왕국이 성립됐다. 두 사람의 공동 왕국 출범 이후, 스페인은 1479년 카나리아 제도를 복속하고 1492년 무슬림의 마지막 보루이던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781년 간의 스페인 내 무슬림 지배를 종식시키고 통일을 이루었다. 이 시기에 스페인에는 팔렌치아 대학과 살라만카 대학 등이 설립된다. 이들 학교는 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이른 시기에 설립된 대학이다.
 
[[파일:그라나다 정복 (1492년).jpg|썸네일|300픽셀|그라나다 정복 (1492년)]]
 
[[파일:그라나다 정복 (1492년).jpg|썸네일|300픽셀|그라나다 정복 (1492년)]]
 
1492년은 스페인에게 있어서 여러 의미를 지니는 한해였다. 이교도 세력을 몰아내고 통일을 이루었을뿐만 아니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스페인 내 유대인 박해가 시작된다. 철저한 로마 가톨릭 국가가 되기 위해 종교재판을 통해 이단을 색출한다는 명분 하에 무력으로 저항하는 다른 종교 신자들을 화형에 처하고 개종을 거부하는 이슬람교도와 유대교 신자를 죽였다.
 
1492년은 스페인에게 있어서 여러 의미를 지니는 한해였다. 이교도 세력을 몰아내고 통일을 이루었을뿐만 아니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스페인 내 유대인 박해가 시작된다. 철저한 로마 가톨릭 국가가 되기 위해 종교재판을 통해 이단을 색출한다는 명분 하에 무력으로 저항하는 다른 종교 신자들을 화형에 처하고 개종을 거부하는 이슬람교도와 유대교 신자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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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전성기 ===
 
=== 스페인의 전성기 ===
[[파일:스페인 제국의 변천.PNG|썸네일|300픽셀|스페인 제국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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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통합은 [[스페인 제국]]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16세기와 17세기 대부분에 걸쳐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렸으며 식민지 무역으로 쌓은 부를 누렸다. 그중에서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 때에 이르러 최고의 영화를 쌓게 된다. 다만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 이탈리아 전쟁,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 영국과 스페인 간 전쟁(1588년~1604년)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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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스페인 제국의 변천.PNG|썸네일|300픽셀|스페인 제국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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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에 카를로스 1세에 의해 시작된 스페인-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토는 남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오늘날 미국의 남서부 지방, [[필리핀]], [[마리아나 제도]], [[포르투갈]],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스페인 제국은 이때부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별칭을 얻게 돼 "스페인이 움직이면 전 세계가 두려워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바다와 육지를 넘어 바닷길이 열리면서 유럽의 제국주의가 첫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금은이나 향신료, 진귀한 농산물을 약탈하면서 스페인 항해자들은 유럽인에게 신세계를 소개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당대는 분명 스페인의 개화기로서 지금은 스페인의 황금기로 칭송되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인들에게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을 강제하였으며 식민지 자원 수탈과 흑인 노예무역에 앞장서기도 했다.
  
왕국의 통합은 [[스페인제국]]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16세기와 17세기 대부분에 걸쳐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렸으며 식민지 무역으로 쌓은 부를 누렸다. 그중에서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 때에 이르러 최고의 영화를 쌓게 되었다. 다만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 이탈리아 전쟁,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 영국과 스페인 간 전쟁(1588년~1604년)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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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스페인은 황금기를 누리면서도 수많은 전쟁에 시달린다. [[오스만 제국]]의 급성장과 더불어 [[오스만]]과 손을 잡은 해적들이 지중해 연안 지방에는 약탈을 일삼아 노예 매매와 침략 행위가 끊이지 않게 된다. 이슬람 세력에 의한 약탈도 빈번했으며 유럽의 강대국들은 이탈리아 반도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여러번 전쟁을 치구기도 했다.(이탈리아 대전쟁) 후에는 로마 가톨릭 내 교회 개혁 문제로 스페인 전체가 분열에 휩싸여 스페인은 한동안 종교 문제에 지속적으로 군사 대응을 하기에 이른다.
  
16세기에 [[카를로스 1세]]에 의해 시작된 [[스페인-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토는 [[남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오늘날 [[미국]]의 남서부 지방, [[필리핀]], [[마리아나제도]], [[포르투갈]],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스페인제국은 이때부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별칭을 얻게 돼 "스페인이 움직이면 전 세계가 두려워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바다와 육지를 넘어 바닷길이 열리면서 [[유럽]]의 [[제국주의]]가 첫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금은이나 향신료, 진귀한 농산물을 약탈하면서 스페인 항해자들은 유럽인에게 신세계를 소개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당대는 분명 스페인의 개화기로서 지금은 스페인의 황금기로 칭송되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인들에게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을 강제하였으며 식민지 자원 수탈과 [[흑인]] [[노예무역]]에 앞장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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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십 년간의 전쟁과 기근 속에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여러 문제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스페인의 합스부르크가는 유럽 전역에 퍼져 있던 문제에 개입하며 사태를 악화시켜 국력 약화를 자초했다.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로서 땅에 떨어진 합스부르크가의 위신을 세우려 노력했다. 신성 로마 제국의 군대와도 함께 연합하여 개신교 세력이 일으킨 변혁을 뒤엎으려 시도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포르투갈이 독립을 쟁취하는 한편 네덜란드도 1648년 완전 독립하기에 이르렀다. 결국에는 유럽 전역에 30년 전쟁이 불어 닥치자 신교를 비밀리에 지원하던 프랑스에 패배하였다. 당시 스페인의 영향력은 유럽 전역에 미치고 있었으므로 유럽 전반의 경제 또한 상당한 침체기를 겪었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스페인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광대한 해외 영토를 유지하면서 더욱 그 영향력을 넓혀 식민지 통치를 19세기까지 계속하게 된다.
  
한편 스페인은 황금기를 누리면서도 수많은 전쟁에 시달린다. [[오스만제국]]의 급성장과 더불어 [[오스만]]과 손을 잡은 [[해적]]들이 [[지중해]] 연안 지방에는 약탈을 일삼아 노예 매매와 침략 행위가 끊이지 않았다. 이슬람 세력에 의한 약탈도 빈번했으며 유럽의 강대국들은 이탈리아 반도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여러 번 [[전쟁]]을 치루기도 했다.(이탈리아 대전쟁) 후에는 로마 가톨릭 내 교회 개혁 문제로 스페인 전체가 분열에 휩싸여 스페인은 한동안 종교 문제에 지속적으로 군사 대응을 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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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쇠퇴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일어났다. [[카를로스 2세]]가 후사없이 사망하여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조가 단절되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발생한 왕위 계승 전쟁은 귀족 세력뿐만 아니라 시민전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왕위 계승 전쟁 동안 유럽 내 스페인의 영향력은 물론 대륙 내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도 사실상 잃게 됐다. 영국과 오스트리아에 방대한 영토를 내주면서 해상 강국의 지위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간의 전쟁과 기근 속에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여러 문제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스페인의 [[합스부르크가]]는 유럽 전역에 퍼져 있던 문제에 개입하며 사태를 악화시켜 국력 약화를 자초했다. 스페인은 가톨릭 국가로서 땅에 떨어진 합스부르크가의 위신을 세우려 노력했다. [[신성로마제국]]의 군대와도 함께 연합하여 [[개신교]] 세력이 일으킨 변혁을 뒤엎으려 시도하였지만, 그러는 와중에 [[포르투갈]]이 독립을 쟁취하는 한편 [[네덜란드]]도 1648년 완전 독립하기에 이르렀다. 결국에는 유럽 전역에 [[30년 전쟁]]이 불어 닥치자 [[신교]]를 비밀리에 지원하던 [[프랑스]]에 패배하였다. 당시 스페인의 영향력은 유럽 전역에 미치고 있었으므로 유럽 전반의 경제 또한 상당한 [[침체기]]를 겪었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스페인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광대한 해외 영토를 유지하면서 더욱 그 영향력을 넓혀 식민지 통치를 19세기까지 계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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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결과,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인 펠리페 5세의 왕위계승이 확정되면서 스페인에 [[부르봉 왕조]]가 시작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스페인은 막대한 영토와 부를 토대로 다시 회복기를 맞는다. 더불어 유럽 내 스페인의 지위도 조금씩 향상되기 시작하였다. 스페인의 재도약의 시작과 함께 부르봉 왕가는 행정 체계 정비에 박차를 가해 견제하는 한편 상당수의 유럽 군주 또한 스페인의 발전에 귀 기울이게 됐다.
 
 
또 한 번의 쇠퇴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일어났다. [[카를로스 2세]]가 후사없이 사망하여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조가 단절되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발생한 왕위 계승 전쟁은 귀족 세력뿐만 아니라 시민전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왕위 계승 전쟁 동안 유럽 내 스페인의 영향력은 물론 대륙 내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도 사실상 잃게 됐다. [[영국]]과 [[오스트리아]]에 방대한 영토를 내주면서 해상 강국의 지위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전쟁의 결과,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인 [[펠리페 5세]]의 왕위계승이 확정되면서 스페인에 [[부르봉왕조]]가 시작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스페인은 막대한 영토와 부를 토대로 다시 회복기를 맞는다. 더불어 유럽 내 스페인의 지위도 조금씩 향상되기 시작하였다. 스페인의 재도약의 시작과 함께 부르봉 왕가는 행정체계 정비에 박차를 가해 견제하는 한편 상당수의 유럽 군주 또한 스페인의 발전에 귀 기울이게 됐다.
 
  
 
1763년에는 프랑스-인디언에서 승리하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네바다주]], [[유타주]], [[빌링스]], [[캐스퍼]], [[시애틀]], [[애리조나주]], [[미니애폴리스]], [[덴버]], [[캔자스시티]], [[세인트루이스]], [[배턴루지]], [[댈러스]] 등 [[미시시피강]] 서부에 있는 모든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1763년에는 프랑스-인디언에서 승리하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네바다주]], [[유타주]], [[빌링스]], [[캐스퍼]], [[시애틀]], [[애리조나주]], [[미니애폴리스]], [[덴버]], [[캔자스시티]], [[세인트루이스]], [[배턴루지]], [[댈러스]] 등 [[미시시피강]] 서부에 있는 모든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 스페인의 쇠퇴 ===
 
=== 스페인의 쇠퇴 ===
1793년 스페인은 프랑스 제1공화국과 전쟁을 겪게 됐다. 프랑스의 공격으로 스페인은 지식인 사이에서는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장에서 패하면서 1795년에 프랑스와 강화조약을 체결하게 되며 결과적으로는 종속국이 되었다. 스페인 왕실 자체가 멸족하지는 않았으므로 이듬해 스페인은 영국과 포르투갈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잇따른 전쟁으로 되레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국력만 허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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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 스페인은 프랑스 제1공화국과 전쟁을 겪게 됐다. 프랑스의 공격으로 스페인은 지식인 사이에서는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전장에서 패하면서 1795년에 프랑스와 강화 조약을 체결하게 되며 결과적으로는 종속국이 된다. 스페인 왕실 자체가 멸족하지는 않았으므로 이듬해 스페인은 영국과 포르투갈에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그러나 잇따른 전쟁으로 되레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국력만 허비하게 된다.
  
대륙봉쇄령을 위반한 [[포르투갈]]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스페인 영내에 진주한 [[나폴레옹]]은 1808년 5월에 스페인 전쟁에 개입하여 왕위를 찬탈하였다. 나폴레옹은 형인 조제프를 새로운 스페인 왕으로 책봉하였다. 원래 스페인의 왕은 나폴레옹의 맹장(猛將)인 [[조아생 뮈라]]가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조아생 뮈라에 대한 스페인 군중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던 관계로 조아생 뮈라를 이탈리아 [[나폴리]]의 왕으로 임명하고 원래 나폴리의 왕이었던 조제프가 스페인의 왕으로 오게 된 것이다. 1808년 5월, 스페인 민중이 봉기하여 프랑스 군대를 물리치기 위한 무장투쟁이 시작되었다. (반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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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봉쇄령을 위반한 포르투갈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스페인 영내에 진주한 [[나폴레옹]]은 1808년 5월에 스페인 전쟁에 개입하여 왕위를 찬탈하였다. 나폴레옹은 형인 조제프를 새로운 스페인 왕으로 책봉하였다. 원래 스페인의 왕은 나폴레옹의 맹장(猛將)인 조아생 뮈라가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조아생 뮈라에 대한 스페인 군중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던 관계로 조아생 뮈라를 나폴리의 왕으로 임명하고 원래 나폴리의 왕이었던 조제프가 스페인의 왕으로 오게 된 것이다. 1808년 5월, 스페인 민중이 봉기하여 프랑스 군대를 물리치기 위한 무장투쟁이 시작되었다.(반도 전쟁)
  
프랑스 군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스페인 민병대를 격파하는 한편 참전한 영국군을 몰아내었다. 그러나 스페인군의 게릴라전과 영국-포르투갈 연합군 전략이 성공하고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가 겹치면서 프랑스는 1813년 완전히 스페인에서 철수하였다. 이에 따라 폐위당했던 [[페르난도 7세]]가 스페인 국왕으로 복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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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군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스페인 민병대를 격파하는 한편 참전한 영국군을 몰아내었다. 그러나 스페인 군의 게릴라전과 영국-포르투갈 연합군 전략이 성공하고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가 겹치면서 프랑스는 1813년 완전히 스페인에서 철수하였다. 이에 따라 폐위당했던 페르난도 7세가 스페인 국왕으로 복위하였다.
  
 
=== 남미 식민지 독립 ===
 
=== 남미 식민지 독립 ===
프랑스의 스페인 침공은 1세기가 넘도록 스페인 국내 정치 불안을 야기했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스페인은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를 뺀 모든 [[라틴아메리카]] 식민지를 잃게 되면서 이전의 부와 국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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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스페인 침공은 1세기가 넘도록 스페인 국내 정치 불안을 야기했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스페인은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를 뺀 모든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게 되면서 이전의 부와 국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였다.
  
 
=== 스페인-미국 전쟁 ===
 
=== 스페인-미국 전쟁 ===
스페인이 19세기 내내 식민지 지배권을 잃고 경제위기를 겪는 동안 [[필리핀]]과 [[쿠바]]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해졌다. 식민지 내 독립 전쟁은 결국 미국 지역에서도 일어나 미국의 예견치 못한 공격으로 스페인은 패배하고 말았다. 당대의 주역이었던 98세대(1898년 세대)는 전쟁을 뼈저린 "재난"("El Desastre")으로 느꼈다. 그에 따라 국가 안팎에 문제를 야기하였고 특별히 [[알폰소 12세]]가 쌓아놓은 치적을 송두리째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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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이 19세기 내내 식민지 지배권을 잃고 경제 위기를 겪는 동안 필리핀과 쿠바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해진다. 식민지 내 독립 전쟁은 결국 미국 지역에서도 일어나 미국의 예견치 못한 공격으로 스페인은 패배하고 만다. 당대의 주역이었던 98세대(1898년 세대)는 전쟁을 뼈저린 "재난"("El Desastre")으로 느꼈다. 그에 따라 국가 안팎에 문제를 야기하였고 특별히 알폰소 12세가 쌓아놓은 치적을 송두리째 잃게 된다.
  
 
=== 혼란한 20세기 ===
 
=== 혼란한 20세기 ===
 
[[파일:1969년경의 프란시스코 프랑코..png|썸네일|300픽셀|left|1969년경의 프란시스코 프랑코.]]
 
[[파일:1969년경의 프란시스코 프랑코..png|썸네일|300픽셀|left|1969년경의 프란시스코 프랑코.]]
1900년대부터 1910년대에 이르러서 스페인은 잠시 평화를 누렸다. [[서사하라]]와 [[모로코]], [[적도기니]]를 [[식민지]]로 차지했고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대륙 침탈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로코]]의 리프 공화국(Rep. of Rif)과 전쟁(1920년)을 겪으면서 시민들의 군주제에 대한 의구심만 커졌다. 한편 스페인 군인으로서 모로코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앞장선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는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자로 군림하나 1931년에 스페인 제2공화국이 들어서며 그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이때부터 공화국 정권은 [[바스크]]를 비롯한 [[카탈루냐]], [[갈리시아]]에 자치권을 부여하며 여성의 투표권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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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부터 1910년대에 이르러서 스페인은 잠시 평화를 누린다. [[서사하라]]와 [[모로코]], [[적도]] 기니를 식민지로 차지했고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대륙 침탈에 동참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로코의 리프 공화국(Rep. of Rif)과 전쟁(1920년)을 겪으면서 시민들의 군주제에 대한 의구심만 커졌다. 한편 스페인 군인으로서 모로코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앞장선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는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자로 군림하나 1931년에 스페인 제2공화국이 들어서며 그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이때부터 공화국 정권은 [[바스크]]를 비롯한 [[카탈루냐]], [[갈리시아]]에 자치권을 부여하며 여성의 투표권을 허용한다.
  
좌파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국민전선/우파연합과 제휴한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모로코]]에서 정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인민전선과 국민전선 간의 스페인 내전이 촉발됐다. 3년 뒤 스페인 내전의 시민 세력이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주도로 승리를 얻게 되었다. 상당 부분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은 것이었다. 소비에트 연방과 멕시코 등은 스페인 내전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 비밀리 지원을 하나, 서방 세계는 영국이 주도하던 내정 무간섭주의(Non-Intervention)에 따라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 등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이 인민 전선을 지원하여 참전했으나 결국 내전에서의 승리로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정권을 잡았다. 민간인 학살 범죄인 게르니카 폭격 사건이 나치 독일 공군에 의해 벌어진 것도 이때였다(1937년). 내전으로 5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오십만 명 정도의 인구가 자신의 모국을 떠나게 됐다. 이들의 후예가 대부분 [[라틴 아메리카]]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에만 30만 명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스페인 내전은 [[2차 세계대전]]의 최초 시작이자 유럽의 시민 전쟁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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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국민전선/우파연합과 제휴한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모로코]]에서 정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인민 전선과 국민전선 간의 스페인 내전이 촉발됐다. 3년 뒤 스페인 내전의 시민 세력이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주도로 승리를 얻게 된다. 상당 부분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은 것이었다. 소비에트 연방과 멕시코 등은 스페인 내전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 비밀리 지원을 하나, 서방 세계는 영국이 주도하던 내정 무간섭주의(Non-Intervention)에 따라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 등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이 인민 전선을 지원하여 참전했으나 결국 내전에서의 승리로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정권을 잡았다. 민간인 학살 범죄인 게르니카 폭격 사건이 나치 독일 공군에 의해 벌어진 것도 이때였다(1937년). 내전으로 5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오십만 명 정도의 인구가 자신의 모국을 떠나게 됐다. 이들의 후예가 대부분 [[라틴 아메리카]]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에만 30만 명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스페인 내전은 [[2차 세계대전]]의 최초 시작이자 유럽의 시민 전쟁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한편 스페인은 [[제2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지만 프랑코 정권은 은밀히 [[추축국]]에 협조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행적이 국제 사회로의 진출에 대한 미국 등 서방 국가의 반대를 부른 명분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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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스페인은 제2차 세계 대전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지만 프랑코 정권은 은밀히 추축국에 협조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행적이 국제 사회로의 진출에 대한 미국 등 서방 국가의 반대를 부른 명분이 되기도 한다.
  
20세기 스페인은 [[좌파]]와 [[우파]] 간의 대립이 고조되고 있었고 당시 스페인 사회는 청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 국토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결함을 보일 만큼 부가 지주계층, 군벌, 로마 가톨릭 교회에 편중돼 있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인민전선]]으로 불리는 공산주의 세력이 창궐하였다. 인민전선에서는 교회의 재산을 [[국유화]]하려고 하는 등 심각한 빈부의 격차라는 사회문제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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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스페인은 [[좌파]]와 [[우파]] 간의 대립이 고조되고 있었고 당시 스페인 사회는 청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 국토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결함을 보일만큼 부가 지주계층, 군벌, 로마 가톨릭 교회에 편중돼 있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인민 전선으로 불리는 공산주의 세력이 창궐하였다. 인민전선에서는 교회의 재산을 국유화하려고 하는 등 심각한 빈부의 격차라는 사회문제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프랑코 독재 정권은 유럽의 마지막 군사정권으로 불리는데, 집권 후 좌파 탄압, 비밀경찰을 통한 통제 등 독재 정치로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했기 때문이다. 프랑코 군부 독재 정권 아래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당은 팔랑헤당(Falange española tradicionalista y de las JONS)뿐이며, 1937년 창립 후 반공주의와 민족주의, 로마 가톨릭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프랑코가 민주주의를 탄압하려는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내비치자 1949년에는 국민 운동당(Movimiento Nacional)으로 개칭하였다. 2차 대전이 종결되자 스페인은 유엔에 가입하지 못하는 등 정치·경제적으로 고립 상태를 겪기도 했다. 1955년이 돼서야 미국이 공산세력의 남하를 우려해 이베리아 반도와 지중해에 군사 주둔을 꾀함에 따라 유엔에 가입하게 된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스페인의 기적을 이루며 급진적인 경제 발전이 이뤄졌으며, 특히 관광 분야의 활성화와 더불어 산업 국가로서의 국가 정체성이 정립되는 한편 학력 수준 향상으로 인력 개발이 진척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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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 독재 정권은 유럽의 마지막 군사 정권으로 불리는데, 집권 후 좌파 탄압, 비밀경찰을 통한 통제 등 독재 정치로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했기 때문이다. 프랑코 군부 독재 정권 아래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당은 팔랑헤당(Falange española tradicionalista y de las JONS)뿐이며, 1937년 창립 후 반공주의와 민족주의, 로마 가톨릭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프랑코가 민주주의를 탄압하려는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내비치자 1949년에는 국민 운동당(Movimiento Nacional)으로 개칭하였다. 2차 대전이 종결되자 스페인은 유엔에 가입하지 못하는 등 정치·경제적으로 고립 상태를 겪기도 했다. 1955년이 돼서야 미국이 공산세력의 남하를 우려해 이베리아 반도와 지중해에 군사 주둔을 꾀함에 따라 유엔에 가입하게 된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스페인의 기적을 이루며 급진적인 경제 발전이 이뤄졌으며, 특히 관광 분야의 활성화와 더불어 산업 국가로서의 국가 정체성이 정립되는 한편 학력 수준 향상으로 인력 개발이 진척되기도 했다.
 
[[파일:2004년경의 후안 카를로스 1세와 소피아 왕비.jpg|썸네일|300픽셀|2004년경의 후안 카를로스 1세와 소피아 왕비.]]
 
[[파일:2004년경의 후안 카를로스 1세와 소피아 왕비.jpg|썸네일|300픽셀|2004년경의 후안 카를로스 1세와 소피아 왕비.]]
 
1975년 유럽의 마지막 군사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한 뒤에 스페인 왕정이 복고되었으며, 현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영단으로 스페인에서는 입헌군주제에 기반한 민주주의가 시작됐다. 1979년 스페인 국민들은 처음으로 보통 선거에 참여하였는데, 《스페인사》(청아)에 수록된 사진에 의하면 당시 스페인 국민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에서 길게 줄을 설 만큼 보통선거 참여에 관심이 많았다. 또한 프랑코 정권 때 수감됐던 양심수들이 석방되었다. 또한 언론의 자유·결사·정치의 자유가 허용되었고, 1978년 스페인 헌법이 선포되면서 각 지방을 이루는 지방 정부가 출범한다. 그러나 일부 지방에서는 독립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급진적인 양상으로 번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스크]]의 경우이다.
 
1975년 유럽의 마지막 군사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한 뒤에 스페인 왕정이 복고되었으며, 현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영단으로 스페인에서는 입헌군주제에 기반한 민주주의가 시작됐다. 1979년 스페인 국민들은 처음으로 보통 선거에 참여하였는데, 《스페인사》(청아)에 수록된 사진에 의하면 당시 스페인 국민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에서 길게 줄을 설 만큼 보통선거 참여에 관심이 많았다. 또한 프랑코 정권 때 수감됐던 양심수들이 석방되었다. 또한 언론의 자유·결사·정치의 자유가 허용되었고, 1978년 스페인 헌법이 선포되면서 각 지방을 이루는 지방 정부가 출범한다. 그러나 일부 지방에서는 독립을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급진적인 양상으로 번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스크]]의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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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사법부의 최고 상급 법원으로 하급 법원의 상고 사건을 담당한다. 또한 정당의 불법성이나 총리, 각료, 의원 등을 포함한 정부 및 자치주의 고위관료를 상대로 한 민형사 사건을 단심으로 담당한다. 기본권 침해 문제를 제외하고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 및 상고할 수 없다. 대법원은 각각 10~12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민사, 형사, 행정, 노동, 군사 등 5개의 재판부로 구성된다. 특수법원 형태인 국가법원은 수도인 마드리드에 위치해 있으며 형사부, 행정소송부, 노동부로 구성된 재판부를 가진다. 형사부의 경우 테러, 마약, 조직범죄, 위조화폐 등 특수범죄를 담당한다. 자치주 최고법원은 각 자치주에 소재하며 민사, 형사, 행정, 노동재판을 담당한다. 지방법원의 1심사건에 대한 항소를 담당한다. 한편 지방법원은 민사 및 형사 사건만을 담당하며 민사사건의 경우 하급법원의 사건에 대한 상고를 담당하고,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1심을 담당한다.
 
대법원은 사법부의 최고 상급 법원으로 하급 법원의 상고 사건을 담당한다. 또한 정당의 불법성이나 총리, 각료, 의원 등을 포함한 정부 및 자치주의 고위관료를 상대로 한 민형사 사건을 단심으로 담당한다. 기본권 침해 문제를 제외하고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 및 상고할 수 없다. 대법원은 각각 10~12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민사, 형사, 행정, 노동, 군사 등 5개의 재판부로 구성된다. 특수법원 형태인 국가법원은 수도인 마드리드에 위치해 있으며 형사부, 행정소송부, 노동부로 구성된 재판부를 가진다. 형사부의 경우 테러, 마약, 조직범죄, 위조화폐 등 특수범죄를 담당한다. 자치주 최고법원은 각 자치주에 소재하며 민사, 형사, 행정, 노동재판을 담당한다. 지방법원의 1심사건에 대한 항소를 담당한다. 한편 지방법원은 민사 및 형사 사건만을 담당하며 민사사건의 경우 하급법원의 사건에 대한 상고를 담당하고,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1심을 담당한다.
  
하급법원은 모두 재판관 1인에 의해 단독으로 판결하는 법원으로 담당 분야에 따라 세분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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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법원은 모두 재판관 1인에 의해 단독으로 판결하는 법원으로 담당 분야에 따라 세분화 되어 있다.
  
 
=== 행정구역 ===
 
=== 행정구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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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의회(consejo de ministro) : 입법의회가 선발하고 스페인 국왕이 지명하는 대통령(presiedente)이 수반이다. 집행 및 행정 기능을 가지고 있다.
 
* 행정의회(consejo de ministro) : 입법의회가 선발하고 스페인 국왕이 지명하는 대통령(presiedente)이 수반이다. 집행 및 행정 기능을 가지고 있다.
 
* 최고재판소(tribunal supremo) : 스페인 최고재판소(El Tribunal Supremo) 휘하, 광역자치주 내 판사(judicatura)가 우두머리이다.
 
* 최고재판소(tribunal supremo) : 스페인 최고재판소(El Tribunal Supremo) 휘하, 광역자치주 내 판사(judicatura)가 우두머리이다.
카탈루냐, 갈리시아(Galicia), 바스코(el País Vasco) 지방은 독립된 민족성을 가지고 있어 신속한 과정을 거쳐 자치정부를 구성하였다. 안달루시아(Andalusia)도 자치법령을 통해 최초로 자치주 이름을 취득하였지만, 장기적인 과정을 통해 다른 자치주들보다 늦게 헌법에 명기되었다. 이후 다른 지방들도 조금씩 자치법령 수정을 통하여 자치주가 되었다. [[발렌시아]](Valencia), [[카나리아제도]](Islas Canarias), [[발레아레스제도]](Islas Baleares), [[아라곤]](Aragon) 등이 [[자치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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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갈리시아(Galicia), 바스코(el País Vasco) 지방은 독립된 민족성을 가지고 있어 신속한 과정을 거쳐 자치정부를 구성하였다. 안달루시아(Andalusia)도 자치법령을 통해 최초로 자치주 이름을 취득하였지만, 장기적인 과정을 통해 다른 자치주들보다 늦게 헌법에 명기되었다. 이후 다른 지방들도 조금씩 자치법령 수정을 통하여 자치주가 되었다. 발렌시아(Valencia),[60] 카나리아 제도(Islas Canarias), 발레아레스 제도(Islas Baleares), 아라곤(Aragon) 등이 자치주가 되었다.
  
 
광역자치주는 광범위한 입법 및 행정 자치 권한이 있고, 의회와 지방정부를 가지고 있다. 권력이양이 비대칭적으로 이뤄졌기에, 각 광역자치주마다 권력 분산은 제각각 다르다. 바스코와 나바라(Navarra)만이 완벽한 재정 자립을 이루고 있다. 안달루시아, 바스코, 카탈루냐, 갈리시아는 별개의 민족성을 주장하고 다른 자치주들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이양받았다. 이들 지방 대통령은 의회 해산 및 재선거 요구 권한이 있다. 게다가 바스코, 카탈루냐, 나바라는 각각 에르차인차(Ertzaintza), 모소스 데스콰르다(Mossos d'Esquadra), 폴리시아 포랄(Policía Foral)이라는 자치 경찰이 있다. 다른 자치주들은 경찰력이 제한되어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안달루시아의 경우 안달루시아 자치 경찰(Policía Autónoma Andaluza)이 있으며 마드리드에는 BESCAM이라는 경찰이 있다.
 
광역자치주는 광범위한 입법 및 행정 자치 권한이 있고, 의회와 지방정부를 가지고 있다. 권력이양이 비대칭적으로 이뤄졌기에, 각 광역자치주마다 권력 분산은 제각각 다르다. 바스코와 나바라(Navarra)만이 완벽한 재정 자립을 이루고 있다. 안달루시아, 바스코, 카탈루냐, 갈리시아는 별개의 민족성을 주장하고 다른 자치주들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이양받았다. 이들 지방 대통령은 의회 해산 및 재선거 요구 권한이 있다. 게다가 바스코, 카탈루냐, 나바라는 각각 에르차인차(Ertzaintza), 모소스 데스콰르다(Mossos d'Esquadra), 폴리시아 포랄(Policía Foral)이라는 자치 경찰이 있다. 다른 자치주들은 경찰력이 제한되어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안달루시아의 경우 안달루시아 자치 경찰(Policía Autónoma Andaluza)이 있으며 마드리드에는 BESCAM이라는 경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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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자치주는 도(provincia)로 나뉜다. 이는 자치주의 영토의 구성요소이다. 도는 시(municipalidad)로 나뉜다. 두 행정단위는 헌법에 의해 보장된다. 시는 새 업무 경영에 관한 자치 권한이 있다. 도는 미국의 주와 같은 활동을 수행하기 위하여 구획되었다.
 
광역자치주는 도(provincia)로 나뉜다. 이는 자치주의 영토의 구성요소이다. 도는 시(municipalidad)로 나뉜다. 두 행정단위는 헌법에 의해 보장된다. 시는 새 업무 경영에 관한 자치 권한이 있다. 도는 미국의 주와 같은 활동을 수행하기 위하여 구획되었다.
  
현재 도 구획은 1833년 스페인 영토 분할에 기반한 것이다. 스페인 영토 전체는 50개의 도로 나뉜다. 또한 아스투리아스주(Asturias), 발레아레스제도(Islas Baleares), 칸타브리아주(Cantabria), 라리오하주(La Rioja), 마드리드주(Madrid), 무르시아주(Murcia), 나바라주(Navarra)는 그 자체가 도이자 광역자치주이다. 이 경우, 도의 행정 기관은 광역자치주 정부 기관으로 대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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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도 구획은 1833년 스페인 영토 분할에 기반한 것이다. 스페인 영토 전체는 50개의 도로 나뉜다. 또한 아스투리아스주(Asturias), 발레아레스 제도(Islas Baleares), 칸타브리아주(Cantabria), 라리오하주(La Rioja), 마드리드주(Madrid), 무르시아주(Murcia), 나바라주(Navarra)는 그 자체가 도이자 광역자치주이다. 이 경우, 도의 행정 기관은 광역자치주 정부 기관으로 대체된다.
  
 
;주요도시
 
;주요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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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지역 또한 스페인 외교정책의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하나이다. 이는 중남미에서 브라질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관계로 스페인어 문화권이라는 사실로부터 기인한다. 언어적,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한 중남미 국가들과의 긴밀한 우호 관계는 국제무대에서 스페인의 지위를 결정짓는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스페인이 히스패닉-아메리카니즘(Hispano-Americanismo)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Columbus의 미대륙발견 500주년 기념행사'를 스페인 주도로 1992년 대규모로 치루었던 사실이 상징하듯이 중남미 국가와의 관계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중남미 지역 또한 스페인 외교정책의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하나이다. 이는 중남미에서 브라질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관계로 스페인어 문화권이라는 사실로부터 기인한다. 언어적,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한 중남미 국가들과의 긴밀한 우호 관계는 국제무대에서 스페인의 지위를 결정짓는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스페인이 히스패닉-아메리카니즘(Hispano-Americanismo)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Columbus의 미대륙발견 500주년 기념행사'를 스페인 주도로 1992년 대규모로 치루었던 사실이 상징하듯이 중남미 국가와의 관계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지중해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 또한 스페인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중요한 외교정책 목표 지역이다. 스페인은 특히 사하라 이남 지역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는 과거 식민지 국가들뿐만 아니라 카나리아제도로의 불법이민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또한 석유와 가스 수입원인 지중해 인근의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스페인은 종종 아랍 국가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스페인은 서구-이슬람권간의 상호 이해증진과 협력을 위해 '문명간동맹', '지중해연안국 고위급 회의(Barcelona Process)'를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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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 또한 스페인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중요한 외교정책 목표 지역이다. 스페인은 특히 사하라 이남 지역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는 과거 식민지 국가들뿐만 아니라 카나리 제도로의 불법이민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또한 석유와 가스 수입원인 지중해 인근의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스페인은 종종 아랍 국가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스페인은 서구-이슬람권간의 상호 이해증진과 협력을 위해 '문명간동맹', '지중해연안국 고위급 회의(Barcelona Process)'를 주도한다.
  
 
이러한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여전히 주변국들과 영토 문제로 분쟁을 겪고 있다. 특히 스페인 최남단에 위치한 [[지브롤터]]를 두고 영국과 [[영토분쟁]]을 겪고 있다. 지브롤터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기간 동안인 1704년 영국이 점령한 이후 전쟁에서 패배한 스페인이 1713년 유트레히트 조약에 따라 영국에게 소유권을 넘겨준 영토이다. 하지만 스페인은 곧 지브롤터 반환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프랑코 총통은 지브롤터 반환에 확고한 입장이었다. 스페인은 영토보전(territorial integrity) 차원에서 지브롤터가 스페인 영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에게 지브롤터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지브롤터 해협을 관리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만약 스페인의 영토보전이라는 논리를 적용하려면 스페인이 모로코 영토에 가지고 있으면서 모로코 정부와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세우타를 모로코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반대논리를 펼쳤다.  
 
이러한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여전히 주변국들과 영토 문제로 분쟁을 겪고 있다. 특히 스페인 최남단에 위치한 [[지브롤터]]를 두고 영국과 [[영토분쟁]]을 겪고 있다. 지브롤터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기간 동안인 1704년 영국이 점령한 이후 전쟁에서 패배한 스페인이 1713년 유트레히트 조약에 따라 영국에게 소유권을 넘겨준 영토이다. 하지만 스페인은 곧 지브롤터 반환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프랑코 총통은 지브롤터 반환에 확고한 입장이었다. 스페인은 영토보전(territorial integrity) 차원에서 지브롤터가 스페인 영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에게 지브롤터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지브롤터 해협을 관리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만약 스페인의 영토보전이라는 논리를 적용하려면 스페인이 모로코 영토에 가지고 있으면서 모로코 정부와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세우타를 모로코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반대논리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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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스페인에 약 28억 달러 수출을 기록했고, 수입은 19억 달러를 기록해 양국 무역수지에서 한국은 약 9억 달러의 흑자를 보였다. 그러나 이는 자동차, 전자제품 등 해외시장에서 스페인으로 직접 수출하는 제품들을 제외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 제품의 스페인 수출은 28억 달러보다 훨씬 크다. 스페인과의 무역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1번째에 국가에 해당하며 EU 내에서는 9번째로 큰 규모는 아니다. 스페인에 대한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은 자동차, 전자기기, 석유화학, 철강금속, 기계류 등이며, 수입품목은 광물, 식품, 정밀화학, 자동차부품 등이다. 양국간 투자는 2010~2017년 한국이 스페인에 누적투자액 7억 4천만 달러를 기록했고, 스페인은 한국에 같은 기간 5억 9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한국은 스페인에 약 28억 달러 수출을 기록했고, 수입은 19억 달러를 기록해 양국 무역수지에서 한국은 약 9억 달러의 흑자를 보였다. 그러나 이는 자동차, 전자제품 등 해외시장에서 스페인으로 직접 수출하는 제품들을 제외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 제품의 스페인 수출은 28억 달러보다 훨씬 크다. 스페인과의 무역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1번째에 국가에 해당하며 EU 내에서는 9번째로 큰 규모는 아니다. 스페인에 대한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은 자동차, 전자기기, 석유화학, 철강금속, 기계류 등이며, 수입품목은 광물, 식품, 정밀화학, 자동차부품 등이다. 양국간 투자는 2010~2017년 한국이 스페인에 누적투자액 7억 4천만 달러를 기록했고, 스페인은 한국에 같은 기간 5억 9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스페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은 총 4500명 정도로 스페인 본토에 3,800명, 라스팔마스제도에 약 71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주 스페인 대한민국 대사관은 수도인 마드리드에 위치하고, 바르셀로나에는 총영사관이 있다. 한편 마드리드에는 한국문화원과 KOTRA 무역관이 설치되어 있다. 세비야의 안달루시아, 발렌시아, 빌바오에도 명예영사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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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은 총 4500명 정도로 스페인 본토에 3,800명, 라스팔마스 제도에 약 71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주 스페인 대한민국 대사관은 수도인 마드리드에 위치하고, 바르셀로나에는 총영사관이 있다. 한편 마드리드에는 한국문화원과 KOTRA 무역관이 설치되어 있다. 세비야의 안달루시아, 발렌시아, 빌바오에도 명예영사관이 있다.
  
 
== 경제 ==
 
== 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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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하면 관광산업도 빼놓을 수 없다. 유럽여행 하면 보통 먼저 잘 알려진 서유럽 위주인 한국인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스페인의 관광업은 같은 관광대국인 미국, 서유럽인들조차 최고의 관광국가로 알아줄 정도로 굉장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관광으로 인한 직접적인 수입은 한화 56조로 관광수입이 무려 미국 바로 다음가는 수준이다. 한국에서 유럽권 관광지로 익히 잘 알려진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관광수익과 규모로 능가할 정도이며 이로 인한 고용창출 효과도 매우 높은 편이다. 관광산업은 2019년 기준으로 스페인 경제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스페인 하면 관광산업도 빼놓을 수 없다. 유럽여행 하면 보통 먼저 잘 알려진 서유럽 위주인 한국인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스페인의 관광업은 같은 관광대국인 미국, 서유럽인들조차 최고의 관광국가로 알아줄 정도로 굉장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관광으로 인한 직접적인 수입은 한화 56조로 관광수입이 무려 미국 바로 다음가는 수준이다. 한국에서 유럽권 관광지로 익히 잘 알려진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관광수익과 규모로 능가할 정도이며 이로 인한 고용창출 효과도 매우 높은 편이다. 관광산업은 2019년 기준으로 스페인 경제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스페인의 여행, 숙박업은 나름 유구한 전통이 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 시절부터 순례객들을 끌어들였으며, 산업혁명 이후 일부 계층에만 향유하던 중산층 여행의 잠재성을 일찍부터 주목하여 대도시 철도가 연결되던 1860~70년대부터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이미 1900~30년대 즈음 유럽 각국의 여행책자에 스페인이 주요국으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으며, 1920년대 Parador라는 이름으로 각 지방에 흩어진 고성, 고 건축물들을 숙박업소로 개조하여 국가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후 프랑코 정권이 국제고립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1950년대년대 스페인 국경을 개방하고 북유럽에 대비되는 따뜻한 피한지로서의 매력을 홍보하여 카나리아제도와 마요르카, 안달루시아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1960년대 중반에는 이미 한 해 2,000만의 여행객이 방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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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여행, 숙박업은 나름 유구한 전통이 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 시절부터 순례객들을 끌어들였으며, 산업혁명 이후 일부 계층에만 향유하던 중산층 여행의 잠재성을 일찍부터 주목하여 대도시 철도가 연결되던 1860~70년대부터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이미 1900~30년대 즈음 유럽 각국의 여행책자에 스페인이 주요국으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으며, 1920년대 Parador라는 이름으로 각 지방에 흩어진 고성, 고 건축물들을 숙박업소로 개조하여 국가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후 프랑코 정권이 국제고립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1950년대년대 스페인 국경을 개방하고 북유럽에 대비되는 따뜻한 피한지로서의 매력을 홍보하여 카나리아 제도와 마요르카, 안달루시아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1960년대 중반에는 이미 한 해 2,000만의 여행객이 방문하게 되었다.
  
 
2019년 기준 스페인은 8,300만명이 방문하여 여행방문객 수로는 프랑스에 이어 전 세계 2위, 관광 수익으로는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를 기록하여 굴지의 관광대국 위치를 확고히 했다.세계 관광 기구(UNWTO) 여행 총람 덕분에 유로화 사태로 몰아친 스페인 경제위기를 버틸 수 있었던 요인으로 여행,숙박업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음이 증명되었다.
 
2019년 기준 스페인은 8,300만명이 방문하여 여행방문객 수로는 프랑스에 이어 전 세계 2위, 관광 수익으로는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를 기록하여 굴지의 관광대국 위치를 확고히 했다.세계 관광 기구(UNWTO) 여행 총람 덕분에 유로화 사태로 몰아친 스페인 경제위기를 버틸 수 있었던 요인으로 여행,숙박업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음이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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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스크, 나바라 지방(일부) : 바스크어
 
* 바스크, 나바라 지방(일부) : 바스크어
 
* 아라곤 : 아라곤어
 
* 아라곤 : 아라곤어
* [[카탈루냐]], [[발렌시아]], [[발레아레스제도]] : [[카탈루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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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탈루냐, 발렌시아, 발레아레스 제도 : 카탈루냐어
 
 
 
;스페인어 검정 시험
 
;스페인어 검정 시험
 
영어에서 TOEIC이나 TOEFL로 개인의 실력을 평가하듯이 스페인어는 '''DELE'''(스페인어: Diplomas Espanola como Lengua Extranjera)를 공식 인증 점수로 취한다. 시험에는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뉘며 시험 응시자가 처음에 자신의 수준에 맞춰 응시하는 형태를 띤다. 그 주체는 중국의 공자학원에 해당하는 세르반테스 교실에서 가지며 스페인 정부에서 갖는 경우도 있다. 1991년 스페인 정부가 설립한 세르반테스 교실은 전 세계 20개국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 개설됐다.
 
영어에서 TOEIC이나 TOEFL로 개인의 실력을 평가하듯이 스페인어는 '''DELE'''(스페인어: Diplomas Espanola como Lengua Extranjera)를 공식 인증 점수로 취한다. 시험에는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뉘며 시험 응시자가 처음에 자신의 수준에 맞춰 응시하는 형태를 띤다. 그 주체는 중국의 공자학원에 해당하는 세르반테스 교실에서 가지며 스페인 정부에서 갖는 경우도 있다. 1991년 스페인 정부가 설립한 세르반테스 교실은 전 세계 20개국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 개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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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
 
=== 교육 ===
스페인은 6~16세까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으로 무상 의무교육제도를 운영한다. 유아교육은 0세에서 3세까지는 유아원(Guardería), 3세에서 6세까지는 유치원(Colegio)에서 교육받을 수 있다. 유아원은 지역에 따라 무상교육이 아닌 곳이 있지만 유치원에서는 무상교육이 이루어진다. 6세에서 12세까지는 초등교육(Primaria)에 해당하고 12세에서 16세까지는 중등교육(Secundaria)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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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6~16세까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으로 무상 의무교육 제도를 운영한다. 유아교육은 0세에서 3세까지는 유아원(Guardería), 3세에서 6세까지는 유치원(Colegio)에서 교육받을 수 있다. 유아원은 지역에 따라 무상교육이 아닌 곳이 있지만 유치원에서는 무상교육이 이루어진다. 6세에서 12세까지는 초등교육(Primaria)에 해당하고 12세에서 16세까지는 중등교육(Secundaria)에 해당한다.
  
 
의무교육인 중등교육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2년간 예비 대학과정(Bachillerato)을 다니는데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2학년에 올라가면 이과, 예술/인문학 혹은 사회과학 중 하나를 선택해 과정을 이수한다. 각 과정에서 요구하는 과정에서 한 과목이라도 낙제할 경우 졸업을 할 수 없다. 또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수학능력시험을 치러서 대학에 입학한다. 스페인의 고등교육 시스템은 대학교 4년(의학계열의 경우 5~6년), 석사과정 1년, 박사과정 3년으로 구성된다.
 
의무교육인 중등교육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2년간 예비 대학과정(Bachillerato)을 다니는데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2학년에 올라가면 이과, 예술/인문학 혹은 사회과학 중 하나를 선택해 과정을 이수한다. 각 과정에서 요구하는 과정에서 한 과목이라도 낙제할 경우 졸업을 할 수 없다. 또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수학능력시험을 치러서 대학에 입학한다. 스페인의 고등교육 시스템은 대학교 4년(의학계열의 경우 5~6년), 석사과정 1년, 박사과정 3년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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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 [[이슬람]]
 
* [[북아프리카]]
 
* [[북아프리카]]
* [[카나리아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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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나리아 제도]]
 
* [[지중해]]
 
* [[지중해]]
* [[발레아레스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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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레아레스 제도]]
 
* [[바르셀로나]]
 
* [[바르셀로나]]
 
* [[발렌시아]]
 
* [[발렌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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