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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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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랄해의 옛항구
2021년 8월 아랄해 위성 사진
아랄해

아랄해(영어: Aral Sea, 우즈베크어: Orol dengizi, 카자흐어: Арал теңізі, Aral tengizi, 러시아어: Аральскοе мοре)는 카스피해의 동쪽에 위치한, 중앙아시아염호이다. 우즈베키스탄 북부와 카자흐스탄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우즈베키스탄 영토에 속한다. 아랄해라는 이름은 직역하면 '섬바다' 혹은 '천개의 섬의 바다' 정도의 뜻인 고대 튀르크어 '아랄 딩기즈'에서 유래되었다.[1]

개요[편집]

아랄해는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사이에 있는 대염호(大鹽湖)이다. 아랄해는 한때 총면적 68,000km²에 평균 깊이 16m로 세계 4위의 호수였다. 스리랑카 면적과 비슷하고 한국의 면적이 100,339km²로 아랄해 면적의 약 3분의 2 크기이다. 어족도 풍부해서 철갑상어와 여러 물고기가 서식하여 근방의 주민들은 어렵지 않게 살았다. 한때 아랄해 최대의 항구 도시였던 무이나크 주변 어획량은 연간 3만 t에 이르렀으나 강물의 유입이 해마다 줄어들면서 급격히 작아지고 있다. 호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1960년대부터 중앙아시아에서 대규모 면화 재배를 위해 아랄해로 들어오는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의 물을 중간에 차단하고 관개용수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호수로 유입된 물이 크게 줄자 염도가 3배 이상 높아지고 수량이 70%이상 감소했다. 호수가 작아지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철갑상어와 잉어 등 토착 어종이 사라졌으며 어업으로 번성하던 주변 어민들은 생계를 잃게 되었다. 호수가 축소되자 이 지역에서는 겨울과 여름의 기온차가 커지고 비도 적게 내려 작물의 생산량도 현저하게 감소하였다. 아랄해는 지구상에서 환경파괴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지역이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아랄해를 원래대로 복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많이 복구된 상태이다.[2]

아랄해는 결국 물이 줄어 바닥이 드러나면서 아랄해는 카자흐스탄 쪽의 북아랄해와 우즈베키스탄 쪽의 남아랄해로 두 쪽이 났다. 우즈베키스탄은 면화 산업을 유지하고 호수 바닥에서 가스석유를 개발하겠다며 소금 사막으로 변한 아랄해 재생 노력을 사실상 포기했다. 아랄해로 흘러드는 물의 양이 대폭 줄어 호수의 물은 염분과 광물질 함유량이 늘어나 식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며, 철갑상어, 잉어 등의 어류가 멸종 위기에 놓여 연안 어업은 폐업 상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소련 정부는 호수 남부와 동부에서 물이 적게 드는 농사법을 이용하여 두 강의 물이 최대한 호수로 흘러들게 함으로써 수위를 안정시키는 계획을 마련하였다.[3]

역사[편집]

지질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선신세(Pliocene, 鮮新世) 후기에 형성된 요지(凹地)가 아랄해의 기원이다. 당시의 기후는 지금보다 건조하고 더웠으며 강풍이 불었다. 아랄 분지가 형성될 무렵에 톈산(天山) 산지가 생기면서 기온이 온화해졌다. 그 결과 높은 톈산산맥에서는 비와 눈이 응결하여 빙하(氷河)를 형성하였고, 그 물이 녹아서 산과 산 사이의 분지로 흘러내렸다. 그렇게 생긴 것이 바로 시르다리야강인데, 이 강이 아랄 분지에 흘러들어가 호수인 아랄해를 이루었다. 제4기에 아랄해의 수량은 지금의 4분의 1정도였으며, 시르다리야강의 수량은 아무다리야강의 3분의 1쯤 되었다. 당시 아무다리야강은 카스피해로 유입되는 데 반해 아랄해는 일시 건조되면서 소멸되었다. 이는 아랄해의 심층부에 소금층이 남아 있는 것으로 증명이 되며, 제4기 후기에 이르러 아무다리야강이 흐름을 바꾸어 북행(北行)하며 아랄 분지로 흘러들어갔다. 이렇게 지금으로부터 1~2만년 전에 아랄해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아랄해의 첫 탄생이다. 이후 1만년 전 무렵 아무다리야강의 흐름이 서쪽으로 바뀌어 카스피해로 유입되면서 시르다리야강에서 유입된 수량만으로는 부족하여 아랄해의 면적이 현저하게 감소하였다. 신(新) 카스피기(2,000~3,000년 전)에 이르러서는 아무다리야강의 흐름이 다시 북방으로 방향을 바꾸어 아랄해에 흘러들어가, 현재의 아랄해 델타가 형성되었다. 그 결과 아랄해의 수위는 지금보다 2~3m 가량 상승하였다. 이것이 아랄해의 제2의 탄생이다.

그후 13세기 몽골 서정군의 침입으로 인해 제방이 파괴됨으로써 아무다리야강은 다시 흐름이 서쪽 방향으로 바뀌어 주민들은 관개지를 잃게 되었으며, 수량이 줄어들면서 아랄해 수위는 지금보다 10~13m나 낮아졌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아무다리야강의 흐름이 현재의 물길로 다시 북행함으로써 아랄해는 제3의 탄생을 맞았다. 아랄해 지역은 겨울에는 춥고(1월 평균기온 영하 14도, 최저 35도), 여름은 무더우며(7월 평균 기온 26.3도) 연간 강수량은 95mm밖에 안 되나, 연간 증발량은 약 90cm나 된다. 아랄해의 물은 시곗바늘 방향으로 돌면서 흐르고, 염분은 1kg당 10.3g으로 바닷물의 약 3분의 1정도다. 수온은 7월 평균이 23~25도이고, 1월은 0.1~0.7도다.[4]

재앙[편집]

아랄해의 1989년과 2008년의 위성 사진
면적이 줄어든 아랄해

재앙의 시작[편집]

아랄해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건 1960년대부터였다. 즉 소련이 목화를 대량으로 재배하기 위한 목적에서 아무다리야강(Amu Darya)과 시르다리야강(Syr Darya)에 댐을 쌓으면서부터 였다. 아랄해는 유라시아 대륙 한복판에 위치했으며, 주변이 사막이라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에서 유입되는 물로만 호수가 유지되었지만 소련은 그냥 목화 농사용 관개용수를 확보한다고 무작정 댐을 지어버린 것이다. 동시에 길이 1,445km의 카라쿰 운하를 비롯한 여러 관개수로의 건설 역시 두 강의 수량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고 그리고 그 대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재앙의 진행[편집]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에서의 물 유입이 크게 줄어들면서 아랄해의 면적은 점점 감소하기 시작했다. 원래 아랄해는 카스피해와 달리 호수의 깊이가 깊지 않아서 물의 수위가 줄어들면 면적이 급격하게 감소한다. 당장 면적만 봐도 1998년에는 28,687km², 2004년에는 17,160km², 2008년에는 6,800km²로 줄어 버렸다. 약 50년 만에 면적이 1/10로 줄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점차 줄어들어 위성사진으로 보면 2012년에는 6,800km²보다도 훨씬 더 줄어들었다. 호수가 그냥 감소하기만 해도 큰 문제인데, 이로 인해 주변 기후가 변한다는 점이 더욱 치명적이었다. 마른 호수 바닥은 낮에는 끓어오르듯 뜨거워지고 밤에는 얼어붙듯 차가웠다. 여름이 줄어들고 더 뜨거워졌으며, 강우량이 줄어들고 서리가 끼지 않는 날의 수가 줄어들어 목화 재배에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고 아무다리야강 유역의 숲들은 황폐해졌으며 그 곳에 살고 있던 각종 동물들 역시 사라졌다. 또 다른 문제는 아랄해가 염호였다는 것이다. 바다처럼 염도가 높은 것은 아니었고 담수에 가까웠지만 염분은 존재했다. 즉, 기수와 같은 수준의 물이었다. 물이 없어 점점 말라 가면서 아랄해의 염도는 개발 이전보다 3배 가깝게 올라가 버렸으며, 본래 호수였던 곳이 마른 곳은 소금 사막이 되어버렸다. 소금기가 섞인 모래 바람 때문에 호흡기 질환이 만연했고, 이 바람은 500km 이상 날아가 주변국 농토까지 위협했다. 토양에 날아와 묻은 소금들을 제거하기 위해 더 많은 물을 소비했으며 이러한 소금물들은 토양에 침투하거나 다시 아랄해로 흘러들어가 염도를 가중시켰다. 게다가 관개시설이 열악하여 불필요하게 증발되는 물도 많았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정작 목표였던 목화 재배량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게 된다. 단적인 예로 고려인들의 콜호스(집단농장)인 김병화 콜호스는 1950년대~1970년대까지만 해도 소련 정부가 지정해 준 쌀과 면화 생산 목표의 두 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찍던 괴물 같은 농장이었다. 7개년 계획을 4개년 만에 초과 달성하는 위엄을 보여주었을 정도. 그런데 이 농장은 1980년대 아랄해의 사막화가 예전으로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자 생산량이 소련 평균을 밑돌 정도로 몰락했다. 이로 인해 이 지역 인근의 카라칼파크인들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우즈베키스탄에 독립을 요구할 재력조차도 없다고 한다. 또한 높아지는 염도 외에도 목화 및 쌀을 재배하기 위해 뿌려진 각종 화학 비료와 살충제는 고스란히 아랄해로 들어가게 되었고 호수의 오염 자체도 심화되어 갔다. 이러한 오염은 아랄해를 식수로 이용하는 지역 주민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했고, 특히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아랄해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카라칼팍스탄 지역의 1989년 당시 어린이 사망률은 세계 최고였다. 또한 서식하던 물고기가 32종에서 6종으로 줄었고, 1960년대 연 4만t에 달했던 어획량은 1970년대 1만t으로, 2006년에는 20t으로 급감했다. 그래서 관련된 일자리 6만 개가 사라져서 주민들은 도시로 떠나야 했다.

결국 물이 줄어 바닥이 드러나면서 아랄해는 카자흐스탄 쪽의 북아랄해와 우즈베키스탄 쪽의 남아랄해로 두 쪽이 났다. 우즈베키스탄은 면화 산업을 유지하고 호수 바닥에서 가스와 석유를 개발하겠다며 소금 사막으로 변한 아랄해 재생 노력을 사실상 포기했다. 이 상태에서 환경 전문가들은 2020년에는 아랄해가 완전히 말라붙을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아랄해의 옛 항구도시였던 카자흐스탄의 아랄(Арал)과 우즈베키스탄의 무이나크(Mo‘ynoq)의 인구는 절반 이하로 줄어버렸고 열심히 물고기를 잡는 소련 시절의 선전 벽화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옛날에 항구였던 모래사막 위에는 녹슨 어선들이 나뒹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궁여지책으로 아랄해로 흐르는 아무다리야 강을 막아 무이나크 주변에 거대한 인공 호수를 만들었다. 그 곳에서는 어업 허가권을 가진 사람들만 어업 행위를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아랄해의 몰락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와 함께 소련의 2대 환경 재앙으로 꼽히며, 산업화와 생산량 달성만을 위해 달려오던 소련 공산당이 영원히 까일 구실을 만들어 주었다. 소련은 목화를 위해 아랄해를 성급하게 개발했지만 정작 목화 재배도 오히려 실패하였으며 아랄해와 지역 주민에게는 지옥같은 환경과 큰 피해를 남겨주었다.

필사적인 노력[편집]

이러한 재앙 끝에 아랄해의 면적은 1960년대와 비교하면 무려 90~95% 가량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에 1994년에 아랄해 수역의 국가들은 아랄해의 소멸을 막고 아랄해를 1960년대 초의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으로 아랄해 수역 계획(Aral Sea Basin Program, ASBP)이라는 범국가적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2018년 5월 4일에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아랄해 되살리기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아랄해와 연결된 강의 유량을 관리하기로 합의했다. 2021년 7월 2일에 코이카는 아랄해 지역의 위기 대응을 위해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와 주 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관에서 카라칼팍스탄 자치공화국의 지역사회 주도 친환경 재건 사업 협약을 체결했다.

북아랄해 수위 회복 계획[편집]

카자흐스탄 정부는 3차 계획이 시작되자마자 북아랄해를 살리기 위해 1차 계획 때 있었던 키르기스스탄과의 협약을 먼저 이행하였다. 이에 키르기스스탄은 상류에 있던 댐의 문을 개방하여 시르다리야강에서 물을 내려보내 북아랄해에 강물을 공급하였다. 이로 인해 북아랄해의 수위가 저하되는 상황을 간신히 모면했다. 북아랄해의 수위가 감소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카자흐스탄 정부는 시르다리야강의 물이 남아랄해로 흘러 들어가 그대로 증발해버리는 상황을 막기로 한다. 이에 2003년부터 5년간 8800만 달러(약 1040억 원)를 들여 북아랄해와 남아랄해 사이 최단 구간에 쾨카랄(Көкарал)댐을 세웠다. 공사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았으나, 도로나 통신 등 기반 시설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 기반 시설을 건설해야만 했다. 하지만 기반 시설마저도 허약해 어쩌다 비가 오기라도 하면 길이 진흙탕이 되어 차량의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고 통신 또한 자주 두절되었다고 한다. 또한 작은 댐을 건설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라붙은 호수 바닥이 초연약 지반이었기 때문에 난공사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댐은 작았으나 그 측면이나 지하로 물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댐 주위의 물가에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콘크리트 벽을 쌓았다.

그리고 댐이 완공되자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아랄해가 마르면서 바닷물 이상으로 상승했던 염도도 다시 기존의 염도로 돌아왔고, 타지에서 물고기를 산 채로 잡아서 아랄해에 방생하는 등의 노력으로 물고기가 늘면서 2007년 어획량이 1년 만에 100배인 2000t으로 늘었다. 게다가 수심이 30m에서 42m로 무려 12m씩이나 증가하면서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항구도시였다가 물가까지 최대 100km를 가야 하는 내륙 도시로 변했던 아랄도 물가까지 거리가 25km 정도로 줄어들었다. 2016년 7월 말에는 15km까지 단축되었다. 북아랄해 주변 지역 한정이지만 날씨도 상대적으로 온화해지면서 소금 모래폭풍도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카자흐스탄 정부는 쾨카랄댐 북쪽에 댐을 한 개 더 만들어서 확실하게 아랄을 근 40여 년만에 다시 원래의 항구도시로 만들려는 계획을 가지고 이를 추진 중이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아랄해〉, 《위키백과》
  2. 아랄 해〉, 《요다위키》
  3. 아랄 해(세계지명 유래 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4. 아랄해(실크로드 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5. 아랄해〉,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중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중앙아시아 국가
중앙아시아 도시
중앙아시아 지리
중앙아시아 문화
중앙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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