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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 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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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 푸조(Armand Peugeot)
푸조(PEUGEOT)

아르망 푸조(Armand Peugeot)는 프랑스 기반의 자동차 제조업체인 푸조(PEUGEOT)를 자동차 제조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푸조의 첫 번째 자동차인 삼륜 증기 자동차와 휘발유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를 개발하고 1896년 푸조자동차(Peugeot Automobiles)를 설립하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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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아르망 푸조는 1849년 2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에밀 푸조이며 할아버지는 푸조를 기계제품 기업으로서 기본을 잡아놓은 장-피에르 2세 푸조이다. 그는 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1865년 3대에 걸쳐 내려온 푸조 가문의 가업을 이어받았다. 1881년 아르망 푸조는 영국 유학 중 눈여겨본 자전거와 그 제조의 잠재력을 보고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1871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뒤 1882년 그랑 비(Grand bi)라는 이름의 자전거를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그랑 비는 앞바퀴가 크고 뒷바퀴가 작은 형태였다. 자전거 사업으로 회사를 키운 아르망 푸조는 자동차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1889년 증기기관 차량 전문가인 레옹 세르폴레의 도움을 받아 1889년 푸조의 첫 자동차인 세르폴레 푸조를 개발했다. 이 자동차는 무게 250㎏의 4인승으로 최고 시속은 16㎞였으며 파리 세계 박람회에 출품되었지만 판매 실적은 저조했다. 아르망 푸조는 독일의 고틀리프 다임러가 발명한 가솔린엔진을 탑재한 사륜 자동차를 개발했다. 1891년 출시된 타입 3는 시장의 반응도 좋았다. 1892년 29대, 1894년에는 40대로 판매량이 늘었다. 이 차량은 제품의 내구성을 보여주기 위해 파리-브레스트 사이클 대회에 감독 자격으로 참여했다. 타입 3는 총 1,500마일(2,000km)을 139시간 만에 완주하며 품질을 인정받았다. 1894년에는 타입 7로 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주 대회인 파리-루앙 트라이얼에 참가해 127km를 달려 총 102대의 경쟁 자동차들을 제치고 우승하기도 했다. 그는 1896년 푸조 자동차(Peugeot Automobiles)를 설립했으며 회사는 1886년에 설립된 벤츠의 뒤를 이어 유럽에서 설립된 둘째 자동차 회사이다. 이때부터 푸조는 엔진 독자 개발에 나섰고 1899년 내놓은 타입 15는 300대가 팔렸으며 프랑스 전체 판매량의 25%를 차지하는 수치이다. 1912년에는 855CC 4기통 엔진을 탑재한 소형차 베베를 출시했다. 세계 최초로 실린더 한 개에 네 개의 밸브와 캠샤프트를 갖춘 DOHC 엔진이었다. 유럽의 랠리와 그랑프리, 미국의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 레이스를 비롯한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좋은 성적을 보이며 성능과 내구성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1913년 아르망 푸조는 회사 경영에서 물러날 때 푸조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자동차 제조업체로 연간 10,000대의 자동차를 생산하였다. 1915년 1월 2일 그는 파리 뇌이쉬르센에서 사망하였으며 세계 자동차 산업을 개척한 대표적인 기업인 중 하나로 1999년에는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2][3][4]

주요 활동[편집]

푸조 베베[편집]

1905년 69 타입 푸조 베베

1900년을 넘어서면서 모든 자동차들이 경주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힘이 강하고 빨랐지만 덩치가 크고 운전이 어려워 일반인들은 엄두를 못 냈다. 가격 또한 엄청나게 비쌌다. 이런 괴물 차들은 선전을 위한 차이지 영구성 있는 사업을 위한 자동차가 아님을 간파한 아르망은 누구나 쉽게 운전할 수 있는 간편하고 값싼 자동차를 1903년에 개발해냈다. 1904년 파리 모터쇼에서 선보였으며 4기통 800cc 4마력짜리 엔진을 얹은 개발 명칭이 타입 69인 푸조 베베라는 꼬마차는 아르망의 명성 때문에 금세 인기를 끌었다. 첫해에 400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특히 당시 파리의 중산층 이상 아가씨들 사이에서 푸조 베베를 갖는 것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을 정도였다. 1913년 아르망은 달러박스인 푸조 베베를 당시 자동차 설계의 천재라 불렀던 이태리의 자동차 예술가인 에토레 부가티에게 다시 디자인해 줄 것을 부탁해 제2세대 베베 BP1을 탄생시켰다. 당시로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멋진 스타일과 이중 색상에 운전이 간편한 차여서 남녀노소가 부담 없이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다. 길이 2.62m에 무게는 350kg 정도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차는 10마력에 최고 속도는 60km/h였다. 저렴한 판매를 위해 2단 변속기가 장착된 하위 트림도 있었는데 푸조가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또한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이후 1916년까지 무려 3,095대가 팔려 유럽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5][6]

각주[편집]

  1. "Armand Peugeot", "wikipedia"
  2. 로드테스트, 〈테크놀로지 이야기가 있는 브랜드, 푸조(ft. 2008, 508)〉, 《네이버 포스트》, 2019-02-13
  3. 최진석,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재도약 위해 중국 자본에 손 내민 푸조〉, 《매거진한경》, 2014-09-03
  4. 아르망 푀조〉, 《네이버 지식백과》
  5. 푸조의 첫 경차 '베베' 탄생 어떻게〉, 《머니투데이》, 2013-08-20
  6. "Peugeot Bébé", "wikipedia"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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