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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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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고원
에티오피아고원
에티오피아고원

에티오피아고원(Ethiopia Plat)은 아프리카 동부 에티오피아에 있는 고원이다. 아비시니아고원(Abyssinian Plat)이라고도 한다. 에티오피아고원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고원으로 대부분이 해발 1500m 이상이며 가장 높은 곳은 4550m이다. 아프리카의 지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1]

개요[편집]

에티오피아고원은 아프리카의 뿔 지역 에티오피아의 북부와 서부에 대부분의 지역에 해당하는 고원 지대이다.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 가장 넓은 고원 지대이기도 하다. 에티오피아고원은 적도 근처임에도 해발고도가 높아 온대기후에 가까우며 이 지역에서 청나일강이 발원한다. 최초 인류의 화석이 발견된 장소임과 동시에 나일강의 수량 대부분이 이곳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발원하는 등,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이지만 고원 지대 특성상 지역 간의 교통이 어려워 역사가 오래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발전이 많이 지체된 곳이기도 하다. 커피가 최초로 음용된 곳이자 아직도 야생 커피가 수확되는 지역이다. 고대에는 강수량이 풍부하고 토질이 비옥한 지역으로 예멘 일대에서 기원한 악숨 왕국 등이 번창했었다. 악숨 왕국의 후손에 해당하는 암하라인, 오로모인, 티그리냐인은 오늘날 각각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주요 민족이기도 하다. [2]

에티오피아고원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높고 험준한 들이 가장 많이 집중해 있는 지대이다. 일부는 아와시강(江) 우안으로부터 소말리아 북동단에까지 이른다. 아와시강 계곡으로부터 남서로 뻗어 있는 동아프리카 대(大)지구대는 에티오피아고원을 양분하고 있다. 3,600∼4,500 m에 달하는 고봉도 있으며, 너비는 좁으나 거의 수직으로 수백 m나 내려가는 깊은 계곡도 있다. 기온은 16∼27℃이며, 높은 지대에는 겨울에 눈이 내리기도 한다. 이웃 사막 지대에서 조, 수수, 기장 같은 잡곡을 주로 재배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에티오피아 고원은 테프라는 생산성 높은 고유의 곡물을 재배해 먹었고, 이는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요리 문화 발전에 직접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에는 인구 증가 및 연료 부족으로 인한 벌목 등으로 사헬 지대와 마찬가지로 급속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3]

기후[편집]

에티오피아고원의 기후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단 하루에 사시사철이 들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침은 봄, 점심은 여름, 저녁은 가을, 밤은 겨울에 가까운 날씨로, 에티오피아 갈 때 아프리카에 간다고 얇은 옷만 잔뜩 가져갔다간 큰 코 다칠 수도 있다. 자신이 추위에 강한 편이 아니고, 장기간 체류할 일이 있다면 취침 시에 사용할 전기장판 정도를 챙겨 가거나, 밤에 입고 다닐 입고 벗기 쉬운 니트 한 벌 정도 챙겨야 한다.

에티오피아[편집]

에티오피아동아프리카에 위치한 민주공화국이다. 북쪽에 에리트레아, 동북쪽에 지부티, 동쪽에 소말리아, 남쪽에 케냐, 서남쪽에 남수단, 서북쪽에 수단국경을 접한다. 수도는 아디스아바바(አዲስ አበባ, Addis Ababa)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내륙국이기도 하다.(약 1억 1,700만명) 국가별 인구 순위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약 2억명)에 이은 아프리카 2위의 대국이다. 이집트(약 1억명)나 콩고민주공화국(약 8,400만명), 탄자니아(약 5,900만명), 남아프리카공화국(약 5,700만명)보다 인구가 많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은 국가로 유명하다. 다만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이탈리아에게 패배하여 5년 정도 강점된 적이 있다. 이후 영국군 주도 연합군에 의해 이탈리아가 패배하면서 1941년 해방된 것이다. 그래도 강점되던 기간이 짧고 이탈리아가 패망하는 순간까지 에티오피아의 친황실 저항세력이 날뛰는 걸 막지 못해 완전히 식민화됐다고 보기도 어렵고,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크게 비교되기 때문에 에티오피아는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은 것이라 여기는 사람이 많다. 국토의 거의 전체가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온대기후에 속한다. 당장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도 해발고도가 2,300m 이상이라서 여름, 겨울이 없고 1년 내내 , 가을 같은 기후에 속하며, 최고 기온이 33도를 넘은 적이 없다. 한마디로, 우리가 생각하는 아프리카와는 다르다. 적도 인근에 붙은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겨울 혹은 밤에는 적게나마 이 내린다. 게다가 날씨도 건조한 편이기 때문에 이 나라 사람들은 사시사철 긴팔옷을 입는다.[4]

커피의 기원[편집]

커피(coffee)의 기원은 잘 알려진 대로 에티오피아고원이다. 13세기 말엽 오스만제국(튀르키예)의 식민지가 된 에티오피아고원에서 한 양치기 소년이 방목 중이던 양떼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붉은 열매만 따먹으면 흥분하여 뛰어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하여 자신도 호기심이 일어 붉은 열매를 먹어본 결과 신기하게도 힘이 솟고 정신이 맑아지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커피 원두가 세상에 드러난 효시(嚆矢)이다. 이후 소년은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할 때마다 붉은 열매를 상복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점차 이슬람 신자들 사이에 알려지고 맑은 정신과 '힘의 원천'인 각성 효과가 알려지자 마침내 붉은 열매가 오스만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당시 이 원두에 붙여진 이름이 이슬람 신자들의 머리에 두르는 두건 쿠피야(Kufiyyah)에서 따온 라틴어 카파(Cappa)이다. 이 카파를 건조시킨 뒤 갈아서 피로 회복을 위한 음료로 개발한 것이 오늘날 커피의 원조가 되었고, 이를 제조, 판매하는 최초의 카페가 이스탄불에 생겨났다. 카파는 다시 이집트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프랑스에서 카페(Cafe), 영국에선 코피(Coppee)로 변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기호품 커피의 전래 경로이다.[5]

커피 이외에 인류가 최초로 즐긴 음료다. 의 역사가 5,000년, 카카오는 4,000년 가량 된 반면, 커피의 역사는 적게는 수만년에서 수십만년 전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커피가 처음 인류와 만난 곳에 기록 문화를 가진 고대 문명이 발달하지 못해 정확히 언제부터 인간이 커피를 마셨는지는 알기 어렵다.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떠난 후에도 커피는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현지 사람들만 아는 존재가 되었고, 꽤 오랜 기간 이 지역 인간들만이 향유하는 식품이었다. 물론 공존의 이유만으로 인간이 커피를 마셨다는 데는 과학적 근거의 부족함이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오랜 조상들, 적어도 20만년 전에 나타난 현생 인류 호모사피엔스는 빨간 열매 상태로라도 커피를 먹지 않았을까. 실제로 지금까지 에티오피아 서남부 지역 마을에는 커피 열매를 원기를 북돋는 음식으로 다양하게 먹는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에티오피아 농부들은 커피나무가 사람만큼 산다고 말한다. 커피나무의 수명은 50년 정도다. 커피나무가 실제 열매를 생산할 수 있는 기간은 20~30년이고,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는 노목은 잘라버리기 때문에 정확한 기대수령을 알기 어렵다. 물론 100년이 넘는 수령을 가진 커피나무들도 있어 보호되기도 하지만, 자연 상태의 커피나무(forest coffee)는 50년가량 살면 고사한다. 인간의 수명은 지금은 보건 의료환경이 개선돼 좀 더 늘어났지만, 2010년 내외로 에티오피아 국민들의 기대수명은 53세 정도다. 그래서 에티오피아 농부들은 커피나무만큼 사는 인생이라고 말한다.[6]

인류의 기원[편집]

인류의 기원도 여러 주장이 분분하지만, 에티오피아 하다르(Hadar) 고원 지역에서 발견된 320만 년 전 인류 최초의 어머니 루시(Lucy)를 가장 의미 있는 증거로 여긴다. 직립보행을 하면서 침팬지와 뚜렷이 차이를 구분 지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인류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물론 커피와 인간, 두 가지 기원의 인과성은 없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뿐 아니라, 호모하빌리스, 호모에렉투스, 호모사피엔스 등의 인골 화석이 발견된 곳은 바로 동아프리카의 리프트 밸리다. 커피 또한 이 지구대를 따라 하라르(Harar) 등 에티오피아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된 것을 보면 수십만 년 동안 커피와 인류는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함께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뉴스[편집]

  • 2021년 7월 18일(현지시간)아프리카 수단의 고위관리 한 명이 에티오피아가 나일강의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GERD)의 제 2차 담수를 시작한지 몇 달이 지났지만 하류인 수단의 블루 나일강 수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매일 관측 결과 나타났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부터 에티오피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알-다임 댐초소의 매일 수위 측정치를 조사한결과 에티오피아고원지대로부터 수단으로 오는 물의 양은 조금도 줄지 안핬다고 수단의 관개 댐 알-루세레스 댐의 아미드 오하메드 알리 담당관은 발표했다. 에티오피아가 2월부터 GERD댐의 2차 담수를 시작했지만 매일의 급수량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고 그는 밝혔다. 하지만 알리는 에티오피아가 이미 GERD담수를 시작했더라도, 앞으로 그 댐의 담수와 운영에 관한 이집트를 포함한 3국의 완전한 법적 합의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협상의 지속을 요구했다. GERD로부터 100km 떨어진 곳의 블루 나일강에 위치한 알-루세레스 댐은 1966년에 건설된 것으로 담수량 33억5000 입방미터의 비교적 작은 댐이다. 수단, 이집트, 에티오피아는 2011년 GERD댐 건설 개시 이래 아프리카 연합의 주재로 GERD댐의 담수와 운용 계획을 두고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수단은 유엔, 유럽연합, 미국, 아프리카 연합의 4자 중개를 댐분쟁 해결책으로 제시했지만 에티오피아는 이를 거부했다. 에티오피아는 2월 앞으로 GERD의 2차 담수로 약 135억 입방 미터의 강물을 담기 시작한다고 통보했다. 2020년 1차 담수량은 49억 입방미터였다. 에티오피아는 이 거대 댐의 건설로 6000메가와트 이상의 전력을 생산할 계획이다. 하지만 나일 분지의 하류에 위치한 이집트와 수단은 식수와 농업용수를 나일강에 의존해 오고 있어, 물 사용량에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해 나일강에 대한 전통적인 물권리를 두고 분쟁을 벌여오고 있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에티오피아고원〉, 《위키백과》
  2. 에티오피아 고원〉, 《나무위키》
  3. 아비시니아고원〉, 《네이버 지식백과》
  4. 에티오피아〉, 《나무위키》
  5. 김수영, 〈(이미애의 문화 담론)커피역사 100년의 발자취〉, 《영남일보》, 2019-05-01
  6. 최상기, 〈(커피벨트를 가다)커피와 인간, 그 불가분의 관계〉, 《한국일보》, 2019-07-24
  7. 차미례 기자, 〈"에티오피아 나일댐 2차 담수불구 수단쪽 수위 유지돼"〉, 《뉴시스》, 2021-07-19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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