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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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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安東市)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중북부에 있는 도시이자, 경상북도청 소재지이다. 고려·조선 시대에는 안동대도호부가 존재했다. 유교 문화의 고장으로 유명하며,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한다. 하회마을, 도산서원 등 명소가 있고, 많은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다.[1]

개요[편집]

안동시 동쪽은 영양군·청송군, 서쪽은 예천군, 남쪽은 의성군, 북쪽은 영주시봉화군이 인접해 있다. 동경 128°26′~129°00′, 북위 36°17′~36°49′에 위치한다. 면적은 1,521.94㎢이고, 인구는 2023년 7월을 기준하여 153,697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3개 면, 10개 행정동(42개 법정동), 274개 행정리(175개 법정리)가 있다. 경상북도에서 면적이 가장 넓을 뿐만 아니라 서울 면적의 2.5배나 된다. 경상북도청(慶尙北道廳)의 소재지이다. 시청은 경상북도 안동시 명륜동에 있다. 2016년 3월 안동시 풍천면에 경북도청 신청사가 개청되었다.

일제강점기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다. 옛 이름은 고타야(신라 시대), 고창(古昌, 신라 경덕왕 때 고타야에서 개칭), 영가(永嘉, 신라 후기~고려 초기), 길주(吉州, 고려 중기), 복주(福州, 고려 말) 등이 있다.

전통 문화가 매우 번성했던 곳인 만큼, 오늘날에도 전통 문화의 향수와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 조선 시대에는 경주시와 함께 영남 남인의 구심 도시로 이름을 떨쳤다. 진성 이 씨를 포함해 영남지방의 포(布)인 영포 가운데 으뜸이라는 안동포부터 오늘날까지 명문 양반가들의 종가가 많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유교 문화, 불교 문화, 민속문화 모두 번성했던 도시이며 이런 도시 특성에 맞춰 도시 슬로건도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더러 타 지역의 영문 슬로건과 비교해서 이 슬로건을 촌스럽게 여기는 안동사람들도 있으며, 영문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2010년에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고 국가 브랜드 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리고 2011년부터 지방자치단체들도 한국어 브랜드를 다는 곳이 늘고 있다.

2021년 10월에 새로운 관광 브랜드를 발표했다. "Smile Forever Andong"이라는 슬로건으로, 관광 분야에서는 "한국 정신 문화의 수도 안동"을 대체해서 쓰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관광분야 뿐 아니라 시정홍보 전반에서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을 대체해서 쓰이는 실정이다.[2][3]

자연환경[편집]

지형은 일종의 화강암 개석분지를 이루고 있으며,시의 남서는 비교적 평탄하나 북동은 이 험준하여 농경지는 거의가 산간에 위치하며, 풍산평야를 제외하고는 평야가 극히 적은 편이다. 중앙은 왕달봉(王達峰 일명 太華山, 264m)·병산(甁山, 240m) 등 사방이 200∼300m의 저산성 구릉지로 형성되어 있다. 이 구릉지 중앙의 침식분지에 도심지가 위치하고 있다.

시의 북서부를 따라 태백산맥이 줄기차게 뻗어 보문산(普門山, 643m)·학가산(鶴駕山, 870m)·불로봉(不老峰, 482m)·봉수산(烽燧山, 570m)을 연결하는 일련의 편마암계 산맥을 형성하여 영주분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시의 남동부는 두름산(485m)·와룡산(489m)·사일산(649m)·화부산(626m)·임봉산(687m)·금학산(577m)을 연결하는 화강암과 신라통의 지질경계부를 따라 형성된 500∼600m의 분수령에 의해 시 경계를 이루고 있다.

대략 반변천(半邊川)을 경계로 시의 북부지역은 화강암지대로 사질토양이며, 남부지역은 혈암(頁岩)의 신라통지역으로 토질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강남은 거의가 점토질이 풍부한 토양이고, 강북은 사토질로 형성되어 있다.

하천낙동강의 본류가 시의 중앙부를 남류하면서, 도산면의 용두산(龍頭山, 661m)에서 발원하여 남서류하는 온혜천(溫惠川)을 합치고 있다.

또 시 도심지 동부에서 반변천(半邊川)·길안천(吉安川)을 합류하여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면서 안막동 저수산(猪首山)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는 안막천(安幕川)과 왕달봉의 남쪽사면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는 안기천(安奇川)을 합하고, 영주시의 봉수산(570m)에서 발원하여 북후면·서후면을 남류하는 송야천(松夜川)과 풍산읍 막곡리에서 합류한다.

이들 유역에는 평야가 형성되어 경작지와 주거지로 이용된다. 또한, 시 동부의 낙동강을 따라 양안에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나타난다. 특히 북동부의 풍산평야(豊山平野)는 시내 최대의 평야이며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풍산읍 안교리·하리·소산리와 풍천면 가곡리에 걸쳐 형성되어 있으며, 낙동강의 범람과 낙동강의 소지류인 상리천(上里川)·매곡천(梅谷川)이 운반한 토사에 의해서 형성된 충적평야이다.

저수지로는 안동호(安東湖)와 만운지(晩雲池)·여자지(女子池) 등이 있어 관개용수를 공급해준다.

기후는 내륙 분지 기후의 특성을 나타내어 연교차가 심하고, 안개가 연간 79일로 많으며, 계절풍은 동계에는 북서풍이고 하계에는 서북서풍이다. 1월 평균기온 -1.6℃, 8월 평균기온 27.4℃이며 연평균 기온은 13℃이다. 강우량은 연간 1,513.7㎜정도인데 6∼9월이 1,135㎜로 75% 정도를 차지한다.[4]

역사[편집]

안동시의 초기 역사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와룡면 가구리와 산야리, 예안면 신남리, 남후면 하아리 등지에서 선돌·고인돌·민무늬토기 등의 유물·유적 등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이 지역은 청동기시대 이래 사람의 거주가 많았던 것 같으며, 점차 사회 분화가 이루어져 서기전 57년 신라 혁거세 원년에 염상도사(念尙道士)가 창녕국(昌寧國)을 세웠다.[창녕국과 함께 구영국(驅令國), 소라국(召羅國)도 지금의 안동땅으로 초기 신라의 속국이었다]

현재 변진 24개국 중 기저국(己柢國)과 불사국(不斯國)이 이 곳에 비정되고 있다. 이들 국가의 행방은 알 수 없고, 3세기 중엽 이전에 신라의 영역에 들어가 고타야군(古陀耶郡)이 설치되었다. 이후 신라 북부지역의 중요 거점이 되어 500년(지증왕 1)에는 왕이 이 곳에 행차하기도 하였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때 고창군(高昌郡)으로 이름이 바뀌고 직녕현(直寧縣: 지금의 일직면)·고구현(高丘縣: 지금의 의성군 북부)·일계현(日谿縣) 등을 속현으로 거느렸다.

후삼국 쟁패기에 이 지역은 후백제와 고려의 대립이 치열하던 곳이며, 이 지역 호족들의 향배에 따라 양국의 세력 판도가 좌우되었다. 922년 이래 이 지역을 둘러싼 양국간의 전쟁이 치열히 전개되었는데, 930년(태조 13) 왕건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병산(甁山)으로 진격, 견훤과 격돌하였다.

이때 고창군의 김선평(金宣平)·권행(權幸)·장길(張吉) 등이 왕건에게 귀부하여 고려가 승리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이 전투 결과로 후백제 세력은 경상도지역에서 크게 약해졌고, 인근 지역의 30여 군현이 차례로 고려에 항복하자, 왕건은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켜 이 지역을 우대하였다.

그 뒤 영가군(永嘉郡)으로 개명되었다. 그러다가 995년(성종 14)에 길주(吉州)로, 1012년(현종 3년)에 안무사(安撫史)를 두었다가 동 9년(1018년) 지길주사(知吉州使)로 고치고 1030년(현종 21)에 안동부(安東府)로 각각 개편된 후, 속군 3개, 속현 11개를 거느리는 계수관으로 존재하였다. 1197년(명종 27) 경상도 지방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 민란을 진압하는데 공이 있어 안동도호부로, 1204년(신종 7) 안동 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그 뒤 원 압제 하인 1308년(충렬왕 34) 복주목(福州牧)으로 개편되었다. 그러다가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으로 피난 온 공민왕을 성심으로 섬긴 공으로 다시 안동 대도호부가 되었다. 1383년(우왕 9년)에 안동도로 고쳐 원사 겸 부사를 두었다가 동 14년(1388) 부사로 환원하였다.

그리고 13세기 이래 개경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역이 몽골의 침입으로 크게 황폐해지자, 이 지역은 국가의 물적·인적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이곳 출신의 김방경(金方慶)·권부(權溥) 등과 이들의 후예들이 고려 후기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도 안동지역은 읍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경상도의 중심지역으로 존재하였다. 그리고 세조 때 잠시 진(鎭)이 설치되어 부사가 병마절도부사(兵馬節度副使)를 겸하기도 하였다. 당시 이 지역의 토지는 척박했으며, 풍속은 농상에 힘쓰고 예양과 절검을 중히 여겼다고 한다.

호구수는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안동부 지역은 847호 6,859인, 예안현은 174호 1,445인이었다고 한다. 또 이 지역은 고려 후기 이래 정치적·학문적으로 중시되었고, 수많은 인물이 배출되어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불렸다. 또 선비들의 동족 마을이 많이 있어서 여러 성씨들의 명문(名門)이 대를 이어 살아 천년(千年)의 명촌(名村)이 존재한다고 할 정도였다. 1576년(선조 9)에 부(府) 관내에 패륜아가 그 어머니를 죽인 변이 있어 현(縣)으로 격하되었고, 1581년(선조 14)에 고장 사람들의 상소로 다시 부로(府) 회복되었다. 1776년(영조 52)에 도현(道縣)의 역변(逆變)으로 다시 현(縣)으로 격하되었고, 1785년(정조 9)에 다시 부(府)로 회복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 난을 극복해 간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의 활약이 두드러졌으며, 이 지역에서도 김해(金垓)·유종개(柳宗介) 등이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하였다.

1895년(고종 32년) 5월 26일에 지방제도를 개정하여 팔도를 폐하고 전국을 23관찰부로 고치면서 안동에 관찰부를 두고 경상도 동북부 17개 군을 관할토록 하였다. 다음해인 1896년(건양 원년) 양력 8월 4일에 23 관찰부를 폐하고 13도 로 개편하게 됨으로써 안동 관찰부는 만 1년 1개월만에 폐지되고 안동군과 예안군이 분리되면서 안동군으로 고쳐짐과 함께 감천면은 예천군에, 내성면·춘양면·소천면·재산면은 봉화군에 각각 편입되어 읍세가 크게 약화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예안군이 다시 안동군에 편입되었고, 1931년 안동면을 안동읍으로 승격시킴과 동시 일부면을 통폐합함으로써 1 15개 218개동으로 개편되었다.

이 시기에 유림들은 광명학교(廣明學校)·협동학교(協同學校) 등을 세워서 신교육 보급에 힘썼고, 항일의병투쟁에 적극 참여하여 의병투쟁의 중심지가 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3월 16일 예안 장날, 18일의 안동 장날을 기하여 수천 명의 민중이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각 지역의 장날에서 시위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1963년 1월 1일 안동 읍이 시로 승격되어 안동시와 안동군이 나누어졌다. 1973년 7월 1일 풍산면이 읍으로 승격된 이래 행정관할구역의 이동이 약간씩 있었다. 1974년 11월 1일 안동댐 건설로 월곡면이 없어지면서 1읍 13면이 되었다.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개편으로 와룡면, 남후면, 남선면, 임하면 일부가 안동시로 편입(서지 1·2리, 수상 1·2리, 수하 1·2리, 정상리, 정하 1·2리, 송천 1·2·3리)되었고, 1987년 1월 1일 행정구역개편으로 풍산읍 단호 1·2리가 남후면 단호1·2로 편입되고, 와룡면 서현 2리가 북후면 대현리로 편입되었다.

1991년 4월 15일 임동면 지례출장소 폐지, 1993년 11월 6일 임하댐 건설로 인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하면 사의 1·2리 폐지, 임동면 지례 1·2리, 수곡 2리 폐지되고, 1995년 1월 1일 시군의 통합에 따라 안동군과 안동시가 통합되어 새로운 안동시가 되었다. 1997년 7월 1일 행정동 통합(1읍 13면 13동 3 출장소)으로 중구동(화성동 제외)과 동남동을 중구동, 명륜동과 안막동을 명륜동, 옥률동과 신흥동을 동구동, 대흥동·대신동·당북동을 서구동으로 통합되었고, 중구동의 법정동인 화성동을 법상동, 안기동의 법정동인 운안동을 평화동으로 편입하였다. 1998년 12월 1일 행정동 통합(1 13 10 3출장소)으로 중구, 동구동을 중구동으로 통합, 용성, 송천동을 용상동으로 통합, 서구, 강남동을 서구동으로 통합하였다.

2019년 현재 풍산읍 및 와룡면, 북후면, 서후면, 풍천면, 일직면, 남후면, 남선면, 임하면, 길안면, 임동면, 예안면, 도산면, 녹전면과 중구동, 명륜동, 용상동, 서구동, 태화동, 평화동, 안기동, 옥동, 송하동, 강남동의 1읍 13면 10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편집]

경상북도에서는 나름 상위권이다. 과거 일제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도시였고 경상북도에서도 인지도가 매우 높은 도시 중 하나였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안동은 점점 쇠퇴해가기 시작한다. 그래도 도청신도시가 생겼지만 신도시 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시기는 이미 지났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는 눈에 띄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에서 적극적으로 기업 유치를 추진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큰 성과를 거두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 소멸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기존 지역산업을 4차산업 혁명형으로 접목, 새롭게 미래를 모색하고자 지역 내 국립대학인 안동대학교를 중심으로 농식품 소재 산업, 바이오·백신 산업, 문화·관광산업에 4차산업혁명 핵심기술(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지능형 로봇 등)의 동력을 접목한 '안동형 ABC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요 산업시설로는 최근 COVID-19 백신 생산으로 주목받은 SK 바이오사이언스와 SK 플라즈마 안동공장이 있다. 2011년 경상북도와 김광림 국회의원의 노력으로 SK 바이오사이언스를 유치하였고 2012년 백신 공장을 준공하였다. 2018년 SK 바이오사이언스에서 1,000억원 투자 금액을 투자하여 공장을 증설하였다. 2020년부터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백신생산이 급격히 늘어나고 백신산업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새로운 산업으로 급부상하였다. 이에 2021년 6월에도 공장 증설 및 채용을 늘리기로 하였다. 경북도청 신도시 살린 'SK바사 효과' 그 외 백신 관련하여 국제백신연구소 안동분원, 동물세포실증지원센터도 위치하고 있다.

2023년 3월 15일 '안동 바이오생명 국가 산업단지' 건설이 확정됐다.

안동 일대는 ‘산업용 햄프(대마초) 규제 자유특구’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서 햄프(Hemp)는 산업 용도로 사용되는 특정 종자의 대마를 일컫는 단어로, 그간 국내에서 대마는 마약으로 분류되어 있어 엄격한 관리 아래 허가받은 자에 한해 농업용, 학술연구용 등 일부 분야에서만 허용돼 산업용으로 활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안동시에 햄프 규제자유특구를 설치하여 의약품용 대마 재배를 허용하며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대마의 대량 재배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산업용 햄프 특구는 마약류관리법에서 금지하고 있던 대마를 재배하고 의약품 원료가 되는 CBD를 추출, 의료용 목적으로 합법화된 국가에 의약품 원료를 수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향후 안동을 중심으로 대마 유통 관련 기업들이 모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북도, 산업용 대마 클러스터 구축 시동 2023년 3월 15일 '안동 바이오생명 국가산업단지' 건설이 확정됐다.

안동 산약, 안동 한우, 안동포, 안동한지, 안동 사과, 안동 간 고등어, 안동찜닭, 안동 콩, 안동소주 등 8개 품목이 지리적 표시제로 등록되어 있다.

교통[편집]

중앙선 철도가 시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국도와 지방도가 사방으로 통하고 있어 대구·경북 등 다른 도시와의 연결이 원활하다. 중앙고속도로(대구∼춘천)의 개통으로 안동의 외부 교통은 더욱 편리하다.

관광[편집]

안동시는 예로부터 유림의 고장인 이 시에는 서원·사찰·고적 등 많은 문화재가 있어 경상북도에서 경주시 다음가는 문화재의 보고이다. 대표적인 전통 문화 관광지의 거점이자 유교 문화의 요람이며, 조선 시대의 풍습을 이어 온 곳으로, 특히 조선시대 건물과 민속품은 전국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1976년 안동다목적댐이 준공됨에 따라 드넓은 안동호와 함께 관광자원이 개발, 정비되어 관광도시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도산면 토계리에는 동방의 주자 퇴계 이황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영남 유학의 총본산이자 그의 문학과 사상의 산실인 도산서원이 있다. 이는 퇴계가 57세 되던 1557년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자그마한 ‘도산서당’에서 비롯되었다.

상덕사와 전교당은 조선 시대 목조건물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장판각에는 유명한 도산십이곡의 판목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1970년 신축된 옥진각에는 퇴계의 손때가 묻은 매화연 등의 문구류와 베개·자리와 같은 일상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안동댐 건설로 안동호의 물이 서원뜰 앞에까지 넘실거리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우며 매년 10월이면 도산서원에서 도산 별시가 재현된다.

풍천면 병산리의 병산서원은 유성룡의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낙동강이 흐르는 기암절벽에 의해 병풍처럼 둘러쳐진 듯 하다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학가산 남쪽 기슭에는 신라시대의 고찰인 광흥사가 있다.

천등산 아래 봉정사에는 목조건물로서 부석사와 쌍벽을 이루며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극락전이 있다. 그리고 정몽주(鄭夢周)가 수학했다는 개목사 등의 유명한 서원과 사찰이 집중 분포하고 있다.

풍천면의 하회마을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많은 민속자료와 하회탈을 보관하고 있어 좋은 관광지가 되고 있다. 이 마을에는 보물로 지정된 풍산 유 씨의 종가인 양진당과 유성룡의 종가인 충효당을 비롯, 300∼500년 된 기와집 120여 채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시의 한가운데에는 고려의 건국 공신인 김선평·권행·장길의 위패를 모신 태사묘, 1515년 이명이 건립한 임청각 군자정,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신세동칠층석탑 등 많은 국보와 보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명승지 또한 많아 풍천면 광덕리의 부용대(芙蓉臺), 안동 팔경의 하나인 백운정(白雲亭)과 임하면의 경포대(景浦臺), 길안면의 도연 폭포 등이 유명하다. 백운정·경포대는 주민들의 여름 피서지로 애용되고 있다.

그 밖에도 낙동강 본류에 건설된 안동댐으로 인하여 생긴 안동호가 주변의 문화재와 함께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호반 관광휴양지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안동호의 수려한 경관과 더불어 안동 민속박물관에서 귀중한 문화재와 다양한 옛 생활상을 구경할 수 있다. 안동 민속박물관에는 이 지방 출신의 시인 이육사의 ‘광야’가 새겨진 기념시비가 서 있고, 민속촌 주변에는 8만 3000여 그루의 꽃나무를 심은 아름다운 용성 공원(龍城公園)이 조성되어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해마다 10월에는 안동 민속 문화제가 열린다. 이 축제에서는 하회별신굿탈놀이, 놋다리밟기, 차전놀이가 펼쳐진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려 말 허도령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매주 공연해 전국에서 사람이 몰리고 외국인도 많이 구경한다. 1999년 4월 21일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을 방문하여 탈놀이를 보고 갔다. 놋다리밟기는 정월 대보름에 부녀자들이 하는 민속놀이이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려 공민왕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온다. 이밖에 매년 5월에 열리는 이육사 백일장과 안동하회마을 물돌이축제, 10월에 열리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있다.

축제로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안동 민속축제, 안동 한우 불고기 축제, 안동 학가산 산약 마축제등이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안동시〉, 《위키백과》
  2. 안동시〉, 《네이버 지식백과》
  3. 안동시〉, 《나무위키》
  4. 안동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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