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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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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庵子)는 큰 절에 딸린 작은 절, 또는 승려가 임시로 거처하며 도(道)를 닦는 집을 말한다.

불교의 경우는 예로부터 큰 절에는 으레 작은 절이나 암자가 딸려 있어 승려들이 도를 닦는 수도장(修道場)으로 많이 쓰여 왔다. 이는 끊이지 않은 불사(佛事) 등으로 해서 수도를 하기에는 아무래도 인적이 잦은 큰 절보다는 그렇지 않은 암자 쪽이 더 적합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암자를 짓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도, 불교가 들어온 삼국시대부터 벌써 많은 수도승들이 수도를 위하여 인적이 드문 깊은 산이나 외진 곳을 찾아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전념해 온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보다도 먼저 암자를 마련하여 수도를 하다가 뒤에 그 곳에 큰 절을 짓게 된 경우도 많았다.

이는 불교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 다른 많은 종교나 종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암자의 명칭이나 그 규모·모양 등은 달라도 많은 수도자들이 깊은 산 속이나 호젓한 강변 등에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정진(精進)해 온 기록 등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암자를 셀(cell)이라 하며, 이 역시 모수도원(母修道院)에 소속된 작은 수도원을 가리키고 있다. 이들 암자는 대체로 불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모수도원에 비해 규모가 작다. 이 밖에, 수사(修士)나 수녀(修女)의 독실 또는 별채를 암자라 이르기도 한다.

개요[편집]

암자는 출가한 승려나 세속을 떠난 은둔자가 사는 작은 주거로 초암(草庵), 암실(庵室), 퇴거암(退去庵)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사는 암주(庵主)는 모든 일선을 떠난 노승이나 지방토호의 반성반속(半聖半俗)의 노인이 많으며, 한가로운 종교생활을 하였다. 사원이 사산(寺產), 사명(寺名), 사격(寺格), 제사구(祭祀具), 주지(住持) 등의 조건이 갖추어져야 성립하고, 단신도(檀信徒)나 주지의 상속이 이루어져서 발전하는데 반해서, 암자는 이들 조건이 불안정하며 소규모이다. 대사원 경내의 탑두나 지방토호의 지암(持庵)도 암자의 일종. 문인, 다인의 암호가거도이다.

암자 소개[편집]

불일암
일지암의 초당
차를 마시는 자우산방
영축산 자장암 전경
백운산 상연대
백련암 전경
수도암에서 본 가야산 자락
남대 지장암

조계산 불일암[편집]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43번지에 있는 조계산 송광사의 산내암자이다. 송광사의 제7세 국사인 고려시대 승려 자정국사(慈靜國師, 법명 일인)가 창건하였다. 본래 이름은 자정암(慈靜庵)이었으나 1975년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법정(法頂) 스님이 중건하면서 불일암(佛日庵)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1708년(숙종 34) 시습·이징 스님이 중수하였고, 1765년 탁명 스님이 공루를 건립하였으나 공루는 1929년 해체되었다. 1866년(고종 3) 승허 스님이 칠성각을 건립하고, 1891년 월화·계암·용선 스님이 정문을 중수하였다.

그 후에도 몇 차례 중수를 거듭하다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퇴락하였고, 1975년 법정 스님이 중건하였다. 경내에는 법정 스님이 기거한 요사 2동과 찾아오는 이들에게 대접한 감로수의 수각이 있으며, 경내 북동쪽에 자정국사 부도가 있다.

19세기에 불일암에 주석했던 스님들은 기봉(奇峰 1776~1853)·연봉(蓮峰 1833~1912)·경해(鏡海 1843~1928)·통허(洞虛 1844~1901)·원해(圖海 1850~1888)·경명(景溟 1858 ~) 스님 등이다.

두륜산 일지암[편집]

해남 두륜산 자락에 위치한 단촐한 암자 일지암은 초의 선사가 39세였던 1824년에 지어 40여 년간 기거한 한국 차 문화 중흥의 상징인 곳이다. 초의 선사는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 당대의 명사, 시인, 예인들과 폭넓게 교류하면서 이곳에서 다서(茶書)의 고전인 『동다송』을 저술하고 『다신전』을 정리했다. 하지만 초의 선사 입적 후 일지암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일지암은 1970년대에 복원된 것이다. 차를 마시는 다실과 물맛 좋기로 소문난 유천(乳泉)이 있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가야산 백련암[편집]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산내암자이다. 해인사 일주문에서 걸어서 약 30분 거리에 있다. 예부터 가야산의 으뜸가는 절승지라 일컫던 백련암은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선조 38년인 1605년에 서산대사의 문하였던 소암스님이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오래전부터 소암대사를 비롯하여 환적, 풍계, 성봉, 인파대사와 같은 고승들이 수도를 해왔던 곳이다. 성철스님이 입적하기 전까지 주석한 곳으로 더 알려진 백련암은 암자 주변에 우거진 노송과 환적대, 절상대, 용각대, 신선대 같은 기암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수행처로 깊은 곳임을 알겠다.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아비라 기도회’가 1년에 네 차례 백련암에서 열린다. 이 기도회는 성불을 위한 모임으로서 범어로 된 기도문을 외운다.

영축산 자장암[편집]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부속 암자이다. 자장율사(慈藏律師)가 통도사를 짓기 이전에 이곳의 석벽 아래에서 수도하며 창건하였다. 그 뒤 연대는 미상이나 회봉(檜峰)이 중건하였고, 1870년(고종 7)에 한 차례의 중수를 거쳐 1963년에 용복(龍福)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체 건물은 5동 23칸이다. 법당은 4칸의 조그마한 인법당(因法堂)이며, 법당 왼쪽에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자장전(慈藏殿)과 독성각(獨聖閣)이 있고, 법당 오른쪽에는 요사채가 있으며, 암자 입구 쪽에는 최근에 지은 선실(禪室)이 있다. 법당과 자장전 사이에는 높이 약 4m의 거대한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데, 통도사 산내에서는 유일한 마애불이며, 1896년에 조성했다는 기록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

이 암자에 대하여 불교도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금개구리이다. 법당 뒤쪽에는 암벽에서 맑은 석간수(石間水)가 흘러나오고, 그 위의 석벽에는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있다. 자장율사가 수도하고 있을 때 두 마리의 개구리가 물을 혼탁하게 하므로 신통력으로 석벽에 구멍을 뚫고 개구리를 들어가게 하였다고 전한다. 현재에도 있는 한 쌍의 개구리는 몸이 청색이고 입이 금색인데, 벌과 나비로도 변신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개구리는 절대로 산문(山門) 밖을 나가지 않는다고 하므로, 한때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않고 개구리를 잡아 함 속에 넣고 봉한 다음 손에 쥐고 돌아가다가 도중에 열어 보니 없어졌다고 한다. 이 금개구리는 많은 설화를 남기고 있으며, 많은 참배객들이 보살이라고 부르면서 친견(親見)하고자 한다. 그러나 암혈 속의 개구리를 보는 사람도 있고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서 이로써 불심(佛心)을 측량하기도 한다.

삼정산(지리산) 상무주암[편집]

"그 경치가 그윽하고 조용하기가 천하에 제일이라 참으로 참선하기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대오한 보조국사 지눌이 상무주를 일러 '천하제일갑지'라고 하였다. 상무주는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198년 봄부터 1200년까지 머물렀다고 한다. 지눌은 상무주암에서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오로지 선에만 몰입하였다. 해발 1,100미터에 자리한 상무주암에는 선승으로 유명한 현기 스님이 계신다.

백운산 상연대[편집]

상연대는 지리산의 동북쪽에 있는 백운산의 800미터가 넘는 고지에 자리하고 있다. 상연대는 해인사의 말사로 신라 말 경애왕 1년인 924년에 고운 최치원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건립하여 관음기도를 하던 중에 관세음보살이 연꽃을 타고 나타나 상연(上蓮)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암자 앞마당에 서면 천왕봉과 장엄한 지리능선이 보인다. 상연대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선문이 쇠퇴하자 이곳에 옮겨와 선문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수도산 수도암[편집]

수도암은 신라 헌안왕 3년인 859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풍수와 선을 한 맥락으로 보았던 도선은 이 암자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칠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한다. 수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터가 없다 하여 산 이름을 수도산이라 하고 암자를 수도암으로 이름 지었다. 앞으로는 가야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봉우리마다 흰 구름이 뭉실뭉실 피어오르니 도가 아니더라도 절로 흥이 난다. 암자의 전각과 그 배치는 다소 휑한 느낌이지만 그 터는 가히 명당임에 틀림없다.

능가산 월명암[편집]

천삼백여 년의 역사를 가진 월명암은 변산반도 능가산 법왕봉에 자리 잡고 있다. 부설거사가 오대산으로 가던 중 만경현 백연지에서 날이 저물어 하룻밤 묵게 되었다. 이곳에서 구仇씨의 딸인 묘화라는 여인과 인연을 맺어 등운과 월명 두 남매를 낳게 되었다. 딸인 월명을 위해 이곳 변산에 토막을 짓고 도를 닦아 월명은 이 자리에서 득도하였다.

남대 지장암[편집]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들에는 중대 사자암(적멸보궁),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의 다섯 암자가 있다. 원래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중국의 오대산(청량산) 신앙을 자장율사가 한국에 소개하여 강원도 오대산이 성지로 추앙을 받게 되었다. 이후 신라의 보천태자에 이르러 오대의 각 대마다 다섯 진성(眞聖)이 거주하고 있다는 신앙으로 신비화되었다. 남대 지장암은 오대산에서 유일한 비구니 암자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비구니 선방을 연 곳이라고 한다.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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