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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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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선(連絡船, ferry boat)

연락선(連絡船, ferry boat)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수로(水路)를 횡단 왕복하는 상설 해상 운수 기관으로서 주로 여객을 운송하는 여객 연락선과 철도 차량을 싣고 운반하는 열차 도선(渡船)이 있으며, 어느 것이나 정해진 시각에 따라서 운항하고, 단시간에 열차와 접속이 되며, 고속이고 운항 시간이 짧은 등의 특색을 갖고 있다.

개요[편집]

연락선이라는 문자 그대로 승객이나 화물을 적재하고 두 항구 사이를 오가며 운송을 하는 선박으로, 일정한 타임 테이블이 짜여져 있고 그것에 따라 주기적으로 운항한다면 정기 연락선, 타임 테이블 없이 내키는 대로 운항한다면 비정기 연락선으로 분류된다. 그 외에도 적재하는 물품에 따라 카페리, 레일웨이 페리(철도 연락선)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일단 두 지점 사이를 오가며 승객이나 화물을 운반하는 선박이라면 모두 연락선으로 분류가 가능하며 그 포괄적인 의미 덕에 각각의 선박 크기나 모양은 천차만별이다. 대양간 노선을 다니는 정기 여객선은 크고 아름다운 덩치를 자랑하지만 강을 건너는 노선의 나룻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참고로 한강에 떠다니는 유람선들도 나루를 오가는 형식이니 연락선으로 분류할 수 있다. 대신 '해운법'이 아닌 '유선 및 도선사업법'의 적용을 받는다.

부관연락선[편집]

부관연락선

1905년 9월부터 1945년 6월까지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 사이를 정기적으로 운항했던 여객선과 화객선이다.

부관연락선은 40년 동안에 걸쳐 총 3천 만 명 이상의 승객을 수송하였다. 러일 전쟁의 승리를 상징하는 포츠머스 조약 체결 시점에 일본 제국은 대륙 진출 확대를 위하여 경부선을 부산과 서울 사이에 연장 개통하고 다른 한편으로 일본 열도와 한반도를 연결하는 연락선 정기 항로를 구축하였다.

애초 1905년 9월에는 나가사키[長崎]에서 건조된 1,680톤 급 선박 이키마루([壹岐丸] 한 척이 정기 운행을 시작했으나, 1905년 11월 쓰시마마루([對馬丸]가 함께 운행되었고 1913년 1월과 4월에는 고마마루[高麗丸]와 시라기마루[新羅丸]가 추가로 투입되었다. 이어 1922년 5월과 11월에 게이후쿠마루[景福丸], 도쿠쥬마루[德壽丸], 1923년 3월에 쇼케이마루[昌慶丸], 1931년 11월에 곤고마루[金剛丸], 1937년 1월에 고안마루[興安丸], 1940년 11월과 1941년 4월에 다시 이키마루와 쓰시마마루, 1942년 9월에 텐잔마루[天山丸], 1943년 4월에 곤론마루[崑崙丸]가 투입되었다. 운행 기간은 선박에 따라 다르지만 고안마루 이전에는 보통 15년 이상을 운행하였다. 1943년 4월부터 10월까지 연락선 10대가 동시에 운행하였으며, 이 시기에 가장 많은 여객을 수송하였다.

1965년 한국과 일본 사이에 국교가 수립된 이후 부관 항로를 재개하는 움직임이 추진되어 1970년 6월에 간푸[關釜] 페리, 1983년 5월에 부관 페리가 각각 운항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항로였으며, 일본 제국의 대륙 침략과 조선인 강제 동원을 상징하고 있다.

동영상[편집]

영종도 연락선(카페리)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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