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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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부르고뉴, 저지대 국가는 곧 오스트리아와는 무관한 영토가 되었는데, 부르고뉴 공국의 본토는 카를 5세가 프랑스에게 넘겨 주었고, 스페인, 네덜란드는 카를 5세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상속시켜 스페인 합스부르크로 분가했다. | 스페인, 부르고뉴, 저지대 국가는 곧 오스트리아와는 무관한 영토가 되었는데, 부르고뉴 공국의 본토는 카를 5세가 프랑스에게 넘겨 주었고, 스페인, 네덜란드는 카를 5세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상속시켜 스페인 합스부르크로 분가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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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후 16세기와 17세기의 종교 개혁, 30년 전쟁, 제2차 빈 공방전과 대 튀르크 전쟁,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거친 오스트리아는 4국 동맹 전쟁(1718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1735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1737년) 등을 수행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특히 대 튀르크 전쟁에서 맹활약한 사부아 공자 외젠의 활약에 힘입어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16세기에 쉴레이만 1세에게 빼앗긴 오스만 헝가리와 에르데이 공국을 수복하여 헝가리 왕국의 영토를 회복하였고 인구 수천만명을 보유한 국가로 성장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였던 빈도 이 시기부터 인구가 엄청나게 증가해서 1683년에는 110,000명, 1804년에는 230,000명이 될 정도였다. | ||
[[파일:마리아 테레지아 여제.jpg|썸네일|300픽셀|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 [[파일:마리아 테레지아 여제.jpg|썸네일|300픽셀|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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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카를 6세가 1740년 딸 [[마리아 테레지아]]를 계승자로 선언하고 사망하자 가문의 여러 인물들이 서로 계승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기회를 노린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가 슐레지엔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침공을 개시하여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시작되었고 슐레지엔을 상실했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복수를 위한 준비에 들어가자 프리드리히 2세는 선제 공격을 감행하여 1756년에 7년 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마리아 테레지아는 수백년간의 적대 감정을 버리고 루이 15세의 프랑스, 러시아 제국을 끌어들여서 포위 전선을 구축했다. | 그러던 중 카를 6세가 1740년 딸 [[마리아 테레지아]]를 계승자로 선언하고 사망하자 가문의 여러 인물들이 서로 계승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기회를 노린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가 슐레지엔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침공을 개시하여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시작되었고 슐레지엔을 상실했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복수를 위한 준비에 들어가자 프리드리히 2세는 선제 공격을 감행하여 1756년에 7년 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마리아 테레지아는 수백년간의 적대 감정을 버리고 루이 15세의 프랑스, 러시아 제국을 끌어들여서 포위 전선을 구축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