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노 아키라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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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리튬이온전지의 구조.jpg|썸네일|300픽셀|'''리튬이온전지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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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노 아키라는 교토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아사히카세이에 입사한 그는 전지 연구개발 부문 책임자를 맡으며 충전할 수 있는 전지 개발에 천착해왔다. 요시노는 충전지의 소형화와 경량화를 위해 노력했다. 1981년 2000년 노벨 화학상 수상인 시라카와 히데키(白川英樹) 박사가 발견한 도전성고분자(전기가 통하면서도 금속에 비하여 가볍고 가공성이 우수한 플라스틱)를 응용할 신사업을 찾던 중 시라카와 박사의 연구 결과에서 힌트를 얻어 리튬이온전지 개발을 시작했다. 리튬이온 전지 개발의 또 다른 계기가 된 것은 사무실 대청소 중 찾아낸 논문 한 편이었다. 이번에 노벨 화학상을 함께 타게 된 존 구디너프 박사의 논문으로 코발트산 리튬은 전지의 정극에 사용할 수 있지만 반대의 부극에 쓸 재료가 없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이 논문을 토대로 정극에 코발트산 리튬을 부극에 시라카와 씨의 연구에서 힌트를 얻은 폴리아세틸렌을 사용했더니 전지의 성능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이는 1985년 리튬이온전지의 원형 완성으로 이어졌다. 요시노 박사는 반응성이 높은 리튬 금속 대신에 리튬 이온을 삽입할 수 있는 탄소 재료인 석유 코크스(petroleum cokes)로 대체하였다. 석유 코크스를 음극 테스트한 후, 리튬이온을 함침 할 수 있는 다양한 탄소계 음극물질들이 개발되었다. 이런 탄소계 물질은 (ex. 흑연(C6)) 초기상태에 리튬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리튬을 함침하고 있는 양극물질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C6 + LiCoO2 ↔ LixC6 + Li1-xCoO2와 같은 화학반응을 이용해 리튬을 함침하고 있는 고체 산화 전이금속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상용화가 가능해졌다. 리튬을 음극으로 사용하는 대신, 리튬이온을 함침할 수 있는 음극물질을 사용하면서, 리튬이온이 음극물질과 양극물질을 오가는 형태로 구성된 전지가 구현되었고, 이를 리튬전지와 구분하여 리튬이온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전지의 기본구조를 확립한 85년엔 특허 출원을 했고 이를 활용해 1991년 [[소니]]가 세계 최초로 노트북과 휴대전화 등에 리튬이온 전지를 채택했다. 그후 [[파나소닉]], [[산요전지]] 등이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리튬이온전지는 기존에 존재하던 이차전지(납축전지, 니켈수소)와 비교했을 때 에너지 저장 용량과 수명이 훨씬 뛰어나다. 물론 처음 리튬이온전지가 개발되었을 때는 가격이 비싸고 수요처가 없어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휴대용 전자기기의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리튬이온전지의 장점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휴대용 기기를 작동시키는데 니켈-메탈수소 전지가 약 3개 필요했다면, 리튬이온전지는 1개만 있어도 충분했다. 부피를 줄여 휴대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쟁에서 리튬이온전지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ref>김병규, 〈[https://www.yna.co.kr/view/AKR20191010089000073 고고학이 리튬전지 개발로 이어졌다…日노벨상 수상자 이색이력]〉, 《연합뉴스》, 2019-10-10</ref><ref>김상진, 〈[https://news.joins.com/article/23599480 '리튬전지' 상업화한 요시노…노벨상 받은 27번째 일본인]〉, 《중앙일보》, 2019-10-09</ref><ref>김영식, 〈[https://horizon.kias.re.kr/13542/ 리튬이온전지의 원리와 탄생, 그리고 노벨상]〉, 《과학의 지평》, 2020-03-25</ref>
요시노 아키라는 [[교토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아사히카세이]]에 입사한 그는 전지 연구개발 부문 책임자를 맡으며 충전할 수 있는 전지 개발에 천착해왔다. 요시노는 충전지의 소형화와 경량화를 위해 노력했다. 1981년 2000년 노벨 화학상 수상인 시라카와 히데키(白川英樹) 박사가 발견한 도전성고분자(전기가 통하면서도 금속에 비하여 가볍고 가공성이 우수한 플라스틱)를 응용할 신사업을 찾던 중 시라카와 박사의 연구 결과에서 힌트를 얻어 리튬이온전지 개발을 시작했다. 리튬이온 전지 개발의 또 다른 계기가 된 것은 사무실 대청소 중 찾아낸 논문 한 편이었다. 2019년 요시노 아키라와 노벨 화학상을 함께 타게 된 [[존 구디너프]] 박사의 논문으로 코발트산 리튬은 전지의 정극에 사용할 수 있지만 반대의 부극에 쓸 재료가 없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이 논문을 토대로 정극에 코발트산 리튬을 부극에 시라카와 씨의 연구에서 힌트를 얻은 폴리아세틸렌을 사용했더니 전지의 성능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이는 1985년 리튬이온전지의 원형 완성으로 이어졌다. 요시노 박사는 반응성이 높은 리튬 금속 대신에 리튬 이온을 삽입할 수 있는 탄소 재료인 석유 코크스(petroleum cokes)로 대체하였다. 석유 코크스를 음극 테스트한 후, 리튬이온을 함침할 수 있는 다양한 탄소계 음극물질들이 개발되었다. 이런 탄소계 물질은 흑연(C6) 초기 상태에 리튬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리튬을 함침하고 있는 양극물질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C6 + LiCoO2 ↔ LixC6 + Li1-xCoO2와 같은 화학반응을 이용해 리튬을 함침하고 있는 고체 산화 전이금속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상용화가 가능해졌다. 리튬을 음극으로 사용하는 대신, 리튬이온을 함침할 수 있는 음극 물질을 사용하면서, 리튬이온이 음극 물질과 양극 물질을 오가는 형태로 구성된 전지가 구현되었고, 이를 리튬전지와 구분하여 [[리튬이온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전지의 기본 구조를 확립한 85년엔 특허 출원을 했고 이를 활용해 1991년 [[소니]]가 세계 최초로 노트북과 휴대전화 등에 리튬이온 전지를 채택했다. 그후 [[파나소닉]], 산요전지 등이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리튬이온전지는 기존에 존재하던 이차전지(납축전지, 니켈수소)와 비교했을 때 에너지 저장 용량과 수명이 훨씬 뛰어나다. 물론 처음 리튬이온전지가 개발되었을 때는 가격이 비싸고 수요처가 없어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휴대용 전자기기의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리튬이온전지의 장점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휴대용 기기를 작동시키는데 니켈-메탈 수소 전지가 약 3개 필요했다면, 리튬이온전지는 1개만 있어도 충분했다. 부피를 줄여 휴대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쟁에서 리튬이온전지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ref>김병규, 〈[https://www.yna.co.kr/view/AKR20191010089000073 고고학이 리튬전지 개발로 이어졌다…日노벨상 수상자 이색이력]〉, 《연합뉴스》, 2019-10-10</ref><ref>김상진, 〈[https://news.joins.com/article/23599480 '리튬전지' 상업화한 요시노…노벨상 받은 27번째 일본인]〉, 《중앙일보》, 2019-10-09</ref><ref>김영식, 〈[https://horizon.kias.re.kr/13542/ 리튬이온전지의 원리와 탄생, 그리고 노벨상]〉, 《과학의 지평》, 2020-03-25</ref>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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