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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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장바구니 물가는 대한민국의 1/4 ~ 1/3 수준이다. 다만 이는 우크라이나산 식료품에 한정된 이야기이며, 공산품의 경우 수입품이 대부분이라 대체로 가격이 높은 편이다. 특히 서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입한 공산품들은 환율에 따라 변동이 심하며 대한민국보다 비싼 경우도 있다. 또한 유럽이 대체로 다 그렇듯 마트의 식재료는 매우 싸지만 식당에서 하는 외식은 상대적으로 비싸다. 이렇게 물가가 싼 우크라이나에서도 전통 요리 같은 걸 먹으려면 한끼에 최소 한화로 5천원 정도는 써야 한다. 푸드트럭이나 키오스크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은 한화로 2천원 정도.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장바구니 물가는 대한민국의 1/4 ~ 1/3 수준이다. 다만 이는 우크라이나산 식료품에 한정된 이야기이며, 공산품의 경우 수입품이 대부분이라 대체로 가격이 높은 편이다. 특히 서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입한 공산품들은 환율에 따라 변동이 심하며 대한민국보다 비싼 경우도 있다. 또한 유럽이 대체로 다 그렇듯 마트의 식재료는 매우 싸지만 식당에서 하는 외식은 상대적으로 비싸다. 이렇게 물가가 싼 우크라이나에서도 전통 요리 같은 걸 먹으려면 한끼에 최소 한화로 5천원 정도는 써야 한다. 푸드트럭이나 키오스크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은 한화로 2천원 정도.
  
우크라이나는 경제적으로 비옥한 토지를 가진 농업과 소련 시절 지어진 대규모 중공업단지나 제철소, 탄광을 가지고 있어 경제가 발전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출처 하지만 이웃 슬라브 3국 중에서도 경제발전이 많이 뒤처지는 편이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전후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대표적인 수출품인 소련제 무기와 군수물자를 구입하던 이란과 이라크가 전쟁을 그만두었고, 세계적인 군축 분위기에 힘입어 각국이 군축에 전념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주력산업인 방위산업의 판로가 죄다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발트 3국을 위시한 중유럽, 북유럽 국가들은 원래 산업 기반이 잡혀있던 지역이었고 체제 전환에 따른 충격을 1990년대 초에 이미 극복하지만, 우크라이나는 1993년까지 수천~1만%에 달하는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1996년에야 비로소 두자리수 인플레이션을 기록하는 등 혼란을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심각하게, 그것도 오랫동안 겪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부터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했지만 이 전환도 2000년에 가서야 완료되는 등 자본주의 체제의 도입과 전환이 너무 오래 걸렸고, 그 결과 1999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마이너스 성장률을 달성하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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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경제적으로 비옥한 토지를 가진 농업과 소련 시절 지어진 대규모 중공업단지나 제철소, 탄광을 가지고 있어 경제가 발전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출처 하지만 이웃 슬라브 3국 중에서도 경제발전이 많이 뒤처지는 편이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전후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대표적인 수출품인 소련제 무기와 군수물자를 구입하던 이란과 이라크가 전쟁을 그만두었고, 세계적인 군축 분위기에 힘입어 각국이 군축에 전념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주력산업인 방위산업의 판로가 죄다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발트 3국을 위시한 중유럽, 북유럽 국가들은 원래 산업 기반이 잡혀있던 지역이었고 체제 전환에 따른 충격을 1990년대 초에 이미 극복하지만, 우크라이나는 1993년까지 수천~1만%에 달하는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1996년에야 비로소 두자리수 인플레이션을 기록하는 등 혼란을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심각하게, 그것도 오랫동안 겪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부터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했지만 이 전환도 2000년에 가서야 완료되는 등 자본주의 체제의 도입과 전환이 너무 오래 걸렸고[28], 그 결과 1999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마이너스 성장률을 달성하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여기에는 정치적 문제도 있겠지만, 하술할 지역간 산업 차이 문제, 그리고 너무나도 뒤늦은 경제개혁을 이유로 들 수 있다. 1994년까지 우크라이나는 이미 붕괴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그대로 유지하였고, 때문에 소련 붕괴에 따른 국내외적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29] 이 시기 우크라이나는 -10~-20%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1994년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당선 후 IMF와 세계은행의 조언에 따라 기초적인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1999년 쿠치마 대통령 재선 후 총리로 전격 발탁된 빅토르 유셴코가 재정과 에너지 제도를 개혁하고 대기업 및 토지사유화를 단행하여 시장경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경제성장률이 올라갔다. 물론 경제성장의 스타트라인 자체를 다른 동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늦게 끊었으므로 이미 벌어진 격차는 어쩔 수 없었고.
 
여기에는 정치적 문제도 있겠지만, 하술할 지역간 산업 차이 문제, 그리고 너무나도 뒤늦은 경제개혁을 이유로 들 수 있다. 1994년까지 우크라이나는 이미 붕괴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그대로 유지하였고, 때문에 소련 붕괴에 따른 국내외적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29] 이 시기 우크라이나는 -10~-20%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1994년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당선 후 IMF와 세계은행의 조언에 따라 기초적인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1999년 쿠치마 대통령 재선 후 총리로 전격 발탁된 빅토르 유셴코가 재정과 에너지 제도를 개혁하고 대기업 및 토지사유화를 단행하여 시장경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경제성장률이 올라갔다. 물론 경제성장의 스타트라인 자체를 다른 동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늦게 끊었으므로 이미 벌어진 격차는 어쩔 수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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