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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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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어선 선원들의 연승어업. /사진=동원산업
원양출어하는 지남호

원양어업(遠洋漁業, deep sea fishery)은 먼 바다에서 하는 어업을 일컫는 말로, 연안이나 근해에서는 잘 잡히지 않으며 수요가 많은 어종을 먼 버다에서 잡아오는 것을 칭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참치잡이 배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새우오징어, 명태 등을 잡기도 한다. 대한민국 기업 중에서는 동원산업과 사조산업의 참치잡이 배를 그 업계의 대기업으로 쳐주고 있다.

과거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한 화려한 산업이며, 수출역군이라는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최근까지도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이미지는 육상 사회생활에서 적응 못 해 가는 도피처로 여겨지고, 고생스럽지만 단시간에 돈을 많이 버는 업종으로만 그려지고 있다.

개요[편집]

원양어업은 대한민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이원의 공해 및 연안국의 EEZ에서 행해지는 어업. 해외어업을 말한다.

또한 어장에 따라 분류한 해양어업의 하나이다.

해양어업은 보통 연안어업·근해어업·원양어업으로 나누는데, 그 중 원양어업은 근거지로부터 며칠 또는 수십일 걸리는 먼 바다에서 하는 어업을 가리킨다. 한국의 원양어업은 어획하는 어종에 따라 참치류어업과 트롤류어업으로 나누고, 어법에 따라 참치주낙[延繩]어업·두릿그물어업[旋網漁業]·트롤어업·오징어채낚기·흘림걸그물어업[流刺網漁業]·새우트롤어업 등으로 나눈다.

참치어업은 1957년 인도양에서 주낙어법에 의한 시험조업이 효시이며, 1962년에 5척의 어선이 남태평양 어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함으로써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후 어장이 대서양과 인도양으로 확대되면서 급성장하여, 어선의 척수로는 1975년에 최고기록인 589척을 기록했으나, 1977년부터 점점 줄어들어 1989년에는 306척을 보유하고 있다. 어획량은 1989년 41만 t으로 최고 어획량을 기록했다.

원양트롤어업은 1966년 부산수산대학교(지금의 부경대학교) 실습선인 백경호가 베링해에서 트롤 시험조업을 하고, 한국수산개발공사 소속 제601·602 강화호가 대서양에 진출한 것이 시발이다. 북태평양이 주요어장인 이 어업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1976년에는 세계의 여러 해역에 319척의 어선이 진출, 57만 t의 어획량을 올렸다. 그러나 1977년에 미·소가 200해리 경제수역을 선포한 이후, 각 연안국에서도 따라 이를 선포해 결국 상당한 어장을 상실하였다.

연원 및 변천[편집]

원양어업은 어업의 종류에 따라 시작한 연도가 다르다. 1957년 6월에 인도양 참치연승 시험 조업(지남호, 원양 어선 제1호) 이후부터 참치연승어업이 시작되었고, 1966년 5월 한국수산개발공사가 이태리·프랑스 어업차관으로 도입한 제601 강화호를 이용하여 라스팔마스 근해에서의 시험 조업 이후, 트롤 어선 7척을 동 어장에 출어함으로써 대서양 트롤어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북태평양 명태트롤어업은 1966년 7월 부산수산대학 실습선 백경호와 삼양수산의 저인망 어선 10척이 베링해와 북해도 근해에서 시험 조사와 시험 조업을 성공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북태평양 빨강오징어유자망어업은 1979년 7월 우성수산의 제3 오룡호가 동북태평양 어장에서 북태평양 빨강오징어를 대상으로 유자망 시험 조업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출어하였다.

원양어업은 시험 조업을 거쳐 1970년대 초부터 어선을 대형화하고 생산을 증대함으로써 급신장되었다. 원양어업의 종류는 1971년에 처음으로 16종으로 분류하였으며, 1981년 수산업법 개정 시에 10종으로 통합하였다. 그리고 1991년 수산업법 개정 시에는 원양포경어업을 삭제하는 대신 원양안강망어업을 신설하였으며, 1996년 수산업법 개정 시에는 원양유자망어업을 원양자망어업으로 그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7년에 제정된 「원양산업발전법」에서는 「수산업법」의 원양어업 관련 내용을 그대로 승계하였다.

원양어업의 어선의 수는 1962년 5척, 1972년 455척, 1977년 850척으로 계속 증가하였으나, 1982년에는 683척으로 감소하였으며, 1987년에는 712척으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2000년에는 597척, 2005년에는 493척, 2009년에는 370척 등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어선의 규모는 척당 평균톤수가 1962년 111톤, 1970년 273톤, 1980년 398톤, 1990년 521톤, 2000년 615톤, 그리고 2005년 498톤으로 점차 대형화되었다.

원양어업의 주요 어업은 참치어업·오징어어업·트롤어업 등이다. 2007년 현재 어업별 해외어장 진출 현황을 보면, 총 387척 중 참치어선은 193척으로서 남태평양·대서양·인도양, 중서부 태평양 해역에서 조업하고 있고, 오징어 선단은 49척으로서 남대서양(포클랜드 어장), 페루 해역 등에서 조업하고 있으며, 명태트롤은 6척으로서 러시아(북서 베링해 등)에서 조업하고 있다. 그리고 해외기지를 두고 있는 트롤어업을 포함한 기타 어업은 총 130척으로서 인도네시아·뉴질랜드·서부아프리카·인도양·남빙양 등에 출어하여 조업하고 있다.

1995년부터 2004년까지 과거 10년간 우리나라의 원양어업 생산액은 전체 어업생산 금액에 대비하여 평균 약 24%를 차지하였으며, 1995년부터 그 비율이 점차 증가하다가 2000년도에 생산 금액이 1조 3,217억원으로써 어업총생산 금액 4조 4,664억원의 약 32.5%를 차지한 이후부터 감소 추세이다. 원양어업 생산량은 2000년 65만 1,300톤, 2005년 55만 2,100톤, 2009년에는 60만 4,900톤이었다.

2008년에는 원양산업이 국제해양질서에 부응하여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원양산업발전법」이 제정되었다. 「원양산업발전법」 제4조에 따라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제3차 원양산업발전종합계획'이 마련되었다.

현황[편집]

해양수산부(장관 조승환)는 2022년 원양어업에 종사한 업체의 생산 및 수출현황, 경영실태 등을 조사하여 '2023년 원양어업 통계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 34개사(허가업체 39개사) 189척(허가어선 204척)

2022년 기준 원양업체 종사자 수는 총 10,791명으로, 전년보다 16.2% 감소하였으나, 원양어선원은 5,749명으로 전년보다 2.8% 증가하였다.

2022년 원양어업 생산량(40만 톤), 생산액(1조 1,260억 원), 수출량(15만 톤) 모두 전년 대비 각각 8.9%, 14.1%, 4.8% 감소하였으나, 환율상승 영향으로 인해 수출액(5,122억 원)은 전년(3,979억 원) 대비 28.7% 증가하였다.

원양생산 어종 중 전년보다 생산량과 생산액이 유일하게 증가한 어종은 '가다랑어'이며, 수출량은 이빨고기, 오징어를 제외한 대부분 어종에서 감소하였다. 반면, 수출액은 품종별로는 가다랑어, 황다랑어, 이빨고기 등이, 수출국별로는 미국, 필리핀, 태국으로의 총수출액이 전년보다 증가하였다.

2022년 국내 원양업계 총 영업이익은 3,497억 원으로 전년 대비 35.2% 증가하였으나, 당기순이익은 전년수준(0.5% 감소)으로 유지되어 국내 원양업계의 수익성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인 반면, 부채비율, 차입금 의존도는 전년에 비해 감소한 것으로 조사되었다.[1]

위험도[편집]

업무의 위험도가 비교적 높은 편. 당연한 말이지만 망망대해 위에 배 한 척에 의지해서 물고기를 잡는 것이기도 하고 배 안이 아무라 넓다 한들 항공모함처럼 안에서 길 잃고 헤매는 정도도 아니기 때문에 안에서 보기 싫은 사람이라도 생기면 골치 아파진다. 일단 승선하면 길게는 몇 개월까지도 같이 생활해야 하고 어업을 할 때는 며칠 동안 잠 안 자고 쉴새없이 일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군대 이상으로 엄격하고 욕설이 난무한다고 한다. 안에서 싸움이나 냉동창고에 감금되어 정신이상자가 된 사례도 있다. 특히 참치 선망선이 심하다고 하며 기타 다른 어선에서도 한국인 선원이 외국인 선원에게 욕설을 하거나 폭행 등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외국인 선원끼리도 중국, 베트남 선원간 집단 패싸움이나 폭행, 살인 사건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거기다 물고기 잡다가 물고기나 그물에 다치는 경우도 부지기수. 부상을 입는 경우 항해사가 응급조치나 의약품 투여를 하고 한국과 위성전화를 통한 의료 서비스가 있긴하나 정말 심각하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보통 육지에서 km로 따진다면 배마다 다르지만 멀리 조업하는 선박은 200~800km 이렇게 망망대해에서 조업을 하므로 헬기가 오기도 힘들다. 최대한 자기몸은 자기가 지키겠다란 생각으로 조심해서 근무하는 수 밖에 없다. 혹여 밤바다에 빠지면? 그날로 실종 처리된다.

게다가 외국인 선원과 마찰도 문제. 2016년에 벌어진 광현호 사건도 베트남인 선원들이 회식하며 요~요~~(베트남어로 건배)라고 한 걸 욕이라고 잘못 듣은 한국인 선장이 멱살잡고 욕하며 싸우다가 배에서 내리게 하겠다고 하여 이 일로 앙심을 품고 칼로 선장을 죽인 사건이었다.

업무강도[편집]

또한 배에 따라 다르지만 잠자는 시간이 일정한 것도 아니고 그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라 이래저래 업무강도가 굉장히 높고 그에 비해 보수는 턱없이 낮은 편. 더군다나 갇힌 환경이기 때문에 군대 이상으로 온갖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군대는 휴무라도 있지 선박은 계약기간동안 연중무휴다. 거기다 한국인 선원이 부족하므로 당연히 당직시간도 늘어나고 어선의 특성상 당직이 끝났다고 쉴 수 있는 분위기는 절대 아니다. 바쁠땐 정말 24시간 풀타임근무를 할때도 있다. 게다가 쓸데없이 인원이 많다해도 보합제의 특성상 한국인이 많으면 그만큼 본인에게 돌아오는 몫이 적은 단점이 있다.

일단 배에 관련된 직종이 그렇지만 배에서 돈 쓸거리가 없다보니 목돈을 모으기는 좋다. 배에 장시간 머물러서 한몫잡았다거나 집을 사는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뭍에 올랐을 때 돈을 노린 여자에게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 외에도 오랜 시간 배를 탄 사람의 대부분은 민통선 안에서 30년 근무한 원사 정도의 현실 감각을 가지고 있기도 해서 내린 다음에 이래저래 세파에 치이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또 기타 도박이나 유흥업소 등으로 소비하는 돈도 많기도 하기 때문에 기껏 돈을 모은다해도 돈을 탕진해서 다시 원양어선에 오르는 사람도 종종 있다. 결론은 돈을 모아도 욕망을 어느정도 절제해야된다는것이기는 하다는거다.

거기다 미혼 남성이라면 결혼 역시 힘들다. 기혼이라도 결혼생활을 제대로 유지하기 힘들다. 그냥 20세에 배에 올라 32세에 그만두고 결혼하는 게 속편하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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