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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해시넷
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6월 2일 (금) 00:18 판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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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국기

웨일스(영어: Wales, 웨일스어: Cymru)는 영국의 구성국 중 하나이며, 그레이트브리튼섬 서부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잉글랜드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아일랜드해에 접하며, 남쪽으로는 브리스톨 채널과 접한다. 웨일스는 2,700 km(1,680 마일)의 해안선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부분 산악 지형이다. 북부 및 중부 지역의 높은 봉우리는 스노든산(Snowdon, Yr Wyddfa)이 최고봉이다. 웨일스는 북쪽 온대 지역에 속해 있으며 변화하는 해양 환경을 가지고 있다.

웨일스의 수도는 카디프이다. 한국의 현대자동차는 제네시스 GV70제네시스 GV80 차량에 카디프 그린 색상을 적용하였는데, 영국 웨일스의 수도인 카디프 이름을 사용하여 색상 이름을 정했다.

개요

  • 수도: 카디프
  • 면적: 20,779km²
  • 인구: 3,267,501명(2022)
  • 공용어: 영어(사실상), 웨일스어
  • 정치체제: 영국 연방의 구성국
  • 행정수반: 마크 드레이크포드 (웨일스 노동당)
  • 국가원수: 찰스 3세

역사

로만 브리튼의 로마화된 브리튼인들이 브리튼 섬 남부에 살다가 새로 침략해온 앵글로색슨족에게 쫓겨나서 서쪽에 여러 국가들을 형성한 것이 웨일스의 시작이다. 그래서 웨일스 지역의 귀네드 왕국(Kingdom of Gwynedd, Teyrnas Gwynedd)은 로마 제국의 후계국으로 여겨진다.

초기 웨일스는 지역 전체를 이끄는 지도자 없이 그냥 여러 토착 귀족들이 각자의 소왕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또한 잉글랜드노르만 왕조가 들어선 이후 남동부 웨일스와 잉글랜드 국경 지대인 웨일스 변경령(Welsh Marches, Y Mers)의 일부 귀족들은 변경백과 비슷한 직위를 가진 변경제후(Marcher Lord, Barwn y Mers)로서 종주권자인 잉글랜드의 왕에게 복속된 위치였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군주들 역시 웨일스가 크게 말썽을 부리지 않는 한 직접 지배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군주였을 뿐 실제 웨일스의 변경제후들은 거의 독립된 통치를 했고 웨일스의 여러 소왕국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웨일스에 제대로 된 통합 국가가 등장한 것은 13세기 웨일스의 위대한 군주로 추앙받는 귀네드 왕국의 왕 흘러웰린 압 요르웨르스(Llywelyn ap Iorwerth, 혹은 흘러웰린 대왕·Llywelyn Fawr)가 다른 웨일스 귀족들을 복속시켜 하나로 통합했고 이후 1216년 스스로를 웨일스 공(프린스 오브 웨일스, Prince of Wales, Tywysog Cymru)이라 칭했다. 그리고 1218년 당시 잉글랜드의 군주였던 헨리 3세는 흘러웰린이 자칭한 웨일스 공을 정식 작위로 인정해 잉글랜드 왕의 봉신이자 웨일스의 군주로 승인했고 이로써 웨일스 지역에 통일된 국가인 웨일스 공국(Principality of Wales, Tywysogaeth Cymru)이 수립되었다.

1272년 잉글랜드의 헨리 3세가 사망하고 그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한 에드워드 1세는 명목상으로 잉글랜드의 영토인 웨일스 지방과 봉신 관계라곤 해도 웨일스에 독립된 정권이 있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브리튼 섬 통일을 원하고 있던 에드워드 1세는 1277년 웨일스를 공격했다. 웨일스 공국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패배해 1282년, 웨일스 공이었던 흘러웰린 압 그리피드(Llywelyn ap Gruffudd)가 전사하였다. 1284년에 그 뒤를 이어 웨일스 공을 자칭한 흘러웰린 압 그리피드의 동생인 다비드 압 그리피드(Dafydd ap Gruffudd)가 잉글랜드군에 사로잡혀 처형당하면서 독립된 웨일스 공국과 그 군주인 웨일스 공의 지위가 소멸되었다. 그리고 1301년 웨일스 지역을 완전히 복속시킨 에드워드 1세는 아들이자 왕세자인 에드워드 2세에게 웨일스 공 작위를 수여해 더이상 독립된 웨일스 공국이 아닌 잉글랜드에 완전히 종속된 웨일스로 편입되었다.

웨일스 지역에는 잉글랜드에 복속된 웨일스 공국 말고도 웨일스-잉글랜드 경계 지역인 웨일스 변경(Welsh Marches) 지역과 웨일스 남부에 웨일스 현지 귀족들이 보유한 소규모 영지들이 대거 존재했는데 이들은 잉글랜드 국왕에게 신종하는 조건으로 아직 독립적인 권한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헨리 8세 시기인 1535년과 1542년 잉글랜드 의회는 두차례의 법안을 통과시켜 이들의 영지를 모조리 회수하고 나아가 명목상 잉글랜드와 별개인 웨일스 공국과 회수한 이들의 영지 전체에 잉글랜드 법체계를 적용시키기로 하면서 웨일스 전체를 잉글랜드의 일부로 완전히 병합하였다. 허나 웨일스 공국은 사라졌지만 잉글랜드의 왕세자는 웨일스 공 호칭을 여전히 물려받고 있다.

이후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통합되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구성할 때도, 1800년 그레이트브리튼과 아일랜드가 통합되어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을 구성할 때도 웨일스는 하나의 구성국이라기보다는 잉글랜드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유니언 잭에 웨일스의 국기는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도 이 때문.

1967년 웨일스어 법안은 근대 이후 최초로 웨일스를 잉글랜드와 분리된 지역으로 간주했다. 1979년에는 웨일스 자치의회를 건립하는 법안이 주민투표에 부쳐졌지만 약 80%의 압도적인 반대표로 부결되었고, 1997년에 다시 열린 주민투표에서 50.3%의 근소한 표차로 찬성표가 우세하며 자치의회 건립이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이듬해인 1998년에 관련 법안이 발의되고 그 이듬해인 1999년에 웨일스 자치의회인 세네드가 건립되었다.

영국의 트레이드 마크격인 병기인 롱보우의 원산지기도 하다. 웨일스를 침공했다가 롱보우의 위력에 큰 피해를 입었던 잉글랜드인들이 롱보우를 도입해 가서 주력 병기로 쓰기 시작해 영국 전체에 롱보우가 퍼지게 되었다. 잉글랜드에서는 웨일스 출신 롱보우 아처를 동원해서 스코틀랜드의 반란을 진압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도 웰시 롱보우라고 많이 부른다.

의회

웨일스는 1999년 이래로 단원제 자치의회(Senedd Cymru - Welsh Parliament)와 그 의회에서 선출된 각료들로 이루어진 자치정부를 가지고 있다. 이는 1998년 영국 의회에서 제정된 웨일스 정부법(Welsh Government Act 1998)에 의한 것이다.

웨일스 자치의회는 1978년에도 이미 설립 제안이 있었다. 이 때의 자치의회는 Welsh Assembly라고 하는데 이 법에 따르면 새로 생길 스코틀랜드 의회는 1978년 웨일스법(Welsh Act 1978)에서 명시된 분야에 대해서만 입법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영국 의회(중앙정부)의 권한이었다. 따라서 당시 자치의회의 권한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이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으나 웨일스 주민투표에서 유권자의 80%가 반대하여 무산되었다.

토니 블레어 내각이 1998년에 다시 웨일스 정부법(Welsh Government Act 1998)을 제정하면서 새로이 만든 것이 현 자치의회로 현재의 자치의회는 웨일스 정부법에서 명시한 분야 이외의 모든 분야에 대해 입법할 수 있게 되어있다. 해당 법에서는 왕실 관련 분야, 주권, 외교, 전쟁, 검역, 항해, 화폐, 통신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서 입법권을 갖는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몇 번의 법 개정을 거치면서 입법 가능한 분야가 점차 확대되어왔다.

1998년에 만들어진 자치의회는 단원제로, 현재 총 의석은 60석이며 웨일스 전역에서 소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된다. 총선으로 자치의회가 구성되면 영국 국왕이 다수당 당수(혹은 연정의 제1당 당수)를 행정수반(총리)로 임명하고 그가 자치의회 의원 중에서 자치정부의 장관들을 임명하여 정부를 구성한다. 자치의회 의원의 임기는 의회해산이 없다는 가정 하에 5년이다.

경제

웨일스는 영국의 구성국 중에서는 경제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편이다. 인구도 적을 뿐만 아니라 바다에 접함에도 해운이 곤란하고 산지가 많은 등 입지조건도 여러모로 열악하기 때문에 과거 번성했던 석탄산업과 철강업이 몰락한 이후에는 다시 산업을 크게 발전시키기도 곤란한 처지이다. 유럽연합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웨일스가 영국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에 그쳤다. 1인당 국민소득도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물가를 고려하면 실질 구매력은 한국보다 더 낮을 것이다.

그래도 서유럽 선진국들에 비교해서 그렇지 결코 못 사는 동네는 아니다. 지방 정부도 경제 활성화를 위해 여러 정책을 시도하고 있으며 코로나 바이러스 판데믹이 터지기 전까지는 나쁘지 않은 성장세를 보였다.

과거에는 탄광과 철강, 양을 키우는 목축업으로 주로 알려져 있었으나 전자는 영국 제조업이 몰락할때 싸그리 망해버렸고 목축업은 목가적인 웨일스의 이미지와 달리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는다. 웨일스 북부 브로턴에 에어버스 공장이 위치해 있으며 전 기종의 날개 생산을 담당한다.

지도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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