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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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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폭포

위봉폭포(威鳳瀑布)는 위봉산(높이 524m)의 2단 폭포로, 높이는 60m이며 형제폭포라고도 한다.

개요[편집]

  • 위봉폭포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에 있는 60m 높이의 2단 폭포이다. 2021년 6월 9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위봉산(높이 524m)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60m 높이의 바위절벽으로 떨어지며 형성된 2단 폭포이다. 2단으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마치 명주실을 늘어놓은 것과 같은 풍경을 자아내며, 폭포 주변으로 참나무, 서어나무, 단풍나무 등의 식생 군락들이 폭포와 어울어져 경관을 만들고 있다. 위봉폭포는 예로부터 비경(祕境)으로서 명성이 높아 완산팔경의 하나로 불리었고,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 중의 한 사람인 권삼득(權三得, 1771~1841)이 득음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위봉폭포 일원은 주변의 산천과 기암절벽 등이 어울어져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아낼 뿐만 아니라, 이를 즐겨온 많은 사람들의 기록이 확인되고 있어, 역사적 가치 또한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1]
  • 위봉폭포는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와 동상면 수만리의 경계에 있는 폭포이다.위봉폭포는 완주 위봉산성의 동문 쪽에 있는 높이 60m의 2단 폭포로 완산 8경의 하나이다. 위봉폭포의 명칭은 위봉산과 위봉산성에서 유래했다. 위봉폭포의 물줄기는 옛부터 완산 8경에 드는 절경으로 유명하다. 폭포 주변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빼어난 경관을 이루며, 소양면에서 동상면 수만리로 이어지는 741번 지방도가 위봉산성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통과하며, 위봉터널을 지나 동상면 수만리 쪽에 위봉폭포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주차장이 정비되어 있다. 완주 위봉산성은 너비 3m, 높이 약 4.5m, 전체 길이 약 16㎞로 1407년(태종 7)에 축성하고, 1675년(숙종 1)에 중수하였는데, 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축성되었다. 『위봉진사례(威鳳鎭事例)』에 의하면, 행궁 6칸, 정자각 2칸, 좌우의 익랑(翼廊) 각 5칸, 내외3문 각 3칸이고, 전주·익산·김제·금구·임실·고산·진안·용안·함열 등 9읍이 소속되어 군기고와 군향창(軍餉倉)이 설치되었다. 현재 성곽은 석축으로 서·동·북에 3개의 성문이 있는데, 북문은 폭포 서편의 통로상에 있고, 서문 옆에는 장대(將臺)가 있었으나 지금은 파괴되고 높이 3m, 너비 3m의 아치형 석문만이 현존한다. 성내에는 위봉사가 남아 있고, 수구(水口)에는 위봉폭포가 있어 완산 8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2]

위봉폭포의 생태환경[편집]

  • 폭포는 강이나 호수에서 단차(段差)로 인하여 수직 또는 몹시 가파른 경사면으로 낙하하는 물줄기다. 물이 떨어지는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폭포는 하상의 암석이 석회암층(石灰岩層)과 사암층(砂岩層)과 같이 경도(硬度)에 차이가 있는 지층이 호층(互層)을 이루고 있을 경우 굳은 지층은 침식에 견뎌내는 반면 아래층의 연한 지층은 침식을 쉬 받아서 급사면이나 절벽을 이루어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가장 많다. 단층과 같은 지질구조가 하천을 횡단하는 경우에도 지각의 수직운동에 의해 발생한 고도의 차이 때문에 형성된 폭포도 많다. 폭포 중에는 화산지대의 화구호나 칼데라호처럼 화산의 높은 곳에 생긴 호수의 물이 화구뢰(火口瀨)를 통하여 떨어지는 백두산의 천지폭포 같은 것도 있고, 화산 분출이나 또는 산 사면이 붕괴하여 하곡을 매워 생긴 언색호(堰塞湖)에서 떨어지는 폭포도 있다.
  • 위봉폭포는 위봉산성의 물이 모여서 성 밖으로 흘러가는 동쪽 지점에 위치해 있다. 경위도 상으로는 북위 35도 54분, 동경 127도 16분에 위치한다. 위봉폭포의 물은 대청천으로 흘러들어 수만천과 합류하고 수만리 동상저수지로 흘러든다. 위봉산성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북쪽은 위봉산(524.3m)을 비롯하여 500-600m급의 산지로 이루어졌고, 남쪽 역시 500-600m의 산지이고, 서문 쪽은 500m-340m-600m로 서문이 있는 곳이 움푹 내려가 있다. 그리고 동쪽과 북쪽에는 위봉산(524.3m)-위봉폭포(290m)-남쪽 산지(520m)로 이루어져, 위봉폭포는 남북 연결 산지에 비해서 230m의 고도 차이가 있다.
  • 위봉산성 분지는 서고동저의 지형을 이루는데, 분지 내부 삼면의 산지에서 모인 물은 해발고도가 낮은 동문 방향으로 흐르는데, 유일한 유출구 지점에 위봉폭포가 위치한다. 위봉산성 서쪽 소양 방면의 성 밖인 외성리가 해발고도 140m인데, 서문은 340m로 해발고도 200m의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동쪽은 위봉폭포가 290m 지점인데 물이 흘러가는 수만리 입석마을이 160m로 위봉폭포와는 해발고도 130m의 고도차를 이루고 있다. 위봉산성 내부에 위치하는 위봉마을이 해발고도 330m로 위봉산성 내는 해발고도가 320~330m의 높이이고, 동쪽의 위봉폭포는 290m로 낮아진다. 위봉폭포의 상부는 작은 저수지가 형성되어 있다. 고위 평탄지형을 이루는 위봉산성의 물이 외부로 흐르면서 급격한 경사 지점에 위봉폭포가 형성된 것이다. 위봉폭포는 높이 60m의 2단 폭포로 형성되어 있다. 즉, 위봉폭포는 해발고도 290m에서 230m로 수직하강하는 지점이다.

위봉폭포 명승 지정[편집]

  • 선인들이 완주와 전주 일대 절경 '완산팔경' 중 하나로 손꼽았던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위봉폭포' 일원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에 지정됐다. 총길이 60m 2단 폭포인 위봉폭포는 위봉산성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2단으로 쏟아져 내리며 절경을 이루고 있다. 폭포 아래의 큰 바위 사이로 물길이 흘러가며 포트홀(Pot hole)의 하천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이다.
  • 주변 식생의 어울림과 자연관경이 뛰어나 예로부터 완산팔경에 드는 절경으로 인정받아 왔고, 조선 후기 비가비 판소리 명창으로 이름을 떨친 권삼득(權三得, 1771~1841) 명창이 수련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완주군은 '문화재청에서 위봉폭포의 문화경관적 측면의 뛰어남과 위봉폭포를 향유한 선인들의 삶과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곳임을 인정하고, 역사문화적 · 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폭포인 명승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 명승은 역사·문화·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명산, 바위, 동굴, 폭포 등을 지정대상으로 하며, 전국적으로 총 118곳이 지정돼 있다. 이 중 폭포가 명승으로 지정된 경우는 위봉폭포 등 8곳이다. 한편, 선인들이 손꼽은 완산팔경 중에서 완주지역 절경은 소양면 위봉폭포(威鳳瀑布), 삼례읍 비비낙안(飛飛落雁) , 용진읍 동포귀범 (東浦歸帆) 등 3곳이다. 이 가운데 용진읍과 봉동읍 사이를 잇는 만경강 마그네다리 인근으로 전해지는 동포귀범은 만경강을 드나드는 돛단배들의 만선 풍경을 가리키는데, 지금은 사라졌다.

완주군[편집]

  • 전라북도 북부 중앙에 있는 군이다. 동경 126°59' ~127°19', 북위 35°07'~36°02'에 있다. 노령산맥의 서쪽 사면과 호남평야의 북동 연변부를 차지하며 전주시를 둘러싸고 있다. 동쪽은 노령산맥의 주능선을 경계로 진안군과 충청남도 금산군, 서쪽은 익산시·김제시, 남서쪽은 정읍시, 남쪽은 임실군과 접하며 북쪽은 충청남도 논산시·금산군과 인접하여 도계를 이룬다. 도로는 전주를 중심으로 4통 5달의 교통 요충지로서 군산·서울·부산·대구·목포·광주·여수로 통하는 국도와 지방도가 있고, 철도는 전라선이 남북으로 관통한다.
  • 완주군은 오랫동안 전주부에 속해 있었고 산지가 많아 명승고적이 많다. 국가지정문화재로는 보물 7점이 있고, 도지정문화재로는 유형문화재 19점, 기념물 5점, 민속자료 1점, 문화재자료 2점 등 27점이 있다. 대부분의 문화재가 소양면의 송광사·위봉사, 경천면의 화암사, 구이면의 대원사 등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송광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고, 그 후 중건·보수된 사찰로 대웅전(보물 1243)·종루(보물 1244)·동종(전북유형문화재 138)·벽암당부도(문화재자료 144)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위봉사는 604년(백제 무왕 4)에 창건된 절로 주변에 위봉폭포와 위봉산성(전북기념물 17)이 있어 관광객이 많다.

완주 위봉산성(完州 威鳳山城)[편집]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이다. 2006년 4월 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675년(숙종 1)에 축성하고, 1808년(순종 8)에 관찰사 이상황(李相璜)이 중수하였다.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慶基殿)에 있는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한 것으로 동학농민운동 때 전주부성(全州府城)이 동학군에 의해 함락되자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피난시킨 일이 있다.
  • 규모는 너비 3m, 높이 4~5m, 길이 16㎞이며, 서·동·북 3개 소의 성문과 8개의 암문이 있었고, 성 안에는 4~5개의 우물과 9개의 못을 팠다. 지금은 성벽 일부와 전주로 통하는 서문만이 남아 있는데, 문 위에 있던 3칸의 문루(門樓)는 붕괴되어 없어지고 높이 3m, 너비 3m의 아치형 석문만 남아 있다. 전주 8경의 하나로 성 안에는 위봉사가 있고, 북방수구처에는 위봉폭포가 있다.

위봉사(威鳳寺)[편집]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所陽面) 추줄산 중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604년(백제 무왕 5)에 서암(瑞巖)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고, 극락전중수기(極樂殿重修記)에 전설적인 설화가 실려 있을 뿐이다.
  • 신라 말기, 최용각(崔龍角)이 말을 타고 전국 산천을 유람할 때, 봉산(鳳山) 남쪽에 이르러 등나무 덩굴을 잡고 겨우 산꼭대기에 올라가니 어떤 풀섶에서 상서로운 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 빛을 따라가 보니 거기에는 세 마리 봉황새가 날고 있어 그는 여기에 절을 짓고 위봉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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