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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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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령

이화령(梨花嶺)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개요[편집]

  • 이화령은 고개가 가파르고 험하여 산짐승의 피해가 많으므로 전에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함께 넘어갔다 하여 이유릿재라 하였다. 그 후에 고개 주위에 배나무가 많아서 이화령으로 불리게 됐다. 이화령의 높이는 548m이고, 소백산맥의 조령산(鳥嶺山, 1,017m)과 갈미봉(葛味峰, 783m)과의 안부(鞍部)에 위치한다. 동쪽 사면은 조령천(鳥嶺川)의 곡구(谷口)인 진안리에서 서쪽으로 분기하는 하곡과 통하고, 서쪽 사면은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達川)으로 흐르는 연풍천(延豊川)의 하곡으로 이어진다.[1]
  • 이화령은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 높이 548m이다. 소백산맥의 조령산(鳥嶺山:1,017m)과 갈미봉(葛味峰:783m) 사이에 있다. 예로부터 조령(鳥嶺:642m)이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잇는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었지만 고개가 높고 험하여 불편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이러한 불편한 점과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을 말살하기 위하여 조령 바로 밑에 고개를 만들었다. 현재는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을 연결하는 3번 국도가 지난다. 주변 지역에서 많이 나는 담배·양잠 등 밭작물의 수송로는 물론 가까이 있는 문경새재도립공원과 수안보온천을 즐기려는 관광객이 많이 이용한다.[2]
  • 이화령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사이에 있는 높이 548미터의 소백산맥 또는 백두대간의 고개이다. 국도 제3호선과 국도 제34호선이 이 고개를 거치게 노선이 지정되어 있다. 옛길은 상당히 험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94년 두산건설에서 이화령터널 공사에 착수해 1998년에 개통하였으며 유료 도로로 운영하였다. 그러나 2004년 12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이 고개 밑을 지나게 건설되어 통행량이 급감하였고, 2007년 통행료가 폐지되었다. 2012년에는 백두대간 복원을 위해 이화령옛길 도로의 정상부를 터널화하고 위에 생태통로를 설치하는 공사를 완공하였다. 터널 상부에는 백두대간 이화령이라는 글씨가 새겨졌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중부내륙선 철도는 이화령을 터널로 지나나, 터널 명칭은 문경새재를 사용하고 있다.[3]
  • 이화령은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 사이에 있는 고개로, 백두대간(중 소백산맥)에 있는 1017m 높이의 조령산을 남서쪽으로 넘는다. 지금도 충북과 경북의 도계(道界)이기도 하다. 근대에 들어서 산세가 험하고 경사가 급한 조령 대신 비교적 완만한 이화령에 근대적인 도로가 먼저 만들어졌으며, 지금도 3번 국도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이화령 고개 밑을 터널로 지나가며 비중이 역전되었다. 이화령을 넘어가는 고갯길로 1979년에 개통된 가장 오래된 길이다. 그 이전에는 비포장도로였으며 이 시절에도 3번 국도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화령터널과 중부내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서울에서 경북북부로 가는 유일한 길목이라 매우 붐볐으나, 이화령터널로 3번 국도를 넘겨준 이후 한산한 자전거 도로이자 트레커들의 코스가 되었다. 새재 자전거길로 불리며, 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고비를 맞는 곳이기도 하다. 이화령의 정상에는 조령산 등산로가 있다. 해발 1천미터가 넘는 산이지만 이화령 코스는 고갯마루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등산 난이도가 높지 않고 블랙야크에서 100대 명산으로 선정한 덕분에 찾는 사람이 꽤 있다. 가끔 시내버스 여행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으나 주로 시내버스 여행 가는 사람이 지나가는 고개는 아닌지라 많은 사람이 지나가지는 않는다.[4]

이화령의 명칭 유래[편집]

  • 이화령은 충청북도 괴산군의 연풍면과 문경시 문경읍을 잇는 고개이다. 북으로 조령산과 남으로 갈미봉 사이에 위치하는데 상대적으로 높이가 낮아 소백산맥을 넘는 고개로 개발되었다. 과거에는 이화령 북쪽에 있는 조령이 서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이용되었었다. 그러나 조령은 이화령보다 상대적으로 산세가 험준해, 일제 강점기에는 이화령에 도로를 뚫었다. 현재는 이화령 터널이 뚫려 이화령 옛 도로의 이용률이 급감했다. 인근에 이화터널 · 이화령 터널 등이 있다.
  • 과거 지명은 이화현(伊火峴)으로 『고려사지리지』(상주)에서는 길이 험한 요해처 세 곳으로 초점(草岾), 이화현(伊火峴), 관갑천(串岬遷)을 꼽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연풍)에는 "이화현(伊火峴)은 현 동쪽 7리 문경현 경계에 있다."고 적고 있다. 『여지도서』(연풍)에서는 "현 동쪽 15리에 위치한다."고 적고 있어 두 문헌에서 제시한 거리가 다르다. 『대동여지도』에서도 여전히 '이화현(伊火峴)'으로 표현했다. 이화령의 우리말 이름은 이우릿재, 이유릿재이다. 그런데 『구한말지형도』, 『조선지지자료』, 『조선지형도』에서는 모두 '이화령(梨花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 소백산맥의 조령산과 희양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사지리지》에 이화현(伊火峴)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고 《대동여지도》에도 이 고개 이름은 이화현으로 표기하고 있다. 위치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이화현(伊火峴)은 현 동쪽 7리 문경현 경계에 있다."라고 하고 있으며 《여지도서》에는 "현 동쪽 15리에 위치한다"라고 하여 다소 상이하게 되어있다. 《구한말지형도》, 《조선지지자료》, 《조선지형도》와 같은 1910년대 발행된 지도에는 현재의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뜻은 고개 주위에 배나무가 많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고개가 험해 여러 명이 어울려서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하여 이유릿재, 이우리재 등으로도 불렸다.

이화령의 환경변화[편집]

  • 이화령의 도로도 주변의 계곡을 따라 개통되었으나, 동편의 진안리에서 이화령 고개까지는 갈미봉의 산록을 따라 올라가고, 서편은 행촌리까지 '잣밭등'의 남쪽을 따라 내려간다. 고개 아래 연풍은 영하취락(嶺下聚落)이다. 옛날의 국도는 새재(鳥嶺)로 통하였으나, 새재는 몹시 높고 산로(山路)가 험하므로 신국도 3호선은 이화령을 통하게 되어 연풍은 이화령에 교통로가 열린 뒤에 발달한 신흥취락이다.
  • 연풍에서 하곡을 따라 올라가 원풍리를 거쳐 분수령에 이르면 동쪽은 새재마루의 조령 제3관문이고, 서쪽은 소조령(小鳥嶺)이다. 소조령을 넘으면 온천으로 유명한 수안보(水安堡)에 이른다. 이와 같이 이화령은 충청북도의 충주권과 경상북도 북부의 점촌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이화령의 개통으로 북쪽의 문경 조령 관문은 제1·2·3 관문과 주변의 성곽 등을 1966년 사적으로 지정하고 크게 보수, 축조하여 도립공원으로 정비하였다. 조령의 통과는 중초리에서 통제되고 관광객이나 등산로 외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지만, 이화령은 국도 제3호가 통과하여 주변 지역에서 산출되는 특용작물의 수송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이리하여 옛 조령에 이어 이화령은 새로운 교통요충지로 변모하고 있다.
  • 국도 3호선은 도로가 구불구불하여 이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민원을 끊임없이 제기하였다. 이에 따라 민간투자사업으로는 처음으로 3번 국도가 4차로로 확장되면서 이화령 터널이 뚫렸다. 그 뒤 이화령 터널 옆으로 중부 내륙 고속도로의 상하행선 터널이 추가로 관통됨으로써 모두 3개의 터널이 있게 됐고, 옛 이화령 포장도로까지 합쳐 10개의 차로의 도로들이 나란히 있다. 이화령터널을 건설할 당시 예상한 이용률보다 훨씬 적어서 문제가 되었고, 2007년 건설교통부가 '이화령 터널'을 인수하여 2007년 8월 1일 터널 통행료가 폐지되었다.

이화령터널[편집]

  • 이화령터널(梨花嶺터널)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행촌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진안리를 잇는 국도 제3호선의 터널이다. 1994년 12월 민자유치사업으로 두산그룹이 건설하였고 도로운영업체인 새재개발이 관리하였으나, 터널 남쪽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터널이 개통한 이후 통행량이 급감하여 건설교통부가 새재개발 측에 625억 원이라는 시설대금을 주고 터널을 인수하면서 통행료가 폐지되었다.

이화령전투[편집]

  • 국군 제6사단이 1950년 7월 중순 문경 북방의 이화령 일대에서 북한군 제1사단의 침공을 지연시킨 지연전투이다. 이화령(梨花嶺)을 지나는 국도를 둘러싸고 주요 전투가 벌어졌으므로 '문경 전투'라고도 하며, 영강(穎江) 상류 지역에서 벌인 전투는 따로 '영강 지구 전투'로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현재 충북 괴산군 연풍면에 이화령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를 기리는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이화령(梨花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이화령(梨花嶺)〉, 《두산백과》
  3. 이화령〉, 《위키백과》
  4. 이화령〉,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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