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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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건==
□ 1980년 현대양행(창원공장) 강탈사건 - 1979년 12월에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군정부는 산업재정비 차원에서 기업 통폐합 작업을 추진하였으며 현대그룹과 대우그룹에게 서로 중복되는 사업 교환을 통한 통폐합을 요구했다. 그 결과로 현대는 대우자동차를 대우는 현대양행(창원공장)을 인수하기로 되었다. 하지만 대우자동차의 합작 파트너였던 미국의 GM이 현대로의 파트너 변경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자동차를 못 넘기는 대신 대우 본사 빌딩을 팔아서 창원중공업을 보상해줄 테니, '선 인수 후 청산'방식으로 계약을 진행하자고 하였으며 '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공수부대를 파견해서 현대를 내치겠다'는 무지막지한 협박을 보냈다. 유례 없는 특혜를 통해 1원도 내지 않고 창원중공업을 인수해간 대우는 이후 창원중공업의 경영 정상화에 실패하고 힘에 부쳐 결국 정부에 회사를 다시 내놓았으며 후에 한국전력과 산업은행이 한국중공업에 출자하여 한국중공업을 한전의 자회사로 만들어 국유화를 해버렸다. 이후 한국중공업은 두산그룹에 인수되며 오늘날 두산중공업으로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경제논리가 통하지 않던 시대에 신념과 소신으로 권력과 맞섰지만 결국 비이성적인 횡포에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건이었다.<ref>〈[https://www.facebook.com/chungjuyung.entrepreneur/posts/278029599001051/ (20+) 정주영 - Posts]〉, 《Facebook》, 2013-05-19</ref><ref>김화진, 〈[https://www.thebell.co.kr/free/content/ArticleView.asp?key=201911210100039560002453&lcode=00  현대양행 파란의 역사]〉, 《더벨》, 2019-11-22</ref><ref>프리덤월드,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kor_fw&logNo=50170444615&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hk%2F 우리나라 중공업을 이끌어온 불굴의 개척자 - 운곡 정인영 회장]〉, 《네이버 블로그》, 2013-04-30</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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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현대양행(창원공장) 강탈사건 - 1979년 12월에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군정부는 산업재정비 차원에서 기업 통폐합 작업을 추진하였으며 현대그룹과 대우그룹에게 서로 중복되는 사업 교환을 통한 통폐합을 요구했다. 그 결과로 현대는 대우자동차를 대우는 현대양행(창원공장)을 인수하기로 되었다. 하지만 대우자동차의 합작 파트너였던 미국의 GM이 현대로의 파트너 변경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자동차를 못 넘기는 대신 대우 본사 빌딩을 팔아서 창원중공업을 보상해줄 테니, '선 인수 후 청산'방식으로 계약을 진행하자고 하였으며 '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공수부대를 파견해서 현대를 내치겠다'는 무지막지한 협박을 보냈다. 유례 없는 특혜를 통해 1원도 내지 않고 창원중공업을 인수해간 대우는 이후 창원중공업의 경영 정상화에 실패하고 힘에 부쳐 결국 정부에 회사를 다시 내놓았으며 후에 한국전력과 산업은행이 한국중공업에 출자하여 한국중공업을 한전의 자회사로 만들어 국유화를 해버렸다. 이후 한국중공업은 두산그룹에 인수되며 오늘날 두산중공업으로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경제논리가 통하지 않던 시대에 신념과 소신으로 권력과 맞섰지만 결국 비이성적인 횡포에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 1977년 현대 아파트 특혜 분양사건 - 1974년에 용산구용산동에 현대맨션을 건설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현대는 1,512 가구를 건설하면서 952 가구를 현대의 무주택 사원에게 분양하는 조건으로 당국의 건설허가를 받았다. 실제 집행과정에 사원들에 분양된 분량은 291 가구 였으며 나머지는 전부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기업인, 언론인, 현대그룹 임원들의 친척과 동창들에 분양되었다. 1978년 4월에 이 사건이 처음으로 언론에 보도되었으며 이로 인해 정주영은 당시 건축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과 벌금 500만 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으며 차남 정몽구가 아버지를 대신해 75일 동안 옥살이를 하였다. 한국 기업 역사에서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이 옥살이를 한 최초의 사례로 되었다. 현대 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은 정부가 부동산을 새로운 부의 분배방식으로 택한 상징적 사건이었다.<ref>여름가을, 〈[https://blog.naver.com/jump4122/222234033060 한국 재벌 흑역사(상)현대]〉, 《네이버 블로그》, 2021-02-06</ref>
 
□ 1977년 현대 아파트 특혜 분양사건 - 1974년에 용산구용산동에 현대맨션을 건설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현대는 1,512 가구를 건설하면서 952 가구를 현대의 무주택 사원에게 분양하는 조건으로 당국의 건설허가를 받았다. 실제 집행과정에 사원들에 분양된 분량은 291 가구 였으며 나머지는 전부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기업인, 언론인, 현대그룹 임원들의 친척과 동창들에 분양되었다. 1978년 4월에 이 사건이 처음으로 언론에 보도되었으며 이로 인해 정주영은 당시 건축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과 벌금 500만 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으며 차남 정몽구가 아버지를 대신해 75일 동안 옥살이를 하였다. 한국 기업 역사에서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이 옥살이를 한 최초의 사례로 되었다. 현대 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은 정부가 부동산을 새로운 부의 분배방식으로 택한 상징적 사건이었다.<ref>여름가을, 〈[https://blog.naver.com/jump4122/222234033060 한국 재벌 흑역사(상)현대]〉, 《네이버 블로그》, 2021-02-06</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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