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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셩롱

해시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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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셩롱(邹胜龙, Zou Shenglong)
쉰레이(迅雷)

조우셩롱(邹胜龙, 추승룡, Zou Shenglong, zōu shèng lóng)은 중국 선전에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및 블록체인 분야의 개발 회사인 쉰레이(迅雷, xùn léi)의 창업자 겸 전 회장이다. 2017년 12월 12일 조우셩룽은 가족으로 인해 사임하고 왕촨(王川)이 새로 회장에 취임했다.

인물 소개

미국 Duke University를 졸업하고 컴퓨터 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말부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쉰레이를 창업하고 있었다. 2003년에 귀국하였으며 선젼시에 3세대 과학기술 개발 유한회사를 설립하였다. 2005년 5월, 선젼시 쉰레이인터넷기술유한회사(深圳市迅雷网络技术有限公司)로 회사명을 정식으로 변경하였다. 2007년 구글, IDG캐피탈, 처위앤벤처스 등 5개 회사로부터 1,000만 달러의 자금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2006년 8월 말, 쉰레이는 1억1000만 사용자와 8,000만 대에 달하는 장비를 보유했으며 5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면서 큐큐(QQ) 다음으로 중국 최대 인터넷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로 성장했다.

현재, 쉰레이는 가장 트랜드한 중국 인터넷 응용 서비스 소프트웨어 중 하나가 되었다. 중국 최대의 다운로드 서비스 제공업체인 쉰레이는 하루에 몇 십 개국에 수천만 번 이상의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0년 11월 5일, "이노베이션 10년" 선정 행사 시상식 및 2010 매니저 세계 연례총회가 베이징에서 성대하게 열렸으며 조우셩롱은 "미래 10년의 새로운 경제인물(未来十年新经济人物)"에 선정되었다.[1]

생애

출국 전

중국 안후이화이난(安徽淮南人) 사람으로 1973년 출생이다.

1988년 16살에 조우셩롱은 부모를 따라 선전으로 가게 되며 선전남산하이테크단지에 있는 자녀고등학교인 선젼중점고등학교 써커우위차이고등학교(蛇口育才中学)에 다닌다. 조우셩롱은 발명가 집안출신이다. 후에 쉰레이를 창업한 곳도 바로 이 하이테크단지 북구역(北区)이다. 1992년 6월, 조우셩롱은 토익 600점을 받고 당당하게 광저우 영사관에 비자를 받으러 갔으나 유창하지 못한 회화능력이 토익점수와 매칭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후에 조우셩롱은 낮은 언어능력과 사전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아버지의 조언을 새겨듣고 다시 2차 비자를 신청하였으며 두번째는 순조롭게 통과되었다.

조우셩롱의 아버지 조우더쥔(邹德骏, 추덕준, Zou De Jun, zōu dé jùn)은 중국에서 유명한 대발명가이며 국제상도 여러번 받았다. 조우더쥔은 일반 노동자에서 자신의 엄청난 발명특허로 선젼과학기술단지에 회사를 설립하고 중국과학 스페이스 스테이션(space station)방면에 대한 연구를 하는 전설로 알려져 있다.

조우셩롱의 미국 유학은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威斯康星州立大学麦迪逊分校)에서 경제학 전공이었다. 당시 장학금이 없을때라 1만5,000단러에 달하는 학비와 생활비를 집에서 전 재산으로 부담해야했다. 후에 조우셩롱은 컴퓨터공학으로 전공을 바꾸지만 부모님과 전혀 상의가 없이 혼자 결정한 후에 통보를 했다. 조우셩롱은 매우 주견이 있는 사람으로 전학, 이직, 창업 모든 것을 혼자 결정했다.

1996년 7월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에서 컴퓨터학과 석사 졸업후, 1997년 12월 1년 6개월 만에 Duke University 대학교 컴퓨터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Duke에서 조우셩룽은 기술천재 청하오(程浩, Cheng Hao, chéng hào)를 알게 되며 두사람은 쉰레이를 공동 창업하게 된다.

미국에서 석사를 취득하자 조우셩롱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분야에 취직하여 그린카드를 신청하고 집을 사고 좋은 차를 바꿀 생각을 하며 미국생활에 서서히 적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1998년 여름에 실리콘밸리로 여행을 가면서 그의 인생의 그래프가 바뀌게 되었다.

안정되고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조우셩롱은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속속 귀국해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당시에 큰 의욕을 보이지 않았던 그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그리하여 2003년 초 청하오와 함께 귀국해 창업을 결심하고 각각 5만 원을 출자하여 선젼에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인터넷 응용은 주로 검색, 포털, IM(즉시 통신), 소프트웨어 다운로드 등 네 가지 영역이다. 다운로드 소프트웨어 분야가 킬러급 운영업체가 없는 외에 검색 분야는 구글, 바이두가 포털 분야는 시나닷컴, 소호, IM 분야는 QQ, MSN이 있었다.

그래서 조우셩롱은 다운로드를 사업핵심으로 정하고 2003년 8월에 처음으로 개발한 다운로드 소프트웨어를 출시한다. 하지만 홍보가 안되어 별로 인기가 없었다. 2004년 1월, 신레이 2가 나왔는데 매일 신규 설치 사용자가 400명도 안 되었다. 또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3,4개월 동안 홍보를 했더니 쉰레이 사용자들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매일 수천명 사용자가 증가했다.[2]

실리콘밸리 시절

1999년 여름 미국으로 떠난지 6년이 된 조우셩롱은 동창들의 초청을 받아 실리콘밸리로 여행을 떠났다.노스캐롤라이나주의 기온이 100°F(약 37.8℃)인 반면 실리콘밸리는 70°F 정도로 쾌적했던 여름 날씨였다. 게다가 비단같은 캘리포니아 햇살은 조우셩롱이 실리콘밸리를 단번에 좋아하게 되었다. 1999년 여름, 실리콘밸리는 글로벌 하이테크의 발상지이자 절대적인 중심지였고 넷스케이프(Netscape), 야후의 성공으로 실리콘밸리에서 다음 기적이 자신한테 올지도 모른다는 분위기에 휘청거려 조우셩롱은 일자리를 찾기로 했다.

먼로공원의 사구로는 사실 그리 넓지 않고, 길 옆에 나무가 많아서 매우 시원하였다. 길가의 건물들은 1930년대의 집들로 색깔이 수수하고 두세 층짜리 작은 건물들이 많았다. 조우셩롱은 자기와 어울리는 회사를 찾아왔는데 두회사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들어가서 둘러보니 오른쪽에 있는 회사가 두층을 차지하고 있고 왼쪽에 있는 회사는 지하 차고로 느껴졌다. 그래서 조우셩롱은 오른쪽에 있는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두회사에 모두 이력서를 내도 그는 그의 교육적 배경과 경력을 보았을때 두 회사는 모두 그를 채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우셩롱은 한군데만 지원했다.

조우셩롱은 곧 오른쪽에 위치한 회사에 출근하게 되었고 그는 맞은 편의 그 회사도 사실 아주 괜찮은 회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있는 회사와는 달리 반대편의 그 회사에는 출입하는 사람들은 이복적이고, 독창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그 회사에서 2층에 거대한 프로젝터를 놓고, 그들이 최근에 추진했던 키워드를 도로 바닥에 투영시켜 주목을 일으켰는데 이 흥미로운 회사가 바로 Google이었다.

창업 천국인 실리콘밸리에서도 조우셩롱은 두세 개의 작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작은 팀을 형성했다. 조우셩롱 팀 멤버 중 한 명이 어느 날 그에게 중고차를 사고 싶다고 물었는데 조우셩룽이 듣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났는데 차를 팔던 사람이 바로 바이두의 공동창업자인 시우융(徐勇, Xu Yong, xú yǒng)이다.

시우융은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중국인 유학생으로는 풍운아였으며 1982년 베이징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라오싼제(老三届, 문화 대혁명의 혼란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1966〜1968년에 졸업한 중·고등 학생)로 실리콘밸리를 처음 찾은 중국인 유학생 중 한 명이다. 박사학위를 마친 시우용은 외향적이고 정열적이고 친구를 사랑하는 성격으로 실리콘밸리의 중국인 유학생 중심 인물이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동안 조우셩롱은 리얜홍(李彦宏, 이언홍, Li Yan Hong, lǐ yàn hóng)과도 알고 지냈다. 조우셩롱과 함께 쉰레이를 만든 청하오는 맨 처음엔 귀국해 바이두로 가기로 했는데 저우셩롱이 리얜홍에게 청하오를 추천한 것이었다.

조우셩롱은 실리콘밸리에 있는 동안 주로 두가지 활동에 참가했는데, 하나는 실리콘밸리 중국 엔지니어협회, 다른 하나는 첸훙(陈宏, 나중에 쉰레이에 투자를 함)이 설립한 화옌테크협회(华渊科技协会)로, 두 조직은 항상 성공인물과 투자자를 요청하여 포럼을 진행했다. 이런 포럼을 통해 저우셩룽은 펑보(冯波, 시나, 야신, 쉰레이 투자자. 현재 쉰레이 이사)를 알게 되었다. 조우셩롱은 또 뜻이 맞는 친구들과의 모임을 좋아하는데,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세가지 모임장소는 햇빛이 찬란한 날엔 스탠포드 앞에 있는 초대형 앞마당, 저녁이면 보통 실리콘밸리 스타벅스, 주말에는 몇몇이 야외 캠핑을 즐긴다.

2015년 12월 16일 제2회 세계인터넷대회 개막식에 게스트로 참석했다.ㅊ

주요활동

쉰레이(迅雷)

쉰레이는 2002년 말 조우셩롱과 청하오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했다. 2003년 1월 말 두사람은 귀국해 본격적인 선전시3세대과학기술개발유한회사(深圳市三代科技开发有限公司)를 설립했다. '3세대'는 2005년 5월, 선전시 쉰레이인터넷기술유한공사(深圳市迅雷网络技术有限公司)로 명칭을 변경, '쉰레이' 중화권 연구개발센터와 운영센터를 담당하게 되었다. "쉰레이"는 전세계 인터넷을 위한 최고의 멀티미디어 다운로드 서비스에 주력하였으며 고된 창업을 거쳐 대중화 지역에서 선도적인 기술과 성실한 서비스로 많은 사용자들의 깊은 사랑과 많은 파트너들의 인정과 지지를 얻었다. 회사 플래그십 제품인 쉰레이는 이미 중국 인터넷의 가장 트랜드한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소프트웨어 중 하나가 되었다. 중국 최대의 다운로드 서비스 제공 업체로서 쉰레이는 매일 수 십 개국에서 수천만 번 이상의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한다.

'쉰레이'는 산다그룹(Shanda Group), 시나닷컴, 킹소프트(Kingsoft, 金山), 모토(MOTO) 등 수많은 업계 선도자들과 협업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쉰레이는 Morningside(晨兴科技)와 아이디지캐피탈(IDGVC) 등 수많은 유명 벤처기업들의 공감과 투자를 받았다. 2007년 1월 5일, 쉰레이는 3차 융자유치 성공을 발표했는데 이번 투자자는 처위앤벤처스(Ceyuan Ventures)와 모닝사이드 벤처스(Morningside Venture)이다.[2]

각주

  1.  〈【邹胜龙】迅雷CEO 个人资料〉, 《创投库》, 
  2. 2.0 2.1  〈邹胜龙〉, 《百度百科》,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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