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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해시넷
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5월 1일 (월) 23:39 판 (연안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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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하이파 전경
지브롤터에서 본 아프리카(왼쪽, 수평선)와 유럽(오른쪽)
지중해

지중해(地中海, 영어: Mediterranean Sea)는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바다이다. 지중해의 해역 대부분이 세 개의 다른 대륙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북쪽은 남유럽, 남쪽은 북아프리카, 동쪽은 서아시아(레반트)에 접한다. 지중해의 명칭은 말 그대로 "땅 한가운데에 있는 바다"라는 뜻이다. 해역의 면적은 250만 km²이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연결되는 지점인 지브롤터해협은 폭이 14km에 불과하다. 지중해의 평균 수심은 1,500m이며, 가장 깊은 지점으로 기록된 곳은 이오니아해의 칼립소 심연(Calypso Deep)으로 그 수심이 5,267m에 달한다. 해양학에서는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를 이르는 일반적인 개념인 지중해와 이 바다를 구별하기 위해, 유라프리카 지중해(Eurafrican Mediterranean Sea) 또는 유럽 지중해(European Mediterranean)로 칭하기도 한다.[1]

개요

지중해는 서쪽은 지브롤터 해협으로 대서양과 통하고, 동쪽은 수에즈 운하로 홍해, 인도양과 연결되며, 북쪽은 다르다넬스·보스포루스 해협으로 흑해와 이어진다. 지중해는 '육지 속의 바다'라는 뜻이였으나 일반적으로 ‘지중해’라고 하면 이 유럽 지중해를 가리킬 정도로 유명하며, 고대부터 중세 말까지 유럽 문명의 중심 무대가 되었고 오늘날에도 세계 항로의 주요간선 중의 하나가 되어 있다. 유럽 문화의 발생지로 이집트, 그리스, 로마, 에스파냐 시대를 거쳐 유럽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에도 세계 항로의 주요 간선 중의 하나이다. 여름에는 덥고 건조하며 겨울에는 습윤한 지중해식 기후가 나타나 연안에서는 포도, 올리브 등의 과일 재배가 성하다. 특히 경치가 아름다운데 리비에라, 달마티아, 이탈리아 해안은 세계적인 휴양지이다. 들도 경치가 아름답고 사적이 많으며, 섬 사이에 관광 항로가 발달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2] [3]

어원

지중해 어원은 라틴어 낱말 "메디테라네우스"(mediterraneus)로, "지구의 한가운데(medius, "한가운데" + terra, "땅, 지구")"를 뜻한다. 그 이유는 이 바다가 육지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특히 대서양과 비교했을 때)이거나, 당시 중동인과 유럽인들에게 있어 알려진 세계의 중심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지중해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가령 로마인들은 흔히 "우리 바다"(Mare Nostrum)으로 불렀다. 때로는 "내해(內海)"(Mare Internum)으로 부른 경우도 있다. 다른 예로는 그리스어로 "내륙, 안쪽"이라는 뜻의 "메소게이오스"(Μεσόγειος)로 불리기도 하였다. 성서에서는 "뒤쪽 바다"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 위치가 성지의 서쪽 해안이기 때문으로, 구약 성서 신명기 11:24, 요엘 2:20에서 나와있듯 동쪽 사람들은 지중해를 "서쪽 바다"로 부르기도 하였다. 또 출애굽기 23:31에서 "필리스틴의 바다"으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스라엘 땅 근처 해안 상당 지역을 필리스틴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대문이다. 그러나 본래 지중해는 "대해(大海)"(민수기 34:6,7; 여호수아기 1:4, 9:1, 15:47; 에스겔서 47:10,15,20)로 불리거나 그냥 "바다"(열왕기 상권 5:9; 마카비우스 1서 14:34, 15:11)로 불렀다.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지중해를 독일어의 "미텔메어"(Mittelmeer)에서 그대로 차용하여 "가운데 바다"(Hayam Hatikhon, הַיָּם הַתִּיכוֹן)로 칭한다. 튀르키예어에서는 지중해를 "하얀 바다"(Akdeniz)로 부른다. 현대 아랍어에서는 "하얀 가운데 바다"(al-Baḥr al-Abyaḍ al-Mutawassiṭ, البحر الأبيض المتوسط)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이슬람과 옛 아랍 문학에서 지중해를 "로마(비잔티움 제국)의 바다"(Baḥr al-Rūm, بحر الروم)로 칭하기도 한다.

지리

지중해는 서쪽의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대서양과, 동쪽의 다르다넬스 해협과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마르마라 해, 흑해와 연결된다. 보통은 마르마라 해는 지중해의 일부로 보기도 하지만, 흑해는 별개의 바다로 본다. 남동쪽의 수에즈 운하를 통하여 홍해와 연결된다.

기후

지중해 연안의 기후는 일반적으로 온대기후나 아열대기후에 속하지만, 동아시아 지역과는 강수량 패턴이 정반대이다. 즉, 여름철에 강수량이 적고 건조하며, 대신 겨울철에 습하고 강수량이 많으며 비가 많이 오는 편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눈이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기후를 지중해성 기후라고 부르며,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Csa'라 표기한다. 동아시아와 강수 패턴이 정반대라 여름에는 고온 건조하고, 겨울에는 온난 습윤하다. 지중해 근처라고 다 이런 기후를 띠는 건 아니지만, 남유럽의 대부분 지역과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아틀라스 산맥 이북지역의 기후가 이 기후 또는 이와 비슷한 기후에 속한다. 이러한 기후 지역에서 해발고도가 높아지면 냉대기후의 일종인 Dsa가 되며, 겨울철의 비가 눈으로 바뀌어서 내리는 빈도가 늘어난다.

지중해는 강수량이 집중되는 철만 동아시아와 정반대일 뿐 연강수량이 200~500mm 수준으로 적은 나라들이 많은 데다 여름 가뭄이 잦은지라 하술할 물 부족과 사막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열대성 저기압이 잘 발생하지 않는 지역이나, 일단 발생했다고 하면 사이클론으로 분류된다. 이 사이클론은 보통 이탈리아 쪽에 상륙하며, 간혹 프랑스 마르세유, 스페인 바르셀로나 쪽으로 상륙하기도 한다. 이렇게 상륙하면 보통 독일 남부나 오스트리아 정도까지 영향을 미치다 소멸되는 경우가 많은데, 알프스산맥에 의해 가로막히기 때문이다.[4]

역사

지중해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중해 분지 등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가나안, 페니키아, 히브리, 카르타고, 그리스, 페르시아, 일리리아, 트라키아, 에트루리아, 이베리아, 로마, 비잔티움, 불가리아, 아랍, 베르베르, 오스만, 기독교, 이슬람 문화의 기원과 발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지중해는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남유럽 등 세 개 대륙에 걸칭 여러 사람들 간의 수송, 교역, 문화적 교환에 관한 주요한 통행로였다. 프랑스의 레지냥라세브, 스페인의 오르세, 이탈리아의 몬테포졸로 불가리아의 코자르니카 등은 유럽 내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지이며 지중해 분지에 자리 잡혀 있다.

약 130,000년 전의 크레타에 석기 도구의 증거가 존재하는데 이는 초기 인류가 크레타섬에 도달하기 위해 조각배들을 사용할 줄 알았음을 나타낸다. 문명 (도심 중심지를 근처로 하여 형성된 조직화된 사회)의 문화적 단계는 차탈회위크 같은 원시 문화적 중심지들처럼 기원전 8천 년부터 신석기 추세의 확장으로서 서남아시아에서 처음 발생하였다. 도시 문명들은 5에서 4천년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등지의 동기 시대에서 제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발칸반도에서 금제 유물들이 기원전 제4 천년기에 등장하였는데, 이 유물들은 기원전 4569–4340년의 매장지와 선사시대의 가장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 중 하나이자 불가리아의 바르나 호수 근처인 바르나 네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되었는데, 한 사료에선 가장 이른 시기 가장 이른 시기의 금제 유물 발견으로 생각된다. 1990년대에,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 있는 기원전 4천년기의 동굴 공동묘지인 와디 콰나에서 발견된 금제 유물들은 레반트 지역에서 가장 초창기의 금제 유물이다. 지중해에서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4천년기의 마지막 때 발생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도시 문명들은 이 시기에 문자 체계와 선진적인 관료제를 갖췄고, 기원전 3천년기 중반부터는 초창기 제국들의 형성으로 이끌었다. 2천년기에, 지중해 동부 해안 지대는 레반트 지역 (가나안)의 도시 국가들을 두고 경쟁하던 히타이트와 이집트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지중해 주변 지역이 죄다 비옥한 지역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이 맞닿는 지점이라 고대로부터 페니키아인, 그리스인들이 활동하는 무역과 물산의 중심지였으며 많은 국가가 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였다. 본격적으로 이 지역을 완전 장악한 국가는 고대 로마였으며,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등장에 따라 이 지역은 양 진영 간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이 이어졌다. 로마 제국, 우마이야 왕조, 아글라브 왕조, 아말피 공화국, 피사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 시칠리아 왕국, 파티마 왕조 등이 중세 지중해를 주름잡고 그 지역의 패권 국가로 군림해 왔으며,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대서양 무역이 시작한 이후에도 서양 세계의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는 스페인과 오스만 제국이라는 근세 유럽의 양대 거인이 엉덩이를 깔고 있었던 지중해권이었다. 한때 오스만 제국이 해적 출신의 제독 하이르 앗 딘의 활약에 힘입어 프레베자 해전에서 기독교 함대를 격파하며 로마 제국 이후 다시 지중해의 패권을 잡을 뻔 했으나 레판토 해전 이후로 동지중해의 이익을 차지하는 데 만족해야 했고, 서지중해의 패권은 막강한 스페인과 제노바, 토스카나 등 이탈리아계 제후국들이 나눠 먹어 16세기~17세기에 걸쳐 마치 현대의 냉전을 방불케 하는 메시나 해협을 경계로 하는 지중해의 양분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막상 이런 식으로 지중해가 잠잠해지고 나니 이후 무역의 중심이 북해와 대서양으로 옮겨감에 따라 과거와 같은 중요성이 부각되진 않았다.

19세기 무렵에 유럽 국가들은 대대적으로 훨씬 강력하였고, 북아프리카를 식민화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1830년에 알제리를 그리고 이후에는 튀니지를 장악하면서 세력을 남쪽으로 투사했다. 영국은 1882년에 이집트의 지배권을 획득했다. 수에즈운하가 이 시기에 개통되었으며, 아시아, 동아프리카, 유럽에 있어서 광범위한 영향이 있었다. 지중해 국가들은 짧은 거리 때문에 선호되었고, 또한 트리에스테와 같은 항구 도시들은 중유럽과 북유럽으로 직접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붐을 이루었다. 이탈리아는 1911년에 오스만한테서 리비아를 정복했다. 그리스는 1832년에 독립을 획득했다. 오스만 제국은 결국에 제1차 세계대전 때 붕괴했고, 오스만의 영토는 프랑스와 영국 등에 잘려나갔다. 넓은 오스만 제국의 잔재국은 1923년에 독립국 터키가 되었다. 유고슬라비아는 제1차세계대전 종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부터 만들어졌다.

20세기 전반기 동안에 지중해는 이탈리아 왕국의 확장의 중심이었고, 추축국과 연합국 간의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전투가 벌어진 주요 지역 중 하나였다. 세계대전 이후 시대는 동부 지중해의 증가하는 활동이 특징이었으며, 이때 동부 지중해에서 해상 활동들이 현재도 진행중인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일부를 형성하고 터키가 키프로스의 북부를 점령하였다. 냉전의 긴장은 지중해를 친미와 친소 진영으로 갈라놓았고, 터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는 NATO 회원국이었다. 시리아는 사회주의 국가이자 친소 정권이었고, 1971년에 동의를 통해서 소련 측에 소련 해군을 위한 항구를 내주었다. 유고슬라비아는 공산주의 국가였지만 친소련도 친미국 측도 아니었다. 이집트는 나세르 정권 시기에 소련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사다트 정권 시기에 미국의 영향권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모두 막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았다. 미해군은 냉전기에 미 제6함대의 지중해 기지를 세웠다.

오늘날, 지중해는 유럽 연합의 남쪽 경계이고 전세계에서 무역이 가장 활발한 지역 중 하나다. 몰타의 총리는 익사한 많은 이민자들 때문에 지중해를 ‘공동 묘지’라고 묘사한 바 있다. 2013년 람페두사 이민자 난파 사건 이후로, 이탈리아 정부는 이민자들을 구조하고 이민자들의 불법 이민을 중계하는 브로커들을 체포하기 위한 군사 및 인도 작전인 ‘우리의 바다 작전’을 승인함으로써 지중해에 대한 순찰 활동 목적의 국가 정책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5]

연안 국가

총 22개국이 지중해에 접해있다.

지중해 지도

동영상

각주

  1. 지중해〉, 《위키백과》
  2. 지중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지중해(세계지명 유래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4. 지중해〉, 《나무위키》
  5. 지중해의 역사〉, 《위키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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