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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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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체코어: Československo, 슬로바키아어: Česko-Slovensko)는 1918년부터 1992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을 제외하고) 중앙유럽에 있었던 공화국이다.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로 나뉘었다.

개요[편집]

  • 수도: 프라하
  • 면적: 127,900km²(1992년)
  • 인구: 15,600,000명(1992년)
  • 공용어: 체코어, 슬로바키아어
  •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1992년)

체코슬로바키아민족도 같고, 언어도 비슷하고, 문화도 비슷하지만 중세 시절의 대 모라비아 왕국 이후 1918년 이전까지는 대부분 다른 나라로 지내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대 모라비아 왕국이 동쪽에서 카르파티아산맥을 넘어온 마자르족에게 멸망한 후 체코에는 보헤미아 왕국이라는 독립 국가가 들어섰지만 슬로바키아는 그러지 못하고 마자르인들이 세운 헝가리가 차지했기 때문이다. 합스부르크 제국 시기에는 제국의 틀 안에서 한 나라에 속했다고 볼 수 있지만, 제국 시기에도 체코는 보헤미아 왕국, 슬로바키아는 헝가리 왕국 소속이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1918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진후 약 70년 간 체코슬로바키아로 통합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를 국명으로 사용한 정체는 총 다음과 같다.

역사[편집]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편집]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의해 왕관이 윤허된 보헤미아 왕국 - 체코와, 천년 동안 헝가리의 일부로서 지배되었던 슬로바키아를 합쳐서 만든 나라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Československá republika)으로 독립하였다.

전후 전간기 동안 독일인 문제로 위기를 맞았으나 연정의 형식을 통해 독일인들을 권력 집단의 주요 축으로서 끌어들임으로서 민족적 불만을 누그러뜨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 성립 이후 본국에서의 막대한 후원을 등에 업은 수데텐 독일당이 득세하기 시작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일부가 된 이래 독일인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특히 30년 전쟁으로 이런 이주가 가속화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성립 당시에는 독일인이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는데, 특히 독일과 국경을 이루는 주데텐란트에는 많은 독일인들이 거주하였다. 나치 독일은 수데텐 독일당을 이용해 독일인들을 자극하여 말썽을 일으키게 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일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는 선전을 하며 전쟁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미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흡수당하였던 전적이 있었으므로 위협의 메시지는 분명하였고 이 일로 인해 또다시 전쟁을 발생시키고 싶지 않았던 영국네빌 체임벌린 내각은 재빠르게 움직여 아돌프 히틀러와 직접 대면하였으나 협상을 원치 않았던 히틀러는 주데텐란트를 모두 내주도록 해주겠다는 협상 조건을 묵살하고 무조건 무력을 동원해 점령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영국프랑스 모두를 경악에 빠뜨렸다. 결국 체임벌린과 프랑스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이탈리아가 제안하고 중재자를 자처한 뮌헨 회담에 참석하여 나치 독일과 '협상', 수데텐란트를 독일 국방군이 직접 점령하는 데에 동의하고 체코슬로바키아에 압력을 넣었다.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배제되었던 이 회담의 결과에 굴복한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 독일에 수데텐란트를 할양했을 뿐만 아니라, 인종 지도에 따라 헝가리에 슬로바키아 남부 지역과 루테니아를, 폴란드에 테셴을 내주었다.

체코슬로바키아 제2공화국[편집]

뮌헨 협정 이후 제2공화국이 선포되고, 사임한 에드바르트 베네시를 대신해 에밀 하하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주데텐란트를 빼앗긴 체코슬로바키아는 더 이상 독일에 대항할 능력이 전무했다. 주데텐란트에는 독일과의 전쟁을 대비해 국경 요새가 건설, 확장되어 소(小)마지노라고 부를 만한 수준에 이르렀었는데, 이것들을 모조리 빼앗긴 것이다. 결국 체코슬로바키아는 이른바 통일당이라는 것을 유일 집권당으로 삼아 독재 국가화하고, 중앙은행의 준비금을 베를린으로 옮기는 등,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나치에 완전히 종속되어 사실상 나치 독일의 괴뢰국이 되었다.

이 때를 틈탄 슬로바키아 민족주의자들의 압력에 의해 체코-슬로바키아로 국가가 개편되기 시작하였으나 주데텐란트를 복속한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은 나치 독일은 슬로바키아 민족주의자들을 사주, 이용하고 이들이 체포되자 즉시 군대를 움직여 슬로바키아 민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남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마저 병탄했다. 이후 슬로바키아를 분할시켜 1939년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이란 괴뢰국을 성립시키는 한편 나머지 영토는 형식적으로는 체코슬로바키아를 계승하는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을 설치했다. 후에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가 결성되어 영국의 도움을 받아 연합국에 가담하여 추축국에 대항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 제3공화국[편집]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항복함으로서 해방이 되었지만 같은 시기 소련군이 영내로 진주하였다. 그리하여 전쟁 이전 헝가리 왕국에 빼앗겼던 카르파티아-루테니아 지방은 우크라이나인이 거주하던 지역을 빌미로 다시 찾지 못하고 소련(우크라이나 SSR)에게 빼앗겼다.

전쟁이 끝난 직후, 망명 정부 인사들이 주축이 된 신 정부가 수립되었다. 제2공화국과 망명 정부에서 대통령을 했던 베네시가 다시 대통령으로 재추대되었고, 자유주의 정당 4곳과 사회주의 정당 4곳이 좌우합작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공산당은 원내 1당을 차지하며 연립정부의 추축을 맡았다.

1947년 체코가 마셜플랜을 거절하면서 공산당의 지지율이 추락하자 결국 초조해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쿠데타를 지시했다. 2월 21일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행동을 개시했고, 소련 대사 발레리안 조린은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그 결과 2월 25일 에드바르트 베네시 대통령이 공산당이 장악한 정부를 인정함으로써 제3공화국은 붕괴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제4공화국, 사회주의 공화국[편집]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인민민주주의 헌법에 바탕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 제4공화국)을 출범하면서 국회의원 선거를 편파적으로 실행하여 단독내각을 구성했는데, 정보기관을 수족으로 부리는 정보통치를 실행하면서 일당 우위 정당제를 바탕으로 주권의 찬탈에 필요한 정치공작(법전의 전면개정과 상공광업의 국유화)을 계속 진행했으며, 1960년 7월 11일에 이르러 사회주의 신헌법을 바탕으로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국했다.

1968년에는알렉산데르 둡체크가 집권하게 되는데, 그는 사회주의 정권의 개혁파였으며 1968년 1월에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제1서기로 취임했다. 그는 정치 개혁, 자유화를 추구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소비에트 연방은 바르샤바 조약의 회원국들과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였다. 이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프라하의 봄이다.

1969년에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연방제를 채택하면서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성립했는데, 소비에트 연방의 압력으로 실각한 둡체크를 대체하여 구스타우 후사크(Gustav Husak)가 1969년 4월부터 1987년 12월까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서기장과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의 대통령을 겸직하면서 오랫동안 집권했다. 1987년 12월부터 밀로시 야케시(Miloš Jakeš)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서기장으로 취임했으나, 1989년 11월의 벨벳 혁명으로 인해 공산정권은 붕괴되었으며, 1990년 4월 1일,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으로 바꾸며 멸망한다.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편집]

냉전이 종결되고 1989년 11월 동유럽 혁명 결과 동년 12월 바츨라프 하벨이 새 대통령에 선출되어 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1990년 3월 헌법 개정으로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은 해체되고 국호를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으로 바꾸었으며 1991년 6월에는 체코 주둔 소련군도 철수를 완료했다.

하지만 곧 체코 정치세력과 슬로바키아 정치세력 간의 일련의 알력을 빚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국명 분쟁이지만, 실제로 문제가 되었던 점은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소속국의 지위와 국체였다. 동구권 붕괴와 경제적 혼란 속에서 급속한 개혁이 필요했던 시점이었는데, 체코슬로바키아 양자의 인정을 모두 받아야 했던 당시 연방제 내에서는 수틀리면 어떤 개혁 시도든 쉽게 봉쇄될 수 있었다. 최대한 빨리 신자유주의 개혁을 단행하여 유럽연합 가입을 이룩하려고 했던 체코와, 상대적으로 EU나토 가입에 별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시장 개혁과 정부 역할 축소에 반발했던 슬로바키아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특히 상대적으로 경제가 낙후된 슬로바키아 입장에서 체코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은 1992년 12월 31일 자정을 기해 해체되었으며 1993년 1월 1일부로 체코슬로바키아는 완전히 별개의 국가분리되었다. 양국은 협정에 따라 당시 인구 비율이었던 2:1로 모든 걸 나눠 가졌다. 심지어 국채까지. 기존의 UN 회원국 지위도 어느 한쪽이 승계하지 않고 아예 말소 처리하고 새로 가입할 정도로 철저하게 청산 절차를 밟았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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