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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쾨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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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쾨펜

블라디미르 쾨펜(Wladimir Peter Köppen, 1846년 9월 25일 ~ 1940년 6월 22일)은 러시아 태생의 독일 기상학자다. 쾨펜(Köppen)이라고도 부른다. 식물의 분포가 기후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는 것에 주목하여 세계의 기후 분류법을 고안하였고, 항해자를 위한 해양 기상도·항해 기상 편람 따위를 편집하였다. 그는 러시아에 거주하던 독일인 과학자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다. 전공은 식물학이었으나, 젊은 시절부터 기상학과 기후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1875년부터 독일 해양 기상대에서 44년간 일했다. 또한, 그는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 잘 알려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의 독일계 러시아인 지리학자, 기후학자, 기상학자이며 이후 독일로 재이주했고 생애 말년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시간을 보냈다. 쾨펜의 사위는 대륙 이동설을 주장한 기상학자 알프레트 베게너이다. 쾨펜은 식물의 분포가 기후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고 생각하여 열대기후, 건조기후, 온대기후, 냉대기후, 한대기후, 고산기후 6개의 기후를 주장했다. 이 기후는 널리 쓰이는 기후법이나, 외국에서는 온대기후와 냉대기후의 기준을 -3도에서 0도로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기온뿐만 아니라 강수량으로도 기후 분포를 구분해서 습윤기후, 건조기후 등으로도 나누었다.[1][2]

생애[편집]

쾨펜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하였다. 러시아에서 독일인 부모인 민족지학자 피터 폰 쾨펜(Peter von Köppen)과 Alexandrine(née von Adelung) 사이에서 태어나 크림(Krim) 반도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때에도 그는 식물과 식물이 자라는 기후대 사이의 연관성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나중에 상트페테르부르크, 하이델베르크,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공부했고, 1870년에 그곳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라이프치히대학을 졸업한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앙물리관측소에 근무하면서 주로 일기도를 작성하였다. 1872년부터 1875년까지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기상청에 근무했으며 러시아 지리학회의 비서이기도 했다. 1875년 그는 독일로 이주하여 함부르크의 독일 해양 기상대로 직장을 옮겨 폭풍경보 등의 일을 맡았고, 고층기상 관측을 위해 연(鳶)날리기 시설을 관측소에 설치하였다. 그는 Deutsche Seewarte에서 당시 새로 창설된 해양 기상대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1919년까지 근무했다. 또한, 1906년 12월 8일에 그는 해군 참모총장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1892년 2월 1일에 태어난 그의 딸 Else는 1913년 독일의 극지 탐험가 알프레트 베게너(Alfred Wegener)와 결혼했다. 쾨펜은 계획된 언어인 에스페란토를 위한 캠페인을 벌였고 Scienca Revuo 와 Germana Esperantisto 에 이 언어로 된 기사를 출판했다. 1919년에 정년퇴직한 후로는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에서 살았는데, 94세의 고령으로 사망할 때까지 저술에 종사하였다. 기상학에 대한 연구가 많았는데, 특히 1918년에 발표한 '쾨펜 기후구분'은 세계 각지의 기후를 11지역으로 구분하여 그것을 기호로 나타낸 것으로, 간편하기 때문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그 밖에 역(曆)의 개량, 에스페란토의 보급에도 힘썼다.

쾨펜은 은퇴 이후 여러 저서를 집필했는데, 그 중에서 《지구의 기후(Die Klimate der Erde)》와 《지질 시대의 기후(Die Klimate der Geologischen Vorzeit)》가 잘 알려져 있다. 《지구의 기후》에서는 현재에도 세계의 기후 구분으로 이용되는 쾨펜의 기후 구분을 언급하였고, 《지질 시대의 기후》는 그의 사위이며 대륙 이동설을 주장한 알프레트 베게너와 함께 집필한 책이다. 또 그는 에스페란토 보급에 힘쓴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쾨펜은 94세까지 장수하였고 오스트리아에서 여생을 마쳤다.[1][3][4]

명예[편집]

1922년에 그는 프로시아 과학 아카데미(Preußische Akademie der Wissenschaften)에 입학했다. 1925년에 그는 괴팅겐 과학 아카데미(Götting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gewählt)의 해당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36년에 그는 레오폴디나(Leopoldina gewählt)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이 소행성(52295)은 조지아의 북쪽 해안에 있는 쾨펜 포인트와 남극 섀클턴 산맥에 있는 쾨펜 빙하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4]

주요 활동[편집]

쾨펜은 독일 해양 기상 서비스와 해양 기상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500개 이상의 출판물을 출판했는데, 주로 해양과 대륙의 기상학적 보장과 기후 조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4]

쾨펜의 기후구분[편집]

쾨펜에 따른 세계의 기후 지역 구분

쾨펜 기후구분 또는 쾨펜-가이거 기후 구분(Köppen-Geiger classification system)은 독일/러시아의 기후학자 블라디미르 쾨펜이 1884년에 발표하고, 1954년 루돌프 가이거(Rudolf Geiger) 등이 참여하여 수정, 개량된 지구의 기후 구분법이다. 흔히 '쾨펜의 기후 구분' 또는 그 절대적 지위에 힘입어 단순히 '기후 구분', '기후 분류'만으로도 불린다. 쾨펜의 기후 구분은 식생의 분포가 기후 조건을 가장 잘 반영한다는 점을 가정하여 기온과 강수량, 강수의 계절성이라는 기후요소를 통해 기후를 경험적으로 분류하였으며, 경험적 기후 구분이 기원적 기후 구분보다 용이하다는 점에서 학계와 대중을 가리지 않고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분류가 되었다.

역사

최초 발표는 1884년이었으나, 쾨펜 자신도 1918년, 1936년 등 몇 번에 걸쳐 개정하였고, 후일 정밀한 지리 및 식생 데이터가 축적됨에 따라 1954년 독일 기후학자인 루돌프 가이거(Rudolf Geiger)와 볼프강 폴(Wolfgang Pohl) 등이 이 체계를 개정하였다. 오늘날 사용되는 쾨펜 기후 구분은 수정된 구분법이며, 초기 쾨펜의 기후 구분과 구별하기 위해 '쾨펜-가이거 기후 구분' 또는 '쾨펜-가이거-폴 기후 구분'으로 부르기도 한다. 독일어로 출시된 1936년판 핸드북을 보면 41~43쪽에 세부 표기들이 보이는데, 현재는 쓰이지 않는 것들이다.

변형된 구분법으로 트레와다(Trewartha) 구분법과 크루츠버그(Creutzburg) 구분법 등이 있다. 트레와다 기후 구분은 쾨펜의 구분을 토대로 글렌 트레와다(Glenn T. Trewartha)가 그 식생 분포를 특히 북아메리카에 맞게끔 수정한 것이다. 그가 미국인인 만큼 미국의 기후에서 많은 수정이 가해졌다. 이 기후 구분법의 실용적인 의의는 고산기후(Highland Climate)를 정의한 데에 있다. 원래 쾨펜-가이거 기후 구분에는 고산기후가 정의되어 있지 않지만, 최근의 기후 구분표에서는 부분적으로 트레와다 기후 구분의 고산기후 구분을 인용하여 폭넓게 구분하는 표가 늘어났으며, 많은 교육용 자료에서도 고산기후를 언급한다.[5]

평가

쾨펜의 기후 구분은 분류 기준이 간결, 명확하고 식생, 풍토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어, 현재에도 기후, 산업, 문화, 농업을 논하는 데 있어 빠뜨릴 수 없다. 그러나 식생에만 주목하고 있어 인간 생활등의 감각에 친숙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기후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6]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1.0 1.1 블라디미르 쾨펜〉, 《위키백과》
  2. 블라디미르 쾨펜〉, 《나무위키》
  3. 쾨펜〉, 《두산백과》
  4. 4.0 4.1 4.2 "Wladimir Köppen", Wikipedia
  5. 쾨펜의 기후 구분〉, 《나무위키》
  6. 쾨펜의 기후 구분〉,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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