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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환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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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환화폐이나 은 같은 본위화폐에 따라 가치를 설정해 놓은 화폐로서 태환화폐는 언제나 중앙은행에서 본위화폐로 교환을 받을 수 있다.

본위화폐가 지닌 가치가 너무 크고 운반 등 실질적인 거래측면에서도 사용하기가 힘들어 지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태환지폐가 나왔다. 이는 은행등에서 발행하는 지폐로서 이를 갖고있으면 은행에서 이 지폐에 적힌만큼의 금으로 바꿔주는 것을 약속하고서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게된 화폐이다.

달라의 태환지폐

브레튼우즈 협정[1]에서 달러으로 바꿀 수 있는 태환지폐로 하는 것을 조건으로 금과 같이 국제거래의 기준으로 만들면서 세계시장에서 기축통화가 되었다.

금본위제가 거의 사라져가고 금의 생산량이 줄면서 또한 한 국가가 보유하고 있을수 있는 돈이 그 나라의 금의 보유량에 의해 결정 되었기 때문에 시대에 따른 경제현상에 맞는 통화정책을 펼 수 없었다. (통화정책은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을 조절하여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입니다.)

70년대 여러 나라에서 태환요청이 들어 오면서 베트남 전쟁으로 힘들어진 미국은 그만큼의 금을 반환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미국은 금으로의 태환을 중지하고 달러 그 자체가 가치를 지니는 정부지폐로 전환시켰다. 따라서 미국은 그에 해당하는 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고 달러를 가진 국가들도 달러 자체가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국제 무역을 할수 있었다.

중국 사례

1994년 6월 가트(Gatt) 가입 이후 중국은 외환태환권(외국인용)과 인민폐(중국 국민용)를 함께 사용하던 것을 단일화시켰다. 따라서 현재는 인민폐만 통용되고 있으며 그 이전의 태환권은 사용이 금지 되었다.

중국은 `94.1.1부로 이중환율제를 폐지하고 단일 변동 환율제를 1994년 1월 1일 미국 달러당 인민폐 변동환율을 8.7元으로 첫 공시하였다. 전에 공정환율이 약 5.7元이었음에 비추어 인민폐의 실질가치가 33.3% 평가 절하된 것이다. 중국정부는 새로운 환율관리제도의 가동을 위한 준비단계로 1월 1일 서방선진국의 은행간 외환시장과 같은 기능을 하는 "中国外汇交易中心"을 상해에 개설하고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은 장차 외화교역중심을 통한 전날의 은행간 외환수급상황에 기초하여 인민폐의 대미 달러 환율 및 기타 주요 통화와의 교환비율을 매일 발표하고 국가지정 외환 취급은행들은 인민은행이 결정한 변동폭의 범위 내에서 외화를 매매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외국인을 대상으로 유통되어 온 외화태환권(FEC) 발행을 중단하고 최종 교환기한을 1995년 6월말까지 제정하였으나 외화태환권 교환곤란을 감안 최종 교환기한을 1996년 6월 30일까지 연기하였다.

1996년 4월 1일부로 신규 외환관리법을 시행하였는데 이는 중국 외환관리법규를 정비함과 동시에 국제 수지 균형을 유지하고 국제무역 발전을 촉진하며 인민폐의 경상항목 하에서의 태환을 추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1996년 12월 1일부로 IMF 8조국으로 이행, 경상항목하 인민폐 자유태환화를 실현함로서 상품무역과 서비스무역, 외채이자 상환, 외국인투자기업의 이윤송금 등에 대한 직접적 외환통제에서 간접관리로 전환하였다. 1997년 하반기 금융위기로 동남아국가들의 통화가치가 대폭 하락되고 대외경제가 부진하여 화폐절하 압력이 거세지고 있으나 현 정부는 인민폐환율 안정을 1998년이래 기본정책의 하나로 정하고 지금까지 인민폐환율 안정을 고수하고 있다.

각주

  1. 브레튼 우즈 체제〉, 《위키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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