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생산 시스템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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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노 다이이치.jpg|썸네일|200픽셀|'''[[오노 다이이치]]'''(大野耐一) 토요타 생산 시스템의 창시자]]
 
  
 
'''토요타 생산 시스템'''(Toyota Production System)은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인 '''[[토요타]]'''(Toyota)의 독창적인 생산 [[시스템]]이다. 영어 약자로 '''TPS'''(티피에스)라고 한다. 토요타 생산 시스템은 20세기 초 미국의 [[헨리 포드]](Henry Ford)에 의해 완성된 [[대량생산]] 방식이 개성과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시장 여건에서 더 이상 먹혀들지 않으면서 개발된 토요타 자동차의 독창적인 시스템이다. 이 생산방식은 질과 양 그리고 타이밍의 조화 속에 철저한 원가절감을 실현함으로써 [[오일쇼크]]와 [[엔고]] 속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토요타는 TPS를 개발하여 도입한 덕분에 1인당 부가가치 1,800만엔, 총재고일수 3일, 생산리드타임(자재투입에서 완성 후 출고소요시간) 10시간이라는 기록을 달성해 세계 산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토요타 생산 시스템'''(Toyota Production System)은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인 '''[[토요타]]'''(Toyota)의 독창적인 생산 [[시스템]]이다. 영어 약자로 '''TPS'''(티피에스)라고 한다. 토요타 생산 시스템은 20세기 초 미국의 [[헨리 포드]](Henry Ford)에 의해 완성된 [[대량생산]] 방식이 개성과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시장 여건에서 더 이상 먹혀들지 않으면서 개발된 토요타 자동차의 독창적인 시스템이다. 이 생산방식은 질과 양 그리고 타이밍의 조화 속에 철저한 원가절감을 실현함으로써 [[오일쇼크]]와 [[엔고]] 속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토요타는 TPS를 개발하여 도입한 덕분에 1인당 부가가치 1,800만엔, 총재고일수 3일, 생산리드타임(자재투입에서 완성 후 출고소요시간) 10시간이라는 기록을 달성해 세계 산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자동차 배너}}
 
  
 
==등장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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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포드시스템===
 
===미국의 포드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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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Ford)의 창업주인 헨리 포드 이름 뒤에 주의(ism)를 붙인 게 포디즘(Fordism)이다. 포드의 경영 사상이란 의미로, [[포드시스템]]이라고도 불린다. 20세기 초 생산 표준화와 컨베이어 시스템을 활용, [[자동차]]를 대량생산함으로써 포드는 세계 일등이 됐다. 자동차 값도 대폭 낮춰 자동차 대중화시대를 개막한 브랜드였다. 그러나 대량생산과 저가 제품 생산은 포드만의 상징은 아니었다. [[존 록펠러]](John Rockefeller)<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4_D._%EB%A1%9D%ED%8E%A0%EB%9F%AC 존 D. 록펠러]〉, 《위키백과》</ref>나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ref>〈[https://ko.wikipedia.org/wiki/%EB%8D%B0%EC%9D%BC_%EC%B9%B4%EB%84%A4%EA%B8%B0 데일 카네기]〉, 《위키백과》</ref> 등 같은 시대의 대기업가들도 마찬가지였다.<ref>MIDAS, 〈[https://blog.naver.com/eqstory/130080032734 초심을 읽은 욕심, 도요타]〉, 《네이버 블로그》, 2010-02-07</ref> 하지만 포드에만 유일하게 주의(ism)가 붙은 건 인간 존중이라는 경영철학 때문이었다. 1914년 실시한 최저임금 5달러제가 단적인 예다. 임금을 무려 250%나 올렸다. 사기를 진작시켜 더 많이 생산토록 한다는 계산도 있었지만 이윤을 종업원에게 되돌리겠다는 차원이었다. 다른 기업들도 따라 하는 등 파장도 대단했다.<ref name='김영욱'>김영욱 기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4002686#home 도요타와 포드, 일등의 비극]〉, 《중앙선데이》, 2010-02-07</ref> 1950년 봄, 일본이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시기에 토요타의 자동차 생산을 담당하던 [[도요다 에이지]](豊田 英二)<ref>〈[https://ko.wikipedia.org/wiki/%EB%8F%84%EC%9A%94%EB%8B%A4_%EC%97%90%EC%9D%B4%EC%A7%80 도요다 에이지]〉, 《위키백과》</ref>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포드의 공장을 방문했다. 그의 목적은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조립라인에서 작업을 하던 거대한 로그공장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공장을 방문한 뒤에 도요타 에이지가 내린 결론은 포드의 대량생산 방식이 [[일본]]에서는 결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선 일본의 자동차 수요는 [[미국]]처럼 대량 소비가 가능할 정도로 많지 않았다. 또 일본 사람들은 한가지 모델에 만족하기보다 다양한 모델을 찾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전후의 일본 경제에서는 거대한 공장과 같은 높은 설비투자를 할 수가 없었으며, 공장의 노동자들도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단순 조립 노동에 만족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부품을 정교하게 깎고 여러 종류의 금형을 제작해야 했다. 원래 이 모든 것은 숙련된 장인과 노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나, 헨리 포드는 인간으로부터 이 숙련을 빼앗아 이를 기계에 부여했다. 즉 포드의 공장에는 숙련된 기계인 전용기계들과 탈숙련된 단순 조립 노동자들이 존재했던 것이다.<ref>Emblem, 〈[https://blog.naver.com/bestmin21/60204142936 TPS(Toyota Process System)의 도입]〉, 《네이버 블로그》, 2013-11-24</ref> 그런데 인간의 숙련노동을 대체한 포드의 전용기계는 매우 복잡하고 비쌌으며, 이를 설치하거나 바꾸는 데에 많은 설비투자가 필요했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포드가 [[모델 T]]에서 [[모델 A]]로 생산라인을 바꾸는 데 오랜 시간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ref name='홍성욱'>서울대학교 홍성욱 교수·과학기술사,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59037.html (기술속사상) 자동차 역사 바꾼 도요타의 미국 견학/홍성욱]〉, 《한겨레》, 2006-09-21</ref>
 
[[포드]](Ford)의 창업주인 헨리 포드 이름 뒤에 주의(ism)를 붙인 게 포디즘(Fordism)이다. 포드의 경영 사상이란 의미로, [[포드시스템]]이라고도 불린다. 20세기 초 생산 표준화와 컨베이어 시스템을 활용, [[자동차]]를 대량생산함으로써 포드는 세계 일등이 됐다. 자동차 값도 대폭 낮춰 자동차 대중화시대를 개막한 브랜드였다. 그러나 대량생산과 저가 제품 생산은 포드만의 상징은 아니었다. [[존 록펠러]](John Rockefeller)<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4_D._%EB%A1%9D%ED%8E%A0%EB%9F%AC 존 D. 록펠러]〉, 《위키백과》</ref>나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ref>〈[https://ko.wikipedia.org/wiki/%EB%8D%B0%EC%9D%BC_%EC%B9%B4%EB%84%A4%EA%B8%B0 데일 카네기]〉, 《위키백과》</ref> 등 같은 시대의 대기업가들도 마찬가지였다.<ref>MIDAS, 〈[https://blog.naver.com/eqstory/130080032734 초심을 읽은 욕심, 도요타]〉, 《네이버 블로그》, 2010-02-07</ref> 하지만 포드에만 유일하게 주의(ism)가 붙은 건 인간 존중이라는 경영철학 때문이었다. 1914년 실시한 최저임금 5달러제가 단적인 예다. 임금을 무려 250%나 올렸다. 사기를 진작시켜 더 많이 생산토록 한다는 계산도 있었지만 이윤을 종업원에게 되돌리겠다는 차원이었다. 다른 기업들도 따라 하는 등 파장도 대단했다.<ref name='김영욱'>김영욱 기자, 〈[https://www.joongang.co.kr/article/4002686#home 도요타와 포드, 일등의 비극]〉, 《중앙선데이》, 2010-02-07</ref> 1950년 봄, 일본이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시기에 토요타의 자동차 생산을 담당하던 [[도요다 에이지]](豊田 英二)<ref>〈[https://ko.wikipedia.org/wiki/%EB%8F%84%EC%9A%94%EB%8B%A4_%EC%97%90%EC%9D%B4%EC%A7%80 도요다 에이지]〉, 《위키백과》</ref>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포드의 공장을 방문했다. 그의 목적은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조립라인에서 작업을 하던 거대한 로그공장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공장을 방문한 뒤에 도요타 에이지가 내린 결론은 포드의 대량생산 방식이 [[일본]]에서는 결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선 일본의 자동차 수요는 [[미국]]처럼 대량 소비가 가능할 정도로 많지 않았다. 또 일본 사람들은 한가지 모델에 만족하기보다 다양한 모델을 찾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전후의 일본 경제에서는 거대한 공장과 같은 높은 설비투자를 할 수가 없었으며, 공장의 노동자들도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단순 조립 노동에 만족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부품을 정교하게 깎고 여러 종류의 금형을 제작해야 했다. 원래 이 모든 것은 숙련된 장인과 노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나, 헨리 포드는 인간으로부터 이 숙련을 빼앗아 이를 기계에 부여했다. 즉 포드의 공장에는 숙련된 기계인 전용기계들과 탈숙련된 단순 조립 노동자들이 존재했던 것이다.<ref>Emblem, 〈[https://blog.naver.com/bestmin21/60204142936 TPS(Toyota Process System)의 도입]〉, 《네이버 블로그》, 2013-11-24</ref> 그런데 인간의 숙련노동을 대체한 포드의 전용기계는 매우 복잡하고 비쌌으며, 이를 설치하거나 바꾸는 데에 많은 설비투자가 필요했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포드가 [[모델 T]]에서 [[모델 A]]로 생산라인을 바꾸는 데 오랜 시간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ref name='홍성욱'>서울대학교 홍성욱 교수·과학기술사,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59037.html (기술속사상) 자동차 역사 바꾼 도요타의 미국 견학/홍성욱]〉, 《한겨레》, 2006-09-21</ref>
  
 
===JIT/자동화 아이디어===
 
===JIT/자동화 아이디어===
도요다 에이지는 미국과 일본을 비교한 뒤에 미국의 절반만 하자고 판단했다. 전쟁 때문에 황폐화된 일본에는 자원이 부족했고,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생산에 투입되는 모든 것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생각이었다. 절반의 장비와 기계, 절반의 노동력, 절반의 공장부지, 그렇지만 하나의 제품에서 새로운 제품으로 옮겨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절반으로, 절반의 설비투자로 신제품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생각은 얼핏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포드의 혁신이 거대한 설비투자 때문에 늦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했다. 토요타 회사의 엔지니어들은 이를 가능하게 할 기술혁신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우선 새로운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서 필요한 새로운 금형을 만드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토요타의 [[엔지니어]]인 [[오노 다이이치]](大野耐一)는 이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프레스 공정에서 간단한 금형교환기술을 찾는데 성공했다. 이는 생산을 유연하게 만들면서 새로운 모델을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었다. 신속하게 많이 생산해서 원가절감을 이루었던 포드의 대량생산의 이점에, 유연성과 양질의 제품 생산이라는 수공업생산의 이점을 결합한 혁신이었다. 토요타 생산방식의 핵심은 유연성에 있었다. 그렇지만 유연한 금형제작기술은 도요타 혁신의 끝이라기보다는 그 시작에 불과했다. 또 한번의 새로운 혁신은 전혀 예상치 않던 방향에서 찾아졌다. 오노 다이이치는 1956년에 미국을 방문했는데, 미국의 자동차 공장보다는 수퍼마켓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수퍼마켓은 물건을 고르는 구매자가 자신이 원하는 수량만큼의 물건을 집어 들고 계산을 하면 매니저가 빈 진열대를 재빨리 파악하고 이를 다시 채워넣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아는 상식적인 얘기지만, 일본에서 수퍼마켓을 구경하지 못했던 오노에게 미국의 수퍼마켓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는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서 물건이 채워지는 방식을 주시했고, 일본에 돌아와서 이를 자동차 생산에 응용했다. 기존의 자동차 생산은 부품의 공급에서 시작했다. 생산라인은 공급받은 부품을 조립해서 다음 라인으로 넘겼고, 그 다음 라인은 이를 받아서 다음 단계의 조립을 완성하는 식이었다. 앞 라인이 뒷 라인의 부품에 의존하다보니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어질 경우에 항상 재고가 문제가 되었다. 재고를 줄이는 것은 카이젠이라고 불리던 토요타 공장의 오랜 경영철학이었는데, 미국에서 돌아온 오노는 공장의 생산라인을 수퍼마켓의 진열대 식으로 바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소비자가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수퍼마켓 진열대에서 골라 들듯이, 한 생산라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부품만을 이전 생산라인으로부터 취사선택한다는 개념이었다. 모든 생산라인은 다음 생산라인을 위한 수퍼마켓이 되는 셈이었다.<ref name='홍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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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다 에이지는 미국과 일본을 비교한 뒤에 미국의 절반만 하자고 판단했다. 전쟁 때문에 황폐화된 일본에는 자원이 부족했고,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생산에 투입되는 모든 것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생각이었다. 절반의 장비와 기계, 절반의 노동력, 절반의 공장부지, 그렇지만 하나의 제품에서 새로운 제품으로 옮겨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절반으로, 절반의 설비투자로 신제품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생각은 얼핏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포드의 혁신이 거대한 설비투자 때문에 늦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했다. 토요타 회사의 엔지니어들은 이를 가능하게 할 기술혁신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우선 새로운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서 필요한 새로운 금형을 만드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토요타의 [[엔지니어]]인 오도 다이이치 이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프레스 공정에서 간단한 금형교환기술을 찾는데 성공했다. 이는 생산을 유연하게 만들면서 새로운 모델을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었다. 신속하게 많이 생산해서 원가절감을 이루었던 포드의 대량생산의 이점에, 유연성과 양질의 제품 생산이라는 수공업생산의 이점을 결합한 혁신이었다. 토요타 생산방식의 핵심은 유연성에 있었다. 그렇지만 유연한 금형제작기술은 도요타 혁신의 끝이라기보다는 그 시작에 불과했다. 또 한번의 새로운 혁신은 전혀 예상치 않던 방향에서 찾아졌다. 오노 다이이치는 1956년에 미국을 방문했는데, 미국의 자동차 공장보다는 수퍼마켓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수퍼마켓은 물건을 고르는 구매자가 자신이 원하는 수량만큼의 물건을 집어 들고 계산을 하면 매니저가 빈 진열대를 재빨리 파악하고 이를 다시 채워넣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아는 상식적인 얘기지만, 일본에서 수퍼마켓을 구경하지 못했던 오노에게 미국의 수퍼마켓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는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서 물건이 채워지는 방식을 주시했고, 일본에 돌아와서 이를 자동차 생산에 응용했다. 기존의 자동차 생산은 부품의 공급에서 시작했다. 생산라인은 공급받은 부품을 조립해서 다음 라인으로 넘겼고, 그 다음 라인은 이를 받아서 다음 단계의 조립을 완성하는 식이었다. 앞 라인이 뒷 라인의 부품에 의존하다보니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어질 경우에 항상 재고가 문제가 되었다. 재고를 줄이는 것은 카이젠이라고 불리던 토요타 공장의 오랜 경영철학이었는데, 미국에서 돌아온 오노는 공장의 생산라인을 수퍼마켓의 진열대 식으로 바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소비자가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수퍼마켓 진열대에서 골라 들듯이, 한 생산라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부품만을 이전 생산라인으로부터 취사선택한다는 개념이었다. 모든 생산라인은 다음 생산라인을 위한 수퍼마켓이 되는 셈이었다.<ref name='홍성욱'/>
  
 
===일본 토요타로의 적용===
 
===일본 토요타로의 적용===
토요타는 월 생산능력이 [[트럭]] 800대정도 수준의 미미한 생산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생산성은 미국 업계의 1/8에 불과한 것으로, 토요타는 오직 원가경쟁을 극복하고 [[미국]]이나 [[유럽]]의 자동차 판매가격보다 저렴하고 우수하며 다양한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였다. 미국 견학 이후 오노 다이이치는 다품종소량생산의 소비형태를 극복하는 첫 번째 방법은 자치적 자동화이며, 둘째로 미국의 슈퍼마켓 운영에서 [[JIT]](적시생산시스템, Just In Time)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에서는 다양한 제품을 제품별로 소량씩 생산하는 것과 자동차 모델이 바꾸리 때마다 작업교체 준비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그 경제성이 없었다. 따라서 작업교체 준비시간의 단축 및 생산평준화는 필수적이었다. 아울러 완제품 재고 감축을 위해 수요변화에 민감한 계획 생산시스템의 구축, 재공품 감축을 위해 생산공기의 단축, 원자재 및 부품재고의 감축을 위해 공급업자와 유대관계 개선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토요타는 원가경쟁력의 일환으로 제품의 부가가치에는 공헌이 없으나 비용, 유발 효과만 내재하고 있는 재고, 작업교체 준비시간, 스크랩, 불량품 등을 제거하여 기회손실 비용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재고절감 전략은 그 당시로서는 일반적으로 인정될 수 없었다. 재고는 수요예측치와 실수요의 차이에 대한 완충역할로 전후 생산공정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필수적으로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논리였으며,<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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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는 월 생산능력이 [[트럭]] 800대정도 수준의 미미한 생산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생산성은 미국 업계의 1/8에 불과한 것으로, 토요타는 오직 원가경쟁을 극복하고 [[미국]]이나 [[유럽]]의 자동차 판매가격보다 저렴하고 우수하며 다양한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였다. 미국 견학 이후 다이치오노는 다품종소량생산의 소비형태를 극복하는 첫 번째 방법은 자치적 자동화이며, 둘째로 미국의 슈퍼마켓 운영에서 [[JIT]](적시생산시스템, Just In Time)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에서는 다양한 제품을 제품별로 소량씩 생산하는 것과 자동차 모델이 바꾸리 때마다 작업교체 준비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그 경제성이 없었다. 따라서 작업교체 준비시간의 단축 및 생산평준화는 필수적이었다. 아울러 완제품 재고 감축을 위해 수요변화에 민감한 계획 생산시스템의 구축, 재공품 감축을 위해 생산공기의 단축, 원자재 및 부품재고의 감축을 위해 공급업자와 유대관계 개선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토요타는 원가경쟁력의 일환으로 제품의 부가가치에는 공헌이 없으나 비용, 유발 효과만 내재하고 있는 재고, 작업교체 준비시간, 스크랩, 불량품 등을 제거하여 기회손실 비용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재고절감 전략은 그 당시로서는 일반적으로 인정될 수 없었다. 재고는 수요예측치와 실수요의 차이에 대한 완충역할로 전후 생산공정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필수적으로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논리였으며,<ref>
 
임재화, 목진환,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12947164 도요타 생산방식(TPS)과 NEW JIT에 관한 이론적 연구]〉, 《산악경영연구》, 2006</ref> 재고는 회계쌍 부채가 아니라 자산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ref>연세대학교 정보산업공학과 이영훈·권순걸, 광운대학교 경영학과 이홍·이현, 포스코 경영연구소 김찬모, 〈[https://koreascience.kr/article/JAKO200729256809443.pdf 도요타생산방식의 효과적인 도입을 위한 방법론 연구]〉, 《대한산업공학회》, 2007</ref>
 
임재화, 목진환,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12947164 도요타 생산방식(TPS)과 NEW JIT에 관한 이론적 연구]〉, 《산악경영연구》, 2006</ref> 재고는 회계쌍 부채가 아니라 자산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ref>연세대학교 정보산업공학과 이영훈·권순걸, 광운대학교 경영학과 이홍·이현, 포스코 경영연구소 김찬모, 〈[https://koreascience.kr/article/JAKO200729256809443.pdf 도요타생산방식의 효과적인 도입을 위한 방법론 연구]〉, 《대한산업공학회》, 200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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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T 시스템===
 
===JIT 시스템===
토요타 생산방식의 대표적인 것이 토요타 키이치로가 제창한 [[JIT]](적시생산시스템)이다. JIT란 각 공정을 독립된 것으로 보지 않고, 모든 공정을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다. 1935년경 미국의 생산성은 일본의 아홉 배나 되었다. 토요타 기이치로에게 있어서 선진국의 자동차 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높고 가격이 낮은 일본의 독자적인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 착안점 중 하나가 저스트 인 타임, 즉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생산한다는 것이었다. JIT는 전망이 있는 자동차 산업에서의 공정마다 방대한 창고와 재고를 필요로 한다는 상황인식과 선진기업에 대항하기 위한 경영상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과제의식이 결부되어 생긴 것이다.<ref>qskyq22, 〈[https://blog.naver.com/qskyq22/40050836278 (생산운영관리)JIT(Just in Time) 도요타 생산시스템에 대하여]〉, 《네이버 블로그》, 2008-05-09</ref> 토요타 기이치로는 JIT의 개념을 정리한 두께 10cm 정도의 공정별 매뉴얼을 손수 작성하였다. 이 매뉴얼이 현재 토요타 생산방식의 기원이 되었고, 이것은 후에 오노 다이이치가 만든 간판 방식에 의한 토요타 생산 시스템으로 이어졌다. JIT은 토요타에서 개발한 일본의 독자적인 생산관리 시스템으로 철저한 현장주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고 기본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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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생산방식의 대표적인 것이 토요타 키이치로가 제창한 [[JIT]](적시생산시스템)이다. JIT란 각 공정을 독립된 것으로 보지 않고, 모든 공정을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다. 1935년경 미국의 생산성은 일본의 아홉 배나 되었다. 토요타 기이치로에게 있어서 선진국의 자동차 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높고 가격이 낮은 일본의 독자적인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 착안점 중 하나가 저스트 인 타임, 즉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생산한다는 것이었다. JIT는 전망이 있는 자동차 산업에서의 공정마다 방대한 창고와 재고를 필요로 한다는 상황인식과 선진기업에 대항하기 위한 경영상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과제의식이 결부되어 생긴 것이다.<ref>qskyq22, 〈[https://blog.naver.com/qskyq22/40050836278 (생산운영관리)JIT(Just in Time) 도요타 생산시스템에 대하여]〉, 《네이버 블로그》, 2008-05-09</ref> 토요타 기이치로는 JIT의 개념을 정리한 두께 10cm 정도의 공정별 매뉴얼을 손수 작성하였다. 이 매뉴얼이 현재 토요타 생산방식의 기원이 되었고, 이것은 후에 오노 다이아치가 만든 간판 방식에 의한 토요타 생산 시스템으로 이어졌다. JIT은 토요타에서 개발한 일본의 독자적인 생산관리 시스템으로 철저한 현장주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고 기본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양이 줄더라도 더욱 생산성을 올린다''' : '모두가 열심히 일해서 생산성이 200% 올랐다'라든지, '지금까지 100개 만들던 것을 120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생산성이 향상된 것이 아니다. 수가 80개로 줄더라도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두지 않으면 그 기업은 적정한 이익을 올릴 수 없게 되고 생존이 어렵게 된다.<ref>빠방, 〈[https://blog.naver.com/nikim99/140008298929 린(Lean) 경영방식2]〉, 《네이버 블로그》, 2004-12-03</ref>
 
* '''양이 줄더라도 더욱 생산성을 올린다''' : '모두가 열심히 일해서 생산성이 200% 올랐다'라든지, '지금까지 100개 만들던 것을 120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생산성이 향상된 것이 아니다. 수가 80개로 줄더라도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두지 않으면 그 기업은 적정한 이익을 올릴 수 없게 되고 생존이 어렵게 된다.<ref>빠방, 〈[https://blog.naver.com/nikim99/140008298929 린(Lean) 경영방식2]〉, 《네이버 블로그》, 2004-12-03</ref>
 
* '''필요한 것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만들어라''' : 고객의 니즈가 80개라면 80개만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상으로 보면 100개를 만들면 1개씩은 저렴하게 치게 된다. 또 100개를 사면 값을 깎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무심코 사버린다. 이래서 재고는 점점 늘어가게 되고, 이 재고 금액이 경영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JIT 방식의 도입이 경영상 많은 이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필요한 것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만들어라''' : 고객의 니즈가 80개라면 80개만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상으로 보면 100개를 만들면 1개씩은 저렴하게 치게 된다. 또 100개를 사면 값을 깎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무심코 사버린다. 이래서 재고는 점점 늘어가게 되고, 이 재고 금액이 경영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JIT 방식의 도입이 경영상 많은 이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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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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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테슬라 글자.png|썸네일|300픽셀|'''[[테슬라]]'''(Tes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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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일론 머스크.jpg|썸네일|200픽셀| '''[[일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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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일론 머스크.jpg|썸네일|200픽셀|'''[[일론 머스크]]'''(Elon Musk)]]
  
 
언젠가는 TPS의 ‘T’가 ‘[[토요타]](Toyota)’의 ‘T’에서 ‘[[테슬라]](Tesla)’의 ‘T’로 바뀌게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TPS하면 당연히 도요타 생산 시스템을 뜻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른바 테슬라 생산 시스템이 더 부각되고, 또 훗날 자동차 산업 역사·분석가들이 테슬라 방식을 개념화하고 또 이론화할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는 테슬라의 생산 스피드 때문이다. 테슬라의 증산이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테슬라의 제조 경쟁력이 다른 자동차 업계에 특히 위협적인 것은 테슬라가 이미 모빌리티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자체 구축했기 때문이다. 다른 업체들은 이제야 자사 [[전기자동차]]의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해야 하는 단계이지만, 테슬라는 자사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얹을 전기차만 빨리 더 많이 만들면 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의 테슬라 본사 공장은 원래 [[토요타]]와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공장인 뉴 유나이티드 모터스 매뉴팩처링(NUMMI)이었다. 테슬라는 이 공장을 2010년 토요타로부터 인수했는데, 당시 토요타의 운영인력과 노하우까지 받아들였다. 토요타 방식을 활용했던 테슬라는 2017년 [[모델3]]를 준비하면서 문제에 직면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개선을 반복하며 양산일정도 앞당겨야 했는데, 재고를 최소화하는 토요타 방식은 시간이 너무 걸려 도저히 양산일정을 맞추지 못했다는 것이다.<ref>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682124?sid=101 ‘도요타 웨이’ 지고 ‘테슬라 모드’ 뜨나… 머스크 “10년 뒤 年2000만대 양산”]〉, 《조선일보》, 2022-03-31</ref> 또 공정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직원이 [[USB]] [[메모리]]를 들고 공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작업으로 갱신해야 했는데, 공정 개선 때마다 개별 소프트웨어 변경이 늦어지거나 먹통이 되기도 했다. 테슬라의 해법은 새로운 생산시스템을 짜는 것이었다. [[로봇]] 수천 대의 업데이트를 자동화하는 툴을 자체 개발했다. 이후로 테슬라는 몇 주나 몇 개월이 아니라 며칠, 하루 만에도 제조라인 시스템 전체를 리셋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은 공장의 빠른 [[확장성]]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운영 소프트웨어만 제대로 구축하면, 공장이라는 [[하드웨어]]는 남들보다 더 빨리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테슬라 방식의 또 다른 강점은 생산시스템은 물론 핵심부품까지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다. 토요타처럼 부품 업체에 맡기고 이를 공급망의 마법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테슬라가 원하는 빠른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핵심부품을 내재화하면 제조 스피드가 빨라진다. 새로운 제품을 생산할 때 현장 팀은 수천 가지 세밀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부품을 외주로 돌리면 문제 해결을 위한 작업이 복잡해지고 부품사와 오가는 사이에 시간도 많이 걸리게 된다.<ref>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https://www.chosun.com/economy/int_economy/2022/03/31/CGFW6AHH6ZEODFBCYDKB74W4W4/ 도요타 생산방식 가고, 테슬라 생산방식이 온다 (최원석의 디코드)]〉, 《조선일보》, 2022-03-31</ref>
 
언젠가는 TPS의 ‘T’가 ‘[[토요타]](Toyota)’의 ‘T’에서 ‘[[테슬라]](Tesla)’의 ‘T’로 바뀌게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TPS하면 당연히 도요타 생산 시스템을 뜻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른바 테슬라 생산 시스템이 더 부각되고, 또 훗날 자동차 산업 역사·분석가들이 테슬라 방식을 개념화하고 또 이론화할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는 테슬라의 생산 스피드 때문이다. 테슬라의 증산이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테슬라의 제조 경쟁력이 다른 자동차 업계에 특히 위협적인 것은 테슬라가 이미 모빌리티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자체 구축했기 때문이다. 다른 업체들은 이제야 자사 [[전기자동차]]의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해야 하는 단계이지만, 테슬라는 자사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얹을 전기차만 빨리 더 많이 만들면 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의 테슬라 본사 공장은 원래 [[토요타]]와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공장인 뉴 유나이티드 모터스 매뉴팩처링(NUMMI)이었다. 테슬라는 이 공장을 2010년 토요타로부터 인수했는데, 당시 토요타의 운영인력과 노하우까지 받아들였다. 토요타 방식을 활용했던 테슬라는 2017년 [[모델3]]를 준비하면서 문제에 직면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개선을 반복하며 양산일정도 앞당겨야 했는데, 재고를 최소화하는 토요타 방식은 시간이 너무 걸려 도저히 양산일정을 맞추지 못했다는 것이다.<ref>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682124?sid=101 ‘도요타 웨이’ 지고 ‘테슬라 모드’ 뜨나… 머스크 “10년 뒤 年2000만대 양산”]〉, 《조선일보》, 2022-03-31</ref> 또 공정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직원이 [[USB]] [[메모리]]를 들고 공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작업으로 갱신해야 했는데, 공정 개선 때마다 개별 소프트웨어 변경이 늦어지거나 먹통이 되기도 했다. 테슬라의 해법은 새로운 생산시스템을 짜는 것이었다. [[로봇]] 수천 대의 업데이트를 자동화하는 툴을 자체 개발했다. 이후로 테슬라는 몇 주나 몇 개월이 아니라 며칠, 하루 만에도 제조라인 시스템 전체를 리셋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은 공장의 빠른 [[확장성]]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운영 소프트웨어만 제대로 구축하면, 공장이라는 [[하드웨어]]는 남들보다 더 빨리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테슬라 방식의 또 다른 강점은 생산시스템은 물론 핵심부품까지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다. 토요타처럼 부품 업체에 맡기고 이를 공급망의 마법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테슬라가 원하는 빠른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핵심부품을 내재화하면 제조 스피드가 빨라진다. 새로운 제품을 생산할 때 현장 팀은 수천 가지 세밀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부품을 외주로 돌리면 문제 해결을 위한 작업이 복잡해지고 부품사와 오가는 사이에 시간도 많이 걸리게 된다.<ref>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https://www.chosun.com/economy/int_economy/2022/03/31/CGFW6AHH6ZEODFBCYDKB74W4W4/ 도요타 생산방식 가고, 테슬라 생산방식이 온다 (최원석의 디코드)]〉, 《조선일보》, 2022-03-3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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