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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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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호의 모습
통일호 객차

통일호는 1955년부터 2004년 3월까지 운행된 한국의 여객열차이다. 개통 당시에는 완행·보통급행·급행 등을 압도하는 초특급 열차였으나, 새마을호가 등장하면서 급행으로, 비둘기호가 사라지면서 완행으로 바뀌었다. 2004년 3월 마지막 운행까지 전국 65개, 636개 역에서 운행되었다. 한국철도에 과거 존재했었던 열차등급의 하나이자, 원 특급열차의 이름이다.

개요[편집]

통일호는 한국철도에 존재했었던 열차등급의 이름으로 무궁화호의 아래 등급이자, 비둘기호의 상위등급에 해당하는 열차이다. 원래는 급행열차에 해당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 여러 선구에 걸친 운행을 했었으나, 비둘기호 도태 이후에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각역에 서는 보통열차의 기능을 하게 되었으며 운행구간도 통상 선구 내 반복 운전을 전제로 하게 되었다.

역사[편집]

통일호라는 명칭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55년부터이다. 당시로서는 가장 빠른 급행열차이자 객차(여객열차)에 편의상 붙인 명칭으로, 개통 당시에는 경부선 구간에서 완행·보통급행·급행 등을 압도하는 초특급 열차였으나, 1984년에 열차명 개정으로 통일호라는 명칭으로 전 구간에 운행을 시작했다.

1899년(광무 3) 경인선을 시작으로 한국에 철도가 개통된 이래 열차 이름은 여러 번에 걸쳐 변화를 거듭하였다. 1906년부터 융희호(隆熙號)로 불리다가 1936년 일본에서 시속 60㎞의 특급열차인 히카리호가 도입되어 부산-만주 구간을 운행하였다. 이어 일제에 의해 경성-부산만을 왕복하는 초특급 아카츠키호가 분리된 뒤, 8·15해방 후 조선해방자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1955년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통일호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이후 1963년 더 빠르고 경량화된 특급객차 115량을 일본으로부터 도입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60년 시속 95㎞의 무궁화호, 1969년 전기냉방이 갖추어진 관광호(새마을호)가 등장하면서 특급열차의 명성을 잃기 시작하였고, 1977년에는 새마을과 통일호 사이 상위등급으로 우등(무궁화호)이 등장하면서 위상은 더 낮아졌다. 결국 1984년 열차등급 개정 때 "특급"에서 "급행"으로 낮추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식당차 운영권이 한화플라자호텔로 넘어가면서 식당차가 없어졌다.또한 이 시기에는 비슷한 수준의 사양을 가지고 있던 비둘기호와 차량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일도 있었다.

초기에는 비둘기호와 같이 창문 개폐식에 선풍기만 달려있는 비냉방 객차였으나 70년대 이전에 제조된 구형객차를 제외한 객차를 80년대 중반에 일괄 에어컨을 달아 냉방개조로 바뀌게 되어 한결 쾌적해졌다. 무궁화호에 비해 낮은 운임에 거의 비슷한 수준의 정차역(사실 조금 더 많았다.)으로 서민을 대표하는 급행열차였다.

전성기인 1980년~1990년대 초반까지는 무궁화호보다 인기가 좋았으나, 서울~대전구간을 제외하고 적자로 유명했으며, 도로교통의 발달과 차량의 노후화로 인해 1993년부터 이용객수가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애초에 통일호를 타던 승객들은 싸서 타고 없으면 그나마 싼 거라는 생각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차량 노후화와 큰 관련은 없다. 이는 낮시간대에 운행하는 통일호 열차를 무궁화/새마을호로 승격한 것이 진짜 원인이다. 열차가 줄었는데 이용객수가 유지되는 것이 이상하다.

어쨌든 차량이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철도청에서 칼을 대기 시작했다. 1994년 시간표 개정 후 장거리 급행 통일호는 눈에 띄게 감편하였는데 메인 간선인 경부선이나 호남선, 전라선 등은 이때 통일호를 편도 기준 하루 2편성 정도만 남기는 등 대량 감축하고 무궁화호로 승격시켰다. 이때부터 장거리 구간의 주도권은 무궁화호에 넘겨주게 된다.

1997년 이후에는 완행열차비둘기호를 정선선을 제외한 나머지 노선에서 퇴출시킴에 따라 급행열차인 통일호가 비둘기호를 대체해야 했다. 따라서 중단거리 비둘기호는 통일호로 승격되었으며 1998년 2월 시간표 개정에서 이 작업이 마무리되나 싶었으나 당시 시기가 외환위기였고 워낙 항의가 빗발친 탓에 철도청은 1달만에 다시 일부를 환원하였고 그 해 12월까지 유지되었다. 일부는 장거리 통일호 폐지에 따라 남게 된 객차형이 투입되었고 나머지는 1996년부터 도입된 CDC 디젤동차가 투입되었다.

이후 1999년 6월 1일 시간표 개정을 거치면서 경부선을 비롯한 간선에서 장거리 통일호가 완전히 퇴출되면서 통일호는 비둘기호가 담당하던 중단거리 열차가 되었다. 이와 동시에 비둘기호는 정선선에서만 운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0년 11월 1일 시간표 개정을 맞아 비둘기호가 완전히 폐지되면서 정선선에도 투입되었다. 한 달 후인 12월 1일 동해남부선, 경춘선에 정기열차로 남아있는 급행 통일호가 폐지되었다. 다만 명절 임시열차나, 수학여행 학단수송용 전세열차일 때는 잠깐 부활하여 급행 등급으로 다녔으나 명절 임시 통일호 열차는 2002년 추석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그리고 2001년 7월 15일까진 경부선과 호남선에 1왕복씩 주말에 급행통일호가 다니기도 하였고 특대총괄제어중련이나 봉고기관차로 불리는 7000호대가 경부선 통일호를 견인하였다. 통일호가 주요간선의 급행열차로 다니던 시절엔 특실, 침대차, 별실을 달고 다녔으며 경부선,호남선,전라선 통일호는 무궁화호 스낵카를 달고 다니기도 했다. 더 이전인 1980년대만 해도 통일호 식당차라는 것이 존재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이 때문에 전산통일호(좌석지정)와 특정통일호(자유석)으로 분리되어 운행됐다. 전산통일호는 경춘선, 장항선, 충북선에서 운행됐다. 그 외의 지역은 특정운임구간으로 간주해(비둘기호의 승격으로 봄) 단거리인 경우에 한해 전산통일호보다 저렴한 운임에 각역정차하는 특정통일호가 다녔다. 사실 당시는 전산통일호의 최저운임거리가 100km여서 단거리도 그 거리에 의한 운임을 받았다. 제천역과 봉양역 구간의 경우 충북선의 전산통일호와 중앙선의 특정통일호가 공존하는 유일한 구간이었다.

물론 이 당시에도 리즈시절이 있었는데 그게 경의선이였다. 동차형은 임진강까지 들어갔지만, 객차형 통일호는 2000년대까지 특정통일호로 다니며 서울-문산까지 1500원을 받았었다. 오죽 수요가 많았으면, 15분 배차에 10량짜리 장대형으로 다녔을 정도. 이렇게 해도 출퇴근시간에 미어터지는 바람에 아침 6시 첫차 통일호나 저녁 6시 통일호부터는 각 역에다 역무원이 푸시맨 역할까지 해서 사람을 집어넣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 사람들의 주 목적지는 바로 일산역 이후의 구간이므로..

특정통일호 시발역에서의 좌석 쟁탈전은 경춘선뿐만 아니라, 다른 특정통일호 시발역에서도 있었고, 특히 제천역 착발 EEC 열차에서는 눈물겨울 정도였다. 통학생은 책상 같은 식탁이 있는 식당차, 보통 승객은 추가금 없이 특실을 이용하기 위해 이 두 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개표 즉시 전속력 질주가 일상이었다. 2001년 1월 1일부로 철도청이 통일호의 전산발매 폐지를 했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경춘선은 완전히 혼란 그 자체였었고 결국 1달만에 경춘선 통일호는 정차역만 놓고보면 완행이었으나 전산발매가 부활하고 말았고 결국 그 해 6월에는 똑같이 객차형 통일호만 투입되던 장항선(서울 - 온양온천/천안 - 장항), 충북선(조치원 - 제천) 통일호 역시 전산발매를 시행했고 폐지 당시까지 이어진다.

통일호 열차 중 일부는 2004년까지 에드몬슨 승차권을 사용했는데, 에드몬슨 승차권이 사용된 마지막 열차가 바로 통일호이며 통일호 폐지 이후 에드몬슨 승차권은 완전히 종적을 감춰 지금은 철도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

그렇게 운행하다가 2004년 3월 31일 통일호 열차의 운행이 중단되고, 2004년 4월 1일 KTX가 등장하자 CDC 디젤동차들만 통근열차로 명칭이 변경되어 운행하게 되면서 통일호라는 명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통일호 객차들은 현업에서 열외된 후로는 대전철도차량정비단으로 다수가 옮겨졌지만, 일부는 광운대역이나 국수역, 신리역 등지에 유치되어 있다가 폐차직전까지 차장차 또는 군 인력수송으로 사용되었다. 극소수는 보선차로 개조되어서 운영되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2006년까지 차적에 남아있었던 1981년 도입분 일부는 2005년 9월, 호남선 무궁화호의 8200호대 전기기관차 투입을 앞두고 시운전에 투입된 이력이 있다.

냉방객차로 변경 이후 초창기에는 아이보리색 바탕에 녹색의 도색을 사용했다. 그리고 1994년에 대대적으로 도색을 개정할 때 노란색 + 남색의 도색으로 변경되었으나 통일호의 완행열차화가 시작되어 노란색 + 녹색으로 바뀌어서 폐지 때까지 사용했다. 2003년 1월에 철도청이 신 CI를 발표하면서 통일호는 노란색 + 파란색의 조합[20]이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중간에 밝은 녹색으로 변경되었다. 결국 이 도색은 통일호 등급 폐지에 따라 객차형에는 이뤄지지 못하고 자석도색 패턴으로 변경되어 통근열차로 변경된 CDC 동차에만 적용되었다.

현재 광주선에서 운행하고 있는 통근열차의 전신이기도 하며 첫 글자가 통으로 같아서 시각표상의 약칭을 따라 그냥 통근열차를 통일호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2006년도까지 통일호 행선판을 땜질도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역할[편집]

등급개정 이전에는 특급열차였으나, 등급제 개정 이후부터는 사실상 보통급행열차에 해당하는 위상을 부여받았다. 비둘기호 보다는 정차역이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빨랐지만, 무궁화호에 비해서는 느리고 종종 대피취급을 당하게 되었다. 또한, 각 지역에서 열차 회수 증가나 정차 확대를 요구하면서 통일호는 점점 정차역이 늘어나고, 이윽고 비둘기호가 도태될 시점에는 각 노선의 각역정차를 담당하는 보통열차화 되었다.

통일호는 또한 우편차나 소화물차를 연결 대상으로 종종 활용되었으며, 말년에 지방 선구에서는 이들 화차를 연결하고 운행하다 지정된 역에서 입환을 통해 차를 분리, 연결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었다. 덕분에 종종 장시간 정차를 했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근 12시간에 달하는 운행시간을 가지는 열차들도 존재했었다.

한편으로 대도시 근교에서는 이른바 통근열차로서 아침저녁의 통근수요를 담당하는 역할도 하였다. 괴동선 경유 포스코 통근열차는 CDC차량을 투입하여 통일호 등급으로 운행하기도 하였으며, 전철화 이전 경의선에서는 객차형 통일호의 장대열차가 아침 러쉬아워를 담당하기도 하였었다.

종류[편집]

객차형 통일호[편집]

1963년도 인천공작창 제작분이 최초의 통일호 차량으로 투입되었으며, 이후 원칙적으로 2인용 전환 크로스시트를 장착한 객차들을 사용하였다. 통일호로 제작된 객차들은 70년대까지 제작되었으며, 이후에는 격하 내지 개조차들이 사용되었다. 차축발전기를 사용하여 조명을 제공하며 비냉방으로 선풍기만 달려있었으나, 84년부터 87년에 걸쳐 개조되어 냉방기능이 설치되고 전원 공급설비가 설치되었다. 자동문 개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수동으로 출입문을 열고 닫는 구조였다.

  • 원조통일호: 1963년[43]부터 1981년까지 도입되었으며, 가와사키중공업, 일본차량제조, 제국차량(이 세 회사는 초기 일본 직수입 도입분을 제작. 이후 비둘기호로 격하된다), 대우중공업, 조선공사, 현대정공에서 제작을 맡았다. 본래는 에어컨이 없었으나 조선공사에서 에어컨을 장착하는 개조를 진행했다.
  • 무궁화호 격하객차: 대만 탕엥 제조분이었으며 1980년에 제작된 차량이었다. 일부는 무궁화로 남아서 폐차시까지 굴렀지만 일부는 이렇게 통일호로 격하되었다.
  • 통일호 특실: 1999년 6월 1일 시간표 개정을 끝으로 퇴출. 통일호였음에도 무려 특실이 있었는데 과거 직각 새마을호와 동일한 좌석수인 56석을 지니고 있었다. 시트피치는 새마을호와 거의 같은 수준이였고. 당연히 입석이 불가능했기에 통일호치고는 쾌적한 환경을 자랑했다. 다만, 시트 자체는 워낙 오래된 차량인지라 옛날 사람들 체형에 맞춰 설계된 편이여서 좁은 편이었다. 초기 도입 당시엔 직각새마을과 같은 좌석을 썼고. 80년대 중반 냉방개조 이후엔 구특전 무궁화호(당시 새마을호) 일반실과 같은 좌석으로 교체되어 퇴역시까지 운행되다 전량 폐차되었다.
여담으로 90년대 중반까지 운행하던 75년산 후기형 특실은 14열 좌석임에도 창문이 14개로 맞춰진 게 아니라 일반실과 같은 18개여서 면벽좌석이 많았다. 그 이유는 알려진 게 없으나 당시 일반실로 도입될 예정이였던 녀석을 모종의 이유에서 급하게 특실로 바꾸었다는 추측이 있다. 당시엔 60년대 도입 14부창 특실이 멀쩡히 운행하던 시절이였는데 왜 그랬는지는 의문.
  • 통일호 침대차: 1966~1975년 도입. 1998년 2월 3일 시간표 개정을 끝으로 퇴출. 심야시간대 열차에 한해 운행했다. 당시 운행하던 무궁화호의 침대 객차와 유사한 형상이었으나 복도측은 벽 없이 커튼으로만 칸을 구분하는 형태였기에 그리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다. 침대 하단의 할증료와 운임을 더하면 새마을호 일반실의 운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일부는 무궁화호 침대차 부족현상 때문에 무궁화호로 운행하다가 그 마저도 차량 노후화에 힘입어 1999년 3월 15일을 끝으로 퇴출.

도시통근형 디젤 액압 동차[편집]

구 비둘기호에 충당된 니가타 철공소 등지에서 제작된 디젤 액압 동차의 대체차량으로, 이름그대로 도시통근형 통일호에 사용되었다. 통일호 객차와 유사하게 전환 크로스시트를 설치하였으나, 출입문 부근에는 혼잡개선을 위해 통근형 전동차와 유사한 롱시트가 채용되었다.

무궁화호형 전기동차(EEC)[편집]

1978년도에 제작된 통근형 전동차 기반의 특급형 전동차이다. 최초엔 청량리~동해간을 운전하다 1998년 부터는 노후화를 이후로 격하되어 청량리~제천 및 원주간의 통일호로 운행하게 되었다. 차량 수명에 의해 통일호 전폐 이전에 폐지되었다.

운영[편집]

이하 자료는 2003년 1월 기준이다. 이중 다수는 무궁화호로 대체되어 구간연장 등을 거쳐 잔존하고 있으며, 일부는 누리로나 전동급행으로 대체되었다.

  • 경부선 : 천안 이남 구간의 구간열차, 서울~온양온천간 1왕복
  • 호남선 : 대전발 구간열차
  • 전라선 : 익산발 구간열차
  • 장항선 : 천안발 구간열차 및 서울~장항간 1왕복
  • 중앙선 : 노선 내 구간열차 및 청량리~부전간 1왕복
  • 충북선 : 조치원~제천 간 구간열차
  • 영동선 및 태백선 : 구간열차 및 철암경유 제천~영주 간 열차
  • 동해남부선 : 부산~포항간 각 구간열차 다수, 월내, 기장 시종착 포함
  • 대구선 : 동대구~포항 및 동대구~경주간 열차
  • 경전선 : 부산진~목포 구간에 걸친 구간열차
  • 경춘선 : 구간열차
  • 경원선 : 구간열차
  • 교외선 : 서울~의정부간 열차
  • 경의선 : 구간열차
  • 경북선 : 김천~점촌간 구간열차
  • 진해선 : 마산~통해간 구간열차
  • 군산선 : 구간열차 및 전라선 임실까지 일부 직결
  • 정선선 : 2001년 이래 객차1량, 발전차1량 편성으로 구간운행
  • 괴동선 : 포항~제철간 평일 6왕복(휴일감편)

보존[편집]

  • 13101호 : 의왕철도박물관에 보존 중이며, 1965년 경량화 객차 시범사업으로 제작되었다.
  • 13716호 : 대전철도차량정비단에 보존 중이다. 1981년에 제작되어 2004년 11월 10일 운행이 중단된 후 2005년 12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서울태강삼육초등학교에서 영어 학습장으로 활용되었다.
  • 차호 미상 5량 : 섬진강 기차마을에 야외 전시중이다.
  • 차호 미상 0량: 영화 판도라 부산역 장면에서 무궁화호 도색된 통일호 객차가 다른 정상적 무궁화 객차와 함께 편성되어 있는 장면이 있다.즉 병력수송용 등의 예비차량이거나 동태보존된 차량임을 의미.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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