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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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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 위치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이탈리아어: Trentino-Alto Adige, 독일어: Trentino-Südtirol 트렌티노-쥐트티롤)는 이탈리아 최북단에 있는 주이다.[1]

개요[편집]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의 면적은 13,606km²이며 인구는 1,072,276명(2019년)이다. 북동쪽으로 오스트리아, 북서쪽으로 스위스와 국경을 이룬다. 서쪽으로 롬바르디아주, 남동쪽으로 베네토주와 접하고 있다. 주도는 트렌토다. 북부는 사우스티롤, 남부는 트렌티노의 2개 자치구로 나뉘어 있다.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는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해 있었다가 이탈리아로 넘어왔다. 이로 인하여 한때 오스트리아와의 사이에 영토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주의 명칭도 이탈리아어와 독일어가 별도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탈리아어의 '알토아디졔'는 '아디졔 강 상류', 독일어의 '쥐트티롤'은 '남부 티롤'이라는 뜻이다.

오스트리아계 소수 민족이 많기 때문에 이탈리아어와 함께 독일어도 이 주에서는 공용어로 인정되어 사용되며 상당한 자치권이 부여되어 자치주로 지정되어 있다. 일부 지역에서 라틴어, 롬바르디아어, 바이에른 사투리를 사용한다. 트렌토 주변 지역은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고, 볼차노 주변은 이민자로 인해 대다수가 독일어를 사용한다. 역사적으로는 오스트리아 공국-오스트리아 대공국-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티롤 후백국)의 영역이었다.

여름철에는 계곡호수를 찾아, 겨울철에는 스키를 타기 위해 관광객들이 붐비는 여행지다. 남부는 옥수수, 밀, 귀리, 보리 등을 재배하고 북부는 주로 호밀을 경작한다. 아디제강, 노체강 인근에서 수력발전이 이루어진다. 제조업으로 제지, 화학, 금속가공이 활발하다.

베네토주와 이어지는 동부의 돌로미티(Dolomite) 산악 지대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쥐트티롤은 독일어 화자가 많아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사이에서도 쥐트티롤을 두고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2][3]

자연환경[편집]

트렌티노의 면적의 약 20%가 산악 지대이며 면적의 절반가량이 광대한 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리적으로는 산악 지역에 속해 있다. 해발 3000m가 넘는 산맥과 아디제강 주변 계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며, 이 지방에 속한 볼차노의 연평균 기온은 12.2℃이고, 강우량은 717mm이다. 기후는 고산성 기후에서 아 대륙성 기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역사[편집]

BC 15년 로마인들에게 정복되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롬바르드 영주의 영토 트라이덴툼(오늘날의 트렌토), 알라만니크 빈슈가우족, 바이에른족 등의 소유로 나뉘었다. 11세기 이후 트렌토와 브릭센 지역은 영주 주교에 의해 통치되었다. 1803년 루네빌 조약에 의해 합스부르크 왕조의 영토가 되었다. 1810년 파리조약 이후 나폴레옹 휘하의 이탈리아 왕국으로 흡수되었으나 1815년 다시 오스트리아 땅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병사와 이탈리아 산악부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1918년 이탈리아군이 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생제르맹 조약으로 소유권이 인정되었다. 이탈리아 공화국은 1946년 그루버-데 가스페리 협정을 통해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에 대한 자치권을 인정했다. 1948년 헌법에 의해 승인되었고,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하고 각각의 행정기능을 수행할 권리가 부여되었다.

산업[편집]

이 지역의 구릉과 계곡에서 포도주, 과일, 유제품, 목재 등을 생산한다. 남부는 옥수수, 밀, 귀리, 보리를 재배하고 북부는 호밀을 경작한다. 아디제강, 노체강에서 수력발전이 이루어진다. 제조업은 제지, 화학, 금속가공에 집중되어 있다. 2000년대부터 관광이 증가하면서 경제의 주요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교통[편집]

이 지역의 철도는 브레너 철도로, 트렌티노에서 볼차노까지 아디제강의 계곡을 따라 운행한다. 이사르코 계곡을 거쳐 브레너 고개까지 운행하는 노선도 있다. 공항은 트렌토, 볼차노, 도비바코에 위치해 있다. 리바델가르다에는 가르다호수의 다른 곳들과 연결하는 정기 여객선이 있다.

음식[편집]

푸초네 디 모에나 치즈는 이탈리아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에서 생산되는 세미하드 치즈이다. 스프레트츠 트차오리(Spretz Tzaorì)라고도 한다. 브루나(Bruna) 품종, 그리조 알피나(Grigio Alpina) 품종, 프리소나(Frisona) 품종, 페차타 로사(Pezzata Rossa), 렌데나(Rendena) 품종, 핀츠가우(Pinzgau) 품종이나 이들 품종간의 이종 교배종에서 얻은 우유를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다. 2012년 EU에 의해 PDO(Protected Designations of Origin, 원산지 보호 제도를 뜻하며 이탈리아어 명으로 DOP) 제품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푸초네 디 모에나는 연이어 두 번 착유된 생우유를 활용하여 만들어진다. 우유에 송아지 레넷(rennet, 치즈의 응고를 돕는 응유효소)을 넣어 커드가 만들어지면 깨뜨려 반조리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덩어리는 틀에 넣어 모양을 잡은 뒤, 소금을 뿌리거나 소금물에 담가 염장하여 숙성시킨다.

푸초네 디 모에나는 원통형으로 겉껍질은 붉은빛을 띠는 오렌지색이다. 지름은 34~42cm, 높이는 9~12cm이다. 무게는 9~13kg이다. 속살은 연한 노란색으로 군데군데 작은 구멍이 뚫려있다. 질감이 탄력적이며 매우 강한 향미를 가지고 있다. 짭짤하면서 날카로운 맛에 약간 쓴 뒷맛이 있다. 오래 숙성할 경우에는 약간의 톡 쏘는 맛을 갖게 된다. 지방 함량은 45% 정도이며, 숙성기간은 최소 90일이다. 산에 가축을 풀어놓는 시기인 6~9월에 얻은 우유로 생산된다. 지방함량은 고형분 기준으로 45%이다.

푸초네 디 모에나는 레드 와인, 맥주와 잘 어울리며, 통밀빵에 곁들여 먹어도 잘 어울린다. 리소토, 뇨키에 첨가하기도 한다.[4]

트렌토[편집]

트렌토이탈리아 동북부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의 도시이다. 이탈리아 도시 중 높은 삶의 질, 비즈니스와 직업 기회에서 5위를 기록한 부유한 도시 중 하나다. 교통이 편리하고 전시 · 컨퍼런스 산업이 활발하다. 해발 2,000m 이상의 높은 산과 알프스의 빙하호로 둘러싸여 있다. 오스트리아 국경과 멀지 않다. 트렌토 공의회(1545~63) 개최지로 유명하다.

알프스의 돌로미티케 산맥을 흐르는 아디제강이 남북으로 길게 자리한 도시의 서편 경계를 따라 흐른다. 북쪽으로 50여 km 가면 볼차노에 닿고, 다시 50여 km 올라가면 오스트리아 국경에 이른다. 트렌토는 비골라나, 몬테본도네 등 해발 2,000m 이상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주변 곳곳에 콜도나초, 가르다 등 알프스 빙하호가 많다.

트렌토는 평균 고도가 해발 209m이며 온대 기후를 나타낸다. 연 평균기온은 최고 17.8˚C, 최저온도는 11.5˚C, 강수량은 1,002mm를 기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트렌토는 제조업이 대부분 해체되면서 와인 생산과 실크 제조에 의존했다. 현재 이곳은 도로 · 철도 · 항공 등 편리한 교통편을 갖추고 있으며, 유명 대학과 케슬러 등 국제적 연구센터 덕분에 전시 · 컨퍼런스 산업이 발달하고 있다. 상업, 서비스, 관광, 고품질 농업 및 식품 산업 등이 발달했고 경기계 제조, 섬유업, 인쇄업, 가구 제조업도 활발하다.

트렌토는 켈트족의 부족마을이었다. BC 1세기 로마인들에 의해 정복되었고 인근 부족들과 충돌이 잦았다. 이곳은 알프스 산맥을 넘어 베로나에서 인스부르크로 가는 고대 로마도로의 중요한 길목이어서 예로부터 교통이 발달했다. 이곳 최초의 주교인 성비길리우스는 4~5세기에 트렌티노와 티롤 남부주민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

트렌토가 속한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를 비롯해 롬바르디아주, 피에몬테주 등 이탈리아 북부의 대부분 지역들은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중세로 접어들면서 비슷한 역사의 길을 걷게 된다. 동고트족의 침입, 비잔틴 제국의 정복, 랑고바르드족의 통치, 프랑크 제국의 지배를 받은 이후 다시 신성로마제국의 영토가 된다.

102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콘래드 2세는 트렌토에 주교를 창설했다. 이곳 주교는 정치적, 종교적 힘을 모두 쥐고 자신의 영지를 통치했다. 1200년경 몬테 칼라시오에서 은이 채굴되면서 광업의 중심지가 되고 번영을 누렸다. 14세기에 트렌토 등 티롤 지역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가 통치했으며, 이는 6세기 동안 계속됐다.

이 도시는 트렌토 공의회(1545~63)의 개최지로 유명하다. 교황 파울루스 3세가 소집한 가톨릭공회의는 종교개혁 이후의 상황에 대응하여 교리의 확인과 교회 내부의 쇄신을 꾀하기 위한 것으로 19년간 계속됐다. 그러나 실제 목적은 종교개혁으로 빠르게 개신교로 넘어가고 있던 유럽에서 다시 가톨릭의 영역을 되찾는 것이었으며, 이 목적은 정치 · 군사적으로 수행되면서 엄청난 폭력을 낳았다. 공회의 결정은 음악, 미술 등 예술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세속적이고 불순한 모든 것을 교회음악으로부터 배제할 것을 결정했다. 1564년에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 나오는 나체상에 옷자락을 그려 넣도록 한 결정이 유명하며, 아기 예수를 옷을 입힌 상으로 하라는 극단론도 있었다.

다음 공의회인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년)는 트렌토 공의회가 폐막한 지 300년이 지나서야 소집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동안 프랑스 지배를 받다가 1814년에 오스트리아로 넘어갔으며, 그후 1918년 이탈리아에 합병되었다.

로마시대 건축물로 극장과 도시의 성벽들이 남아있다. 프리포지투라가(街)와 세자레 광장에는 로마시대 거리와 다양한 지하유적이 있다. 트렌토 두오모는 12세기 로마 후기의 공회당 위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성당이다. 트렌토 공회의가 열린 장소이다.

두오모 광장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과 바로크 양식의 분수가 있다. 산타마리아 마조레 교회는 안토니오 메다길리아가 1520년 르네상스 고딕 양식으로 건축했다. 이곳에서 제3차 트렌트 공회의(1562년 4월~1563년 12월)가 열렸다.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로는 수많은 대저택들과 고급 벽화가 있는 부온콘실리오성이 유명하다. 이 성은 13세기 궁전으로 지금은 국립박물관으로 운영된다. 합리주의 건축가 안지올로 마조니가 지은 기차역(1934~36)은 이탈리아 철도건축의 한 획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중앙우체국을 포함한 현대 건축물들도 유명하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 《위키백과》
  2. 유럽지명사전 : 이탈리아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 《네이버 지식백과》
  3. 트렌티노알토아디제〉, 《나무위키》
  4. 푸초네 디 모에나〉, 《네이버 지식백과》
  5. 유럽지명사전 : 이탈리아 트렌토〉,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국가
서유럽 도시
서유럽 지리
지중해
서유럽 문화
서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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