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 포르쉐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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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356===
 
===포르쉐 356===
 
2차 세계대전 중에 히틀러의 지시로 흔히 딱정벌레라고 알려진 독일의 국민차 폭스바겐 비틀(Beetle)을 만들어낸 포르쉐 박사는 그의 장남 페리 포르쉐와 함께 1947년 스포츠카 제작을 시작하고 1948년 공개된 모델이 포르쉐 356인데 페리가 주도해 제작됐다. 무엇보다 포르쉐 최초의 모델이란 점에서 출시와 함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유선형 디자인의 356은 당시 도로용의 실용성과 스포츠카의 특징을 두루 갖춘 차로 평가됐다. 처음으로 포르쉐 뱃지를 달고 탄생한 이 차의 프로토타입은 폭스바겐 엔진을 장착했다. 1949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데뷔를 했고 1951년 르망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356은 폭스바겐 비틀과 유사하게 스윙 차축과 플로어팬 섀시가 사용되었다. 뒤쪽에 토션바 서스펜션이 장착되었으며 앞쪽에는 트레일링 암과 토션바 서스펜션이 함께 사용되었다. 엔진도 폭스바겐의 공랭식 엔진을 가져왔는데 밸런스를 개선하고 훨씬 더 복잡하게 설계되어 플로우가 개선되었고 엔진 회전속도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었다. 356 중 최상위 버전은 카레라였으며 4개의 캠샤프트가 장착되어 최고 속도 시속 201km를 냈다. 생산 초기에는 1.3L 공냉식 수평대향 4기통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 등 폭스바겐 비틀의 부품을 공유했다. 당시 경제적 여건 등 제반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포르쉐 356의 엔진 위치는 원래 미드십 방식이었으나 공랭식 엔진의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곧바로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에 의해 후방엔진 후륜구동(RR) 방식으로 바뀌었다. 포르쉐의 RR 공랭엔진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356은 4개의 모델로 출시되는데 기존 356, 356A, 356B, 356C로 나눠진다. 1951년 생산된 356은 1.3, 1.5L 엔진을 도입했다. 1952년 후반 356은 분할된 윈드스크린을 안썼다. 1953년 모델은 1300S 또는 Super라고 불렸다. 1954년 포르쉐의 유일한 미국 수입업체 대표 [[맥스 호프만]](Max hoffman)은 포르쉐 356이 최소한의 장비와 윈드스크린을 없앤 로드스터 버전을 만들기 원했다. 호프만은 자동차 공장을 얻었고 공장에 컨티넨탈(Continenta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호프만이 수입한 새로운 포르쉐 356은 강력한 1.5L 엔진을 얹은 70마력의 스포츠 쿠페, 카브리올레 등이었다. 1955년 후반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많이 반영된 포르쉐 356A가 소개되었다. 당시 공장에서는 Type1으로 불렀고 자동차 매니아들은 T1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초기 미국에 수출된 수출형 356모델은 컨티넨탈 뱃지가 붙여졌다. 1955년 가을부터 1956년 1월까지 더 희귀한 모델 T1 유로피언으로 들여온 후 다시 356으로 들어왔다. 이후 1957년 초 타입 2로 알려진 356A의 두 번째 개정판이 제작되었다. 1959년 중요한 스타일링과 기술적인 개선이 이뤄진 356B가 탄생했다. 1962년 중반 356B 모델은  뒷면 엔진룸 트윈 엔진 그릴, 외부 연료필터, 오른쪽 앞날개, 펜더, 커진 뒤창문으로 변경되었다. 포르쉐 공장은 모델명이 다른 것과 달리 눈에 띄는 디자인 변화를 주는데 신경 쓰지 않았다. 356B의 카르만 하드탑(Karmann hardtop)또는 노치백(Notchback)모델은 각각 1961년과 1962년 생산되었다. 356C는 356의 마지막 변경 모델로 1964년 도입되었다. 모든 바퀴에 디스크 브레이크를 장착했고 옵션으로 포르쉐가 생산한 가장 강력한 푸시로드식 OHV 엔진을 달아 95마력을 내는 SC옵션을 선택할 수 있었다. 356의 생산은 1964년 14,151대를 기록했다. 356은 제4세대까지 이어지다 1965년 단종될 때까지 7만 7,000여 대가 생산되었다.<ref>이창호, 〈[https://www.motoy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846 포르쉐 356은 히틀러의 작품일까?]〉, 《모토야》, 2018-10-31</ref>
 
2차 세계대전 중에 히틀러의 지시로 흔히 딱정벌레라고 알려진 독일의 국민차 폭스바겐 비틀(Beetle)을 만들어낸 포르쉐 박사는 그의 장남 페리 포르쉐와 함께 1947년 스포츠카 제작을 시작하고 1948년 공개된 모델이 포르쉐 356인데 페리가 주도해 제작됐다. 무엇보다 포르쉐 최초의 모델이란 점에서 출시와 함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유선형 디자인의 356은 당시 도로용의 실용성과 스포츠카의 특징을 두루 갖춘 차로 평가됐다. 처음으로 포르쉐 뱃지를 달고 탄생한 이 차의 프로토타입은 폭스바겐 엔진을 장착했다. 1949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데뷔를 했고 1951년 르망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356은 폭스바겐 비틀과 유사하게 스윙 차축과 플로어팬 섀시가 사용되었다. 뒤쪽에 토션바 서스펜션이 장착되었으며 앞쪽에는 트레일링 암과 토션바 서스펜션이 함께 사용되었다. 엔진도 폭스바겐의 공랭식 엔진을 가져왔는데 밸런스를 개선하고 훨씬 더 복잡하게 설계되어 플로우가 개선되었고 엔진 회전속도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었다. 356 중 최상위 버전은 카레라였으며 4개의 캠샤프트가 장착되어 최고 속도 시속 201km를 냈다. 생산 초기에는 1.3L 공냉식 수평대향 4기통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 등 폭스바겐 비틀의 부품을 공유했다. 당시 경제적 여건 등 제반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포르쉐 356의 엔진 위치는 원래 미드십 방식이었으나 공랭식 엔진의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곧바로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에 의해 후방엔진 후륜구동(RR) 방식으로 바뀌었다. 포르쉐의 RR 공랭엔진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356은 4개의 모델로 출시되는데 기존 356, 356A, 356B, 356C로 나눠진다. 1951년 생산된 356은 1.3, 1.5L 엔진을 도입했다. 1952년 후반 356은 분할된 윈드스크린을 안썼다. 1953년 모델은 1300S 또는 Super라고 불렸다. 1954년 포르쉐의 유일한 미국 수입업체 대표 [[맥스 호프만]](Max hoffman)은 포르쉐 356이 최소한의 장비와 윈드스크린을 없앤 로드스터 버전을 만들기 원했다. 호프만은 자동차 공장을 얻었고 공장에 컨티넨탈(Continenta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호프만이 수입한 새로운 포르쉐 356은 강력한 1.5L 엔진을 얹은 70마력의 스포츠 쿠페, 카브리올레 등이었다. 1955년 후반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많이 반영된 포르쉐 356A가 소개되었다. 당시 공장에서는 Type1으로 불렀고 자동차 매니아들은 T1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초기 미국에 수출된 수출형 356모델은 컨티넨탈 뱃지가 붙여졌다. 1955년 가을부터 1956년 1월까지 더 희귀한 모델 T1 유로피언으로 들여온 후 다시 356으로 들어왔다. 이후 1957년 초 타입 2로 알려진 356A의 두 번째 개정판이 제작되었다. 1959년 중요한 스타일링과 기술적인 개선이 이뤄진 356B가 탄생했다. 1962년 중반 356B 모델은  뒷면 엔진룸 트윈 엔진 그릴, 외부 연료필터, 오른쪽 앞날개, 펜더, 커진 뒤창문으로 변경되었다. 포르쉐 공장은 모델명이 다른 것과 달리 눈에 띄는 디자인 변화를 주는데 신경 쓰지 않았다. 356B의 카르만 하드탑(Karmann hardtop)또는 노치백(Notchback)모델은 각각 1961년과 1962년 생산되었다. 356C는 356의 마지막 변경 모델로 1964년 도입되었다. 모든 바퀴에 디스크 브레이크를 장착했고 옵션으로 포르쉐가 생산한 가장 강력한 푸시로드식 OHV 엔진을 달아 95마력을 내는 SC옵션을 선택할 수 있었다. 356의 생산은 1964년 14,151대를 기록했다. 356은 제4세대까지 이어지다 1965년 단종될 때까지 7만 7,000여 대가 생산되었다.<ref>이창호, 〈[https://www.motoy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846 포르쉐 356은 히틀러의 작품일까?]〉, 《모토야》, 2018-10-31</ref>
 
===포르쉐 911===
 
===포르쉐 911===
[[파일:포르쉐 901.jpg|썸네일|300픽셀|'''1963년 포르쉐 901''']]
 
[[파일:포르쉐 911.jpg|썸네일|300픽셀|'''1967년 포르쉐 911''']]
 
 
페리 포르쉐는 356보다는 고급스럽고 실용적인 GT카를 356의 후속작으로 내세우려고 하였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에는 356이라는 2인승에 주력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695로 명명된 4인승 시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당시 포르쉐를 이끌었던 페리 포르쉐는 2+2 보조적으로 뒷자리가 있는 레이아웃을 356의 후속이 되는 차세대 주력 모델로 방침으로 수정했다. 페리의 아들 페르디난드 알렉산더 포르쉐가 쿠페 바디를 디자인했다. 포르쉐가 목표로 한 것은 모터스포츠 영역에서도 소비자 시장에서도 좋은 성적을 남기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엔진은 4기통 아니라 더욱 부드럽고 더욱 강력한 6기통이 채용되었다. 리어 엔진, 리어 드라이브라는 레이아웃은 356를 계승하는 모델로 비교적 자연스럽게 결정되고 포르쉐는 이렇게 개발한 901을 1963년 가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전시했다. 당시 푸조에서 모델명 가운데에 숫자 0이 들어가는 건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911로 바뀌게 되었다. 911로 모델 이름 변경한 후 1964년 8월부터 고객에게 전달을 시작했다. 최초로 출시된 911은 2.0L 130마력 엔진을 사용했으며 구형 356이 4기통 1600cc였던 것에 비해 확실히 크고 고급스러워졌다. 1965년 356이 단종되었으나 여전히 4기통 1,600cc 엔진에 대한 수요가 남아있었기에 911의 차체에 356의 엔진을 얹어 911의 아래급인 912를 출시하였다. 90마력의 출력을 내었으며 작은 엔진을 얹은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무게가 130kg 감소하여 1톤이 안되었으며 1969년 911의 C 모델이 나오기 전까지 생산되었다. 1969년 고가의 911을 구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작된 912의 후속 차량으로 911과 동일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914부터는 엔트리 모델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가지게 되었다. 1964년부터 빠짐없이 르망 24시간 경주에 출전해 온 포르쉐 911은 오늘날에도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수집의 대상이다. 포르쉐 911의 디자인은 세대별로 자연스럽게 변화해오고 있지만 초대 911의 디자인을 잃지 않고 그대로 고수하여 전통을 유지하는 매력이 있다. 크게 기본형인 카레라, 지붕이 열리는 타르가, 고성능 모델 터보 3가지와 트랙 주행에 초점을 맞춘 GT가 있다. 포르쉐 911은 2019년 8세대 모델이 출시되었다.<ref>신동빈, 〈[http://www.carlab.co.kr/news/5356 온 가족의 차이야기(5) 일상 속 최고의 스포츠카 포르쉐 911의 종류]〉, 《카랩》, 2016-02-14</ref><ref>REV,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5529727&memberNo=15178086 (포르쉐 창립 70주년 기념) 포르쉐의 역사]〉, 《네이버 포스트》, 2018-05-06</ref>
 
페리 포르쉐는 356보다는 고급스럽고 실용적인 GT카를 356의 후속작으로 내세우려고 하였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에는 356이라는 2인승에 주력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695로 명명된 4인승 시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당시 포르쉐를 이끌었던 페리 포르쉐는 2+2 보조적으로 뒷자리가 있는 레이아웃을 356의 후속이 되는 차세대 주력 모델로 방침으로 수정했다. 페리의 아들 페르디난드 알렉산더 포르쉐가 쿠페 바디를 디자인했다. 포르쉐가 목표로 한 것은 모터스포츠 영역에서도 소비자 시장에서도 좋은 성적을 남기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엔진은 4기통 아니라 더욱 부드럽고 더욱 강력한 6기통이 채용되었다. 리어 엔진, 리어 드라이브라는 레이아웃은 356를 계승하는 모델로 비교적 자연스럽게 결정되고 포르쉐는 이렇게 개발한 901을 1963년 가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전시했다. 당시 푸조에서 모델명 가운데에 숫자 0이 들어가는 건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911로 바뀌게 되었다. 911로 모델 이름 변경한 후 1964년 8월부터 고객에게 전달을 시작했다. 최초로 출시된 911은 2.0L 130마력 엔진을 사용했으며 구형 356이 4기통 1600cc였던 것에 비해 확실히 크고 고급스러워졌다. 1965년 356이 단종되었으나 여전히 4기통 1,600cc 엔진에 대한 수요가 남아있었기에 911의 차체에 356의 엔진을 얹어 911의 아래급인 912를 출시하였다. 90마력의 출력을 내었으며 작은 엔진을 얹은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무게가 130kg 감소하여 1톤이 안되었으며 1969년 911의 C 모델이 나오기 전까지 생산되었다. 1969년 고가의 911을 구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작된 912의 후속 차량으로 911과 동일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914부터는 엔트리 모델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가지게 되었다. 1964년부터 빠짐없이 르망 24시간 경주에 출전해 온 포르쉐 911은 오늘날에도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수집의 대상이다. 포르쉐 911의 디자인은 세대별로 자연스럽게 변화해오고 있지만 초대 911의 디자인을 잃지 않고 그대로 고수하여 전통을 유지하는 매력이 있다. 크게 기본형인 카레라, 지붕이 열리는 타르가, 고성능 모델 터보 3가지와 트랙 주행에 초점을 맞춘 GT가 있다. 포르쉐 911은 2019년 8세대 모델이 출시되었다.<ref>신동빈, 〈[http://www.carlab.co.kr/news/5356 온 가족의 차이야기(5) 일상 속 최고의 스포츠카 포르쉐 911의 종류]〉, 《카랩》, 2016-02-14</ref><ref>REV,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5529727&memberNo=15178086 (포르쉐 창립 70주년 기념) 포르쉐의 역사]〉, 《네이버 포스트》, 2018-05-06</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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