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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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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난
포즈난 위치

포즈난(폴란드어: Poznań, 라틴어: Posnania, 독일어: Posen, 이디시어: פּױזן, 문화어: 뽀즈난)은 폴란드 서부에 있는 도시로 비엘코폴스키에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약 54만 명으로 폴란드에서는 5번째로 크다. 아담 미케비치대학 등 8개 대학과 극장이 있으며 폴란드 서부의 문화, 과학의 중심지이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박람회 중 하나인 포즈난 국제박람회를 매년 개최한다.[1]

개요[편집]

포즈난은 폴란드 서부, 오데르강의 지류인 바르타강 유역에 있다.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며 10세기에 성채로서 건설된 폴란드 최고(最古) 도시의 하나이다. 968년에는 폴란드 최초의 주교구가 설치되었다. 15세기 유럽 교역의 한 중심지였으며, 16세기에는 폴란드 수출입품의 대부분을 취급하기도 하였다. 17세기 중엽의 스웨덴 전쟁, 18세기 초의 북방전쟁으로 도시가 파괴되었으며, 1793년에는 프로이센에 점령되었다. 1807∼15년 바르샤바 대후국령(大侯國領)이 되었다가 그 뒤 프로이센에 다시 병합되었으나 1918년 12월 폴란드에 귀속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군과 소련군의 격전장이 되었고 1956년 공산 정권에 반대하는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 시내에서 서쪽으로 5km가량 떨어진 곳에 포즈난 와비차 국제공항이 있다. 포즈난은 중세 이래 유럽의 중요한 무역 거점 중 하나이며 19세기부터는 중공업이 발달하여 철도 기관차 공장, 제철소 등이 가동되었다. 식품 가공, 가구, 자동차, 운송, 물류 산업에 외국 자본이 유입되고 있으며 독일, 네덜란드가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다. 포즈난은 습윤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의 점이 지대에 위치한다. 연간 강수량은 폴란드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500mm 안팎이다. 평균 기온은 가장 더운 7월이 24.6℃, 가장 추운 1월은 영하 4.6℃이다. 바르타강 좌안의 구시가에는 성당, 시청, 박물관을 비롯하여 중세의 유적이 많다. [2]

역사[편집]

포즈난에는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다. 8~9세기 무렵 슬라브족이 요새를 쌓고 살면서 본격적으로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0세기 폴란드 최초의 왕조인 피아스트 왕조(960~1370)가 성립된 후 왕국의 중심도시로 더욱 발전했다. 건국 초기 폴란드 왕국은 독일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오토 1세의 압박에 시달렸다. 피아스트 왕조의 초대 국왕인 미에슈코 1세(930~992)는 966년 가톨릭 신자인 보헤미아(체코) 공주와 결혼하면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영토 보전과 국정 안정을 도모했다. 968년에는 포즈난에 폴란드 최초로 가톨릭 교구가 설치되었다.

중부 유럽 교통의 요충지였던 포즈난은 독일 북부 도시들의 연맹으로 발트해 연안 무역을 장악한 한자동맹에 가입해 번영을 누렸다. 13세기 중반 몽골군의 침략 이후에는 독일인들이 대거 이주해 각종 산업과 무역업에 종사했다. 1400년경 포즈난 인구의 4분의 3은 독일어 사용자였다. 1536년에는 대화재가 발생해 성, 수도원, 공회당 등 175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이어 17~18세기에 걸쳐 30년 전쟁, 2 · 3차 북방전쟁, 폴란드 계승전쟁, 7년 전쟁 등 여러 전쟁과 전염병, 홍수 때문에 도시가 폐허로 변하곤 했다. 1600년 약 2만 명이던 포즈난 인구는 1730년에 약 6,000명으로 줄어들었다. 18세기 후반에 포즈난이 속해 있던 폴란드 · 리투아니아 왕국은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주변 3개국에게 3차례에 걸쳐 국토를 분할당하고 결국 멸망했다. 포즈난 지역은 2차 분할의 결과로 남프로이센 지방의 일부가 되었다.

1806년 포즈난을 포함한 대폴란드 지역에서 반란이 발생했다. 이 지역의 폴란드인 군인, 시민들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1769~1821) 프랑스 황제를 도와 프로이센 세력을 몰아내는 데 기여했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이긴 나폴레옹은 1807년 프로이센이 차지했던 지역에 바르샤바 대공국을 세웠다. 포즈난도 바르샤바 대공국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몰락 후 열린 빈 회의(1814~1815)의 결과 다시 프로이센에 병합되었다. 포즈난은 프로이센 지배하에서 반(半)자치권을 가진 포젠 대공국이 되었다. 프로이센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포즈난 지역을 요새화하고 1848년 최초의 철도를 놓는 등 도시를 계속 확장 · 발전시켰다.

포즈난과 대폴란드 지역은 독일(프로이센)의 지배를 받던 1815~1918년과 1939~1945년 기간에 대독일 저항운동의 중심지였다. 1848년 대폴란드 지역의 폴란드인들이 프로이센 지배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프로이센은 보복 조치로 그동안 포즈난에 부분적으로 부여했던 자치권을 박탈했다. 1871년 독일이 통일되자 포즈난은 독일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열린 파리 강화회의와 베르사유조약 덕분에 폴란드는 1795년 망국 후 123년 만에 독립을 이루었다. 대폴란드 지역에서 1918년 12월부터 1919년 6월까지 또다시 대규모 반(反)독일 봉기를 일어난 결과 포즈난은 폴란드 영토에 귀속되었다.

그러나 1939년 9월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폴란드는 다시 독일 지배하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포즈난은 독일군과 소련군의 격전지였다. 전쟁으로 인해 시가지의 55%가 폐허로 변했고, 특히 유서 깊은 구시가지는 90%가량 파괴되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폴란드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포즈난에서는 1956년 니키타 후르시초프가 스탈린 격하운동을 시작한 직후 시가 운영하는 체기엘스키 기관차공장에서 파업 · 시위가 벌어졌다. 폭동은 이틀 만에 진압됐으며, 시민 67명이 사망했다. 사망한 시민들을 기리는 위령비는 1981년에야 건립되었다.

1980년 조선소 노동자였던 레흐 바웬사가 자유연대노조를 출범시키면서 폴란드에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폴란드는 1989년 9월 7일 법적으로 민주화되어 폴란드공화국으로 바뀌었다. 1999년 단행된 폴란드 행정구역 개편으로 포즈난은 비엘코폴스키에(Wielkopolskie: ‘대폴란드’라는 뜻)주의 주도(州)都가 되었다. 이후 서부 폴란드 산업, 무역, 교육, 문화의 중심지이자 폴란드에서 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로 발전하고 있다.[3]

문화[편집]

포즈난에서는 5년마다 헨리크 비니아프스키 바이올린 콩쿠르가 개최된다. 시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매달 클래식 음악회를 열 정도로 클래식 애호가가 많다. 1939년 창립된 포즈난 나이킹게일 합창단은 여전히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매년 11월 11일에는 성 마르티누스 축제가 열리며 12월에는 국제청소년영화제가 있다. 포즈난의 최고 명문인 아담 미츠키에비치대학은 공식적으로는 폴란드가 독립을 되찾은 후인 1919년 개교했지만, 대학의 기원은 중세시대인 1611년에 두고 있다.[4]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교[편집]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교(Adam Mickiewicz University)는 폴란드 중부 포즈난(Poznań)에 위치한 연구 중심의 공립대학교이다. 1611년 10월 28일 지기스문트 3세(King Sigismund III)의 칙령에 따라 처음 설립되었다. 포즈난(Poznań) 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대학교이다. 설립 후 1650년과 1678년에 공포된 칙령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1713년까지 운영되다가 1919년 5월 피아스트대학교(Piast University)로 다시 개교하였고, 이듬해 1920년 포즈난대학교(University of Poznań)로 교명이 바뀌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학교가 폐쇄되었으나 1940년 바르샤바로 옮겨 서부대학교(University of the Western Lands)로 비밀리에 운영되었다. 1955년 12월 현재와 같은 교명으로 변경되었다. 교명은 폴란드 낭만파 시인으로 애국적 혁명운동에도 참가했던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Bernard Mickiewicz)의 이름을 딴 것이다.

고고학과 교육학, 지리지질학, 수리컴퓨터과학, 신학 등 21개 학부 아래 82개 전공을 두고 있다. 학부와 석사, 박사 및 박사 후 과정이 제공된다. 원격대학의 경우 75개 과정이 있으며 2천명의 학생이 이를 수강하고 있다. 전세계 240개 대학교와 파트너쉽을 맺고 있다. 학생수는 37,630명이다. 메인캠퍼스는 포즈난에 위치하며 이외에도 칼리시(Kalisz)와 그니에즈노(Gniezno), 피와(Piła), 스우비체(Słubice)에 있다. 주요 졸업생으로는 폴란드 최초 여성총리를 지낸 한나 수호츠카(Hanna Suchocka)를 비롯해 기업가인 얀 클첵(Jan Kulczyk), 폴란드 시인 리샤르드 크리니츠키(Ryszard Krynicki) 등이 있다. 전 세계 교육기관과 250여 개의 파트너십 협정을 맺고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대학교협회(European University Association)의 일원이다. 2023년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의 글로벌대학순위에서 세계 875위, 유럽 대학 중 345위, 폴란드 대학 가운데 7위를 기록했다.[5]

지도[편집]

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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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포즈난〉, 《위키백과》
  2. 포즈난(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포즈나〉, 《요다위키》
  4. 포즈난(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5.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교(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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