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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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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 위치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이탈리아어: Regione Friuli-Venezia Giulia, 프리울리어: Regjon autonome Friûl Vignesie Julie, 슬로베니아어: Avtonomna dežela Furlanija Julijska Krajina, 독일어: Autonome Region Friaul Julisch Venetien, 베네토어: Friułi-Venezsia Julia)는 이탈리아 동북부 끝에 있는 주이다.[1]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주라고 붙여서 쓰기도 한다.

개요[편집]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의 면적은 7,844km²이며 인구는 1,215,000명(2019)이다. 북쪽과 동쪽은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이루며, 서쪽은 베네토주, 남쪽은 아드리아해에 접한다. 주도는 트리에스테이며, 고리치아, 우디네, 트리에스테, 포르데노네의 4개의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상용 언어가 4개다. 주의 명칭에 베네치아가 포함되지만 베네치아는 베네토주 소속이다.

이곳은 알프스산맥지중해 사이의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해 있어 예전부터 그 소속을 두고 분쟁이 잦았다. 18세기까지는 베네치아 공화국에 속했고, 그 후 합스부르크의 지배를 받았다. 이탈리아 왕국 통일 후 우디네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이탈리아에 속하게 되었고, 그 동쪽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넘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 곳의 전체가 이탈리아로 넘어왔고, 지금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속하는 지역의 일부도 이탈리아가 차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탈리아는 이스트라반도와 트리에스테의 내륙과 그 주변 지역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넘겨주었다(오늘날에는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에 속함). 이와 함께 베네토주에 속했던 우디네현 지역과 고리치아현 지역이 합쳐져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가 형성되었다. 프리울리는 우디네와 고리치아를 중심으로 하는 이 지역의 예로부터의 명칭이며, 베네치아줄리아는 트리에스테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의 해안 지방을 포함하는 지방의 예로부터의 명칭으로, 이 두 지역을 합쳐서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라고 이름을 붙였다.

트리에스테 지역은 그 귀속을 둘러싸고 이탈리아유고슬라비아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으나, 해안 지방은 이탈리아에 속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져서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에 속하게 되었고, 트리에스테가 주도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63년 소수 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이 주는 자치주가 되어 이탈리아의 다른 주에 비해 특별히 더 많은 자치권을 획득하였다.

역사적인 이유로 동유럽과 접해 있어서 크로아티아어 화자, 슬로베니아어 화자가 있는 편이다.

남쪽은 카르스트 지형과 아드리아해가 만나는 곳이며, 해안이 얕고 모래가 좋아 관광・휴양지로 이용된다. 우디네 지방에 위치한 고대도시 아퀼레이아는 초기 로마제국의 부유한 대도시 중 하나였다. 이곳에 규모가 크고 초기 모습이 잘 간직된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아퀼레이아 유적지와 가톨릭 성당은 고고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2][3]

자연환경[편집]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는 알프스산맥아드리아해 사이에 위치하는 지역으로, 북부는 알프스산맥의 아름다운 산간지대이고, 남부는 비옥한 평야 지대이다. 북부의 43%는 알프스산맥으로 덮여 있고 남부에는 베네치아만 아드리아해 연안으로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4개 영역, 즉 북쪽 산악 지대, 동쪽 구릉지, 중부 평야 지대, 남쪽 해안지대로 나뉜다. 북쪽 산악지대는 카닉알프스와 줄리안알프스를 포함하고 있으며,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2,700m에 이른다. 광활한 소나무 숲과 목초지, 에서 내려오는 계곡과 강이 특징이다. 동쪽 구릉지는 국경에 가까워 슬로베니아 민족이 일부 거주하고 있다. 중부 평야 지대는 과거에는 건조했으나 관개 시스템을 통해 비옥한 땅으로 바뀌었고 대부분 농업지대다. 남쪽은 카르스트 지형과 아드리아해가 만나는 곳이며, 해안이 얕고 모래가 좋아 관광・휴양지로 이용된다.

북쪽 산악지대는 이탈리아에서 기온이 가장 낮은 곳으로 분류되고, 남쪽은 아드리아해의 영향으로 온화하고 쾌적한 기후를 나타낸다.

역사[편집]

알프스산맥과 지중해 사이의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해 분쟁이 잦은 곳으로 고대 때부터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당시 181년 이손초 강 하류에 세워진 아퀼레이아라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실제로 주명인 프리올리와 줄리아의 어원은 각각 로마의 광장이란 뜻의 포룸 줄리와 고대 로마의 율리아 씨족에게서 유래되었다.

당시의 프리올리베네치아줄리아는 상감과 모자이크 예술이 탄생하는 등 매우 번창한 지역이었고, 프리올리의 모자이크 세공가들은 로마 제국 시대부터 유명세를 떨쳤다. 또한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과 동유럽, 그리고 북유럽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심지였으며, 북해발트해를 줄발 지점으로 한 호박의 길을 통해 호박이 남유럽 일대로 유입되는 중간 지점 역할을 한 곳이다. 이후 로마 제국이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요새로서 로마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주요한 중간 정착지로 변했으며 도적이나 종교 박해, 그리고 훈족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가 되었다. 이후 5세기 동안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어 있었으나 이는 해안 지역 한정으로 내륙 지역은 프리울리 공작 및 고리치아 백작들이 나누어 통치했다. 이후 590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국교회로부터 분리를 주장한 이 지역의 분리파들 간의 대립도 있어 실제로 교황이 보낸 군대를 피해 흩어진 작은 섬들 사이로 피한 분리파 교도들이 많았다.

그러다 순례자와 대희년의 시대인 11~15세기까지 동유럽 사람들이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의 아퀼레이아를 거쳐 로마로 가는 길목으로서 제 역할을 해 왔으며 통치권에 변동이 오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아퀼레이아 총대주교의 세력이 커지자 해안은 물론 프리울리와 이스트리아 반도까지 교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시기의 아퀼레이아의 대주교이자 베네치아 교구장은 로마 교황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1420년 이탈리아 북동부의 강대국으로 등장한 베네치아 공화국이 프리울리에 대한 지배권을, 신성 로마 제국의 오스트리아 대공국이 고리치아 및 트리에스테를 나누어 갖게 되면서 아퀼레이아가 주도권을 잡고 있던 시대는 끝났다. 베네치아가 지배하던 시기는 1593년 베네치아의 전략가와 기술자, 건축가, 역사가들이 참여한 팔마노바와 같은 군사요새를 지었다.

베네치아의 다른 식민지들도 별반 다르지 않게 베네치아 공화국은 프리올리 사람들을 그저 도시 건설에 투입하거나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내보낼 잠정적인 인력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프리올리를 비롯한 베네치아의 지배하의 있던 지역들은 베네치아의 제대로 된 통치를 받지 못하고 심지어 착취까지 받게 되어 오랫동안 고립과 방관, 가난과 기아에 허덕였다.

이후 근대인 19세기 경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로 전 지역이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가 1866년 이탈리아 통일 운동으로 인해 우디네를 중심으로 한 지역(현재의 프리울리 지역)은 이탈리아 왕국에 속하게 되었고, 그 동쪽 지역(현재의 베네치아 줄리아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넘어갔다가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곳의 전체가 이탈리아 왕국으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1945년 이탈리아 왕국이 추축국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다가 패전하면서 이스트리아 반도, 트리에스테의 내륙 지역, 카르스트 고원이 유고슬라비아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계와 슬라브계가 같이 거주하던 트리에스테를 두고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 간의 대립으로 인해 1954년 각각 양측을 지지한 서방 세계와 공산권 간의 대립이 있었고, 이후 잠정 조치에 의해 미국 · 영국이 관리하던 A지구의 대부분은 트리에스테를 포함해 이탈리아의 행정 관할하에, 유고슬라비아가 관리하고 있던 B지구와 A지구의 일부는 유고슬라비아의 행정 관할하에 놓이게 되었다. 1975년 이탈리아·유고슬라비아 양국은 앞의 잠정 조치를 승인하는 협정을 체결했으며, 이에 따라 지금의 경계가 완성되었다.

산업[편집]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는 낙농업섬유산업세라믹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방은 지형이 매우 다양한데, 북부는 바위가 많은 고지대와 척박한 산비탈로 이루어져 있고, 남부는 메마르거나 습기 찬 저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이 지역의 개간작업은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해 토지의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자급자족하기에도 빠듯한 영세농이 대부분이고 이탈리아에서 비교적 가난한 지역에 속하였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해봤자 인근의 베네토, 롬바르디아, 트렌토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해 보이는거지, 실제로는 남부와 비교하기엔 실례일 정도로 마냥 답없이 못사는 동네는 아니다. 엄연히 이곳은 이탈리아 북부이다.

북부의 강우량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높아 가축을 기르기에 좋은 천연 목초지가 잘 발달해 있다. 프리울리의 햄과 낙농제품은 유명하다. 탈리아멘토 강 유역에는 옥수수를 비롯한 곡식이 재배되고, 우디네 주변에는 채소가 재배된다. 이밖에도 와인 생산지로도 유명한 곳으로 이곳의 화이트 와인은 세계적으로 찾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유명하다. 물론 레드 와인도 총와인생산랭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며 가장 훌륭한 적포도 품종으로는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그리고 토착 품종인 스키오페티노가 있다.

대도시인 우디네·포르데노네·고리치아·몬팔코네·트리에스테는 모두 산업이 상당히 발전했다. 고대 로마 때부터 모자이크 기술이 발달한 곳으로 이는 모자이크의 기본 재료들이 해당 지역에서 쉽게 구할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메두나 강의 황색 자갈, 탈리아멘토 강의 검은색, 녹색, 붉은색 자갈, 코사 급류의 흰색 자갈로 모자이크를 만들 수가 있다고 한다. 프리울리의 모자이크 세공가들은 고대서부터 시작해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으로 그기술을 인정받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편이다.

이밖에도 목재 세공 산업도 발달되어 있어 이탈리아에서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되는 의자의 대부분이 프리울리 지방의 마리아노와 만차노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들이며 의자 제조업의 영향으로 프리울리 의자수출업자협회가 있으며 이협회에 소속된 의자 공장만 해도 200여 개나 있다. 해안가 지역인 만큼 해운업도 가능해 트리에스테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항구들 가운데 하나다.

교통[편집]

도로 교통망은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200km 이상 이어지는 고속도로로 구성되며,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와도 연결된다.

철도 노선 중 베네치아-트리에스테, 트리에스테-우디네-타르비시오-오스트리아 노선이 이 지역을 통과한다. 지중해의 3대 북쪽항구인 트리에스테, 몬팔코네, 포르토노가로 항구와 고속도로 및 철도로 이어진다.

지역공항인 론치데이레지오나리는 트레이스테에서 약 30km, 우디네에서 약 40km 떨어져 있으며, 고속도로 및 철도망과 잘 연결되어 있다. 이 공항이탈리아동유럽을 포함한 국내외 정기 항공편을 제공한다.

문화 및 관광[편집]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 우디네 지방에 위치한 고대도시 아퀼레이아는 BC 181년 나티손 강둑에 군사식민지로 세워진 곳이다. 초기 로마제국의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5세기 중반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곳은 지중해 지역의 고대 로마유적 가운데 규모가 크고 초기 모습이 잘 간직된 유적들이 많다. 로마시대의 광장, 목욕탕, 공화국의 환전소, 화려한 주거단지의 일부가 남아있다. 그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이 성당이다. 로마네스크-고딕 양식이며 내부 바닥이 4세기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모자이크 그림은 예수의 제자들 및 예언자 요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퀼레이아 유적지와 가톨릭 성당은 고고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국가
서유럽 도시
서유럽 지리
지중해
서유럽 문화
서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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