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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브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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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브디프 로마시대 극장
플로브디프 위치

플로브디프(불가리아어: Пловдив, 영어: Plovdiv)는 동남유럽발칸반도 남동부에 있는 불가리아 중남부에 위치한 도시플로브디프주의 주도이다. 수도 소피아 다음으로 불가리아에서 두 번째로 가장 큰 도시로 면적은 102km², 인구는 약 38만 명이다. 플로브디프는 불가리아의 '문화 수도'이며 2014년에 이탈리아 도시 마테라(Matera)와 함께 ‘2019 유럽​​문화 수도’로 선정되기도 했다.[1]

개요[편집]

플로브디프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불가리아 남부의 중심부인 마리차강(江)에 접해 있다. 소피아 남동쪽 125km 지점에 위치한 이 도시는 경제, 교통, 문화 및 교육의 중심지이다. 기원전 6000년 신석기시대 최초의 정착지 흔적이 발견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필립 2세(Philip II)에 의해 정복된 후 그의 이름을 따 필리포폴리스(Philippopolis)라고 불렸다. 이후 7세기 전반 이 지역에 정착한 슬라브족이 원주민인 트라키아인(Thracian)들과 공존하면서 도시의 이름이 풀딘(Puldin)에 이어 플로브디프(Plovdiv)로 바뀌었다. 플로브디프는 마리차강 (Maritsa River) 양안의 비옥한 지역에 자리한 7개의 언덕 위에 건설되었다. 이로 인해 '일곱 언덕의 도시'(City of the Seven Hills)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다. 플로브디프는 공업도시로 식품, 화학, 섬유, 기계, 자동차, 담배 등의 공업이 이루어지며 인쇄 산업도 활발하다. 근교에서는 야채, 포도, 쌀 등의 농산물이 재배되며 맥주, 식품, 요리, 빵 등 식료품 산업이 발달해 해마다 전시회가 열리고, 특히 인쇄박람회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유럽의 대표적인 고대도시로 알렉산드로스대왕 시대에 건설된 역사 유적을 비롯해 로마의 원형경기장과 원형극장이 있다. 그 밖에 산타마리아성당, 고고학 박물관, 불가리아의 각종 민속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민속박물관, 바로크 양식의 건물 등 곳곳에 역사 유적이 흩어져 있다. 오랜 역사 못지않게 문화 활동도 활발하다. 플로보디프 국제박람회를 비롯해 국제연극축제, TV 축제, 오페라 페스티벌 같은 다양한 축제와 행사가 열린다. 로마시대 극장과 수로, 경기장 등 많은 유적이 보존돼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마리차(Maritsa)강 유역의 평야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101.98km²로, 나라 전체 면적의 0.1% 미만이다. 불가리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아 1km²에 3,769명이다. 마리차강의 남쪽에서부터 이루어진 도시 개발은 지난 100년 동안 강을 가로질러 확장됐다. 도시 안에는 성장의 발판이 된 6개의 사이어나이트(syenite 섬장암 ; 화강암의 일종) 언덕이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는 7개의 구릉이 있었지만 하나가 파괴되었다.

플로브디프는 대륙성 영향을 받는 습한 아열대 기후를 보인다. 3월에 시작되는 봄은 가을보다 시원하다. 봄의 중순은 온화하고 비교적 따뜻하다. 여름(5월 중순~9월 하순)은 덥지만 적당히 건조하고 맑다. 7, 8월의 평균 기온은 33℃를 기록한다. 간혹 아주 더운 폭염이 찾아오기도 한다. 여름밤은 온화한 편이다. 9월 말에 시작되는 가을은 비교적 따뜻하다. 첫 서리는 일반적으로 11월에 내린다. 겨울은 보통 춥고 눈이 흔하다. 눈 내리는 날은 평균 15일이며 평균 적설량은 2~4cm이다. 때때로 70cm 넘는 폭설이 오기도 한다. 1월의 평균 기온은 영하 0.4℃이다. 연중 총 강수량은 540mm이며 일년 내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가장 습한 달은 5월과 6월로, 평균 강수량은 66.2mm이다. 가장 건조한 달은 8월이며, 평균 강수량은 31mm이다.

역사[편집]

플로브디프는 80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발칸 반도에 거주한 가장 오래된 민족인 트라키아인(Thracian)들로부터 전해져 오는 역사적, 문화적 유산이 풍부하다. 이 지역 최초의 거주 흔적은 기원전 6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석기 시대의 공동묘지와 도자기를 비롯한 생활 도구 등이 발견됐다. 이 지역은 기원전 516년 페르시아 제국에 복속되었다가 기원전 342년에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립 2세에게 정복되면서 '필리포폴리스'(Philippopolis)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기원전 270년대 동유럽의 켈트족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기도 했다. 서기 46년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에 의해 로마 제국에 편입되면서 그 지방의 중심 도시 역할을 했다. 많은 공공건물, 사당, 목욕탕, 극장, 경기장과 불가리아에서 유일하게 개발된 고대 상·하수도 체계를 갖추는 등 활기찬 성장의 모습을 보였다.

250년엔 고트(Goth)족의 공격을 받아 약탈을 당하고 10만 명의 시민들이 죽거나 포로로 잡혔다. 4세기부터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거쳐 834년 불가리아 제국에 편입됐다. 이후 1189년 제3차 십자군 원정으로 신성로마제국에 정복됐다가 1204년엔 라틴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1323년 다시 비잔틴의 지배가 회복되었으나 1371년 오스만 제국으로 넘어가 1878년 러시아-투르크 전쟁으로 해방될 때까지 500여 년간 그들의 치하에 있었다. 1885년에 불가리아에 편입되었다. 1920년부터 1960년 사이에 도시의 산업화가 진행되었다.

해방과 함께 불가리아에서 분리됐던 동부 루멜리아(Eastern Rumelia) 자치구는 이 도시를 중심으로 통합 운동을 벌여 1885년 9월 6일 통일을 이룬다. 이에 따라 매년 9월 6일은 통일의 날과 플로브디프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20세기 초엔 경공업과 식품 산업이 발달하면서 중요한 산업 및 상업 중심지로 성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현재의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담배 산업과 과일 및 채소 수출이 확대됐다. 1960~70년대 건축 붐이 일어나 현대적인 개발이 이루어졌다. 1989년 11월에는 민주화 시위를 통해 불가리아인민공화국을 불가리아공화국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3]

경제[편집]

플로브디프은 리아 최대의 경제 규모를 자랑해 경제 수도로 일컬어진다. 2014년 기준 GDP의 7.5%를 차지한다. 국토 중앙에 위치한 지리적 장점, 잘 갖춰진 인프라, 많은 인구가 도시 발전의 원동력이다. 플로브디프는 국제공항, 복합 운송 터미널, 고속도로, 철도 등 교통망이 풍부하다. 도시 대부분 지역을 연결하는 자전거 도로망도 잘 발달돼 있다. 총 길이는 60km이며 모두 690개의 자전거 주차장이 있다. 제조, 유통, 운송, 통신 및 관광 분야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은 IT 및 아웃소싱 서비스 부문에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관광 산업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

부유한 농업 지역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지만 경제구조는 20세기 초부터 농업에서 산업으로 전환했다. 식품 가공, 담배, 양조 및 직물이 산업화를 선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공산주의 통치기간 동안 경제 규모가 확대되고 중공업이 부흥했다. 하지만 1989년 공산주의와 계획경제 체제 몰락 후 많은 산업 단지가 문을 닫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도시와 그 주변에 다시 제조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경제는 활기를 되찾았다. 이 기간 동안 새로운 공장 건설에 약 5억 유로가 투자되었다. 동유럽에서 가장 큰 산업단지 중 하나인 트라키아 경제지대가 인근에 있다.

관광[편집]

플로브디프에는 200개가 넘는 고고학적 유적지가 있으며 그 가운데 30여 개는 국가 중요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플로브디프는 두 개의 고대 극장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이다. 중세의 벽과 탑의 잔해, 오스만 목욕탕과 모스크, 아름다운 옛집과 교회, 그리고 좁은 포장도로도 잘 보존돼 있다.

시내 2개의 언덕 사이에 자리 잡은 고대 극장의 조각상에선 이 극장이 기원 1세기에 건축됐음을 알려주는 비문이 발견됐다. 가로세로 14줄씩 두 부분으로 나뉘어 최대 7,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1968년부터 1984년 사이에 복원되었으며 지금도 오페라, 록, 국제 민속 페스티벌 등 많은 행사가 열린다. 2~5세기에 지어진 또 다른 로마시대 소규모 공연장 오데온(Odeon)은 350석 규모로 2004년 복원됐다. 고대 경기장 또한 중요한 기념물이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 때인 2세기에 건설되었다. 길이 약 240m, 폭 50m로 최대 3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3개 언덕(Three Hills)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고대 포럼(아고라·광장)은 주목할 만한 건축 복합물이다. 가로 100m, 세로 112m 정도의 광대한 네모난 공간이 잘 닦인 대리석 판으로 덮여 있고 넓은 차양을 지탱하는 6m 간격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동안의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영토에서 발견된 가장 큰 복합시설로 분석된다. 고고학 박물관은 1882년 동부 루멜리아 인민 박물관으로 설립되었다가 1928년 새디네니(Saedinenie) 광장에 있는 19세기 건물로 옮겨졌다. 박물관에는 풍부한 고대 트라키아 미술품을 비롯해 구석기 시대부터 오스만 시대 초기(15~16세기)까지의 귀중한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시내 올드 타운은 불가리아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유명한 역사적 보존 지역이다. 이곳의 거의 모든 집들은 독특한 외관과 실내장식을 자랑한다. 시내에는 40개가 넘는 미술관이 있으며 대부분 개인 소유이다. 19세기 후반 개관한 플로브디프 미술관(Art Gallery of Plovdiv)은 4개 건물에 5,000여 개의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4]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플로브디프〉, 《위키백과》
  2. 플로브디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플로브디프〉, 《요다위키》
  4. 플로브디프(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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