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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호주 국기.png|썸네일|300픽셀|호주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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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호주 국장.png|썸네일|300픽셀|호주 국장]]
 
[[파일:호주 국장.png|썸네일|300픽셀|호주 국장]]
호주의 국기는 1901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수립과 동시에 실시된 공모를 통해 제정되었으며 1901년 9월 3일에 멜버른에서 처음 게양되었다. 1908년 2월 23일에 현재와 같은 디자인으로 수정되었으며 비율은 1:2이다. 원주민들은 별도의 기를 사용한다. (토레스 해협 제도의 원주민의 경우 또 다른 독자적인 기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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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의 국기는 1901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수립과 동시에 실시된 공모를 통해 제정되었으며 1901년 9월 3일에 멜버른에서 처음 게양되었다. 1908년 2월 23일에 현재와 같은 디자인으로 수정되었으며 비율은 1:2이다. 원주민들은 별도의 기를 사용한다. (토레스 해협 제도의 원주민의 경우 또 다른 독자적인 기를 사용한다.)
  
 
파란색 바탕 왼쪽 상단에 붙어 있는 유니언 잭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영국 연방의 일원임을 의미한다. 유니언 잭 아래쪽에 그려진 커다란 하얀색 칠각별은 연방의 별(Commonwealth Star)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오스트레일리아를 구성하는 주와 준주를 의미한다. 국기 오른쪽에 그려져 있는 5개의 크고 작은 하얀색 별들(4개의 칠각별, 1개의 오각별(기난))은 남십자자리를 표시한다.
 
파란색 바탕 왼쪽 상단에 붙어 있는 유니언 잭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영국 연방의 일원임을 의미한다. 유니언 잭 아래쪽에 그려진 커다란 하얀색 칠각별은 연방의 별(Commonwealth Star)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오스트레일리아를 구성하는 주와 준주를 의미한다. 국기 오른쪽에 그려져 있는 5개의 크고 작은 하얀색 별들(4개의 칠각별, 1개의 오각별(기난))은 남십자자리를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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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장 ===
 
=== 국장 ===
호주의 국장은 1908년 5월 7일 영국의 에드워드 7세 국왕에 의해 처음 승인되었으며 현재의 국장은 1912년 9월 19일 영국의 조지 5세 국왕에 의해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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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의 국장은 1908년 5월 7일 영국의 에드워드 7세 국왕에 의해 처음 승인되었으며 현재의 국장은 1912년 9월 19일 영국의 조지 5세 국왕에 의해 승인되었다.
  
 
국장 가운데에 그려져 있는 방패 안에는 호주를 구성하는 6개의 주인 뉴사우스웨일스주, 빅토리아주, 퀸즐랜드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태즈메이니아주를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국장 가운데에 그려져 있는 방패 안에는 호주를 구성하는 6개의 주인 뉴사우스웨일스주, 빅토리아주, 퀸즐랜드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태즈메이니아주를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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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를 종식시키고, 영국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한 고프 휘틀럼 총리 당시 국가 교체가 논의되었고, 결국 1878년 작곡된 '아름다운 오스트레일리아여 전진하라'가 국민투표를 통해 1984년 국가로 지정되었다.
 
허나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를 종식시키고, 영국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한 고프 휘틀럼 총리 당시 국가 교체가 논의되었고, 결국 1878년 작곡된 '아름다운 오스트레일리아여 전진하라'가 국민투표를 통해 1984년 국가로 지정되었다.
  
참고로 이 국가에 비판적인 호주인들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호주 원주민과 관련한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사에 원주민의 역사가 담겨있지 않는 것을 지적한다. 이때문에 가사를 바꿔서 부르거나 아예 국가를 부르는걸 거부하는 사람까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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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 국가에 비판적인 호주인들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관련한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사에 원주민의 역사가 담겨있지 않는 것을 지적한다. 이때문에 가사를 바꿔서 부르거나 아예 국가를 부르는걸 거부하는 사람까지 존재한다.
  
 
결국 정치권에서도 호주 원주민과의 화해를 위해 For we are young and free 구절 중 'young'에서 'One'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다. 다소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2021년 1월 1일 가사를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정치권에서도 호주 원주민과의 화해를 위해 For we are young and free 구절 중 'young'에서 'One'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다. 다소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2021년 1월 1일 가사를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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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그레이트 디바이딩 산맥.jpg|썸네일|300픽셀|그레이트 디바이딩 산맥]]
 
[[파일:그레이트 디바이딩 산맥.jpg|썸네일|300픽셀|그레이트 디바이딩 산맥]]
  
호주 대륙의 대부분이 [[사막]]이지만 대륙은 고산 지대에서 열대 우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서식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북동쪽의 열대 우림, 남동쪽과 남서쪽과 동쪽의 산맥, 그리고 중앙의 사막과 같은 다양한 풍경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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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대부분이 [[사막]]이지만 대륙은 고산 지대에서 열대 우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서식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북동쪽의 열대 우림, 남동쪽과 남서쪽과 동쪽의 산맥, 그리고 중앙의 사막과 같은 다양한 풍경을 갖고 있다.
 
=== 일반적 특성 ===
 
=== 일반적 특성 ===
 
오스트레일리아는 [[인도양]]과 [[태평양]]에 둘러싸여 있다. [[아라푸라해]]와 [[티모르해]]에 의해 [[아시아]]와 분리되어 있으며, [[산호해]]는 [[퀸즐랜드]] 해안에, [[태즈먼해]]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 맞닿아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대륙이자 6번째로 넓은 나라로 그 크기와 고립성 때문에 "섬 대륙"이라고 불리며, 종종 세계에서 가장 큰 섬으로 여겨진다. 오스트레일리아는 34,218킬로미터(21,261마일)의 해안선(섬 제외)과 8,148,250평방킬로미터(3,146,060평방마일)의 배타적 경제 수역을 가지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매쿼리섬과 별도로 위도 9°와 44°S, 경도 112°와 154°E 사이에 위치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인도양]]과 [[태평양]]에 둘러싸여 있다. [[아라푸라해]]와 [[티모르해]]에 의해 [[아시아]]와 분리되어 있으며, [[산호해]]는 [[퀸즐랜드]] 해안에, [[태즈먼해]]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 맞닿아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대륙이자 6번째로 넓은 나라로 그 크기와 고립성 때문에 "섬 대륙"이라고 불리며, 종종 세계에서 가장 큰 섬으로 여겨진다. 오스트레일리아는 34,218킬로미터(21,261마일)의 해안선(섬 제외)과 8,148,250평방킬로미터(3,146,060평방마일)의 배타적 경제 수역을 가지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매쿼리섬과 별도로 위도 9°와 44°S, 경도 112°와 154°E 사이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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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
 
==== 산 ====
 
*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에 위치한 2,228미터(7,310피트) 높이의 [[어거스투스 산]](Mount Augustus)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단층석으로 여겨진다.
 
*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에 위치한 2,228미터(7,310피트) 높이의 [[어거스투스 산]](Mount Augustus)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단층석으로 여겨진다.
* [[코지어스코 산]]은 호주 본토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호주 영토에서는 허드섬에 있는 마우슨 피크(2,745 미터, 9,006 피트)가 최고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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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지어스코 산]]은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오스트레일리아 영토에서는 허드섬에 있는 마우슨 피크(2,745 미터, 9,006 피트)가 최고봉이다.
 
:* 오스트레일리아령 남극 지역에서는 맥클린톡 산과 멘지 산이 각각 3,492미터(11,457피트)와 3,355미터(11,007피트)이다.
 
:* 오스트레일리아령 남극 지역에서는 맥클린톡 산과 멘지 산이 각각 3,492미터(11,457피트)와 3,355미터(11,007피트)이다.
 
==== 산맥 ====
 
==== 산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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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형 ===
 
=== 지형 ===
 
[[파일:피츠로이 섬.jpg|썸네일|300픽셀|left|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주요 군도 내에 있는 600개의 섬 중 하나인 피츠로이 섬]]
 
[[파일:피츠로이 섬.jpg|썸네일|300픽셀|left|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주요 군도 내에 있는 600개의 섬 중 하나인 피츠로이 섬]]
[[파일:호주 중부 반건조 지역의 울루루.jpg|썸네일|300픽셀|left|호주 북부 노던 준주의 남부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 울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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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호주 중부 반건조 지역의 울루루.jpg|썸네일|300픽셀|left|오스트레일리아 북부 노던 준주의 남부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 울루루.]]
 
오스트레일리아섬은 대륙으로 불리지만 대륙으로서는 세계 최소이며 그 지형은 다른 어떤 대륙보다도 변화가 적고 단조롭다. 둘레 약 2만km에 이르는 해안선도 굴곡이 적어 오랜 기간 안정상태를 유지해온 대륙임을 알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섬은 대륙으로 불리지만 대륙으로서는 세계 최소이며 그 지형은 다른 어떤 대륙보다도 변화가 적고 단조롭다. 둘레 약 2만km에 이르는 해안선도 굴곡이 적어 오랜 기간 안정상태를 유지해온 대륙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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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중동부저지:대륙의 중앙부에서 동쪽으로 펼쳐진 이 저지대의 평균 해발고도는 150m 이하이다. 이 지대는 예전에는 해저(海底)가 되었던 곳으로 백악기(白堊紀)의 어패류 화석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의 에어호(湖)와 같이 해면 아래 약 10m의 염호도 있다. 중동부저지의 북부는 열대권에 속하며 강수량은 풍부하나 목축 외에는 중요한 산업이 없다. 중부∼남부 지역은 기후적으로는 건조하나 자분정(自噴井)이 많으며 중부의 대찬정 분지(大鑽井盆地)는 세계 최대의 자분정 분지로서 양의 사육이 성하다. 서쪽의 에어호 분지는 강수량이 연간 100mm 이하로 극히 적어 일부에서 양을 사육할 뿐,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 남부의 머리강(江) 유역에서는 대규모의 양치기 외에 밀·과일·벼 등이 재배되고 있다. 이들 생산물의 집산지·반출항으로서 애들레이드시(市)가 발전되어 있다.
 
② 중동부저지:대륙의 중앙부에서 동쪽으로 펼쳐진 이 저지대의 평균 해발고도는 150m 이하이다. 이 지대는 예전에는 해저(海底)가 되었던 곳으로 백악기(白堊紀)의 어패류 화석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의 에어호(湖)와 같이 해면 아래 약 10m의 염호도 있다. 중동부저지의 북부는 열대권에 속하며 강수량은 풍부하나 목축 외에는 중요한 산업이 없다. 중부∼남부 지역은 기후적으로는 건조하나 자분정(自噴井)이 많으며 중부의 대찬정 분지(大鑽井盆地)는 세계 최대의 자분정 분지로서 양의 사육이 성하다. 서쪽의 에어호 분지는 강수량이 연간 100mm 이하로 극히 적어 일부에서 양을 사육할 뿐,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 남부의 머리강(江) 유역에서는 대규모의 양치기 외에 밀·과일·벼 등이 재배되고 있다. 이들 생산물의 집산지·반출항으로서 애들레이드시(市)가 발전되어 있다.
  
③ 동부고지:요크곶 반도에서부터 대륙의 동부까지, 북에서 남으로 대분수산맥(大分水山脈:그레이트디바이딩레인지)이 뻗어 있다. 그러나 이 산맥은 고지의 연속일 뿐, 높은 산은 없다. 고원 위는 넓은 평탄면을 이루어 농·목축업에 이용된다. 퀸즐랜드주의 바틀프리르산(1612m)을 제외하면 북부와 남부에는 해발고도 1500m 이상의 산이 거의 없다. 남부의 호주 알프스산맥은 7·8월의 적설기에 겨울 스포츠의 최적지가 된다. 이 산맥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최고봉인 [[코지어스코산]](2234m)이 있다. 그 남쪽에는 빅토리아주(州)의 보공산(1985m)이 있고, 산맥이 일단 배스 해협으로 침몰하였다가 태즈메이니아주의 오사산(1617m)에 이어진다. 코지어스코산의 북쪽에서 발원하는 스노위·머럼비지·머리 등 하천을 다목적으로 개발하는 스노위 산지계획이 1949년에 착공되어 총 5200㎢의 범위에 걸쳐 수력발전소 7개소, 대규모 댐 16개소, 터널 145km, 수로(水路) 80km 등이 1974년에 완성되었다. 대분수산맥의 동쪽은 기름진 평야로서, 너비 50∼400km의 장대한 연안평야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경제의 심장부가 되어 있다. 대분수산맥에서 평야지역에 걸쳐서 석탄이 개발되어 외국으로 수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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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동부고지:요크곶 반도에서부터 대륙의 동부까지, 북에서 남으로 대분수산맥(大分水山脈:그레이트디바이딩레인지)이 뻗어 있다. 그러나 이 산맥은 고지의 연속일 뿐, 높은 산은 없다. 고원 위는 넓은 평탄면을 이루어 농·목축업에 이용된다. 퀸즐랜드주의 바틀프리르산(1612m)을 제외하면 북부와 남부에는 해발고도 1500m 이상의 산이 거의 없다. 남부의 오스트레일리아 알프스산맥은 7·8월의 적설기에 겨울 스포츠의 최적지가 된다. 이 산맥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최고봉인 [[코지어스코산]](2234m)이 있다. 그 남쪽에는 빅토리아주(州)의 보공산(1985m)이 있고, 산맥이 일단 배스 해협으로 침몰하였다가 태즈메이니아주의 오사산(1617m)에 이어진다. 코지어스코산의 북쪽에서 발원하는 스노위·머럼비지·머리 등 하천을 다목적으로 개발하는 스노위 산지계획이 1949년에 착공되어 총 5200㎢의 범위에 걸쳐 수력발전소 7개소, 대규모 댐 16개소, 터널 145km, 수로(水路) 80km 등이 1974년에 완성되었다. 대분수산맥의 동쪽은 기름진 평야로서, 너비 50∼400km의 장대한 연안평야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경제의 심장부가 되어 있다. 대분수산맥에서 평야지역에 걸쳐서 석탄이 개발되어 외국으로 수출된다.
  
 
=== 생태 ===
 
=== 생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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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역사 ==
 
[[파일:서호주 킴벌리 지역의 원주민 암각화.jpg|썸네일|300픽셀|서호주 킴벌리 지역의 원주민 암각화]]
 
[[파일:서호주 킴벌리 지역의 원주민 암각화.jpg|썸네일|300픽셀|서호주 킴벌리 지역의 원주민 암각화]]
[[파일:오스트레일리아 배서스트섬의 원주민.jpg|썸네일|300픽셀|호주 배서스트섬의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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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스트레일리아 배서스트섬의 원주민.jpg|썸네일|300픽셀|오스트레일리아 배서스트섬의 원주민]]
 
호주의 역사는 몇 만 년 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던 원주민이 세운 국가인 '''애버리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문자로 기록된 이 나라의 역사는 17세기경 네덜란드 탐험가들이 처음으로 이 나라를 목격한 기록으로부터 시작된다. 1770년에 영국의 선장 제임스 쿡이 본격적으로 이곳을 탐험한 이래, 1901년 1월 1일에 영연방의 일원이 되었고 얼마 후에 군대가 창설되었다. 1931년 12월 11일부터 웨스트민스터 헌장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호주 원주민들과의 접촉, 그리고 최초의 영국인 정착자들에 관한 문제들 등은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
 
호주의 역사는 몇 만 년 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던 원주민이 세운 국가인 '''애버리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문자로 기록된 이 나라의 역사는 17세기경 네덜란드 탐험가들이 처음으로 이 나라를 목격한 기록으로부터 시작된다. 1770년에 영국의 선장 제임스 쿡이 본격적으로 이곳을 탐험한 이래, 1901년 1월 1일에 영연방의 일원이 되었고 얼마 후에 군대가 창설되었다. 1931년 12월 11일부터 웨스트민스터 헌장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호주 원주민들과의 접촉, 그리고 최초의 영국인 정착자들에 관한 문제들 등은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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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인들의 도착 ===
 
=== 유럽인들의 도착 ===
 
[[파일:1770년 제임스 쿡 보타니만 상륙.jpg|썸네일|300픽셀|left|1770년 4월 29일, 제임스 쿡이 보타니 만에 상륙하여 호주 동부 해안을 대영제국으로 주장]]
 
[[파일:1770년 제임스 쿡 보타니만 상륙.jpg|썸네일|300픽셀|left|1770년 4월 29일, 제임스 쿡이 보타니 만에 상륙하여 호주 동부 해안을 대영제국으로 주장]]
[[파일:1813년까지 유럽인들의 오스트레일리아 항해 경로.png|썸네일|300픽셀|1813년까지 유럽인들의 호주 항해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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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813년까지 유럽인들의 오스트레일리아 항해 경로.png|썸네일|300픽셀|1813년까지 유럽인들의 오스트레일리아 항해 경로]]
 
최초로 기록된 유럽인들의 호주 본토 관측과 상륙은 [[네덜란드]]인에 의한 것이다(1606). 네덜란드 항해사 [[빌렘 얀스존]]이 이끄는 다프켄 호는 처음으로 호주 해안을 측량하고 호주 원주민과 만났다. 그는 1606년 초에 케이프요크반도의 해안을 관측하고 2월 26일에 케이프 요크 웨이파의 현대 마을 부근의 페네파더 강(Pennefather River)에 상륙했다. 다음 해에 스페인 탐험가 [[루이스 바에스 데 토레스]](Luís Vaz de Torres)가 토레스 해협 제도를 항해했다. 네덜란드인들은 17세기에 서쪽과 북쪽의 모든 해협을 측량하고 "뉴 홀란드(New Holland)"라고 이름 붙였지만 정착하지는 않았다. 영국의 탐험가 [[윌리엄 댐피어]]는 1688년에 해적 선장 존 리드(John Read) 밑에서 일하는 동안 뉴 홀랜드의 북쪽 해안에 상륙했고, 1699년에 돌아오면서 다시 상륙했다. 1770년에는 [[제임스 쿡]]이 동쪽 해안을 따라 항해하며 지도화했는데, 그는 이 해안을 '''뉴사우스웨일즈라'''고 명명하고 [[대영제국]]에 보고했다.
 
최초로 기록된 유럽인들의 호주 본토 관측과 상륙은 [[네덜란드]]인에 의한 것이다(1606). 네덜란드 항해사 [[빌렘 얀스존]]이 이끄는 다프켄 호는 처음으로 호주 해안을 측량하고 호주 원주민과 만났다. 그는 1606년 초에 케이프요크반도의 해안을 관측하고 2월 26일에 케이프 요크 웨이파의 현대 마을 부근의 페네파더 강(Pennefather River)에 상륙했다. 다음 해에 스페인 탐험가 [[루이스 바에스 데 토레스]](Luís Vaz de Torres)가 토레스 해협 제도를 항해했다. 네덜란드인들은 17세기에 서쪽과 북쪽의 모든 해협을 측량하고 "뉴 홀란드(New Holland)"라고 이름 붙였지만 정착하지는 않았다. 영국의 탐험가 [[윌리엄 댐피어]]는 1688년에 해적 선장 존 리드(John Read) 밑에서 일하는 동안 뉴 홀랜드의 북쪽 해안에 상륙했고, 1699년에 돌아오면서 다시 상륙했다. 1770년에는 [[제임스 쿡]]이 동쪽 해안을 따라 항해하며 지도화했는데, 그는 이 해안을 '''뉴사우스웨일즈라'''고 명명하고 [[대영제국]]에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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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식민지 시대 ===
 
=== 영국 식민지 시대 ===
[[파일:호주 교도소 유적지.jpg|썸네일|300픽셀|left|태즈매니아의 포트아서는 18, 19세기에 대영제국이 호주 영토에 건설한 수천 개의 교도소 가운데 11개의 남아 있는 교도소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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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호주 교도소 유적지.jpg|썸네일|300픽셀|left|태즈매니아의 포트아서는 18, 19세기에 대영제국이 오스트레일리아 영토에 건설한 수천 개의 교도소 가운데 11개의 남아 있는 교도소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호주의 초기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한 것은 1850년대의 [[골드 러시]] 때문이었다. 호주라는 대륙 자체에서 풍화와 침식이 활발하게 일어나다보니 금광이 지하 깊숙히 묻혀 있지 않고 지표에 노출된 경우가 많았는데 서양인들 입장에서는 이런 노천광산 하나만 발견하면 그냥 길가다 돈줍기만큼이나 쉽게 돈을 벌었던 것이다. 또한 호주 남부(애들레이드 등)에서의 따뜻한 기후는 와인 생산이나 농장운영에 적합했기 때문에 이민자가 우르르 몰려왔다.
 
호주의 초기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한 것은 1850년대의 [[골드 러시]] 때문이었다. 호주라는 대륙 자체에서 풍화와 침식이 활발하게 일어나다보니 금광이 지하 깊숙히 묻혀 있지 않고 지표에 노출된 경우가 많았는데 서양인들 입장에서는 이런 노천광산 하나만 발견하면 그냥 길가다 돈줍기만큼이나 쉽게 돈을 벌었던 것이다. 또한 호주 남부(애들레이드 등)에서의 따뜻한 기후는 와인 생산이나 농장운영에 적합했기 때문에 이민자가 우르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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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 ===
 
=== 독립 ===
 
[[파일:1954년 유럽에서 호주에 도착한 전후 이주자들.jpg|썸네일|300픽셀|1954년 유럽에서 호주에 도착한 전후 이주자들]]
 
[[파일:1954년 유럽에서 호주에 도착한 전후 이주자들.jpg|썸네일|300픽셀|1954년 유럽에서 호주에 도착한 전후 이주자들]]
자치령 시절 호주는 개헌을 할 때에는 영국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의 법적 예속 관계가 있었으나 1986년에 호주 의회와 영국 의회가 호주 법(Australia Act)를 통과시킴으로써 호주는 영국과의 법적 예속 관계를 청산하고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현재의 호주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건너온 유럽계 이민자나 이후의 유입인구가 거의 절반이고, 미국과 다르게 아직도 영국계 호주인 등 백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며,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그 뒤를 잇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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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령 시절 호주는 개헌을 할 때에는 영국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의 법적 예속 관계가 있었으나 1986년에 호주 의회와 영국 의회가 오스트레일리아 법(Australia Act)를 통과시킴으로써 호주는 영국과의 법적 예속 관계를 청산하고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현재의 호주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건너온 유럽계 이민자나 이후의 유입인구가 거의 절반이고, 미국과 다르게 아직도 영국계 호주인 등 백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며,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그 뒤를 잇는 나라다.
  
 
오늘날 호주는 안전한 미래를 위해서 다른 나라와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스스로를 아시아 국가의 일원으로 강조하며 아시아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 중이다.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아축구연맹에 가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호주의 농산물을 수입해오던 영국이 1970년대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소련 해체와 바르샤바 조약기구 해체 이후 동유럽이 개방되면서, 호주의 수출품 상당수는 영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였다. 대신 동아시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호주는 대체 수출 시장을 찾을 수 있다. 동아시아 경제의 급성장이 아니었다면, 아직 수출 대부분을 1차산업 생산품에 기대는 호주는 20세기 중반 이후 아르헨티나나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몰락한 것처럼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었을 것이다.
 
오늘날 호주는 안전한 미래를 위해서 다른 나라와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스스로를 아시아 국가의 일원으로 강조하며 아시아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 중이다.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아축구연맹에 가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호주의 농산물을 수입해오던 영국이 1970년대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소련 해체와 바르샤바 조약기구 해체 이후 동유럽이 개방되면서, 호주의 수출품 상당수는 영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였다. 대신 동아시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호주는 대체 수출 시장을 찾을 수 있다. 동아시아 경제의 급성장이 아니었다면, 아직 수출 대부분을 1차산업 생산품에 기대는 호주는 20세기 중반 이후 아르헨티나나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몰락한 것처럼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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