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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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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해안

황금해안(黃金海岸, Gold Coast)은 서아프리카 기니만(灣)의 북쪽 해안이다.

개요[편집]

  • 황금해안은 가나공화국의 대서양에 면한 해안지대를 가리킨다. 1471년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눈에 띈 것은 해변을 따라 널려 있는 수많은 황금이었다. 이후 포르투갈인들이 이곳에서 사금(砂金)을 채취해 가면서 유럽인들 사이에 "황금해안"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막대한 양의 금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프랑스·네덜란드·영국·덴마크·스웨덴 등 유럽 여러 나라들이 이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오랫동안 각축을 벌였다. 1874년 영국이 식민지로 삼았으며, 이후 영국은 그 지배권을 내륙의 아샨티(Ashanti) 지방까지 확대했고, 다시 북부지방을 편입해서 보호령으로 삼았다. 그 후 이 세 지역은 영국령 토골란드(Togoland)와 함께 1957년 3월 6일 가나(Ghana)라는 이름으로 독립하여 영국 연방의 자치령이 되었다가 1960년 정식으로 가나공화국이 되었다. 가나의 수도인 아크라(Accra)로부터 서쪽의 기니만 연안에는 당시 유럽 각국이 쌓은 성채들이 50곳 이상 남아 있으며, 근처의 포트 생자고(Fort St. Jago)는 관광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17~18세기 노예무역이 성행하던 곳이기도 하다. [1]
  • 황금해안은 서아프리카 가나의 아크라에 있는 기니만 연안의 해변을 말한다. 1482년 포르투갈이 처음 상륙한 뒤부터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국,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의 무역업자들이 교역의 거점으로 삼았다. 1821년 영국령 골드코스트가 설립된 뒤부터 영국은 인접한 다른 나라의 식민지들을 편입시켰다. 1957년 골드코스트 식민지는 가나라는 이름의 국가로 독립했다. [2]

기니만[편집]

  • 기니만(Gulf of Guinea)은 아프리카 대서양의 상부 기니에서 하부 기니 연안을 따라 만입된 해역이다. 라이베리아 해안 서경 7° 43'의 팔마스곶에서 동경 10°의 가봉에 이르는 광대한 해역을 말한다. 만에는 페르난도포·프린시페·사웅투메·아노번 등의 이 산재한다. 기니만의 중심부에 가까운 나이저강(江)의 하구 부근에 발달한 광대한 삼각주를 따라 서쪽으로는 베냉만(灣), 동쪽으로는 보니(비아프라)만이 전개되며, 볼타강·카메룬강·오고웨강 등이 기니만으로 흘러들고 있다.
  • 기니만 연안은 난류인 기니해류가 흘러 수온이 낮은 벵겔라 해류와 교류하여 이 지방에 영향을 끼친다. 해안선이 단조로워 양항 발달에는 불리하나, 사주(砂洲)와 사취(砂嘴)가 발달해 있다. 이곳은 식민지 시대의 무역풍에서 유래한 노예해안·곡물해안·상아해안·황금해안 등의 지명으로 각각 알려졌으며, 연안의 항만설비는 제1차 산품의 수출에만 이용된다.

황금해안의 주변 해안[편집]

  • 노예해안(Slave Coast,奴隸海岸)은 서(西)아프리카의 토고에서 니제르강(江) 하구에 이르는 해안지대의 속칭이다. 16세기 이후 이곳에서 노예무역이 성행하여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으며, 특히 베냉의 위다는 기니만(灣) 연안에서 최대의 노예 수출항이었다. 세네갈에서 가봉 부근까지 이르는 기니 해안은 명칭이 대단히 애매하여, 항해자들이 후추(혹은 곡물)해안 ·상아해안 ·황금해안 ·노예해안 따위의 명칭으로 지역을 구분하였다.
  • 상아해안(vory Coast, 象牙海岸)은 서아프리카에 면한 코트디부아르의 해안이다. 15세기 후반 유럽 열강이 상아와 노예를 얻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면서 상아 거래의 중심지가 되었던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코트디부아르라는 나라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코트디부아르 또는 코트디부아르해안이라고도 한다. 최대 너비가 64km를 넘지 않으며 굴곡이 완만한 해안선을 이루고 있다. 연평균기온 24~28℃, 연강수량 2,000~3,000mm로 덥고 습하다. 해안의 동쪽 부분은 평평하고 모래가 많으며 서쪽은 바위로 된 작은 벼랑들이 있다. 모래톱이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뻗어 있으며 모래톱 뒤에는 깊은 석호가 있다. 1903년에 건설되기 시작한 철도는 이웃 나라인 부르키나파소까지 연결되었고 1950~1954년에는 아비장 항구가 건설되었다.
  • 곡물해안(Grain Coast,穀物海岸)은 아프리카 기니만(灣) 연안 지방 중 시에라리온 남부의 라이베리아와 코트디부아르와의 국경에 있는 팔머스곶(岬)에 이르는 지역의 해안이다. 후추해안(Pepper Coast)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일찍이 15세기 이래 유럽의 선원과 상인들이 이 지역과의 교역품으로, '낙원의 곡물'이라고 부르던 기니 후추·말라게이터 후추를 즐겨 찾던 데서 유래된 호칭이다. 이 해안 동쪽으로는 상아해안·황금해안·노예해안 등이 이어져 있다.

가나[편집]

  • 아프리카 서부의 기니만(灣)에 면한 연안 국가이다. 해안지대가 황금해안(Gold Coast)으로 알려지며 유럽 각국의 각축장이 되었고 1874년 영국의 식민지로 확립되었다. 1957년 3월 6일 가나로 독립하였고 1960년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공화국이 되었다. 정식 명칭은 가나 공화국(Republic of Ghana)이다. 동쪽은 토고, 서쪽은 코트디부아르, 북쪽은 부르키나파소와 국경을 접하며 남쪽은 기니만에 면해 있다. 독립 이후 수차례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었고 2000년에 치러진 선거에서 1981년부터 쿠데타로 장기 집권한 제리 존 롤링스 정권이 패배하여 독립 이후 최초로 민선 정권에서 민선 정권으로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영국 연방의 구성국으로 아프리카 통일기구(OAU)와 국제연합(UN)에 가입해 있다. 행정구역은 10개 구(region)로 되어 있다.
  • 가나 남부는 전형적인 열대우림지역이지만 기니만(灣)에 면한 해안평야는 비교적 습도가 낮아 동쪽 끝을 제외하고는 식물이 무성한 습지대는 없다. 동부는 볼타강(江) 하류의 충적지가 남북 길이 100km의 폭으로 펼쳐져 있다. 아크라와 연결된 구릉과 산지가 북쪽에서 남동으로 길게 뻗고 그 동쪽으로 볼타강이 흐르며 아코솜보댐이 건설되어 볼타 분지의 남동부에 면적 8,500㎢에 이르는 인공호 볼타호가 생겼다. 볼타호는 길이가 남단에서 북단까지는 약 400km이며, 세계 최대의 인공 호수로서 내륙의 농업과 수운(水運)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볼타 분지의 북부는 사바나지대이고, 다시 그 북쪽과 서쪽은 사바나대지(臺地)이다.

황금해안의 역사[편집]

  • 황금해안(Gold Coast)은 대략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가나의 악심, 또는 근처의 스리포인츠 곶에서부터 동쪽의 볼타 강에 이르는 지역을 일컫는다. 금(金)의 주산지였기 때문에 '황금해안'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17세기 이후 치열한 식민지 경쟁의 대상지였으며, 19세기에 영국에 복속되어 지배를 받았다. 황금해안 식민지는 1957년 3월 6일 '가나'라는 이름으로 영국연방의 자치령이 되었으며, 1960년 '가나공화국'으로 독립하게 된다. '골드코스트'라 불릴 정도로 부(副)를 안겨 주었단 의미에서 아프리카 서부 해안을 이르는 말이다. 포르투갈 상인이 흑인 노예들을 목에다 쇠사슬로 묶어서 짐 나르듯 아메리카 대륙으로 수출하였던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 황금해안, 그 이름이 함축하듯 이 지역은 예로부터 금을 다량으로 보유한 집산지였다. 1471년 바다를 누비며 해외 시장을 개척하던 포르투갈의 황실 탐사대는 앙코브라 계곡과 볼타 강 사이에 있는 황금의 땅을 발견했다. 이를 시작으로 가나의 해변에는 300년 동안 자그마치 70여 개의 요새와 성이 세워졌다. 네덜란드와 영국, 덴마크, 포르투갈, 스웨덴, 프랑스 등 각국이 해변 곳곳에 세운 이들 요새는 `골드러시`(Gold Rush)의 상징이었고 노예경제가 번창하던 시절에는 노예무역의 거점이었다.

황금해안의 도시[편집]

  • 엘미나(Elmina)는 가나의 황금해안에 있는 도시이다. 가나 남부의 기니만(灣)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옥수수와 카사바 재배 지대에 위치한 어업의 중심지이다. 지명은 '광물'이라는 뜻이다. 1471년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는데, 이들은 1482년에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성채인 세인트조지성(城)을 축조하였다. 엘미나는 황금해안에서 유럽인이 최초로 건설한 중요한 정착지로서 이 성채를 중심으로 무역항이 개발되어 이곳에서 산출되는 금을 선적하였다. 또한 세계 최대의 노예무역 기지가 되어 많은 노예들이 이곳에 갇혀 있다가 배에 실려 아메리카 등지로 팔려나갔다. 엘미나는 1637년에는 네덜란드의 소유가 되었다가, 1872년에는 영국으로 그 소유가 바뀌었다.
  • 아크라(Accra)가나의 수도(首都)이다. 열대성기후로 고온다습하나 기니만 연안의 항구 중에서는 비교적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1850년에 영국령(領)이 되었고, 1876~1957년 독립에 이르기까지 황금해안의 주요도시였다. 독립 후에는 서부아프리카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를 이루었으며 특히 범아프리카니즘의 거점이 되었다. 아크라 평야는 강수량이 적어 농경에는 부적당하나 볼타강(江)의 발전용 댐에 의해서 이루어진 인공호를 이용한 관개수로로 농업개발이 진전되어, 쌀·사탕수수 등을 재배한다. 부근에 망간광산이 있어 망간광석의 집산지이다.
  • 케이프코스트(Cape Coast)는 가나의 센트랄주(州)에 있는 도시이다. 과(Gua) 또는 오에과(Oegua)라고도 한다. 아크라에서 남서쪽으로 120㎞ 떨어진 대서양의 기니만(灣) 연안에 있다. 1610년 포르투갈 사람들이 건설하여 포르투갈의 노예무역 기지가 되었다. 1652년에는 스웨덴이 성채를 세워 무역기지로 삼아 "케이프코스트성(城)"으로 불렸다. 1659년 네덜란드가 점령했다가, 다시 1667년 영국이 점령하여 1870년대까지 영국령 황금해안 식민지의 상업 및 행정상의 수도였었다. 1877년 수도는 아크라로 이전되었다.
  • 테마(Tema)는 아프리카주 가나 남동부에 있는 도시이다. 수도 아크라 북동쪽 29km 지점에 있는 기니만(灣) 연안에 위치하여 아크라의 외항 구실을 한다. 1961년에 개항하였으며 5km에 이르는 방파제, 12개의 부두, 유조선 전용부두가 있으며 1만 4,000t급 선박의 입항이 가능하다. 공업도 급속도로 발전하여 알루미늄 제련·자동차 조립·화공약품 등의 공장이 있다. 아크라와의 사이에 철도와 고속도로가 통한다.
  • 세콘디타코라디(Sekondi-Takoradi)는 가나 웨스턴주(州)의 주도(州都)이다. 서아프리카 기니만(灣)에 면한 항구도시이다. 세콘디와 타코라디의 2지구로 이루어져 있다. 세콘디는 가나 제일의 철도 기점으로, 1923년까지는 이 나라의 주요 무역항이었다. 그러나 세콘디 동쪽 10km 지점에 있는 타코라디에 수심이 깊은 항구가 건설되면서 항구 및 상업 기능이 분리되었다. 현재 2지구는 거의 연속되어 있으며 철도를 통하여 내륙의 금·망간 광산과 이어지고, 그 밖에 임산물과 코코아 등이 선적된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황금해안(Gold Coast, 黃金海岸)〉, 《두산백과》
  2. 황금 해안〉,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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