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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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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孝昌公園)

효창공원(孝昌公園)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에 있는 묘원이다. 효창공원은 면적이 12만3307㎡에 이른다. 효창동 전체 면적(0.43㎢)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170여 종 울창한 수림과 놀이터, 농구장, 배드민턴장 등 편의시설이 주민 휴식공간 구실을 한다.

원래 효창원으로, 정조의 큰 아들인 문효세자와 의 어머니 의빈 성씨, 순조의 후궁인 숙의 박씨, 숙의 박씨의 자녀인 영온공주의 무덤이 있었다. 일제시대에 문효세자의 묘를 경기도 고양에 있는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기면서 효창원은 효창공원이 되었다. 현재는 김구의 묘소를 비롯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이동녕, 군사부장 조성환, 비서부장 차이석의 묘소와, 윤봉길·이봉창·백정기의 묘소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지가 있다.

개요[편집]

효창원(孝昌園)은 본래 조선조 22대 정조대왕(正祖大王)의 장남인 문효세자(文孝世子)와 그의 생모(生母)인 의빈(儀嬪) 성(成)씨와 순조(純祖)의 후궁 숙의(淑儀) 박(朴)씨 및 영온 옹주(永溫翁主)의 묘가 안장되었으나, 일제의 간교하에 사적(史蹟)의 격하를 위해 1924년 경성부가 효창원 일부를 공원으로 개발하고, 1940년 총독부고시 제208호에 의해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일제 말기 세자 묘를 경기도 고양시 소재 서삼릉(西三陵)에 강재로 옮김에 따라 효창원은 효창공원이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더불어 환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인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이 조국 광복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이봉창(李奉昌), 윤봉길(尹奉吉), 백정기(白貞基) 의사(義士)의 유해와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가묘(假墓)를 1946년 7월 효창공원에서 국민장(國民葬)으로 지금의 삼의사 묘역에 안장하였고, 1948년 9월에는 중국 땅에서 순국한 임시정부 의장과 주석을 지낸 이동녕(李東寧), 국무원비서장(國務院秘書長)을 지낸 차이석(車利錫) 선생의 유해와 군무부장(軍務部長)을 역임하고 귀국 후 서거한 조성환(曺成煥) 선생을 지금의 임정요인 묘역에 안장시켰다. 1949년 6월에는 김구 선생이 흉탄에 쓰러지자 그해 7월 5일 국민장으로 공원 서북쪽 언덕에 안장하였다. 이후 이 일대가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열들의 묘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78년 3월 10일 효창공원 순국선열추모위원회가 발족된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 13일(이후 4월 11일로 바로잡음)을 7위선열 합동추모제로 매년 봉행되고 있으며, 1988년 11월 정부주도하에 효창공원 정비공사가 추진되어 의열사(義烈祠)와 창열문(彰烈門)이 건립되었고, 1989년 6월에는 사적제330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효창공원에는 선열묘역과 공원관리사무소, 어린이놀이터, 배드민턴장, 체육시설등의 편의시설과 반공투사위령탑, 원효대사상, 백범기념관, 대한노인회등이 자리 잡고 있다.

역사[편집]

효창공원은 해방 이후 독립유공자 묘역으로 바뀌었으나 그 역사는 오래된다.

원래 이곳은 조선조 정조 때 조성된 '효창원(孝昌園)'이 효시이다. 정조의 첫째 아들 문효세자가 5살의 어린 나이에 죽고 몇 달 후 그의 어머니 의빈 성 씨가 죽자 무덤으로 이곳으로 정해 효창원으로 하였다. 이곳은 원래 송림이 우거지고 인적도 드물었던 곳으로 1894년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이곳에 야영을 하며 파헤쳐 지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구(舊)용산고지'라 불리며 일본군이 독립군 토벌 작전을 펼쳤던 작전지로도 사용되었으며, 일제는 문효세자의 묘 등을 경기 고양의 서삼릉으로 이전하고 1940년에 조선총독부 고시로 '효창공원'으로 지정했다.

해방이 되자 정부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이 공원묘역에 안장하였으나, 이후 이승만 정부는 1956년에 대부분의 뜻있는 사람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원의 일부를 훼손하며 운동장 공사를 강행하여 1960년에 효창운동장이 준공되었다.

이후 1989년에 사적 제330호로 지정되었고, 2002년 공원 옆에 백범기념관이 건립되었다.

효창독립 100년공원(가칭) 조성[편집]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이해서 애국선열들이 모셔져 있는 효창공원을 국립공원화 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에 서울시와 문화재청, 국가보훈처, 용산구는 2019년 4월 10일 '효창독립 100년공원 조성 기본구상 계획'을 발표하고 효창공원을 정비하여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원으로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 효창공원을 국립공원화한다는 기본적인 방향만 발표되었다. 2020년까지 세부 계획을 수립하고 2021년 착공하여 2024년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효창공원을 둘러싸고 있던 담장은 철거하고 기존의 보도를 확장해 효창100년길을 조성하고, 숙명여대, 경의선 숲길 등 인접한 곳에 편의시설을 배치해 주변 시설물과의 조화를 이루게 할 예정이다. 또한 효창운동장은 리모델링되어 운동장 지하에 독립운동박물관이 조성되고 일부 시설을 철거하여 묘역을 가리지 않도록 조정된다.

국무회의에서 2020년 9월부터 국가보존묘지로 지정하기로 의결되었다. 단 효창공원뿐만이 아닌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안장된 국립현충원 외 묘역을 관리묘지로 지정한 것이다.

서울시는 효창공원을 독립기념공원으로 재조성하는 효창독립 100년 공원 조성 사업에 대한 시민 공론화를 위해 <효창독립100년 메모리얼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본 사업의 일환으로 2020년 네이밍&슬로건 공모전, 작품공모전, 전시회 등의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2021년에는 시민홍보단을 구성해 효창공원 재조성을 시민들이 직접 알리는 효창독립 100년 공원 시민홍보단을 운영하고 있다.

주요 시설[편집]

  • 관리시설 : 관리사무소, 공원등, 안내판
  • 편의시설 : 매점, 공중전화, 화장실, 음수대, 야외탁자, 의자, 시계탑
  • 조경시설 : 자연학습장, 연못, 데크로드
  • 운동시설 : 농구장, 배드민턴장, 게이트볼장, 체력단련시설
  • 유희시설 : 어린이놀이터
  • 휴양시설 : 정자, 파고라
  • 교양(사적)시설 : 의열사, 백범김구선생 묘역, 삼의사묘역, 임정요인묘역, 백범기념관, 이봉창의사 동상, 반공투사 위령탑, 원효대사상

주요 식물[편집]

  • 수목 : 소나무, 백철쭉 등 70여종 115,139주
  • 교목 : 소나무 등 30여종 34,192주
  • 관목 : 백철쭉 등 40여종 80,947주
  • 초화류 : 맥문동 등 30여종 570,463본

둘러보기[편집]

공원에는 독립운동가들의 묘말고도 원효대사 이봉창의 사동상이 있고 공원 좌측엔 백범김구기념관도 운영되고 있다. 공원 대부분이 걷기 좋은 산책로로 이뤄져있는데 공원 우측부터 돌기 시작해서 좌측으로 이동하면 놓치지 않고 모두 볼 수 있다.

서울 효창공원 정문 창열문 (서울 孝昌公園 正門 彰烈門. 사적 제330호)

입구로 들어 갈 때부터 연못 위에 눈에 확 띄는 조형물이 하나 있다. 이 조형물의 수직적인 구조는 선열들의 정기가 깃들고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임을 상징하는 등 다양한 의미가 있다.

서울 효창공원 기념조형물 (서울 孝昌公園 記念造形物. 사적 제330호)
서울 효창공원 원효대사 동상 (서울 孝昌公園 元曉大師 銅像. 사적 제330호)
북한 반공 투사 위령탑(北韓 反共 鬪士 慰靈塔)

북한반공투사위령탑 - 1969년에 설립되었으며 공원의 최북단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광복 후에는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임정 정부 요인이신 이동녕 선생, 조성환 선생, 차리석 선생을 비롯하여, 삼의사인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백정기 의사가 잠들어 계신 곳으로 백범 김구선생이 직접 정한 이 곳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찾으면 안장하려고 가묘를 만들어 놓았다. 백범 김구선생도 평소 유언에 따라 동지들 곁에 잠들어 계신다.

임정 정부 요인 이동녕 선생, 조성환 선생, 차리석 선생 묘소
삼의사인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백정기 의사 묘소와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찾으면 안장할 가묘

효창원 의열사에는 임정 정부 3요인과 삼의사, 백범 김구 선생의 7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삼의사 묘(三義士 墓)

이곳은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친 이봉창 · 윤봉길 · 백정기 3인의 의사를 모신 묘역이다. 삼의사는 1946년 김구 선생의 주선으로 이곳에 봉환 안장되었다. 그리고 삼의사 묘 옆에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다. 안중근 의사의 가묘는 훗날 유해를 찾으면 이곳에 안장하고자 마련한 빈 무덤이다.

이봉창(李奉昌 1901~1932) - 그는 1932년 1월 8일 일본의 심장 도쿄에서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왕궁으로 돌아가던 일왕에게 수류탄을 투척하여 전 세계에 큰 충격과 피압박 민족에게 가능성을 안겨 주었다. 이봉창 의사의 한 발의 수류탄은 당시 침체 상태에 있던 상하이 임시정부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어려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제과점에 종업원으로 취직하였고, 만주로 옮겨 철도회사에서 운전 견습을 하며 일본인의 핍박을 받았다. 이후 일본인으로 가장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거사를 거행하고 32살의 나이로 순국했다.

윤봉길(尹奉吉 1908~1932) - 충남 예산 출신으로 3 · 1운동이 나자 덕산 보통학교를 자퇴하고 농촌 계몽운동에 힘썼다. 1930년에 망명길에 올라 만주를 거쳐 상하이에 도착하여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독립운동 대열에 앞장섰다.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겸 상하이 사변 전승 기념식에 참석한 시라카와 대장과 일본 군관 수뇌들을 폭살한 뒤 현장에서 체포되어 순국했다.

백정기(白貞基 1896~1934) - 전북 부안 출신으로 3 · 1운동 후 상하이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 연맹에 가입하여 노동자 운동과 일본 상품 배격 운동을 이끌었고, 일본 시설물 파괴 공작과 요인 사살, 친일파 숙청 등을 목표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상하이 훙커우 육삼정 연회에 참가한 일본 주중 공사 아리요시를 습격하려다 잡혀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후 1년 후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서울 효창공원 의열사 (서울 孝昌公園 義烈祠. 사적 제330호)

서울 효창공원은 애국지사들의 유해를 모시는 곳으로 매년 이 분들을 위한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무덤 주위로 지역이 넓고 소나무 숲이 울창하며 산책로가 있어 애국선열들과의 만남이 자유로워 나라사랑의 공원이자 명소이다.

의열사(義烈祠)

효창공원 내에 묘역이 있는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1988년 효창공원 정비 공사 때 건립을 추진하여 1990년에 준공하였고, 그 이듬해에 임정 요인 4인인 이동녕 · 김구 · 조성환 · 차리석과 의열사 3인인 이봉창 · 윤봉길 · 백정기 등 7인의 영정과 위패를 이곳에 모셨다.

이동녕(李東寧 1869~1940) -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임시의정원 의장 외 2회, 초대 주석 외 3회

김구(金九 1876~1949) -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조성환(曺成煥 1875~1948)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군무부장

차리석(車利錫 1881~1945)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비서장

서울 효창공원 백범 김구선생묘소 (서울 孝昌公園. 사적 제330호)

백범김구기념관(白凡金九記念館)은 "근현대사 역사박물관"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높은 문화를 가진 자주, 민주, 통일 조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일생을 바친 계례의 큰 스승 김구선생(1876∼1949)의 삶과 사상을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002년 10월 22일 개관하였다.

백범 김구 기념관 (白凡 金九 記念館)
백범 김구 기념관 (白凡 金九 記念館)

효창공원 안내도[편집]

효창공원 안내도

교통편[편집]

승용차

공덕동로터리에서 삼각지 방향 효창공원역 사거리에서 좌회전→숙대방향으로 300m 직진 좌측에 위치

원효로 용산구청앞 사거리에서 좌회전(우회전) 공덕동로터리 방향→효창공원역 사거리에서 우회전 숙대방향으로 300m 직진 좌측에 위치

주차장

공원주차장이 없으니 효창운동장 주차장을 이용바람.

  • 이용시간 : 24시간개방,
  • 이용요금 : 10분당 300원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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