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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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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국기

에콰도르(스페인어: Ecuador, 영어: Equator)또는 에콰도르 공화국(스페인어: República del Ecuador, 영어: Republic of Equator)은 남아메리카 북서부에 있는 나라이다. 북으로는 콜롬비아, 남으로는 페루와 접경해 있다. 에콰도르는 스페인어로 "적도"라는 뜻이다. 본토에서 약 965km 떨어진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를 포함한다.

남아메리카에서 칠레와 함께 브라질과 국경이 맞닿지 않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수도는 키토이고 최대 도시는 과야킬이다.

개요

  • 수도: 키토
  • 면적: 283,561 km²
  • 인구: 17,888,474 명 (2021년)
  • 공용어: 스페인어
  • 정치체제: 공화제, 단일국가, 대통령중심제
  • 대통령: 기예르모 라소

역사

초기에 8개의 인디오 국가가 분리되어 있었는데, 15세기 전반에 키토 왕국의 지배가 확립되었다,

  • 1460년 잉카제국이 키토 왕국을 정복하였다.
  • 1532년에 스페인 정복자 F.피사로는 잉카제국을 멸망시키고 그 이듬해에 정식으로 스페인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 처음에는 페루 부왕령(副王領)에 속해 있었으나 1717년부터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의 관할하에 들어갔다.
  • 1563년부터 독자적인 아우디엔시아(상위의 사법, 입법, 행정기관)를 형성하였으며, 이 관할구가 오늘날 영토의 기반이 되었다.
  • 1809년 및 1810년에 반란이 일어 나면서 독립운동으로 발전하였다.
  • 1822년, S.볼리바르의 부하인 장군 수크레산마르틴의 원조로 키토를 해방하였다. 그후 에콰도르는 그란(大)콜롬비아 공화국의 일원이 되었다.
  • 1830년에 분리 독립하여 J.J.플로레스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독립 후 상공업 경영자 중심의 과야킬과 반봉건 지주층을 중심으로 한 키토와의 지역적 대립, 이를 기반으로 한 자유당과 보수당의 분쟁 및 내란, 페루 및 콜롬비아와의 국경분쟁 등이 국가발전을 저해해왔다. 그런 속에서도 약간의 발전을 본 것은 독립 직후의 플로레스, 19세기 후반의 가르시아 모레노, 20세기 초의 알파로에 의한 3대 독재시대였다.
  • 1944년 5월 공산당, 사회당, 사회주의혁명전위당(前衛黨) 등으로 구성된 민주연맹이 반란을 일으켜 아로요 델 리오의 독재정권을 타도하였다.
  • 1944년 7월의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연맹이 지지하는 벨라스코 이바라가 당선되었다.
그는 1960년 선거에서도 토지개혁 등 진보적 정책을 내걸어 당선되었으나, 취임 후 독재적 경향이 심해지고 증세(增稅), 평가절하, 반정부운동 탄압 등을 자행하였다 11월 일어난 학생, 군부의 반란으로 망명하고 말았다. 부통령에서 승격한 대통령 훌리오 아로세메나는 누진소득세, 농지개혁 등 진보적 정책을 실행하였으며, 1962년 1월의 OAS(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미주기구) 외상회의 때는 쿠바 제재 결의에서 기권하였다.
  • 1962년 3월 대(對)쿠바 단교(斷交)조치를 취하게 되자 쿠바지원운동, 반정부운동, 농민들의 토지점거운동이 격화되었다.
  • 1963년 7월, 용공적 경향에 불만을 품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헌법정지, 의회해산, 공산당의 비합법화를 단행하였다.
대령 라몬 카스트로 히혼을 위원장으로 하는 군부정치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 군사정권은 경제, 사회 발전 10개년 계획 등의 경제개발정책을 입안하여 추진하였으나,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정치가와 학생의 저항에 경제정세마저 악화되었기 때문에 민정이양을 결의하였다.
  • 1966년 3월 정부를 상원의원 이에로비 인다브로에게 이양하였다.
입헌제의 조기 복귀를 지향한 임시정부는 그해 10월에 제헌의회 선거를 시행하였고, 여당인 사회그리스도교운동당의 아로세메스가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정치상황의 불안과 경제 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 1968년 7월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벨라스코 이바라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다.
산지의 인디오 농민이 벌이는 토지요구운동과 학생·노동자의 반정부운동 속에서 벨라스코 정권은 군부의 협력을 얻어 좌파에 대항하였으며, 에콰도르를 ‘협동조합’ 국가로 재편성하는 구상을 발표하고는 의회해산과 헌법정지를 단행하였다.
  • 1971년에는 10만 명의 노동자가 참가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
  • 1972년 2월 군부는 마침내 대통령 벨라스코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무혈 쿠데타를 통해 그를 아르헨티나로 추방하였으며, 통합참모장 로드리게스 라라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 1976년 1월 그 역시 퇴진하고, 육·해·공 3군 최고사령관으로 구성된 집정평의회가 성립되어 해군중장 포베이다가 집권, 민정 이양 준비를 시행했다.
  • 1978년 1월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국회의 단원제, 문맹자에 대한 선거권 부여, 대통령 재선 금지 등을 규정한 신헌법을 채택하였다.
  • 1979년 4월의 총선거에서 인민무력연맹(PCPF)의 롤도스 아길레라가 대통령에 당선, 민정복귀가 실현되었다.
  • 1981년 5월 대통령 롤도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부통령 우르타도가 의회의 인준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다.
  • 1984년 1월의 대통령선거에서는 기독교사회당의 코르데르가 승리하였다.
  • 1988년 선거에서는 보르하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8월에 취임하였다.
  • 1992년 7월의 총선에서는 공화연맹당(POUR)의 바벤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지리

에콰도르는 지리상 본토 세 지역과 태평양의 도서 지역이 있다.

  • 해안(La Costa) : 에콰도르의 서부 저지와 태평양 해안 지역.
  • 산지(La Sierra) : 에콰도르 중부에 남북으로 뻗어있는 안데스 고산 지대.
  • 아마(La Amazonia, 또는 El Oriente) : 에콰도르 동부의 아마존 우림 지역으로, 국토의 절반에 이르나 거주 인구는 총 인구의 5%도 안 된다.
  • 도서 지역(Región Insular): 갈라파고스 제도로 에콰도르 본토에서 태평양으로 약 965km 떨어져있다.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는 산지인 피친차 주에 있다. 전국 최대 도시는 과야스 주에 소재한 과야킬이다. 키토의 바로 남측에 소재한 코토팍시 산은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활화산이다. 지구는 완벽한 구(球)가 아니라 달걀 모양처럼 적도 지역이 약간 부푼 형태이므로, 해발 6,263m인 침보라소 산 꼭대기는 지구 핵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표 지점이다.

에콰도르는 그리 큰 나라는 아니지만, 기후는 고도에 따라 다양하다. 태평양 연안은 열대 기후로 우기에 비가 많이 내린다. 안데스 고지대는 온대 기후건조하고, 안데스 산맥 동쪽에 있는 아마존 분지는 열대 지대이다.

에콰도르는 세계에서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17개국 중 한곳이다. 대륙 지역에는 세계 조류 종 중 15%인 1,600여 종이 서식하고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고유종 38종 이상이 산다. 식물 25,000종이 있고 에콰도르에는 파충류 106종, 양서류 138종, 나비 6,000종이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독특한 동물군으로 유명한데 다윈 진화론이 탄생한 곳이고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했는데도 부정적 환경 효과로 위험에 처한 갈라파고스의 이국(異國)스러운 생태계를 위협하고 아마존 열대 우림의 석유 채굴로 폐수·가스·원유 수십억 갤런이 이곳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토착 주민의 건강을 위협한다.

주민

에콰도르는 인종이 다양하다. 가장 큰 인종 집단은 메스티소로 전체의 70%에 이른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약 15%이고, 주로 크리올인 백인은 약 7.4%이다. 물라토와 삼보 같은 아프리카계 에콰도르인은 주로 에스메랄다스 주와 임바부라 주에 거주하는데 전체 인구의 약 7.2%를 차지한다.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유럽 등지와 미국, 캐나다, 칠레, [[베네수엘라[[, 멕시코, 일본에는 상당한 규모의 에콰도르인 공동체가 있다.

페루볼리비아 같은 이웃 남아메리카 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더 높은 임금을 받고자 에콰도르로 이주했다. 중동이나 아시아(특히 중화인민공화국일본), 북아메리카, 유럽에서도 많은 이주민이 온다. 수만 명 규모 집단을 이룬, 대개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출신인 아랍계 에콰도르인들은 상업과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데 이 나라의 제2 도시 태평양 항구 과야킬에 많이 산다. 에콰도르에는 이탈리아인,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그리스계 에콰도르인 소집단도 있다. 에콰도르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500명도 안 되는데 대개 독일이나 이탈리아계이다. 에콰도르에는 독일어 사용자 112,000명 있고 대개 19세기 말 독일 이주민의 후예이다. 최근 에콰도르는 콜롬비아의 내전을 피해 콜롬비아 난민이 유입된다.

동아시아계 라틴인 집단은 2,500여 명인데 대부분 19세기 말 광부, 농부, 어부로 일하던 중국과 일본 이민자의 후예이다.

지도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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