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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제도

해시넷
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5월 24일 (수) 01:23 판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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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제도 위성사진
채널제도 위치
채널제도 지도

채널제도(Channel Islands)는 프랑스 노르망디 가까이에 있는 영국해협들을 말한다. 영국프랑스 사이 바다에 위치하고 있는 영국령으로 건지섬 관할과 저지섬 관할로 크게 나뉜다. 전체 넓이는 194km²이며 인구는 인구는 2012년 기준 163,857명이다..[1]

개요

채널제도는 영국 왕실이 소유하는 영토다. 건지섬(Guernsey Islands)과 저지섬(Jersey Islands)을 포함, 올더니섬(Alderney Islands), 사크섬(Sark Islands), 험섬(Hurm Islands), 제트후섬(Jethou Islands), 브레쿠섬(Brecqhou Islands), 리우섬(Lihou Islands) 등을 포함하고 있다. 저지섬을 제외하고 모두 건지섬 관할 구역에 속한다. 영어가 쓰이는 곳이지만 주민들의 대부분은 노르만족들의 후손이라서 노르만어의 방언들(건지어 등)이 각 섬마다 쓰이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어도 더러 사용된다. 채널제도는 모두 영국 시민이나 영국 의회의 소속이 아니라서 각 섬은 자체적인 입법 기관을 가지고 있다. 법은 왕실 평의회(The Queen in Council)에 의해서 왕의 비준(Royal Sanction)이 주어지면 각 정부에 의해 성립된다. 섬 주변의 커다란 조수간만의 차는 환경적으로 풍부한 갯벌을 형성한다. 채널제도는 933년 노르망디 공국(Duchy of Normandy)에 합병되었다가 1066년 영국의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에 의해서 정복되었고, 1204년 이래로 왕실의 소유가 되었으며 영국 정부에서 분리되어 왕실 관할 지역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군에 점령당했다. 섬의 주요 산업은 관광업이며 건지섬에는 원예업과 전구 산업이 발달하여 저지섬보다는 활발한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저지섬은 저지종 젖소의 원산지로 유명하다. 채널제도의 섬들에서는 1905년 이래로 매년 머레티(Muratti)라는 이름의 축구 경기가 정기적으로 열리며 커먼웰스 게임(Commonwealth Games)이라는 운동 경기를 개최하여 채널제도에 소속되어 있는 각 섬들의 운동 선수들이 경쟁하고 있다. 경기를 할 때 전통적인 섬의 상징 색깔은 건지섬은 초록색, 저지섬은 빨강색이다.[2]

지위

면적이 작고 인구도 적기에 일반적으로 '채널제도'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하지만 채널제도는 행정적으로 저지 행정관 관할구(Bailiwick of Jersey)와 건지 행정관 관할구(Bailiwick of Guernsey)로 나뉘고 둘은 입법 기관도 따로 가지고 있는 별개의 왕실 속령이다. 영국 영토기는 하지만 채널제도의 건지 행정관 관할구(Bailiwick of Guernsey)와 저지 행정관 관할구(Bailiwick of Jersey)는 맨섬과 마찬가지로 영국 의회의 간섭을 받지 않는 영국 왕실의 영토인 왕실 직할령(British Crown Dependencies)이다. 각 관할구에 독립적인 의회가 존재하고 있고 이들은 '왕실 평의회(The Queen in Council)'에 의해서 왕의 비준(Royal Sanction)에 따라 각 정부에서 법을 수립한다. '왕실 속령'(Crown dependencies)에는 독자적인 입법 기관과 독자적인 정부가 존재해 독자적인 법을 만들어 운영된다. 영국 정부는 이 영토들의 국제 관계와 방위만을 책임진다. 영국 정부 내에서 채널제도를 비롯한 왕실 직할령 관련 사무는 원칙적으로 법무부에서 관할한다. 채널제도의 주민은 영국 본토에 자유로이 거주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들이 영국 본토로 이주하더라도 투표권, 피선거권, 공무 담임권 등은 없고 가지려면 시민권 획득 절차를 밟아야 한다. 물론 외국인이 영국 시민권을 따는 것보다는 엄청나게 쉽다. 영국 본토와는 여권도 따로 나오지만 해외에서는 대체로 영국 시민권자 여권과 같게 취급한다. 유럽 내 해외 영토로서 가입국 시절에 유럽연합에 소속되어 있는 지브롤터와는 다르게 같은 왕실 직할령인 맨섬과 함께 처음부터 유럽 연합에는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채널제도 주민은 유럽 연합 시민이 아니고 유럽 연합 내에서 이동이나 노동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다만 이들도 유럽 연합 모든 국가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므로 솅겐조약에 따른 이동의 자유는 누릴 수 있었다.

역사

채널제도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예를 들어 저지 섬에서 가장 웅장한 명소인 13세기 마운트 오거이 성 (Mount Orgeuil castle)은 청동기 시대 요새의 폐허 위에 지어졌다. 이곳은 섬의 수도 세인트 헬리어(St.Helier)에서 동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바다 건너 프랑스 본토에 있는 노르망디의 일부였지만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 1세(정복왕 윌리엄)가 바다를 건너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후 윌리엄의 대를 이은 잉글랜드 왕실이 계속해서 가지고 있던 영지였다. 그러나 백년전쟁의 패전으로 잉글랜드는 프랑스 본토에 있던 모든 영토를 잃었고 노르망디 역시 프랑스가 점령했지만 섬이라는 특징 때문에 이곳은 노르망디의 일부임에도 프랑스가 점령하지 못했다. 결국 이 곳은 잉글랜드가 프랑스 내에 가지고 있는 유일한 땅이 되었다. 쉽게 말해서 잉글랜드 왕실이 브리튼 땅을 밟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가장 오래된 영지다. 잉글랜드/영국 국왕은 채널제도에서는 프랑스 국왕이나 노르망디 공작으로서 군림해 왔다. 이런 애매모호한 입지 때문에 프랑스 역시 이 지역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있어 작게나마 영토 분쟁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혁명 정부가 채널 제도가 프랑스 고유 영토라며 양도할 것을 요구한 적이 있으나 명목상 프랑스 국왕 칭호를 없앤 것과 달리 이건 수백년을 잉글랜드/영국이 실질 지배해온 영토라서 영국도 씹었고 혁명 정부도 완고하게 나오진 않아 큰 분쟁 없이 그대로 영국 영토로 굳어졌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 지역에 위치한 무인도 맹키에(Minquiers)와 에크레우(Écréhous) 섬의 영유권에 관해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분쟁이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두 섬이 자국 영토인 쇼제(Chausey)섬 관할에 속한다고 주장했으나 1953년 국제사법재판소는 두 섬이 영국 영토라고 판결했다. 그 결과 이 두 섬은 현재 저지 섬 행정관 관할구에서 관할하고 있다. 이 이후 더 이상의 영토 분쟁은 없었다.

독일 점령

채널제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유일하게 독일군에 점령된 영국 영토라는 점이다. 1940년 6월 15일 영국 정부는 채널 제도가 전략적 중요성이 없으니 방어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영국 본토에서는 128km나 떨어져 있었지만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에선 4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이 곳을 지키는 건 득보다 실이 많았다. 반면 독일군에게 채널제도는 영국과 맞설 최전선이었기 때문에 채널제도를 점령하면 이곳에 많은 병력을 할애하기 쉬웠다. 영국 정부는 독일군이 진주하기 2주 전 채널제도 주민들에게 영국군이 철수한다고 통보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섬에 남았지만 제도 가운데 하나인 올더니섬은 주민투표를 통해 전부 브리튼 섬으로 피난하기로 하고 전쟁이 끝난 뒤에야 돌아왔다. 소설 '독수리는 내리다'에 주민들이 모두 떠나고 독일군만 주둔하고 있는 올더니섬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1940년 6월말 일요일 아침에 영국군이 모조리 철수한 채널제도 건지섬에 루프트바페의 수송기 한 대가 착륙했고 권총으로 무장한 독일군이 내렸다. 이들은 영국 공군기 3대가 나타나자 곧바로 도주했지만 곧이어 다른 비행기가 착륙해 육군 병력 세 명을 내렸다. 그 중 인솔자인 장교가 영국 경찰에게 자신들이 이 섬을 접수할 것이라 통보했다. 독일군 본대는 이 점령 통보 이후 선박을 타고 채널제도에 투입되었고 병력이 혼성되어 주둔했다. 채널제도를 점령한 독일군은 꽤 신사적이긴 했지만 야간 통행금지, 금주령, 영화관에서 나치 선전 영화 상영, 해안 방어 시설과 방공 시설 건설 등으로 주민들에게 많은 불편과 불쾌감을 주었다. 나중에 독일군은 주민들이 비둘기를 이용해서 영국 본토에 군사기밀을 유출하고 있다고 의심해 비둘기를 사육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황당한 명령도 내린다. 주민들은 될 수 있으면 독일군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얌전히 지냈다. 독일군이 처음 도착했을 때는 이들이 지역 주민들의 상점에서 많은 물건들을 사들였기 때문에 이들을 환영하기도 했지만 본토로부터 계속 내다 팔 물자가 공급될 리가 없었으므로 얼마 안가 끝났다. 도리어 전쟁 말기로 갈수록 섬의 생산량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기는 주둔군 병력이 대부분인 과도한 인구로 인해 식량 부족 문제가 발생했고 1944년 중반 프랑스 북부의 대부분이 해방되어 물자 수송편이 끊기자 더욱 심해졌다. 다행히 기아를 겪는 수준까지 가진 않았다. 영국군의 계산대로 아돌프 히틀러는 채널제도를 대서양 방벽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요새로 만들기 위해 해안포로 쓸 중포와 20,000명에 달하는 병력을 투입했다. 하지만 채널제도에 투입된 물자와 병력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대서양 방벽의 전체적인 방어 태세를 약화시켰다. 심지어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은 채널제도는 탈환할 가치가 없다고 보고 보급선만 끊은 상태로 종전 때까지 방치했다. 결국 채널제도는 나치가 패망한 직후인 1945년 5월 9일에서야 해방되었다.[3]

경제

EU와의 관계는 무역권에만 국한되어 있다. 관세 관련 법규는 영국에 적용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조건이 적용된다. EU 전체 안에서 사람과 서비스가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권리는 확대 적용되지는 않지만 이곳의 주민들은 영국 안에서는 전통적 권리를 여전히 누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맨섬과 함께 조세 피난처로 각광 받고 있고 뉴욕 월스트리트의 부상에도 시티 오브 런던이 아직도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남을 수 있었던 강력한 이유 중 하나다. 조세를 회피하고 싶은 법인이나 개인은 채널 섬에 방 한 칸 빌려놓고 채널 자치 기구에 본사로 법인 등록을 한다. 채널제도와 맨섬은 조세 제도가 이런 부유한 사람들에게 매우 유리하게 되어있고 이들을 항상 유혹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각종 세금을 면제받는다. 분노한 각 국가의 세무 기관들이 징세를 하러와도 절차 문제로 소용이 없어 지친 세무 기관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본국의 부자들은 조세 회피를 누린다. 맨섬과 채널제도에 조세 회피 목적으로 맡겨진 자금들은 런던 시티의 금융 기관들의 수중에 들어가 이런저런 자금을 사용하는 용도로 쓰인다. 맨섬과 채널제도의 이런 기묘한 위치를 영국 정부는 용인해주고 넘어간다.[4]

지도

저지섬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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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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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1. 채널 제도〉, 《위키백과》
  2. 채널 제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채널 제도〉, 《요다위키》
  4. 채널 제도〉, 《나무위키》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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