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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1일 (금) 18:05 판

콘라트 추제(Konrad Zuse)는 독일의 토목 공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 발명가였다. 세계 최초로 프로그램이 가능한 컴퓨터인 Z1을 만들었으며, 이후에는 Z2, Z3 등 여러 컴퓨터를 개발하였다.

생애

배경

콘라트 추제는 1910년 6월 22일 베를린에서 태어났으며, 1912년에 동프로이센 브라운스베르크로 이사를 갔다. 콘라트 추제는 브라운스베르크에 있던 Collegium Hosianum에 다녔으며, 1923년에 Hoyerswerda로 이사하여 1928년에 아비투어(Abitur)를 따내었다.

그는 현재 베를린 공과대학이라 불리우는 Technische Hochschule에 입학하여 공학과 건축을 공부하였지만, 토목공학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1935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포드 모터 컴퍼니에서 광고 디자인 일을 잠깐 일을 했다가, 헨셸사로 옮겨 비행기 설계사로 일했다. 비행기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계산을 수작업으로 해야 했는데, 그때부터 콘라트 추제는 이 계산을 대신 수행해주는 기계를 상상했다.

1935년부터 콘라트 추제는 베를린에 있는 부모님의 아파트에서 컴퓨터를 제작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1937년에는 폰 노이만 구조와 유사한 내용의 특허를 만들었으며, 1938년에는 Z1을 만들었다. Z1은 부동소수점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식 계산기로서, 철판과 톱날 등 2만여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계산용 장치이다. 22비트 워드 길이로 된 부동 소수점 유닛을 가지고 있으며, 저절로 펀칭 테이트에 2진 코딩이 되는 10진 키보드로 입력한다. Z1은 22비트 크기의 셀 64개로 된 메모리를 가지고 있다. 35mm 필름에서 명령어를 읽을 수 있어 제한적이지만 일부 프로그래밍이 가능했다. 하지만 기계의 정밀도가 부족하여 잘 작동하지는 않았다. 1944년 1월 30일에 Z1과 이 기계의 청사진이 영국군의 베를린 공습으로 인해 유실되었지만, 이후에 1989년 지멘스사의 도움으로 다시 제작했다.[1][2][3]

1939~1945

1939년에 콘라트 추제는 독일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독일군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전자 계전기를 바탕으로 한 Z1의 후속작을 개발하였다. 그리고 1940년 9월에 독일 항공 연구소에서 이를 시연하였다. Z2는 전화 릴레이를 이용한 Z1의 개정판이었으며, 3Hz로 작동하였고 가능 철판을 메모리로 이용했다. 또한, 800개의 계전기를 이용해 계산했으며, 메모리는 16비트의 크기의 셀 16로 되어있었고, 소비 전력은 1000kw였다. 독일 정부는 그 컴퓨터를 폭탄 생산에 사용한 Aerodynamische Versuchsanstalt를 통해 콘라트 추제와 그의 회사에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다. 추제는 S1과 S2 컴퓨팅 머신을 개발하였는데, 이 기계들은 무선 조종 비행 폭탄의 날개에 대한 공기역학적 보정을 대신 계산하는 특수 목적 장치의 역할을 하였다. S2는 프로그램의 제어 하에 통합된 아날로그-디지털 변환기인 것이 특징으로, 최초의 프로세스 제어 컴퓨터가 되었다.
1941년 콘라트 추제는 기계를 만들기 위하여 주즈 에바우(Zuse Evoratebau)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Methfesselstraße에 있는 제7번지의 반대편에 있는 작업장을 임대하고 그 블록을 통해 Belle-Alliance Straße 29까지 확장했다. 같은 해에 그는 Z2를 개량하여 Z3를 만들었다. Z3는 계산 장치에 600개의 계전기를 사용했고, 1,600개의 계전기를 이용해 결과를 저장한다. 부동 소수점 유닛과 16단계의 곱셈 및 3단계의 덧셈, 18단계의 나눗셈을 하며, 곱셈과 나눗셈은 3초, 덧셈을 0.7초 만에 해낸다. 입력은 20자리로 된 10진 키보드로 하며, 출력은 수많은 전구를 이용해 4자리의 10진수를 표현한다. 또한 2진수 22비트 부동소수점 계산기로, 루프가 있지만, 조건부 점프가 없는 프로그래밍 가능성과 전화 릴레이에 기반한 계산 단위가 특징이다. 5월 12일에는 자신의 작업장에서 Z3를 대중에게 선보였고, 조건부 펌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Z3는 튜링 완제품이었다.

완전하게 작동하는 최초의 전자 기계식 컴퓨터인 Z3는 독일 정부가 지원하는 DVL에 의해 부분적으로 자금을 조달받았는데, 이 DVL은 광범위한 계산이 자동화되기를 원했다. 콘라트 추제의 컴퓨터 제작을 도운 헬무트 슈레이어 (Helmut Schreyer)는 그에게 진공관을 전환 요소로 사용하라 충고하였고, 콘라트 추제는 이것을 도저히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1943년 말에 연합군의 공습으로 인해 그의 작업장이 파괴되었고, 이듬해인 1월 30일에 Z1과 Z2가 설치되어있던 곳도 파괴되었다. 하지만, 1942년에 신축하기 시작한 Z4가 남아있었다. 1945년 2월 3일에 있던 항공 폭격으로 인해 콘라트 추제의 연구개발은 완전히 중단되었고, 부분적으로 완성된 전화 중계기 기반의 Z4 컴퓨터는 2월 14일에 포장되어 베를린으로 옮겨졌다.

콘라트 추제의 기계들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군이 개발한 헨셸 베르케(Henschel Werke) Hs 293과 Hs 294 유도탄의 제작에 기여했는데, 이 둘은 모두 순항 미사일이었다. S1의 회로 디자인은 Z11의 전신이었으며, 그는 이 기계들이 1945년 소련군이 점령하여 가져갔다고 믿었다.

콘라트 추제가 Z4 컴퓨터로 작업을 하면서, 기계 코드의 프로그래밍이 너무 복잡하다는 것을 깨닫고, 박사 학위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이 논문은 그 시대보다 몇 년 앞선 획기적인 연구를 포함하고 있었는데, 주로 최초의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인 플랑카쿨(Plan Micculus)과 정교한 예제 프로그램으로서, 최초의 실제 컴퓨터 체스 엔진을 포함하고 있다.[1][2][3]

1945~1995

1945년 Luisenstadt 폭격 이후에, 그는 베를린에서 시골에 있는 Allgäu로 갔다. 독일의 열악한 경제 상황 속에서 콘라트 추제는 컴퓨터를 만들 수 없었고, 1947년 막스 플랑크 물리학 연구소의 독일 컴퓨터 선구자인 하인즈 빌링의 회고록에 따르면 Göttingen에서 앨런 튜링과 만났다고 전해진다.

1949년이 되어서야 그는 Z4에 대한 작업을 재개할 수 있었으며, 그는 그 컴퓨터를 1950년에 주문했던 스위스 연방 기술 연구소의 수학자 에두아르트 스티펠에게 보여주곤 했다.

어떠한 하드웨어도 개발할 수 없었던 콘라트 추제는 플란칼퀼(Plankalkül)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였고, 결국에는 1948년과 1959년에 그의 논문을 일부 발표하였다. 1972년까지 논문 전체는 발표되지 않았으며, 박사학위 논문은 아우크스부르크 대학에 제출하였으나, 대학 등록금을 지불하는 것을 잊어버려 거절되었다.

1956년에 그는 고밀도 대형 포맷 플로터를 작업하기 시작하였고, 1961년에 하노버 박람회에서 이를 시연하였다.

1967년에는 우주 자체가 세포 자동 또는 유사한 컴퓨터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고 제안하였으며, 1969년에는 레첸더 라움 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콘라트 추제는 죽기 전 마지막 해에 헬릭스 타워(Helixturm)라고 이름 붙인 순수 기계적이고 확장 가능한 모듈식 타워 자동화를 개념화하여 만들었다. [3]

플란칼퀼

추제는 1948년 최초의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 플란칼퀼을 고안하였다. 그러나 플란칼퀼은 실제 컴퓨터로 구현되지 않았으므로 초기 프로그래밍 언어의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였다.[2]

수상 및 명예

1964년 베르너 폰 지멘스 링 1965년 해리 H. 구드 기념상 1969년 빌헬름 엑스너 메달. 1972년 연방정부 수립 - 대교구 1999년 컴퓨터 역사박물관 동료상[3]

약력

  • 1910. 6. 22. 베를린에서 출생.
  • 1928. Hoyerswerda에서 Reform Real Gymnasium의 졸업 시험 통과
  • 1934. 프로그램 가능한 컴퓨터 개발 시작.
  • 1935. Technische Hochschule Berlin-Charlottenburg에서 건설 기사로서의 공부를 마치고, 베를린-쉐네펠드에 있는 헨쉘 비행기 회사 (the Henschel Aircraft Works)에서 스트레스 기사로 근무
  • 1936-1938. 최초의 기계적 컴퓨터인 Z1을 완성
  • 1939. 전역
  • 1941. 세계 최초로 완전하게 기능하는 프로그램 제어가능한 컴퓨터 (Z3)를 (전자 기계 기술을 이용하여) 완성함
  • 1942-1945. 날개 달린 폭탄의 계산을 위한 컴퓨터 S1과 S2를 그리고 릴레이 컴퓨터 Z4를 개발함.
  • 1945-1947. 베를린에서 알가우 (Allgau)로 피신하여 세계 최초로 범세계적인 알고리즘적 프로그램 언어인 플란칼퀼 (Plankalkuel) 개발
  • 1946. 알가우에 있는 호퍼라우 (Hopferau)에 Zuse-Ingenieurburo (Engineering Office) 회사 설립, Z4 연구 시작.
  • 1949. 헤세의 휜펠드 근처에 있는 노위키르첸 (Neukirchen)에 쭈세 KG 설립.
  • 1956. 세계 최초의 플로터 중 하나인 자동 정밀 제도 테이블, 그라포맛 Z64 (Graphomat Z64) 개발.
  • 1969-1984. 컴퓨터-기술의 이론적 기반 연구에 몰두하고, 많은 저술과 그림 그리기에 몰두
  • 1987-1989. 독일 기술박물관을 위해 Z1을 다시 제작- 1992-1995. 풍력을 좀 더 잘 이용하기 위해 헬릭스-탑을 건설
  • 1995. 12. 18. 헤세의 휜펠드에서 사망.[4]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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