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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

해시넷
218.146.11.32 (토론)님의 2021년 8월 4일 (수) 09:2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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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

계산기(Calculator)는 어떠한 사칙 연산을 포함한 계산이나 여러 공학적 계산을 수행하는 장치이자 정보처리 시스템(Electronic Data Processing System; EDPS)이다. 기계적인 방식이나 간단한 장치로만 되어있는 것에서부터 컴퓨터와 같은 복잡한 것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주판, 계산자 같은 아날로그식 계산기나 톱니바퀴를 사용한 기계식 계산기도 계산기에 속하지만 현재는 주로 전자계산기를 의미한다.

역사

산가지

산가지는 산목으로 수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자릿수를 번갈아가며 가로놓기와 세로놓기로 구분하여 숫자를 표기하였다. 즉, 세로놓기로는 일, 백, 만 등의 자릿수의 숫자를 나타내었고, 가로놓기로는 십, 천, 십만 등의 자릿수의 수치를 나타내었다. 경우에 따라 가로놓기와 세로놓기의 자릿수를 서로 바꾸어놓기도 하였다. 그리고 13세기 송나라 말까지는 0을 나타내는 부호가 없었으므로 0에 해당하는 자릿수의 수치는 비우고 표기하였다. 동양수학에서 일찍부터 발견되어 사용된 음수를 표기하기 위해 양수는 붉은색, 음수는 검은색으로 구분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음수의 경우 마지막 산목을 비뚤어지게 놓아 구분하기도 하였다.산목은 산학이 체계화되는 고대로부터 비교적 근래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는데, 중국과 일본에서는 주판이 보급되면서 사라졌으나, 한국에서는 산학의 기본적인 계산방법으로 조선 말기까지 사용되었다

주판

주판

오래 전인 기원전 2700~2300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에서 주판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주판은 그리스와 로마를 경유하여 명나라 이후에 중국으로 전래되었고 개량되었는데, 우리가 아는 주판의 모습은 그러한 과정의 산물이다. 한반도에는 조선 초기에 들어왔지만, 일부 거상들 외에 그다지 널리 쓰이지는 못했다. 조선에서는 훨씬 이전에 중국에서 들어온 산가지[2]를 사용한 계산이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정작 중국 대륙에서는 명나라 때부터 상업에 필요한 실용수학계산 위주로 수학이 발전했다. 주판이 알려지고 개량되어 보급된 이후 산가지가 사라졌으나,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산가지를 사용한 수학계산을 선호하였다. 더불어 방정식과 제곱근 풀이 역시 중국에보다 한반도에서 더욱 깊이 연구되었다.1970년대에 전자계산기가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계산을 하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인 사무용품이었고, 보급 초기에는 계산기가 맞는지 틀리는지 주판으로 검산하거나 보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판을 접하지 않고 자란 요즘 세대들에게도 원리 자체는 익숙한 물건이다. 당구장에서 점수계산하는 보드와 주산의 원리는 사실 똑같다. 그리고 덧셈, 뺄셈만 가능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곱셈과 나눗셈도 할 수 있다. 현대에 쓰이는 개량형을 기준으로, 기준점[4] 우측 1/3 가량의 주판알들이 바로 곱셈과 나눗셈을 위한 영역이다.

파스칼 계산기

블레즈 파스칼

파스칼 계산기(Pascal's calculator)는 1642년 블레즈 파스칼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계산기다.블레즈 파스칼은 1642년 세계 최초의 기계식 수동 계산기를 발명하였다.[1][2] 그는 프랑스 오트노르망디의 세금액을 재분배하는 일을 도맡았던 아버지를 도우면서 이와 같은 발상을 고안하게 되었다. 이 기계는 처음에는 산술기계 또는 파스칼의 계산기라고 불리다가 나중에 파스칼린(Pascaline)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기계는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었고, 반복을 통해서 곱셈과 나눗셈도 할 수 있었다. 파스칼은 1645년에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기계를 대중에 공개하기 전까지 50개의 시제품을 만들어 시험해보았다. 그리고 완성품을 당시 프랑스 총재였던 피에르 세귀에에게 헌정하였다.[3] 이후 10년 동안 파스칼은 기계를 계속 개선해나가면서 약 20여개를 더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 아홉 개는 300년 동안 보존되어 왔으며, 대부분 유럽의 박물관들에 전시되어 있다.[4] 1649년 프랑스의 루이 14세 국왕의 칙령에 따라 파스칼은 프랑스에서 계산기의 설계 및 생산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갖게 되었다.

라이프니츠 계산기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는 1671년에 사칙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기 시작했고, 수 년에 걸쳐 발전시켜 나갔다. '단계 계산기'라고 불린 이 발명품은 상당한 관심을 끌었고 라이프니츠가 1673년 왕립 협회에 선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받아올림과 받아내림을 완벽하게 자동화시키지는 못했으므로 큰 성공은 아니였다. 라이프니츠는 하노버에 몇 년간 머무르면서 많은 수의 유사한 기계들을 만들었다. 쿠튀라는 라이프니츠의 출판되지 않은 1674년작 원고에서 몇몇 대수적 연산까지도 수행할 수 있는 기계의 묘사를 찾았다고 말했다.

각주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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