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지방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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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규슈'''(일본어: 九州)는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며 세계의 섬 가운데 36번째로 크다. [[혼슈]], [[시코쿠]], [[홋카이도]]와 함께 일본 열도를 대표하는 섬의 하나다. [[후쿠오카현]], [[사가현]], [[나가사키현]], [[구마모토현]], [[오이타현]], [[미야자키현]], [[가고시마현]]의 7 현이 설치되어 있다. 세계의 섬 중 하나인 [[영국]]의 [[스피츠베르겐섬]] ([[노르웨이]])에 이어 37위의 크기이며 지질학과 고고학 등에서는 규슈라는 명칭도 사용된다. |
− | + | 규슈 지방(일본어: 九州地方)은 일본 본토 남단에 위치하는 규슈를 중심으로 한 지방이다. 규슈 지방이라고 할 때, 위 7개 현에 [[류큐 제도]]의 [[오키나와현]]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 |
== 개요 == | == 개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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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 역사 == | ||
− | + | 대륙과 [[한반도]]와 가까웠기에 일본의 역사에서 초기 그 역할이 컸다. [[혼슈]] 서남부와 함께 왜국이 세워질 즈음까지 일본 역사에서 큰 역할을 했다. 규슈와 서남부 혼슈 인근설과 혼슈 중부설이 대립할 정도로 일본 고대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곳이다. 하지만 규슈는 고대 이후 그 역할이 서서히 축소되어 갔다. [[야마토]]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본 역사의 주 무대는 규슈에서 [[관서 지방]]으로 넘어갔다. 본토인들은 규슈인들을 [[남만]](南蠻)이라 불렀다. 이 단어는 가고시마 사람들을 사쓰마하야토(薩摩隼人)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다분한 지역 차별다운 뉘앙스가 깔려 있는 단어이다. 이것은 규슈 남부 지역이 비교적 일본에 늦게 복속된 것과도 관계가 있었는 데 뜻이 확대된 것이다. | |
그러나 근세에서 근대로의 전환기, 일본 안팎으로 확실한 역할을 하면서 지금의 하나된 일본 사회 시스템을 있게 한 완충지로서 다시 존재감을 강화하였다. 국제 세계와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난반 무역항([[나가사키현]] 등)을 이용해 [[스페인]]과 [[네덜란드]] 등의 무기를 비롯한 선진 문물을 수용하는 다리 역할을 한 것. 또한 일본인들에게 침략의 시야를 본격으로 갖는 계기가 된 '[[임진왜란]]'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다. [[이순신]]에게 일본군이 패전한 [[노량 해전]]에서, 조선군에게 패해 도망치던 일본군 패잔병의 철수를 이끈 [[시마즈]] 가문은 규슈의 자고로 이어져 내려온, 유력한 세력이었다. | 그러나 근세에서 근대로의 전환기, 일본 안팎으로 확실한 역할을 하면서 지금의 하나된 일본 사회 시스템을 있게 한 완충지로서 다시 존재감을 강화하였다. 국제 세계와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난반 무역항([[나가사키현]] 등)을 이용해 [[스페인]]과 [[네덜란드]] 등의 무기를 비롯한 선진 문물을 수용하는 다리 역할을 한 것. 또한 일본인들에게 침략의 시야를 본격으로 갖는 계기가 된 '[[임진왜란]]'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다. [[이순신]]에게 일본군이 패전한 [[노량 해전]]에서, 조선군에게 패해 도망치던 일본군 패잔병의 철수를 이끈 [[시마즈]] 가문은 규슈의 자고로 이어져 내려온, 유력한 세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