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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디나마르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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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디나마르카주(스페인어: Departamento de Cundinamarca)는 콜롬비아 중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1][2][3]

개요[편집]

쿤디나마르카주의 면적은 22,623㎢이며 인구는 3,242,999명(2020)이다. 주도는 보고타이며 북쪽으로는 보야카주, 남동쪽으로는 메타주, 서쪽으로는 칼다스주톨리마주, 남쪽으로는 우일라주와 접한다. '쿤디나마르카(Cundinamarca)'라는 이름은 원주민 표현인 'Kuntur marqa'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케추아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콘도르의 둥지'를 의미한다.

행정적으로 보고타는 쿤디나마르카주에 속하지 않는 특별한 경우다. 또한, 보고타는 콜롬비아 헌법에서 지정한 유일한 주 수도로, 만약 수도를 변경하려면 단순한 조례가 아니라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인구 조사 시, 보고타와 쿤디나마르카주의 인구는 별도로 집계된다.

자연환경[편집]

쿤디나마르카주는 안데스 산맥의 주요 분지 중 하나인 동부 산맥(Cordillera Oriental)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기후와 지형을 자랑한다. 이 지역은 따뜻한 계곡부터 추운 고산지대의 파라모까지 아우르며, 평원과 사바나로 이어지는 전환 지대도 포함한다. 파라모 데 수마파스(Páramo de Sumapaz)는 세계에서 가장 큰 파라모 중 하나로, 파라모 데 칭가사(Páramo de Chingaza)와 함께 콜롬비아의 수자원 공급과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쿤디나마르카의 주요 강에는 마그달레나 강, 보고타 강, 수마파스 강, 네그로 강, 과비오 강이 있으며, 이들은 농업, 식수 공급, 수력 발전에 필수적이다. 특히 과비오 수력 발전소(Central Hidroeléctrica del Guavio)는 국가 전력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지역의 기후는 해발고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저지대에서는 28°C 이상의 더운 날씨를 보이며, 고산지대의 파라모 지역은 매우 추운 기후를 유지한다. 이곳은 프라이레혼(frailejón)과 안데스 곰(oso andino)과 같은 희귀종의 서식지다.

쿤디나마르카주에는 수마파스 국립공원(Parque Nacional Natural Sumapaz), 칭가사 국립공원(Parque Nacional Natural Chingaza), 마그달레나 강 동부 사면 건조림(Bosque Seco de la Vertiente Oriental del Río Magdalena), 과르구아 파라모(Páramo de Guargua), 라구나 베르데(Laguna Verde), 엘 타블라소(EI Tablazo) 등의 보호 지역이 있으며, 콜롬비아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편집]

쿤디나마르카주 지역은 기원전 12,000년 무렵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보이며, 그 증거로 El 엘 아브라(Abra), 지파퀴라(Zipaquirá), 네모콘(Nemocón), 소아차(Soacha) 및 테켄다마(Tequendama)에서 발견된 화석 기록이 있다. 이 지역은 멕시코 중부(Mesoamérica)와 페루 안데스 지역처럼 유목 생활에서 정착 문화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선(前)고전기, 고전기, 후기 고전기 단계를 거쳤으나, 무이스카(Muisca) 이전의 문명들은 발전의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무이스카족은 치브차(Chibcha) 어족에 속하는 민족으로, 기원전 1000년에서 기원후 1000년 사이에 이 지역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200년경부터 옥수수, 감자, 토마토 등의 경작이 이루어졌으며, 이로인해 일부 정착 생활이 가능해졌다. 이후 집약적인 농업과 산업 활동이 발전하면서 쿤디나마르카 지역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세 번째로 발전한 원주민 문명인 무이스카 문화가 꽃피웠다.

14세기경 카리브(Caribe) 계통의 부족들이 막달레나(Magdalena) 계곡과 수마파즈(Sumapaz), 테켄다마(Tequendama), 구알리바(Gualivá), 리오네그로(Rionegro) 지역으로 침입하여 정착했으며, 이들은 판체(Panche)라 불렸다. 또한 일부 아라와크(Arawak) 계열의 소규모 부족들은 동쪽 산기슭 지역으로 밀려났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 지역에 도착했을 때, 무이스카족은 고원 지대에 거주하며 ‘Zipa’라는 최고 통치자와 여러 소규모 추장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스페인군은 Zipaquirá와 Bogotá 강가에서 무이스카족과 두 차례의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결국 치브차족을 패퇴시켰다. 당시 지도자였던 지파 티스케수사(Zipa Tisquesusa)는 파카타티바(Facatativá)에서 도망치다 살해되었으며, 후계자인 사기파(Sagipa)는 스페인군과 동맹을 맺어 토카레마(Tocarema) 전투에서 판체(Panche)족을 패배시켰다. 이후 토카이마(Tocaima)에서 체결된 조약을 통해 판체(Panche)족 전체가 스페인 왕실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쿤디나마르카(Cundinamarca) 전역이 스페인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다.

1548년, 이 지역은 페루 부왕령(Virreinato del Perú)에 속하는 왕립 법원(Real Audiencia)으로 지정되었으며, 1564년부터 총독이 임명되기 시작했다. 1687년 3월 9일, 수도 산타페)S는 (현재의 보고타)와 주변 지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소음과 유황 냄새가 발생해 주민들이 공포에 빠졌으며, 이는 "소음이 있던 시절(En el tiempo del ruido)"이라는 표현의 유래가 되었다. 1717년에는 이 지역이 신 그라나다 부왕령(Virreinato de la Nueva Granada)으로 독립했다가 1724년에 일시적으로 폐지되었으며, 1739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이후 1810년 독립운동이 발생할 때까지 유지되었으며, 1816년 스페인군의 재정복 시기에 마지막으로 부왕령 체제가 부활했으나, 1819년 완전히 폐지되었다.

1813년 7월 16일, 쿤디나마르카 지역에서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때 안토니오 나리뇨(Antonio Nariño)가 중앙집권적 국가를 지향하며 쿤디나마르카라는 이름의 단일 국가를 수립하려 했으나, 카밀로 토레스(Camilo Torres)가 이끄는 연방주의 세력과 대립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내전은 1816년 스페인의 재정복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819년 Boyacá 전투에서 독립군이 승리하면서, 쿤디나마르카는 결국 신 그라나다 전역의 독립을 이끌게 되었다. 1831년, 신 그라나다 공화국이 대콜롬비아(Gran Colombia)에서 분리되면서, 쿤디나마르카는 독립적인 행정 구역이 되었다. 1857년 6월 15일 쿤디나마르카 자치국(Estado Soberano de Cundinamarca)’이 수립되었으며, 이는 그라나디나 연방국(Confederación Granadina)과 이후 콜롬비아 연방국(Estados Unidos de Colombia) 체제 하에서 유지되었다. 1886년 헌법 개정 이후, 쿤디나마르카는 현재의 콜롬비아 공화국의 일부로서 정식 주로 지정되었다.

1905년, 쿤디나마르카는 보고타, 케사다 및 현재의 쿤디나마르카 세 개의 행정 구역으로 분할되었으나, 1910년 다시 통합되었다. 이후 1950년대 구스타보 로하스 피닐라의 독재 정권 시기에는 보고타가 완전히 독립된 특별 지구(Distrito Especial)로 지정되었으며, 1991년 헌법 개정을 통해 현재의 보고타 수도 지구로 확정되었다. 2022년 10월 콜롬비아 의회는 소차를 수도로 지정하는 안을 부결시켰다.

산업[편집]

쿤디나마르카주의 주요 천연자원은 석탄(불법 채굴 사례도 있음)과 소금이며, 특히 시파퀴라, 네모콘 및 타우사에서 많이 생산된다. 이외에도 석회, 철, 유황, 에메랄드, 석영, 납, 석고, 구리, 대리석이 매장되어 있다.

농업에서는 커피, 옥수수, 사탕수수, 감자, 보리, 밀, 카사바, 목화, 쌀, 콩, 과일 등이 주로 재배되며, 특히 콜롬비아에서 가장 많은 사탕수수가 생산된다. 또한, 보고타 평원과 우바테 계곡에서는 낙농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산업 부문에서는 금속 가공, 제약, 섬유, 화훼(꽃) 수출이 주된 경제 활동을 차지한다. 하지만 소차, 보사 및 지파퀴라 등 일부 산업 밀집 지역에서는 심각한 환경 오염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사회[편집]

콜롬비아 분쟁의 일환으로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엄청난 살인 범죄율을 자랑하며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 취급을 받았지만, 현재는 페루나 칠레보다는 못해도 과거에 비해 치안이 많이 나아진 상태다. 라틴아메리카의 여느 국가처럼 지역별로 치안의 편차가 매우 크며, 범죄율이 유동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마약 카르텔같은 전국 단위의 대규모 범죄조직은 사라졌지만 그 잔당이 여전히 활동 중이고, 지역 단위로는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ELN 게릴라와 클란 델 골포 등 신흥 무장범죄 집단(BACRIM)이 아직 수십 개나 남아 있다. 초국가적 조직범죄 글로벌 이니셔티브(GI-TOC)에서 2년마다 갱신하는 범죄지수 보고서에서도 콜롬비아가 콩고민주공화국 바로 다음인 2위로 꼽혔다.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처럼 미녀가 많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여성이 말하는 콜롬비아 억양이 중남미 사람들이 듣기엔 사근사근하기도 하거니와, 샤키라같은 미녀 스타의 존재도 그 이미지에 한몫 보탠다고 한다. 그러나 미녀가 많다는 이미지와 치안 불안이 합쳐져 성매매 또한 성행하고 있는데, 문제는 여성들의 첫 매춘 시작 연령이 대부분 9~11세라는 것이다.[4][5]

문화[편집]

콜롬비아는 라틴아메리카북아메리카의 교차점에 놓여 있고,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아메리카 원주민, 스페인, 그 외의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카리브, 중동의 문화를 비롯하여, 다른 라틴 아메리카의 영향이 모두 현재의 콜롬비아 문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도시화, 산업화, 세계화, 기타 정치, 사회, 경제적 변화들이 또한 콜롬비아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역사적으로, 이 나라의 훌륭한 자연경관은 다양한 지역들이 서로 고립되도록 하였고, 결과적으로 매우 강한 지역 의식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 지역 의식은 많은 경우에 국가 정체성보다도 강하다. 현대의 교통 및 통신 수단이 강한 지역적 정서를 누그러뜨렸고, 국가연대 의식을 촉진하였다. 그러나, 사회적, 정치적 불안정, 특히 도시간 고속도로를 점령한 무장투쟁 단체에 대한 공포심은 매우 명백한 지역적 차이를 유지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보고타 사람들과 중앙 고원 지대의 사람들인 안티오키아(Antioquia)의 파이사스(paisas), 커피 재배 지역인 카리브해 연안의 코스테뇨스(costeños), 동부 평원의 야네로스(llaneros), 태평양 해안에 거주하는 사람들, 남동쪽의 광대한 아마존 우림 지역 사람들 사이에는 억양, 의복, 음악, 음식, 정치적·일반적 태도 등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쿤디나마르카주〉, 《위키백과》
  2. "Cundinamarca Department", Wikipedia
  3. "Cundinamarca", Wikipedia
  4. 콜롬비아〉, 《나무위키》
  5. 콜롬비아〉,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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