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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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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위치

셈난주(페르시아어: استان سمنان)는 이란 북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1][2][3]

개요[편집]

셈난주의 면적은 97,491㎢이며 인구는 702,360명(2016)이다. 주도는 셈난이다. 북쪽으로는 골레스탄주마잔다란주, 북동쪽으로는 북호라산주, 서쪽으로는 테헤란주곰주, 남쪽으로는 이스파한주, 남동쪽으로는 남호라산주와 접한다. 셈난주의 도시로 셈난, 담간, 샤루드, 메디샤하르, 가름사르가 있다.

셈난주는 2014년 6월 22일에 행정 효율성과 지역 개발을 목적으로 5개 지역으로 이란 전국을 재편할 당시 제1지역에 포함되었다. 메디아 및 아케메네스 시대에 세므난은 제국 내에서 가장 큰 주 중 하나였으며, 고대 파르티아 지역의 경계와 일치하였다. 이슬람 시기에는 세므난이 고메스(Gomess) 혹은 코메쉬(Komesh)라는 역사적 지역의 일부였다.

셈난주에는 쿠르드족, 튀르크족, 로르족, 아랍족, 발루치족, 길라크족 등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며, 이러한 민족적 다양성으로 인해 '부족들의 섬(Island of the Tribes)'이라고도 불린다.

셈난주에서 사용되는 세므난어군(세므난어 또는 코미세니언 언어라고도 함)은 이란 북서부어군에 속한다. 일부 자료에서는 이 언어들을 단순한 방언(dialect)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세므난 언어는 사라진 파르티아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므난어 자체는 메디아어에서 유래한 카스피해어군에 속한다고 보기도 한다. 문헌에서는 여섯 가지 세므난 언어가 언급되는데, 이는 세므난어, 비야부나키어, 상사리어, 소르헤이어, 아프타리어, 라스게르디어이다. 이들 중 일부는 방언일 가능성도 있으나, 언어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발표된 연구가 드물다. 세므난어(세므난어 자체로는 سمنی زفون)는 다른 카스피해 언어들과 마찬가지로 고대 메디아어와 유사한 특징을 지니며, 이후에는 파르티아어의 영향을 받았다.

아브르 숲은 셈난주 북부, 골레스탄주 경계 근처에 위치하며, 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숲 중 하나이자 제3기 지질 시대의 유산이다. 이란 도로교통부가 이 숲을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하자, 환경운동가들과 언론이 반발하여 대규모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검찰총장이 도로 건설을 중단시키는 명령을 내리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2008년 4월 정부가 도로교통부의 건설을 허가하면서 결국에는 공사가 강행되었다.

2005년부터 2021년까지 이란 대통령들은 모두 셈난주 출신이었다. 투란 국립공원과 카비르 국립공원은 이란의 국립공원 중 셈난주에 위치해 있다.

자연환경[편집]

셈난주는 산악 지대와 산기슭 평야 지역으로 나뉜다. 산악 지대는 광물 자원의 원천이자 레크리에이션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며, 평야 지역에는 고대 이란 도시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중에는 고대 파르티아 제국의 수도 중 하나도 포함된다. 셈난주 안에는 엘부르즈산맥이 분포하며 남부 지방에는 카비르 사막이 분포한다.

하천은 주로 알보르즈 산맥 남쪽에서 발원하며, 대부분 카비르 사막으로 흘러간다. 흐름의 방향은 북쪽에서 남쪽이다. 상류에서는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지만, 염분 지대를 통과하면서 염화물이 많아진다.

알보르즈 산맥의 영향으로 북부는 숲과 습윤 기후를, 중앙과 남부는 건조 또는 반건조 기후를 보인다.

역사[편집]

셈난주는 고대에 아베스타의 열여섯 행정 구역 중 제14구역이었던 베른(Varn 또는 Verne) 지방의 일부였다. 일설에는 테흐무레스 디우반드(Tahmuras Divband)가 세만간 도시를 창건했다고도 전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 지역이 오늘날의 길란 지방이라고 보기도 하나, 보다 확실한 것은 베른 혹은 베르네 지방이 알보르즈 산맥 남쪽의 고원지대와 세만간 북부의 후와르(현재의 게름사르), 다므간, 상사르(마흐디셰흐르), 다마반드, 피루즈쿠흐, 샤미르자드, 사르케, 데흐나막, 아후반, 쿠셰, 비메와 마잔다란의 산악지대를 포함했다는 점이다.

이 지역은 메디아와 아케메네스 제국 시기 전역을 통해 코미스네 또는 코메스(이슬람 이후에는 곰스라 불림)로 알려졌으며, 당시 파르티아 대행정구의 일부였다. 이 시기 세만간과 사르케는 파르티아와 메디아 사이의 변경도시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일부 역사가들은 이 도시들을 때로는 메디아, 때로는 파르티아의 일부로 분류하였다. 사산 왕조 시기 이 지방은 페츠호아르가르(Pechkhvargar)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여전히 베르네 지방에 포함되었던 도시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지방의 서쪽 경계는 후와르(현재의 게름사르), 동쪽은 샤흐루드, 북쪽은 타바레스탄 남부 산맥이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동방의 그리스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들은 지속적인 지배를 위해 현지 주민들의 호응을 얻고자 했고, 이를 위해 동부와 파르티아 지역에 약 60개 도시를 세웠다. 이 중 하나가 사르케 서쪽에 위치한 현재의 라스제르드 마을, 고대의 아파마였고, 다른 하나는 다므간이라 여겨지는 헥사톰필로스(100개의 문이라는 뜻)였다. 아르사케스 왕조 시기, 헥사톰필로스는 크게 번성하여 오랫동안 이란의 수도였으며, 그 유적은 오늘날 다므간 인근 테페 헤사르 지역에 남아 있다. 아르사케스 왕조는 이란을 18개의 큰 행정 구역으로 나누었으며, 그중 중요한 하나가 세만간, 다므간, 사르케, 후와르(게름사르 포함)에 해당하는 코미스네(곰스) 지방이었다.

아베스타 연구자들에 따르면, 코메쉬(현재의 레이에서 샤흐루드 사이의 알보르즈 남쪽 지역)는 키야니안 왕조의 중심지였으며, 이 지역의 지방 왕이었던 비슈타스프가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이 지역은 이란 신화와 종교 전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키야니 왕 비슈타스프와 투란 왕 아르자스프 간의 최후 전투가 코메쉬에서 벌어졌다고 한다. 신화에 따르면, 전투에서 이란군이 패배해 후퇴하던 중 기적이 일어나 코메쉬 산이 무너져 그 돌들이 평야에 흩어졌고, 이를 신의 분노로 여긴 투란군이 도망치며 전세가 역전되었다. 이 기적적인 승리로 인해 해당 장소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비슈타스프는 전국에 조로아스터의 종교를 전파할 사제를 보내고 각지에 불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

기원후 1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기를 기록한 유스티누스에 따르면, 다리우스 3세는 다라 혹은 사라, 또는 차라라는 이름의 지역에서 살해되었고, 티르다드는 그곳에 요새를 세우고 수도로 삼았다고 한다.

파르티아인의 반 셀레우코스 봉기는 헥사톰필로스에서 일어났고, 이곳에서 티르다드는 셀레우코스 군을 크게 무찌르며 군사적 자신감을 획득했다. 이후 그는 다라 요새를 세우고 알보르즈 산맥 등지에 수많은 성채를 축조했다.

7세기 중엽, 사산 왕조의 마지막 왕 야즈데게르드 3세 시기 아랍 군대가 이란을 침공했다. 그들은 먼저 번영한 도시 레이를 점령한 뒤, 북동쪽으로 진군해 세만간, 다므간, 바스타암, 사르케 등을 포함한 코메쉬 지방을 장악하였다.

이슬람 이후 시기에도 세만간주는 전통적으로 곰스 지방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이 지역은 오랜 역사 동안 수많은 전쟁과 혼란, 승리와 패배를 겪었으며, 후대 중앙정부의 주목을 받았고, 권력자들 간의 수많은 분쟁의 대상이 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 시기, 특히 아부 무슬림 호라사니가 만수르에 의해 살해된 이후, 이란 전역에 반란과 폭동이 일어났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조로아스터교도인 산바드의 봉기였다. 타바레스탄과 그 인근, 즉 상사르(마흐디셰흐르), 샤미르자드, 풀라드마흘레 지역의 조로아스터교도들이 그에게 동조하여 곰스와 레이를 점령했으나, 사베에서 패배하였다. 산바드는 곰스로 도주해 아부 무슬림의 보물을 챙긴 뒤 타바레스탄으로 향했고, 결국 상사르와 샤미르자드 계곡에서 살해되었다.

코메쉬 지방은 6~7세기(이슬람력)의 이스마일파 중심지 중 하나였으며, 이곳에는 약 150개의 성채가 존재했고, 각각의 군락은 하나의 카드호다(지도자), 개별 성채는 모흐타셈(총독)이 관할하였다. 오늘날에도 사르케 인근 주인 마을의 산악지대에 이들 중 하나의 성채가 남아 있다. 세만간은 몽골 침략 시기, 이란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었으며, 이는 783년(이슬람력) 티무르의 침략 시기까지도 이어졌다.

현대 셈난주는 본래 1956년까지 마잔다란주의 일부였으며, 셈난, 다므간, 샤흐루드 3개 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후 1976년, 독립된 주로 승격되었다. 사파비 왕조가 등장하자, 샤 이스마일 사파비는 지방의 반란 세력을 진압하였고, 피루즈쿠흐 성의 지배자를 체포하면서 피루즈쿠흐, 후와르, 세만간, 상사르, 사르케를 장악하였다.

자기의 칭호를 백성의 대리인(وکیل‌الرعایا)이라 칭한 카림 칸 잔드는 29년간 이란을 통치했으나, 세만간, 다므간, 샤흐루드, 바스타암, 사르케는 카자르 가문 귀족들에게 맡겨졌다. 그가 사망하자 아가 무함마드 칸은 시라즈를 떠나 곰스, 다므간 지역으로 향했고, 자신의 부족을 규합해 세만간, 다므간, 바스타암, 사르케, 미야미 등 곰스 지방과 카스피해 남부 지역을 장악하였다.

그 후 그의 조카인 파트흐알리 샤 카자르는 왕위에 올랐으며, 자신의 고향인 곰스 지방을 특히 주목하여 발전시켰다.

산업[편집]

셈난주는 이란 내 소금과 석고 생산 1위이며, 산업적으로도 주요 주 중 하나이다. 광물 자원이 매우 풍부하며, 광산 주로도 분류된다.

셈난주는 농업 잠재력은 높지만 물 부족으로 경작 면적은 전체 면적의 2%에 불과하다. 대표 작물로는 밀, 보리, 감자, 목화, 알팔파, 클로버, 사탕무, 피스타치오이다.

셈난주는 이란 전통 수공예의 중심지 중 하나이며, 주요 산업은 카펫 제작, 직조, 펠트 가공, 도자기 및 도기 제작 등이 있다.

사회[편집]

이란을 얘기할 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란은 아랍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란에는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을 좋아하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손님 대접에 큰 신경을 쓰며, 아직도 시골동네에 놀러가면 나를 초대한 친구의 가족들은 물론 거짓말 조금 보태 근처에 사는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몰려와 함께 밥을 먹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낸다. 외부인에게 뭔가 베푸는 일에 주저함이 없는 편인데, 돌아다니다가 곤란에 처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생면부지의 현지인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날이 갈수록 다른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될 정도의 호의가 일상적으로 오고간다.

이란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팔레비 왕조 치하 중동에서 가장 급진적인 세속주의와 근대화를 실시하면서 적극적인 성평등 정책을 폈다. 때문에 이 때의 성과가 남아 있어 이란 혁명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나라를 장악해 여성에 대한 억압이 강화된 이후에도 여성의 의무교육 수준을 상당히 보장해 주고 있는 데다, 대학생 성비는 여학생 비율이 오히려 더 높다. 대학 캠퍼스에서 머리를 붉게 염색하고는 이걸 어떻게든 머리쓰개 밖으로 노출시켜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여학생과 얼굴만 빼꼼 내놓고 온몸에 차도르를 뒤집어 쓴 여학생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사회다. 아랍 국가들에서 여성들이 대부분 전업주부를 하는 데 비해 이란 여성들은 거의 50% 가까이 직업을 갖고 있으며, 이는 5~60%대를 유지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 많이 낮은 편도 아니다. 여성 관리나 학자 비율도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편으로, 마수메 엡테카르(معصومه ابتکار)라는 여성은 두 번이나(1997-2005, 2013-2017) 부통령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여성에게도 대통령 투표권이 있으며 여성들이 직업을 갖는 것을 적극 권장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금주 율법을 어긴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심지어는 남녀 대학생이 혼성파티를 벌이고 술을 마셨다는 일로 태형이 선고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웃 튀르키예 맥주의 단골 고객인 나라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주변 다른 나라들은 맥주를 안 만들고 아르메니아ᆞ조지아ᆞ러시아 맥주보단 그래도 그나마 튀르키예 맥주를 골랐는지, 아니면 튀르키예 맥주가 입에 맞는지 모르지만, 해마다 32,000~45,000톤에 이르는 튀르키예 맥주를 수입한다고 한다. 과거에 이란 쉬라즈(Shiraz)시에서 만든 와인이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나 혁명 이후 생산이 전면중단되었다가, 90년대 다시 생산재개 되면서 수출량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고 한다.

이란은 이웃한 탈레반 정권 치하의 아프가니스탄과 비슷하게 종교적 극단주의에 기반한 통제와 억압이 횡행하는 나라이다. 특히 잔혹한 전근대적 형벌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어 막장 국가로 악명높다. 미국과 완전히 척을 지기로 작정했는지, 시간대 자체가 30분이 더 차이가 난다. 이 자체로 정상적 세계질서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만 광고하는 것에 다름아니다.[4][5]

문화[편집]

이란 예술은 건축, 석공, 금속가공, 직조, 도예, 서예, 회화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으며,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 강국답게 그 세계적인 영향력도 굉장히 강력한 편이다. 고대 이란 예술, 즉 메디아 문화는 스키타이 양식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그 뒤를 이어 들어선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에는 주변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화를 수입하여 페르시아 양식으로 재창조해내면서 고대 이란의 문화의 황금기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다. 이 시기 가장 유명한 문화유적에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 파사르가다에 등이 있다. 이후 아케메네스 제국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셀레우코스 제국이 들어서자, 그리스 문화가 페르시아 지방에 유입되었으며 이 때 헬레니즘 문화가 번성하였다. 이후 사산 제국이 들어섰고, 사산 제국 치하의 페르시아에서는 가히 이란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폭발적인 문화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란은 여러 민족들이 섞여있는 다민족 국가인데다가, 수많은 국가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이덕분에 식문화가 굉장히 다채로운 편에 속한다. 보통 허브와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며, 그 외에도 복숭아, 석류, 마르멜루, 살구, 건포도 등 과일들을 음식에 넣어 먹는 경우도 많다. 또한 사프란, 말린 라임, 계피, 파슬리 등 향신료도 많이 사용하며, 양파와 마늘과 같은 기본적인 향신료들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요리에 들어가는 편이다. 또한 요리에 넣어 조리해먹는 것 뿐만 아니라 피클을 만들어 먹거나 생으로 먹기도 한다.

이란은 손님 대접에 큰 신경을 쓰며, 아직도 시골동네에 놀러가면 나를 초대한 친구의 가족들은 물론 거짓말 조금 보태 근처에 사는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몰려와 함께 밥을 먹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낸다. 외부인에게 뭔가 베푸는 일에 주저함이 없는 편인데, 돌아다니다가 곤란에 처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생면부지의 현지인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지역에 따라 온도차는 조금씩 있다. 또한 우리나라도 과거에 길손들에게 일상적으로 호의를 베풀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하자면, 이란의 이런 문화도 도시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조금씩 약해질 듯 하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셈난주〉, 《위키백과》
  2. "استان سمنان", Wikipedia
  3. "Semnan province", Wikipedia
  4. 이란〉, 《나무위키》
  5. 이란〉,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아라비아 국가
페르시아 국가와 지역
아나톨리아 국가
레반트 국가
남캅카스 국가
아라비아 도시
페르시아 도시
아나톨리아 도시
레반트 도시
남캅카스 도시
서아시아 문화
서아시아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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캅카스 지리
서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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