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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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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국기

카타르국(아랍어: دولة قطر, 영어: State of Qatar), 줄여서 카타르(아랍어: قطر, 영어: Qatar)는 중동서아시아에 있는 입헌군주국이며 수도는 도하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아랍에미리트와 가까우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알파벳 Q로 시작하는 국가이다.

개요[편집]

  • 수도: 도하
  • 면적: 11,581 km²
  • 인구: 2,790,524 명 (2022년)
  • 공용어: 아랍어
  • 정치체제: 단일 국가 입헌군주제
  • 국왕: 타밈 빈 하마드 알타니

역사[편집]

고대[편집]

224년, 사산왕조페르시아(Sasanid Empire, 224년~651년)는 페르시아만을 둘러싼 지역 영토 전역을 장악하고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사산 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카타르 지역은 상업 활동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특히 진주와 자주색 염료가 많이 생산되면서, 고가품을 생산하는 지역을 통하였다.

7세기, 우마이야 왕조(Umayyad Dynasty)는 시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이 시기 카타르 지역은 말과 낙타 번식지로 알려졌으며 진주 관련 상업의 중심지로 역할하였다. 우마이야 왕조 이후, 카타르 북서부에 위치한 무르왑(Murwab)을 포함한 주변 지역이 압바시야 왕조 통치 기간 동안 개발되고, 번성하였다. 100개 이상의 석조 주택, 모스크 2개소, 요새 1개가 건설되었다. 특히 무르왑 요새(Murwab fort)는 현존 하는 요새 중 가장 오래된 요새이다. 진주 산업이 발달하였으며 바스라(Basra)를 거쳐 인도중국으로 가는 무역선이 카타르 항구를 정박지로 이용하였다. 868년, 현재의 바레인과 카타르 지역에서 압바시야 왕조에 대항하는 반란이 있었는데 카르마티안(Qarmatian)이라고 불리는 급진적 성격의 이스마일리(Ismaili) 종파 단체는 899년 아라비아반도 동부 지역을 장악하고 통치 권역을 구성하였다.

13세기, 아라비아반도 동부 지역은 우스푸리드(Usfurids)가 통치하였고, 이후 1320년에 이르러 오르무스(Ormus) 왕조가 이 지역을 통치하였다. 1507년, 포르투갈인 알폰소 데 알부케르케가 오르무스조를 공격하여 카타르와 바레인 지역을 점령하였다. 포르투갈인 알폰소 데 알부케르케(Alfonso de Albuquerque)가 카타르와 바레인 지역을 점령한 후, 포르투갈 사람들은 카타르 지역을 아라비아 동부지역의 상업 관문이자 무역항으로 이용하였고, 금, 은, 비단, 정향, 호박, 말, 진주 등을 수출하는 통로로 이용하였다. 1550년, 카타르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오스만 제국 통치에 복속하였고, 포르투갈의 통치보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수용하였다. 1602년, 영국네덜란드는 아라비아 동부 해안에서 포르투갈 군대를 축출하였다. 1670년, 칼리드 가문(바누 칼리드, Banu Khalid)이 오스만 제국을 카타르 지역에서 추방하고, 통치를 실시하였다.

1783년, 바레인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페르시아 사람들을 우투브 가문 주도로 완전히 축출하였다. 당시 우투브 가문의 중심지는 주바라(Zubarah)였는데 우투브 가문의 확장으로 인하여 칼리파 가문은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였고, 자신들의 통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아라비아반도 서쪽에서 세력을 확장한 와하비(Wahabi) 세력과 결탁하였다. 와하비 세력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 및 정치적 근간을 이루는 사상을 가진 종교 사상이다. 아라비아반도의 서쪽에서 세력을 확대하던 사우디 가문은 와하비 사상을 기반으로 동부 지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1787년 사우디 가문의 장군 술라이만 이븐 우파이산(Sulaiman ibn Ufaysan)이 카타르 지역을 공격하고 점령하였다. 1795년에는 칼리드 부족 점령지를 공격하여 장악하였다. 이로 인하여 사우디 가문은 오스만과 이집트 군이 합세한 서쪽 전선과 바레인과 오만군이 합세한 동쪽 전선 양쪽에 전선을 형성하며 전쟁을 진행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1811년 이집트군이 서쪽 국경선에서 진군을 시작하자, 사우디 가문은 철군을 시작하였고, 칼리파 가문은 다시 카타르에 대한 통치권을 되찾았다.

근대[편집]

1835년, 영국의 개입으로 아부다비, 샤르자, 바레인, 오만아라비아반도 동부를 통치하던 토후국 간 휴전 조약이 체결되었으나 1860년 대 카타르와 바레인은 작은 규모의 분쟁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며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1867년, 바레인은 카타르에 거주하던 베두인 부족을 공격하여 추방하였고, 이에 대응하여 알사니 부족(Al-Thani)은 현재의 카타르 지역에 거주하던 바레인 토후국 군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고 이에 대응하여 바레인은 동맹관계에 있던 아부다비와 함께 카타르를 공격하였다.

1867년 이전, 영국은 카타르를 바레인의 속국이자 종속국으로 간주하였으나 알사니 가문이 바레인 군대를 몰아내자 영국은 알사니 가문을 카타르의 주요 통치 세력이자 정치 단체로 인정하였다. 1868년, 당시 바레인에 거주하던 영국인 루이스 펠리(Lewis Pelly, 1825.11.14~1892.04.22) 중령이 알사니 가문의 수장 자심 빈 무함마드 알사니(Jassim bin Muhammad Al-Thani, 1825~1913.07.17, 재위 1878.12.18~1913.07.17)과 만나 조약에 서명하면서 전쟁이 마무리 되었다. 이 조약으로 바레인은 카타르 영토에 대한 통치권을 포기하였다.

1871년 오스만 제국은 아라비아반도 동부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카타르를 침공하여 1872년 1월에 카타르를 오스만 제국의 일부로 편입하였고, 네지드 지방(Najd)의 한 구역으로 행정구역을 재편하였다. 당시 알사니 가문의 자심 빈 무함마드 알사니가 부총독에 임명되면서, 알사니 가문의 카타르 지역에 대한 통치권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오스만 제국과 알사니 가문 사이에 점차적으로 분쟁이 생기면서 1893년 2월, 메흐메드 하피즈 파샤(Mehmed Hafiz Pasha, 1844~1903)가 카타르로 군대를 이끌고 쳐들었다. 자심이 이끄는 카타르 군대는 메흐메드 군과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이 전쟁으로 훗날 독립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초석을 닦았다.

1913년, 이미 오스만 제국이 카타르에 대한 통치권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1915년, 오스만 제국은 카타르 지역에서 철수하였다. 1916년, 자심의 아들인 압둘라 빈 자심 알사니(Abdullah bin Jasim bin Muhammad Al-Thani,1880~1949, 재위 1913~1949)는 영국과 조약을 체결하면서 카타르 지역을 휴전 상태로 공표하고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현대[편집]

1938년, 유정 시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년 후에는 거대 유전이 발견되었다. 1949년부터 재개된 석유 수출은 카타르에 부를 가져다 주기 시작하였다. 1949년, 압둘라의 아들인 알리 빈 압둘라(Ali bin Abdullah al-Thani, 1895.06.05~1974.08.31, 재위 1949.08.20~1960.10.24)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대신 영국군의 주둔을 허락하는 조약을 맺았다. 1970년 4월 아흐마드 빈 알리가 샤리아(Shariah)를 기본법으로 하는 독립 아랍-이슬람 국가 수립을 선포하는 임시 헌법을 공포하고 1971년 9월 1일, 카타르는 독립을 선언하였다.

아흐마드 빈 알리가 카타르가 아닌 스위스에서 이를 선포하자 그 아들인 칼리파 빈 하마드 알사니(Khalifa bin Ahmad bin Ali al-Thani, 재위 1972.02.22~1995.06.27)가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통치자의 자리에 올랐다. 1993년 칼리파 빈 아흐마드는 국왕(아미르, Emir) 자리에는 남았지만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Hamad bin Khalifa, 1952~, 재위 1995~2013)가 실질적으로 통치하였다. 2013년 6월,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Tamim bin Hamad Al-Thani, 1980.06.03~, 재위 2013.06.25~)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지리[편집]

카타르는 아라비아반도 중동부 페르시아만에 위치한 반도 국가로 남북 길이 약 160km, 동서 길이 약 90km인 남북으로 긴 타원형 모양이다. 남쪽 경계는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북서부에는 섬나라 바레인이 위치한다.

카타르의 대부분은 사막으로 덮인 낮은 저지대이며 남서부와 남부에는 낮은 모래 구릉이 곳곳에 분포하는데 이 중 남부에 있는 103m의 아부 알발(Abu al-Bawl) 언덕이 카타르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중부에는 석회암 고원 지형이 나타나고 남동쪽에는 페르시아만과 연결된 내해(Inland sea)가 있다.

주민[편집]

인구의 대다수가 외국인 이주 노동자로 구성되었으며 인구의 15~20%가 내국인이고, 나머지가 외국인이다. 외국인 중에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파키스탄남아시아 출신 이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며 그 외에 필리핀이집트 국적자도 다수이다.

지도[편집]

틀:카타르 행정 지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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