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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상

해시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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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돌하르방
제주 동자석

석상(石像)은 을 조각하여 만들 동물이나 사람 따위의 모습을 한 것을 말한다.

한국에 흔한 벅수(장승)나 제주도에 많은 돌하르방, 묘 앞에 세워진 문무인석은 물론, 이나 절터에 남아있는 석불도 이 석상에 포함된다. 석상은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지만 가장 가까운 남미에서 3,200㎞나 떨어져 있는 남태평양상에 있는 조그마한 이스터섬의 예가 대표적이다. 섬의 해안가에 2백여 개의 석상들이 바다를 향해 세워져 있는데, 사람 얼굴을 웅장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조각하였다. 큰 것은 높이가 10m 이상에 무게가 82톤이나 되며, 산의 암반층에는 만들다만 것들도 있다.

세계 유명 석상[편집]

모아이 석상[편집]

이스트섬의 석상 모아이는 그 만든 이유, 방법 등이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높이가 최대 20m나 되는 이 상에 쓰인 돌은 어디서 왔을까? 600개 정도되는 두상들이 한쪽만 바로보고 있는데 아직 별로 밝혀진 게 없다. 이 모아이들은 서기 400 ~ 1680년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11세기 경에가장 많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모아이들은 라노라라크 채석장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누가 이렇게 큰 석상을 만들었고 그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렇게 큰 석상을 어떻게 운반했는지, 원시적 도구밖에 없는 이 섬에서 어떻게 조각했는지, 어째서 석상은 섬 주민들과 달리 커다란 귀에 곧은 코와 얇은 입술을 가진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모아이는 뭍힌부분이 드러난 부분의 2~3배나 된다. 다만 최근 연구된바 의하면 실제로 돌은 현무암으로 가공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모아이섬은 현재 칠레령이며 면적은 163.6㎢로 제주도의 8분지1정도 된다. 원주민이 라파누이라고 부르는 이 섬의 발견은 1722년 4월 5일에 네덜란드의 사령관 야콥 로게벤에 의한 것이다. 오후 5시가 될 무렵이었다. 섬을 발견한 것은 로게벤이 지휘했던 세척의 배 가운데 하나인 아프리카안쉬 갈레이호였으며 이 날이 부활절이어서 이스터섬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연구에 의하면 1250년대 까지 이 섬은 숲이 울창했는데 그 즈음 이 석상이 대규모로 만들어 지면서 이에 따라 산림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모아이는 원래 모자가 있었고 눈이 있었으나 이 석상에 불만을 품은 원주민들이 이를 파괴하여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러시모아 산의 대통령 얼굴들[편집]

러시모아산 대통령들상

미국 사우스 다코타주 키스톤 러시모어 산의 미 대통령얼굴 조각상은 높이는 18m에 너비 9m되는 4명의 대통령 얼굴이 조각되어 있어 얼굴크기로는 엄청나게 크다.

미국 초대 대통령으로 위대한 민주국가 탄생을 위하여 헌신한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 독립선언문을 기안했고 루이지애나 지역을 구입해 국토를 넓힌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승리로 미연방을 살렸고 흑인 노예제도를 폐지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그리고 서부의 자연보호에 공헌이 컸고 파나마운하 구축 등 미국의 지위를 세계적으로 올려 놓은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등 네명의 대통령의 초상이 산정상의 거대한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 조각은 원래 관광수입을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었고 처음 이 사업을 제안하여 완성시킨 돈 로빈슨은 처음에 그 지방의 인디언 추장인 레드 클라우드나 미 대륙을 횡단한 탐험가 루이스와 클락같은 지역과 관련있는 인물을 조각할 것을 제안했으나 조각가 거튼 보글럼(Gutzon Borglum)은 이 제안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며 역사적 인물로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인물들을 조각하자고 하여 4명의 역사에 남을 대통령을 조각하게 되었다.

조각은 1927 년에 시작하여 1941 년에 완성을 보았고 총 소요비용은 99만달러정도였으며 기간중 단 한명의 인명사고도 없었다고 한다.

이 산의 원래 명칭은 라코타족의 여섯할아버지산이나 1885년 이 산을 탐험한 뉴욕의 변호사 찰스.E.러시모어(Charles E. Rushmore)의 이름을 현재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리우데자이네로 예수상[편집]

리우데자이네로 예수상

예수상은 브라질포루투갈로부터 독립한 지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해발 700m 코발도산 티주카숲에 이 도시를 내려다 보는 국립 공원에 세워져있고 발판에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이 있다. 규모는 발판 포함 높이 39.6m이고 양팔포함 폭 28m, 무게 1,145톤이다.

1926과 1931년에 걸쳐 세워졌고 프랑스에서 조각 하여 현지에서 조립한 리오 데자이네로시의 아이콘이다. 권위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이에 포함이 되어있는데 그 명성도나 규모면에서는 미국의 자유의여신상이나 러시아의 조국이 부른다 등이 선정되었어야 했다는 의견이 많다.

브라질의 기술자인 에이토르 다 시우바 코스타(Heitor da Silva Costa)와 폴란드 계 프랑스인 조각가 폴 란도프스키(Paul Landowski)가 합작하여 제작한 것인데 코스타가 전반적인 설계를 하고 란도프스키가 예수의 손과 머리를 조각했다. 이 예수상을 보기위해 연간 약 18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고 한다.

코르코바두 산 정상에 조각상을 세우자는 발상은 185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가톨릭 신부 페드루 마르티아 부스는 브라질 황제 페드루 2세의 딸인 이자베우 공주에게 거대한 종교적 기념상을 세우는 데 자본을 투자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이자베우 공주는 이 계획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혁명으로 1889년 왕제가 폐지되고 공화정으로 전환되면서 정교분리 원칙이 법제화되어 조각상 계획은 흐지부지되었다. 이후 1921년 리우데자네이루 대교구에서 거대한 랜드마크격 조각상을 산 꼭대기에 세우자는 제안을 했다. 대교구는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조각상 주간행사를 열었고 비용의 대부분은 브라질 가톨릭 신자들의 모금으로 충당되었고 조각상 형태는 여러 안건들 중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이 채택되었다.

자유의 여신상[편집]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의 정식 명칭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영어 : 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프랑스어: La liberte eclairant le monde)이다. 미국 뉴욕에 리버티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높이는 얼마나 될까? 몸체는 46.1m이고 받침대 포함 92m 다.

1865년 프랑스의 역사학자 에두아르 드 라불레가 남북전쟁 후에 자유의 여신상 건립을 제안했다. 디자인은 1874년에 라불레가 프레데리크 바르톨디에게 의뢰를 하였다. 설계는 에펠탑으로 잘 ​​알려진 귀스타브 에펠도 참여를 했다. 자유의 여신상 본체는 동판을 두들겨서 모양을 내고 비올레 르 뒤크와 귀스타브 에펠이 고안한 4개의 대형 철제 구조 위에 조립하여 만들어졌다. 또한 이 여신상은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19세기 이후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계 각지에서 유입된 이민자에게는 신세계에 대한 희망이기도 헀다. 높이 든 오른손에는 횃불을 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1776년 7월 4일이 로마숫자로 새겨진 명패을 들고 있고 발은 풀러진 쇠사슬과 족쇄를 밟고 있는데 이것은 모든 탄압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인류는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머리에 쓰고 있는 관에는 7개의 뿔이 있는데 7은 완전수로 완전한 국가를 의미하며 또한 7개의 대륙과 7개의 대양에 자유가 펼쳐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신상은 등대 겸용으로 만들어져 횃불은 등대의 역할을 했었지만 불빛이 구름에 반사되어 선박 운항에 방해가 된다는 청원으로 등대의 기능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 여신상은 프랑스의 화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으나 그림이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토가와 같은 옷을 입히고 깃발대신 횃불을 총 대신 독립선언문을 들게했다.는 미국 이민박물관(1972년 개장)에 소장되어 있고 자유의 여신상은 198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조국이 부른다[편집]

조국이 부른다 상

1967년 볼고그라드에 세워진 이 상은 구조 엔지니어 니콜라이 니 키틴과 조각가 예브게니 부첸티크(Yevgeny Vuche tich) 의해 설계되었고 레닌그라드 대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상으로 비 종교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상이며 왼손을 벌리고 오른손에 칼을 높이 든 모양은 공학적으로도 매우 만들기 어려운 상이다.

높이가 85m이고 칼의 길이만도 33m에 달하는 등 발판높이를 뺀다면 자유의 여신상을 압도하며 스탈린그라드 전투 200일을 상징하는 기념물은 언덕 아래까지 이어지는데 소련군 100여만명이 사망하고 스탈린그라드를 폐허화한 이 전투는 아직도 깊은 아픔을 간직한 전투로 주위의 호수는 "통곡의 호수"로 불리우며 독일이 이 전투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하여 2차 세계대전의 전환점이 된 바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주역은 소비에트연방인 듯 하다.

이 상은 발렌티노 이조토바라는 처녀를 모델을 기용했는데 그녀의 허락을 받는 데 6개월을 소모했다고 한다. 상의를 벗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시내 호텔의 웨이트레스로 일하던 26세의 처녀였는데 결혼한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 옷을 벗는 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라고 술회했다고 한다.

이 상은 나치와의 전쟁승리 20주년을 기념할 목적으로 원래 1958년에 기획되어 건립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웬일인지 상당히 지연되어 목표년도인 1962년에는 예산과 자재,기술 부족 등으로 완성하지 못했고 원래 50m였던 높이를 흐루시초프가 갑자기 85m로 변경하는 바람에 결국 1967년에야 완공을 보게 되었는데 이는 자유의 여신상보다 높게 하 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은 현재 이 상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데 처음 설계보다 너무 커져 이에 따른 지반공사가 뒤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고 현재 지반 침하로 붕괴의 위험까지 있는 상황이며 별 조치 없이 방치되다가 2010년부터 복원 및 수선에 들어갔다. 콘크리트 5,500톤, 금속구조물 2,400톤이 소요된 이 상은 건립과정에서 문제는 많았지만 이 상은 너무 훌륭했고 러시아사람들은 당연히 새로운 세계7대불가사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데 너무 알려지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이 거상은 그리스의 "날개 돋친 승리의 여신상" 조각상에서 그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중국의 노산대불[편집]

노산대불

이 불상은 몸체높이는 108m, 연꽃 높이 20m 등 128m로 세계최대 불상인데 여기에 주위에 기반을 제거하고 기념물 부속건물을 지어 총 기념물 높이가 208m이다.

허난성 루산의 푸첸사(佛泉士) 일대에 세워진 이 불상은 1997년 허난성의 부호인 리류파(李留法)의 후원으로 건축이 시작되었고 15년에 걸친 공사 끝에 2002년에 완공되었다. 그는 이 불상 건설에 필요한 자금의 충당을 대규모 후원회 를 열어 불자들의 후원금을 모았으며 성(省) 정부의 보조금 지원으로 완공을 보게 되었는데 세계최대의 불상을 보기 위해 본토 뿐 아니라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 불상에 소요된 재료는 구리 3,300톤, 금 108Kg, 특수강 15,000여톤이다. 중국은 세계최대 라는 데 관심이 많은 것 같고 중화에 대한 자부심과 관광수입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된 불상인 것 같다. 이 프로젝트에 소요된 총 비용은 5,500만달러였고 순수한 동상 건립에만 1,800만달러가 지출되었다고 한다.

불교에서 는 큰 불상을 만드는 것이 부처에 대한 공양이라고 생각하여 많은 불상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불교가 주로 성행하는 아시아에는 40m이상되는 불상이 30여개나 있으며 일본이 11개로 단연 많다.

2000년 이전에는 미안마의 와불들이 그 크기를 자랑했는데 기술적으로 세우는 입석 불상은 만들기도 어렵고 돈도 많이들어 와불형태로 제작해 왔으나 2008년도에 높이 130m에 달하는 모니와 불상을 만들었다.

크레이지 호스[편집]

공사중인 크레이지호스-머리완성에만 50년이 걸렸다.

크레이지 호스(1840.5 ~ 1877 .9. 5)는 인디언의 투쟁사에 길이 남을 리틀빅혼 (Little Big Horn) 전투에서 라코타족의 추장 '시팅불'과 함께 남북전쟁 때 불패의 신화를 갖고 있던 젊은 영웅 조지 커스터와 그의 제7 기병대 255명 전원을 전멸 시켰고 그들도 136명의 전사자와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석상은 옛 인디언 땅인 러시모어산에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조각한 것에 반발한 인디언 후손들이 1948년부터 기획하고 만들어가고 있고 미국정부의 재정지원 제의를 거부하고 관광수입으로만 만들고 있으며 이 석상이 완성되면 그 규모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대 석상이 될 것이다.

러시모어산 대통령상 건설에 참여했던 폴란드계 조각가 코자크 지올코브스키가 인디언 수우족 추장인 "서있는 곰"으로부터 자신의 영웅 "크레이지 호스"상을 만들어 줄것을 의뢰받고 조각이 시작되었는데 전제 모양은 크레이지 호스가 말타고 있는 형상이고 현재 머리 일부분만 완성된 상태이며 높이가 195m, 길이 172m로 조각할 예정으로 향후 100년정도 걸릴 것이라고 한다.

지올코브스키는 크레이지 호스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의 침략자에 대한 투쟁정신에 감명받고 이후 남은 여생을 어려운 여건 속에 이 조각에 매진하다 1982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세간에서는 이 역사가 중단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의 아내와 자녀, 손자와 증손자까지 대대로 이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리틀빅혼 전투시 맞선 미군이 조롱하듯 너의 땅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크레이지호스가 마상에서 지평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의 땅은 내가 죽어서 묻히는 곳이다."라 말했는데 이 석상은 그 장면을 조각하는 것이다.

땅에 욕심이 많은 현대인들이 한번쯤 음미해볼만한 말이며 죽으면 반평에 묻힌다.

람세스2세 석상[편집]

람세스2세 석상

가장 오래된 석상은 아부심벨 신전의 람세스2세 석상으로 앉은 모습이다. 이 석상은 높이 20m 정도의 좌상 4개와 부속 구축물인데 사암산 통째를 조각해 만들었으며 사원의 건설은 BC 1264 에 시작해서 약 20 년 동안 지속되었다.

1813년 스위스의 학자인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가 모래언덕에 뭍혀있는 아부 심벨을 발견했고 1817년 발굴이 되었는데 이때 이미 4개의 상중 1개는 파괴된 상태였다. 1960년대 아스완 댐의 건설로 수몰위기에 있었지만, 국제적인 원조와 유네스코 지원 등을 받아 원래 위치 보다 65m 높은 현재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다.

람세스2세는 재위기간이 67년(1290~1224 BC)의 오랜 집권동안 이집트를 강성하게 만들었다. 람세스2세의 기록 중 힛타이드와의 전쟁에서 승리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자기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역사왜곡으로 보여지는데 당시 힛타이드는 철기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이집트는 청동기 시대이므로 역사상 철기문화를 청동기가 이기는 것은 활로 총을 이기는 것에 비유 할 수 있다. 청동을 만드는 재료중 주석은 산출량이 적어 소수의 장군을 제외하고 청동기의 군사들은 대부분 석기 등으로 된 무기로 무장할 수 밖에 없으나 철은 대량생산이 가능해 많은 군사들이 철기 무기로 무장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강력한 힛타이드와 평화롭게 지냈으며 안정을 누릴 수 있었고 성서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와 맞서는 파라오이기도 하다.

바미얀 석불[편집]

바미얀 석불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바미얀 석불은 6세기경에 만들어졌는데 2001년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인 탈레반정권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가장 큰 것은 53m에 달했다.

바미얀은 힌두쿠시산맥의 고도 2,590 m에있는 도시로 630년에는 현장(玄奬) 법사가, 727년에는 신라의 혜초(慧超)스님이 이곳을 순례했으며 당시 이 도시는 상업의 요충지이자 불교신앙의 중심지로 동서 문화가 교차하는 곳이었다.

불상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5세기경으로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간다라 양식의 불상이 조성되기 시작했는데 이 시대에 만든 2개의 거대한 불상이 최근까지 남아 있었다. 큰 불상은 높이 53m, 작은 것은 36m로 천연 그대로의 바위를 깎아 조성하고 석회로 마무리한 사암 마애 석불이다. 세계의 많은 국가와 단체 및 개인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런 귀중한 인류의 유산을 폭파하는데는 불과 수초도 안 걸렸고 다시 회복할 수 없게 파괴한 것은 광신이라고 밖에는 다른 말로는 설명이 어려운 것이며 이슬람의 가르침과도 거리가 먼 것이다.

빙링사 석굴 불상[편집]

빙링사 부처 27m 420년경

중국 깐수성(甘肅省)링시아후이(臨夏回 )영징현(永靖縣)서남쪽 약 100Km부근의 빙링사(炳靈寺)에 있는 석굴 불상은 가장 큰 것은 27m의 높이이며 서기 420년경 서진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근에는 183개 동굴에 694개 석상, 82개의 점토상들이 산재해 있는데 석굴과 불상들은 자연재해와 도굴 등으로 많은 회손이 있었으나 현존하는 불상만으로도 방대한 규모로 놀라움을 주고 있다.

러산대불[편집]

러산대불

중국에 있는 러산대불은 713년에 조각을 시작하여 803년에 완성된 좌불이며 높이 71m로 오래된 불상으로는 독보적인 불상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불상은 당나라 때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비문 기록에 의하면 713년 당시 빈번하게 발생하던 수해를 막기 위해 승려 해통(海通)이 능운사(淩雲寺)에 인접한 절벽에 석상을 조각하기 시작했다고 하며 743년 해통은 대불이 완성되기 전에 입적한 후 절도사로 있던 위고(韋皋)가 조각을 이어받아 803년에 완성하였는데 강의 합류 지점에 공사로 인해 떨어져 나간 대량의 토사 때문에 강 수심이 얕아지고 수해는 대폭 감소했다고 한다.

성 당시 대불은 대불상각이라고 칭한 13층의 목조건축물이 건축되었고 법의에는 금박, 몸통에는 주홍색이 칠해져 있었다고 하며 용수를 배출하기 위한 배수구와 빗물을 효율적으로 방출하는 홈이 파여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후 방치되어오다가 명대에 이르러 건물은 소실되고 이 대불도 노천에 노출되어 침식되어 갔으며 최근에는 산성비에 의해 불상 표면의 부식이 진행되고 있고 일부 복원이 시도되고 있다.

은진미륵[편집]

은진미륵 - 높이 18.12m로 국내 최대 불상이다.

정식 명칭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은 논산시 관촉사에 있는 불상으로 968년 고려 광종 때 조각이 시작되어 1006년에 완성된 불상이며 보물 제218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18.12미터, 둘레 9.9미터로 한국 최대의 석불이며 천연의 화강석 암반 위에 허리 아랫부분, 상체와 머리 부분을 각각 하나의 돌로 조각하여 연결하였다. 바닥에서 어깨까지는 11.62미터, 어깨에서 보관까지 4.07미터, 보관높이 2.43미터, 귀길이 1.8미터, 입 1.06미터 이다.

한국 법주사 금동미륵대불[편집]

한국 법주사 금동미륵대불(25m)

금동미륵대불은 용화정토에 이르러 깨달음의 법을 설하시는 미래의 미륵부처님의 현존을 의미하는 것으로 화강석으로 만든 높이 약 8m에 이르는 기단 위에 높이 약33m의 국내에서 최대의 규모이다. 금동미륵대불은 용화정토에 이르러 깨달음의 법을 설하시는 미래의 미륵부처님의 현존을 의미한다.

동양 최대의 미륵불 입상으로 신라 36대 헤공왕 때 진표율사가 청동으로 주조하여 1000여 년간 내려왔으나 대원군에 의하여 「당백전」의 재료로 쓰기 위하여 훼철되고 그 뒤 1939년 조각가 김복진에 의해 만들어진 시면트 불상이 약 50여 년간 있어오다가 1987년 해체되고 1990년 청동미륵대불에 이르렀으며 현재의 금동미륵대불은 총 12억원을 들여 지난 2000년부터 개금불사 공사를 시작 17개월만인 2002. 6. 5일 완성되었다.

금동미륵대불은 총 80㎏의 순금이 소요됐으며. 겉부분(연면적 900㎡)에 3미크론(0.003㎜)두께의 금막이 입혀져 있고 섭씨 80℃∼-30℃에서 견딜 수 있는 건식 전기도금공법으로 광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특수 도금돼 있다. 금동미륵대불 기단부 안에는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도솔천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용화전이 있으며 용화전 벽면에는 13개의 미륵십선도가 부조되어 있다.

홍콩 청동 좌불상[편집]

홍콩청동좌불상
볼리비아 코차밤바 예수상

고요한 외딴 산 속에 지라힌 포린수도원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청동좌불상이 건립되면서부터였다. 청동 좌불상은 높이가 34m에 이르며 중국인들을 보살펴주기 위해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불상을 보기 위해 아시아 전역에서 불교신자들이 몰려든다.

청동 좌불상은 총 12년에 걸쳐 완성됐는데, 모든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뜻을 담아 올라가 있는 오른손, 눈빛, 입술, 살짝 기울어진 고개 등 정교하게 만들어진 부분 하나하나가 자애로우면서도 기품 있는 모습을 완성해준다. 268개 계단을 올라가면 대불을 좀더 가까이서 볼 수 있고, 동시에 바다와 산이 만들어내는 황홀한 전망도 감상할 수 있다.

청동 좌불상 맞은 편으로 위치한 포린수도원은 홍콩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사원 중 하나로, '남쪽의 불교도 세상'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기도 하다. 절실한 승려들이 모여 있는 포린선사는 불교도상학이 화려하게 표현돼 있어 볼거리가 가득하며, 사원 마당에는 아름다운 새와 꽃이 가득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사원 내 채식 식당도 유명하다.

볼리비아 코차밤바 예수상[편집]

카톨릭 신자가 대부분인 중남미 대륙에서 예수상은 라틴아메리카의 대표 상징물이다. 볼리비아 코차밤바 예수상(Cristo de la Concordia)은 2016년 리우(Rio de Janeiro) 올림픽 당시 한국인에 각인된 브라질 예수상을 능가하는 중남미 1위의 기록(높이 34.2m)을 갖고 있다.

갤러리[편집]

스리랑카 베루왈라 좌불  
몽골 칭기즈칸 상(44m)  
중국 염제 황제 조각상(100m)  
중국 난산 해상 관음상(108m)  
일본 관음보살 입상(36m)  
인도 무루데시와라 신상(31m)  
멕시코 호세마리아 모렐로스 상(41m)  
우크라이나 조국의 어머니상(62m)  
러시아 표트르 대제상(96m)  
대만 거대 부처 입상(80m)  
중국 링산 부처상(89m)  
일본 센다이 관음상(106m)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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