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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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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대성당

성당(聖堂, church)는 천주교회 혹은 정교회에서 신자들이 종교 전례에 참여하기 위하여 모이는 교회당(敎會堂)이다.[1]

개요[편집]

웨스트민스터 사원

성당(聖堂)은 기독교(그리스도교)의 교회당 중에서, 성찬의 전례가 이루어지는 미사 거행을 위해 쓰이는 경당을 특별히 일컫는 말이다. 한국의 천주교하고 정교회, 성공회에서 예배당 및 장소 명칭으로 사용되고, 개신교에서는 교회 내 예배당을 성전(聖殿)이라고도 부른다.[2]

특징[편집]

한국어에서 교회는 개신교회 건물, 성당은 정교회나 천주교회 건물이라는 인식이 일반인들에게 매우 강하지만 '교회(敎會)'의 원 뜻은 '에클레시아;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임, 혹은 그 신자들의 공동체'이므로, '개신교 예배당'이라는 의미로 국한되어 쓰이는 것은 상당히 어폐가 있다. 또한 개신교 신자들의 모임 뿐 아니라, 가톨릭 교회/정교회 신자들의 모임도 교회이다. 서양에서 'church'라고 하면 각 교파의 지역별 우세 정도에 따라 가톨릭이나 정교회의 성당, 개신교의 교회 모두를 가리킬 수 있다. 정리하면 교회는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를 아우르는 단어인 '기독교' 신자들의 집합체이지만 성당은 가톨릭 집회를 위한 (대개 커다랗고 유럽 궁전처럼 외관이 웅장한)'건축물'의 의미가 강하다.

가톨릭 교회/정교회에서 혼인성사가 7성사 가운데 하나인 것은, 단순히 뭔가 있어 보이게 결혼식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작은 규모의 신앙 공동체인 "가정"이라는 "교회"가 새로이 탄생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정교회 성당과 개신교 예배당의 가장 큰 차이는 성체를 모시는 감실의 유무이다. 즉 같은 교회 건물이지만 가톨릭 교회/정교회의 교회가 개신교의 교회와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는 성체를 모신다는 것이기 때문에 개신교처럼 그냥 교회라고 하지 않고 성당(즉 성체를 모신 교회당)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성공회의 경우 앵글로-가톨릭의 영향이 강한 지역은 전례 장소에 감실이 있지만, 복음주의의 영향이 강한 곳은 감실이 없다. 대한성공회는 앵글로-가톨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거의 모든 예배 장소에 감실이 있다.

유명 성당들은 크고 아름다운 위용을 자랑한다. 외견만 봐도 아름답긴 하지만 건물 내에 들어갔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질서 있게 자리잡은 좌석이 위치하고 형형색색의 스테인글라스는 좌석에 있는 사람들을 빛쬔다. 시스티나 대성당에는 세기의 화가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천장에 가득 그려져 있으며, 그 유명한 천지창조도 그 그림 중 일부다. 건축 종사자라면 안 가보는 것이 죄일 정도로 훌륭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건축적 화려함의 극한을 보여준다. 또한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도 있다.

유교 건축물 중에도 한자도 같은 성당(聖堂)이 있다. 공자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인 문묘를 특별히 따로 부를 때 쓰는 말로 일본의 유시마성당이 대표적인 케이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유서깊은 오래된 성당들은 보수공사나 관리가 어렵다. 오래된만큼 유지/보수에 더 많은 고려사항과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종류[편집]

주교좌 성당(대성당, cathedral)[편집]

성당은 그 지위에 따라서 보통 성당과 주교좌 성당(cathedral)으로 나뉜다. 주교좌 성당은 안에 그 지역 신앙 공동체의 모든 책임을 지는 주교가 앉는 주교좌가 있는 성당을 말한다. 이를 테면 명동성당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인데, 자세히 보면 제대 옆쪽에 의자 비슷하게 생긴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주교좌. 주교좌 성당은 대성당(Cathedral<영>, Dom<독>)이라고도 불린다.

명동성당을 예로 들자면 정식 명칭은 <서울대교구 주교좌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성당>이지만 보통 명동(대)성당이라고 불린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는 명동대성당의 주보성인을 일컫는다. 이름이 길다 보니 명동대성당 측에서도 그냥 명동대성당이라고 한다.

서울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도 굳이 말하자면 '성공회 서울 성모 마리아와 성 니콜라 주교좌 성당'이지만, 줄여서 성공회 서울대성당, 또는 그냥 서울대성당이라고 부른다.

주교좌 성당이라고 모두 대성당은 아니다. 가톨릭 교회의 교계제도에는 교구보다 큰 관구라는 조직이 있어 관구장을 겸하는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은 대성당으로 불리며, 일반 주교좌 성당은 그냥 성당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명동성당의 경우 그 규모가 어마어마 하지만 그 외의 주교좌 성당은 그 교구 내에서 세워진지 가장 오래된 성당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크기로는 이후에 세워진 성당보다 작은 경우도 많다. 즉 대짜가 붙나 안 붙느냐 하는 것과 건물 크기는 거의 무관하다.

한 교구에 주교좌성당이 둘 이상일 경우 교황청에 승인을 받아 공동 주교좌성당으로 지정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 계산성당 하나였지만 교구의 규모에 비해 성당이 협소하여 2016년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범어성당을 범어 대성당으로 증축하고 교황청으로부터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공동주교좌성당으로 인정을 받았다.

경당(소성당, chapel)[편집]

주교좌 성당(cathedral)과 성당(church) 보다 작은 것으로 경당(소성당, chapel)이 있다. Chapel은 원래 투르의 성 마르티노의 망토를 뜻하는 cappa(cappella)의 축소형에서 파생된 명칭이며, 경당은 교회의 측면 회랑 끝이나 회랑 주위에 만들어져 제대를 갖춘 작은 압시드를 가리키기도 한다. 교황이나 주교 등 고위 성직자가 사용하거나 또는 각 가정이나 병원·학교·수도원 등에 있는 작은 성당을 경당이라고 한다. 독립 건물일 수도 있고, 큰 건물의 일부이거나 아예 방 하나 둘 규모로 작을 수도 있다. 가톨릭계 병원이나 시설에 있는 환지와 보호자, 직원을 위한 곳이 그 예. 미사 담당 신부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 시설에서 행정 교육 상담 등 다른 임무를 하며 미사만 집전하는 것이지 경당 전담이 아니다. (전담 사제가 있으면 경당이 아니라 성당으로 승격된다.) 구역 본당 신부나 수도원 소속 신부, 가까운 데 사는 은퇴한 신부가 주일에 한해 와서 집전을 한다. 큰 스키장이나 리조트 등에서는 관할 지역 성당이 주말마다 방을 빌려 투숙객을 위한 임시 경당으로 쓰기도 한다.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장소로 유명한 시스티나 경당(Sistine Chapel)이 대표적인 예이다. 문헌에 따라 성당 또는 소성당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있으나, 경당(Chapel)이 정확한 표기이다.

예전 문서에서는 크기를 언급하였는데, 틀렸다고는 할 수 없어도 오해의 소지는 있다. 예외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시스티나 경당의 경우 크기가 일반 성당 못지 않다. 단지 크기만을 기준으로 할 경우 소성당과 경당의 구분이 모호해지는데, 용도(대상자)로 구분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일반 본당에서 평일 미사 봉헌 등에 주로 사용하는 소성당은 불특정 신자 일반이 모두 사용하는 곳이며, 경당은 앞의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고위 성직자 또는 각 가정, 병원·학교·수도원 등에 특정인이 사용하는 것을 상정한 성당으로 이해하면 크게 틀림이 없을 것이다. 대략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시설에 전담 사제와 감실, 그리고 그 감실에 성체가 모셔져 있으면 성당, 감실만 있으면 경당, 감실도 없으면 공소가 된다.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공묘도 성당이라고 한다. 한글/한자 모두 똑같다. 현재 한국에서는 공묘의 뜻으로는 거의 쓰지 않지만, 이 때문에 일본으로 여행간 관광객들이 일본의 공묘인 유시마 성당을 보고 종종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가치[편집]

성당은 중, 근세 유럽의 건축설계기술의 집대성으로, 굉장한 예술, 건축, 역사적 가치를 가진다.

현대와는 달리 과거 중세 유럽에는 아무런 음향기기가 없었다. 당연히 그리스도교에서는 성가를 위주로 진행되는 미사를 봉헌하는데 애로사항이 꽃폈다. 그렇지만 안 할 수도 없고, 미사를 하자니 음악 버프가 너무나도 딸린다. 마이크도, 스피커도 없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 어떻게 미사를 드렸을까? 답은 성당의 건축구조 자체에 있다.

위로 높이 솟은 반원형의 천장은 소리를 다시 반사시켜 준다. 기둥들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소리의 울림을 조절해 주고, 빈틈없게 꼼꼼히 만들어진 벽 또한 모든 소리를 되돌려 줬다. 소리는 결코 훼손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크게 울렸다. 이는 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성당 모든 곳이 그러하다.

예술적가치[편집]

물론 성당은 음향적인 실용성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측면에서 또한 높이 평가된다. 대표적으로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고, 하늘을 향해 높이 뻗은 여러 가지 양식의 첨탑, 성당 곳곳의 석조장식물, 벽에 그려진 명화 등등… 모든 게 다 천국을 직간접적으로나마 묘사한 것이다. 이 묘사를 위해 미켈란젤로가 교황의 명령을 받아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에서 후에 세계 3대 성화(聖畵)라 불리게 되는 천지창조를 그리게 된 건 유명한 일화다.

한국의 경우 천주교가 전래된 지 239년 정도에 불과하고 그나마 앞의 100여년 동안은 박해기간으로 건축은커녕 산간벽지에서 숨어 살아야 했던 시기였던 만큼, 교회 건축물이 만들어진 시기는 첫 성당으로 1893년 4월 23일 축성된 약현성당(서울 중구 중림동 성당)을 시작으로 대개 대한제국 시대와 일제강점기 이후이다. 이 시기에 지어진 교회 건축물 가운데 문화재청에 의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모두 35곳으로 그 세부 내용을 보면 사적 7곳, 시도 유형문화재 6곳, 시도 기념물 14곳, 시도 문화재 자료 8곳이다.

스테인드 글라스[편집]

한국의 동네 교회 벽에 붙어있는 셀로판 테이프 따위를 생각하면 안 된다. 유럽의 제대로 된 성당에 설치된 스테인드 글라스는 일자무식이던 농민들을 위해 성경을 현실에 구현한 것으로서, 당시의 첨단 기술, 미학의 결합체라고도 할 수 있다. 유럽의 고딕 성당을 가능하면 날이 밝을 때 관람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스테인드 글라스다. 햇빛이 비치는 스테인드 글라스는 관람자에게 하느님의 계시를 받는다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스테인드 글라스를 제작하는 곳으로는 성 베네딕토회 왜관수도원이 있다. 유리를 만들 때 특수한 원료를 넣어서 색을 입힌 다음에 그걸 그림에 맞게 조각조각 잘라서 나눠 붙이는 식으로 제작한다.

외벽 및 기둥[편집]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유럽의 제대로 건축된 성당/교회는 마치 큰 쇼핑몰 짓듯이 수년 안에 후다닥 짓는 게 아니라 수십, 수백년에 걸쳐서 인부들이 정말 신앙심을 담아서 짓기 때문에 빈틈을 남겨두지 않는다.

천국에 닿고 싶은 소망으로 하늘을 향해 치솟은 고딕 성당의 첨탑은 위로 올라가며 계속 외벽, 기둥의 모습이 변한다. 당시에 기계 없이 손으로 벽돌 하나 하나를 만들었음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고딕 성당의 외벽, 기둥, 천장, 그 모든 것을 이루는 돌덩어리 하나 하나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예술 작품이라고 볼 수가 있다.

성당의 건축양식[편집]

로마네스크 양식 (10~12세기): 고딕 이전 양식 또는 롬바르드 양식이라고도 한다. 고대 말기 이후 유럽에서 처음 등장한 웅장한 건축양식이다. 대표적인 특징으로 반원형 아치인 돔을 들 수 있다. 요새처럼 두껍게 만든 벽(특히 서쪽 측벽), 작은 창문, 입방체 모양의 기둥 머리도 전형적인 특징이다. 로마네스크 시대 초기에는 천장을 우물 반자처럼 평평한 격자 형태로 만들었으나 훗날 교차 돔으로 바뀌어 넓고 큰 공간 위에 반원형 천장을 씌웠다. 조각과 그림들은 대담하고 강렬한 모티브를 보인다. 마인츠, 슈파이어, 보름스에 있는 대성당이 로마네스크 건축물로 유명하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로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들 수 있다.

고딕 양식(12~16세기): 화려한 세부 장식과 신앙적인 분위기, 수직선의 강조, 금세종 장식이 두드러진 건축 양식이다. 형태상으로는 반원형 아치, 입방체형 기둥머리, 원형 아치, 치아 형태나 입방체형 프리즈가 특징이다. 벽은 보조 기둥이나 장식용 아케이드로 구획했다. 뾰족아치, 기둥, 버팀목, 교차 리브 돔, 원형 장미창과 납유리창을 통해 빛이 흘러들게 했다. 명동대성당이 한국의 대표적인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르네상스 양식(14~16세기):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미술과 학문이 부활한 시기이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건축은 명확하게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균형미가 조화를 이룬다. 건축의 평면도는 단순하고 이상적인 가하학적 형태(정방형, 원형)로 설계되었다. 기둥, 붙임기둥, 기둥머리, 박공 등은 그리스 고전 양식에서 취한 것들이다. 수평면을 강조했고, 고대 양식을 모방하여 기둥 몸체에 홈을 파거나 매끄럽게 만들었으며, 주랑 대신 아케이드를 설치했다. 창에 붙이는 격자인 트레이서리와 아라베스크를 화려하게 장식했고 후기에 와서는 소용돌이 장식과 쇠장식 등으로 치장했다.

마니에리스모(16세기 중기~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과장에서부터 시작하여 극단적인 부자연스러움과 기교로 치우쳤다. 인위적이고 장식적이며 긴장감이 팽배한 양식이 주도했다.

바로크 양식(17세기): 가톨릭의 자극으로 미술과 건축의 다양한 형식을 통합하여 사실적이고 극적인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풍부한 곡선, 동적인 평면이나 정면, 창틀과 코니스(돌림띠)에서 이런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스터코를 많이 사용했고 벌거벗은 어린 소년상이 많다. 르네상스 양식에 운동감, 형태의 과장, 화려함을 보태었다. 건축의 나머지 부분이 중심을 향해 통일되고 십자 교차부 위에 천장을 씌웠다. 공간이 넓어지고 측랑에 경당을 설치하여 횡면을 강조했다. 스터코와 목재를 사용한 경쾌한 모양의 풍부한 장식은 이후 로코코 양식으로 발전했다.

로코코 양식(18세기 중기~후기): 극단적인 장식과 경쾌한 양식이 특징이다. 루이 15세의 궁전에서 볼 수 있다.

고전주의 양식(1750-1850): 바로크와 로코코에 대한 반발로 고대 그리스의 엄격한 형식미로 돌아가려는 양식이다. 성당은 축 시스템의 중심부가 되었고 동쪽을 향해 짓던 전통에서 벗어났다. 이로써 성당 탑과 돔이 강조되었다. 고전주의 형식의 건축은 밝고 날렵하며 날카롭게 다듬어진 인상을 준다.

성당의 내부구조[편집]

서방교회[편집]

전세계적으로 서방교회 성당의 내부구조는 거의 다 비슷하지만 한국 천주교의 성당들을 예시로 들었다.

성수반[편집]

성수반

성당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문 왼쪽 혹은 오른쪽, 혹은 양옆에 위치한 물이 담긴 그릇.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오른손을 모아 성호를 긋고 "주님, 이 성수로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또는 "주님, 이 성수로 저희 죄를 씻어 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라고 기도한다. 성당에 들어갈 때 성수를 찍는 것은 성당에 들어가기에 앞서 세례성사를 기억하며 거룩한 미사 성제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것, 생각과 원의, 탐욕과 근심, 미움, 호기심 등을 모두 떨쳐 버리고 깨끗하게 되기를 바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제단[편집]

제단

성당에 들어가서 정면을 바라보면 제일 먼저 보이는 탁자. 제단(Altar)은 말 그대로 '희생제사'를 재현하는 미사를 위한 자리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 목요일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하면서 성찬례를 거행했던 것을 재현하는 장소이다. 실제로 미사 중에 신부님이 빵과 포도주에 십자성호를 그으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하는 거룩한 변화의 순간을 통하여 모든 인류의 죄를 안고 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다시 재현하고 기억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감실[편집]

감실

제단 뒤에 붙어있는 작은 함을 말하며, 이 안에는 미사 중 영성체를 마치고 남은 성체를 보관한다. 때문에 제대와 함께 성당 내에서 매우 신성하게 취급하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성당마다 감실의 모양과 디자인이 제각각인 것도 특정적인 부분. 한국에선 성체가 모셔져 있을 때는 옆에 설치된 빨간색 전등을 켜서 눈에 잘 띄게 한다.

이곳은 구약시대 성전의 '지성소' 개념의 신성한 장소이므로 사제나 수도자나 허가받은 평신도 성당 봉사자 외의 다른 평범한 사람이 멋대로 제대 계단에 올라가거나 감실을 만져서는 안된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감실은 아무나 함부로 여닫을 수 없게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게 일반적이며, 열쇠는 그 성당 신부들이 직접 관리한다.

독서대[편집]

독서대

미사 중 말씀 전례 때 독서와 복음을 낭독하고, 미사 중에 부제나 사제가 강론하는 곳이다. 과거에는 독서대와 강론대가 분리되어 있고, 복음은 제대 앞에서 서서 선포하였으나, 천주교는 전례개혁 이후 통일되었다. 천주교의 경우 완전히 통일되어 사라지거나 안 쓰는 공간으로 남아있지만, 성공회의 경우 여전히 독서대와 강론대를 별도로 설치하고, 복음은 제대 앞에서 선포한다.

고해소[편집]

고해소

고해성사를 보기 위한 공간으로 보통은 성당 뒤편(입구 가까운 쪽)에 마련되어 있다. 대부분의 성당에서 미사 시작 20분 내지는 30분 전부터[35]사제가 고해성사를 집전하기 시작한다.

고해소 사제석에 불이 켜져 있고 신자 측 고해소에 불이 꺼져 있다면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성사를 보면 되고, 불이 켜져 있다면 차례를 지켜서 기다리다가 앞 사람이 고해를 마치고 나오면 들어가서 성사를 보면 된다.

정교회[편집]

정교회식 성당 건축은 기본적으로 7세기 이전에는 가톨릭 교회와 동일한 바실리카 양식을 사용해왔으나, 서유럽에서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 등으로 건축 양식이 바뀌어 나가면서 그 건축양상도 변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톨릭과 정교회의 성당은 닮은 점이 훨씬 더 많다. 정교회의 성당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배랑: 그리스어로는 나르씨카스(ο Νάρθηκας)라고 불리는 부분으로 성당에 들어서면 나오는 현관과 같은 개념의 공간이다. 오래된 정교회 성당을 보면 이 배랑 부분이 상당히 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과거에는 대입당을 행하기 전에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신자들을 내보냈기 때문이다. 천주교에서도 세례성사를 받은 사람만이 성체를 영할 수 있으며 트리엔트 미사에도 말씀의 전례가 끝나면 비신자들을 돌려보냈다. 현대에 들어와선 거의 사라진 풍습이라 현대에 지어지는 정교회 성당들은 배랑을 매우 간소화해서 짓는다.

본당: 배랑을 지나면 나오는 큰 공간이다. 천장 한복판에는 만물의 창조자 그리스도 이콘이 그려진 돔이 있고 그 밑에는 그리스어로 호로스(ο Χόρος)라고 부르는 큰 원형의 샹들리에가 있다. 원래 정교회 성당에서는 서서 성찬예배를 드리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의자가 없으나, 한국의 정교회 성당에는 그리스 정교회의 영향을 받아 의자가 있다. 하지만 러시아 등 동구권의 성당들에는 여전히 의자가 없으며, 최소 2시간씩 하는 예배시간 내내 서 있어야 한다.

지성소: 정교회 성당에서 가장 특색 있는 부분이다. 이곳은 이코노스타시(η Εικονοστάση)라는 이콘으로 장식된 벽으로 막혀 있으며, 평상시에는 닫혀 있다가 성찬예배를 할 때만 열리는 곳으로, 구약성경에서 언급하는 예루살렘 성전의 구조를 재현한 것이다. 이곳에 제단과 감실이 있으며, 사제와 부제, 복사만 출입한다.

한국의 유명한 성당[편집]

명동성당[편집]

명동성당

명동성당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상제 사항은 위 표와 같다. 건축 양식은 네오 고딕을 따르고 있다.

주보성인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무염시태, 無染始胎)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당의 정식 명칭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성당' 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이고, 줄여서 '명동대성당', '명동성당'으로 부른다. 1898년(광무 2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유적지로 사적 제258호에 지정되어 있다. 중림동 약현성당, 답동성당, 계산성당, 전동성당, 공세리성당 등과 더불어 구한말에 지어진 대표적 고딕 양식 성당으로 분류된다.[3]

답동성당[편집]

답동성당

답동성당은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50번길 2 (답동)에 자리잡은 천주교 인천교구 유일의 주교좌 성당이다. 정식 명칭은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좌 답동 성 바오로 대성당이고, 줄여서 답동성당(畓洞聖堂)이라고 부른다. 주보성인은 '성 바오로'이다.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가톨릭 건축물로 기독교대한감리회 내리교회, 성공회 서울교구 내동성당과 더불어 인천에서 유서 깊은 종교시설로 유명하다. 실제로 이 세 교회는 인천을 대표하는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교회로써 사이가 돈독한 편이고 정기적으로 연합음악회 등을 개최하는 등 교회일치운동에 모범을 보이는 곳이다. 성당 건물은 전체적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1981년 사적 제287호로 지정됐다.

건축물로서도 역사적 가치가 깊지만, 천주교 인천교구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현재의 성전 건물이 건축된 것은 1897년이지만 현 답동본당의 전신인 제물포본당 자체가 설립된 것은 조선과 프랑스 사이에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가톨릭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후 3년이 지난 1889년이다. 인천지역 모든 가톨릭 성당의 모(母)본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천교구 연혁을 보면 현재 본당으로 승격된 부평공소(현 인천 부평2동성당)나 소사공소(현 부천 소사성당) 등 인천시내 여러 공소가 원래 답동성당의 산하 공소였다. 그러다가 공소가 있던 지역의 신자 수가 늘어나면서 답동성당에서 분가해 부평성당과 소사성당을 설립하는 등 본당이 널리 퍼지면서 오늘에 이른다.

인천 지역의 가톨릭 교세가 확장되고 답동성당이 낡고 좁다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현재의 답동성당으로는 교세를 수용하기 모자라며 주교좌성당이 더 필요하다"는 비판 아닌 비판이 있다. 실제로 제2대 인천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가 생전에 "답동성당이 협소함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4]

다른 나라의 유명한 성당[편집]

장충성당[편집]

장충성당

장충성당은 북한의 종교시설이고 평양시 선교구역 장충1동에 있다.

1988년 건립된 가톨릭 성당. 1934년 선교리 성당이 건축된 자리이나 1949년 김일성 정권이 폭파시킨후 방치 되었다가 1989년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앞두고 급조해서 건축한 현재 북한에 존재하는 유일한 가톨릭 성당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천주교의 입장에 의하여 한국인 신부의 장충성당에서의 미사 집전은 불허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로마 교황청도 북한의 장충성당을 공식적인 성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장충성당 초대 신도회장은 박경수 바오로였고 차성근 율리오를 거쳐 2019년 현재 신도회장은 김철웅이다. 상주 사제가 없기 때문에 외국인 사제가 올 때를 제외한 주일에는 성당 신도회장과 부회장의 주관으로 공소예절을 진행한다. 봉수교회, 칠골교회와 마찬가지로 평양 주재 외국인들이 거의 매주 방문한다.[5]

쾰른 대성당[편집]

쾰른 대성당

쾰른 대성당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쾰른 시내에 있는 가톨릭 성당이다. 쾰른 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찌를듯한 첨탑이 인상적인, 독일 고딕 양식 성당의 대표작이자 걸작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주보성인은 성 베드로와 성모 마리아이다.

1248년에 짓기 시작해서 1880년에 완공된 고딕 양식의 건물. 이렇게 보면 무려 600년 동안 지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1560년에 공사가 중단되었고, 282년이 흐른 1842년에야 다시 재개되어 1880년에 겨우 완성했다. 그러므로 실제 공사 기간은 350년이다. 하여튼 공사 기간이나 중단 기간이나 둘다 대단히 길었다. 원체 중단 기간이 길었다보니 쾰른 선제후국 시절 쾰른 대주교들은 이곳이 아닌 본 대성당에서 미사를 지내는 일이 더 많았다.

중세 시대에는 건축을 위한 기중기가 몇백 년 동안 방치되어서 도시의 풍경으로 자리잡기도 했다.[6]

노트르담 대성당[편집]

노트르담 대성당

프랑스 파리의 시테 섬 동쪽에 있는 가톨릭 성당으로, 파리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14세기에 완공된 프랑스 고딕 양식 건축물의 대표작이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과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노틀담의 꼽추)의 무대가 된 것 등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현대에도 파리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다만 단독등재는 아니고, 파리의 센 강변이라 하여 센 강 일대의 자연환경 및 그 주변 문화유산인 에펠 탑, 루브르 박물관, 앵발리드 등과 묶여서 지정되었다.

프랑스어로 노트르담(Notre-Dame)은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단어다. 그렇기에 프랑스에는 성모 마리아를 주보성인으로 하는 성당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규모가 작은 성당만이 아니라 샤르트르 대성당, 아미앵 대성당, 랭스 대성당, 스트라스부르 대성당과 같은 광대한 규모의 성당들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으며, 참고로 샤르트르 대성당의 정식 명칭은 '샤르트르의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Chartres)'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이라고 하면 파리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칭하기에 이 문서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7]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교회〉, 《네이버지식백과》
  2. 성당〉, 《위키백과》
  3. 명동성당〉, 《나무위키》
  4. 답동성당〉, 《나무위키》
  5. 장충성당〉, 《나무위키》
  6. 쾰른 대성당〉, 《나무위키》
  7. 노트르담 대성당〉,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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