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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입자물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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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web)을 발명한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1954년에 스위스에 설립된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를 말한다. 주로 CERN(세른)이라고 하는데, "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의 약자이다. 영어로는 "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r Research"라고 한다. 스위스 제네바프랑스 국경에 걸쳐 있다. 이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영국 출신의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는 여러 연구원들 간에 쉽고 빠르게 자료를 공유할 목적으로 1989년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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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편집]

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순수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위해 유럽 국가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가속기 연구소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입자물리가속기연구소로, 1954년 9월 29일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기초과학(순수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위해 위원회를 구성해 설립하였다. 설립 이후 자연의 가장 근본적인 호기심 탐구를 위한 기초과학 연구는 물론, 각종 국제적인 대형 연구개발사업을 펼쳐왔다. 또 미래 기술 발전을 위한 입자물리가속기 연구와 젊은 과학자와 기술자 양성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 1989년에는 월드와이드웹(WWW)을 개발해 전 세계 인터넷 시대의 문을 열었고, 2000년 이후에는 소립자 힉스입자와 초대칭 입자의 발견을 목적으로 국제 공동 연구 실험을 하고 있다. 비회원국인 한국도 초청을 받지는 않았지만, 대형 강입자충돌형가속기(LHC)의 검출기 제작을 맡고 있다. 이 연구에만 전 세계 160개 기관에서 2,000명 이상의 과학자가 참여하고 있다. 또 6,500여 명의 과학자가 연구소 시설을 이용하고, 500여 개 대학과 80개 국 이상이 직접·간접적으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연구소는 스위스 제네바 서쪽과 프랑스 국경의 두 나라에 걸쳐 있다.[1]

역사[편집]

1949년 12월 프랑스 원자력 고등 위원회의 자문의원이었던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여러 참가국 개개의 상황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학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실험실 또는 연구소가 생기면, 국가적인 시설 이상의 자원에 힘입어 규모와 비용 면에서 개별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는 과업을 수행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1951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회의에서 연구소를 설립하는 평의회 설립에 대한 결의안이 채택되었고, 두 달 후 11개 국이 핵 연구를 위한 유럽 평의회(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의 설립 동의안에 서명해 평의회와 세른이란 이름이 탄생한다. 1953년 7월에 생긴 세른 협의회에서 12개 창립국의 승인을 받게 되고, 1954년 9월 29일 마침내 연구소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Organisation Européenne pour la Recherche Nucléaire)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범하였으며, 평의회는 해산되었다. 그리고 세른이란 이름은 계속 남아서 연구소의 이름이 된다. 한편 연구소의 부지는 1952년 10월 평의회에서 스위스의 제네바로 결정되었고, 1953년 6월 제네바 캉통의 투표에서 최종적으로 비준되었다. 1954년 5월 17일 연구소의 공사가 시작되었다.[2]

회원국[편집]

세른의 회원국은 특별한 의무와 특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세른 프로그램의 자본 및 운영비용에 기여하고 이사회에 대표되어 세른과 그 활동에 관한 모든 중요한 결정을 담당한다. 현재 세른에는 오스트리아, 벨기에, 불가리아, 체코,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그리스, 헝가리, 이스라엘,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루마니아,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영국의 23개 회원국이 있다.

키프로스, 에스토니아, 슬로베니아는 회원가입 전 단계의 준회원이며, 브라질, 크로아티아, 인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파키스탄, 튀르키예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로 준회원국이다. 그 밖에 미국일본은 비회원국이지만 관찰자 자격을 보유하고 있어 연구에 참여한다. 마찬가지로 유럽연합유네스코 또한 관찰자 자격을 보유한다. 러시아의 관찰자 지위는 2022년 3월 8일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정지되었으며, 러시아의 핵물리학 연구소인 합동원자핵연구소(JINR) 또한 2022년 3월 25일 옵저버 지위를 정지당했다.[3]

성과[편집]

월드와이드웹[편집]

세른은 물리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는데, 월드와이드웹(WWW)의 발명이 바로 그것이다. 월드와이드웹은 세른의 연구원이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에 의해 개발됐다. 그는 1989년 자신이 구상했던 월드와이드웹 개념을 도입해 최초로 웹페이지를 작성했다. 당시 전 세계는 입자 가속기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컴퓨터운영체제로 일을 하다 보니 소통이 되지 않는 불편함을 겪고 있었다. 이에 팀 버너스 리는 컴퓨터와 운영체제에 상관없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제안서 곳곳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연결했다. 이는 정보의 소유권은 소유자에게 그대로 둔 채 활용도만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언제 어디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네이버다음과 같은 포털 사이트의 화면을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월드와이드웹 기술 덕분이다. 웹이 없던 시절에는 일반적으로 PC 통신이라고 불리던 전화선(PSTN)과 전화 모뎀을 활용해 인터넷을 사용했다. 대표 서비스로는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이 있었다. 주로 0141x와 같은 번호로 전화를 걸어 사용했던 이 서비스의 속도는 2,400bps~14,400bps였다. 대략 1년 조금 넘는 수준인 2017년 기준 127.45Mbps 인터넷과 비교했을 때 당시 인터넷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불과 몇 초면 영화 한 편을 내려 받을 수 있는 5G 시대를 살고 있지만, 당시에는 이미지 파일 하나를 다운로드 받는데도 많은 인내심이 요구되곤 했다. 또한, 인터넷 통신료가 전화요금과 동일했기 때문에 시외전화번호를 이용한 경우 수십만 원의 요금이 나오기도 했다.

월드와이드웹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하이퍼 텍스트(Hyper Text) 기능이다. 링크를 클릭하여 다른 페이지와 연결되는 개념을 말한다. 즉, 웹 브라우저를 통해 텍스트, 비디오, 이미지, 멀티미디어를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지금은 너무 익숙한 기술이지만 당시에는 혁신적이었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우 편리하게 사용되고 있다.[4]

가가멜 프로젝트[편집]

가가멜 프로젝트는 전기적으로 중성인 약한 상호작용을 의미하는 중성류의 증거를 발견하기 위해 발족한 프로젝트이다. 전자기적인 상호 작용으로 상대적으로 작은 중성류의 효과가 검출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자기 상호 작용을 하지 않는 중성미자를 이용하여 중성류의 효과만을 볼 수 있는 실험을 설계하여야 했다. 1963년 시에나 콘퍼런스 직후 많은 양의 중성미자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중성미자 실험이 계획되었고, 195년 세른과 프랑스 원자력 위원회사이에 이루어진 협약을 바탕으로 1965년 12월 가가멜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대형 거품상자의 제작이 계획되었다.

가가멜 거품 상자는 프랑스의 새클레이(Saclay) 실험실에서 제작되었다. 가가멜은 지름 1.8미터, 길이 4.8미터, 무게 1,000톤이 넘는 원통 속에 18톤의 액체 프레온을 채워 넣었고, 1970년 PS의 중성미자 빔이 나오는 CERN의 남동쪽 지역에 설치되었다. 가가멜의 중성류 연구는 1972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뮤온 중성미자가 중성류를 통해 원자 내부 전자와 탄성 충돌하고, 이 결과로 튀어나온 전자가 발견되었다. 이 발견은 1972년 9월부터 1973년 3월 사이에 일어났으며, 충분한 검토 후, 중성류의 발견은 거의 확정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HPWF 그룹에서 추가적인 분석 결과 신호가 사라졌다고 발표하면서 가가멜 프로젝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가가멜 그룹의 멤버들은 쏟아지는 질문에 잘 버텨나갔다. 1년 후 1974년 6월 런던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는 가가멜 그룹이 이전의 두 배의 데이터를 가지고 발표하였고, HPWF 그룹도 자신들의 실수를 설명하였으며, 페르미 연구소와 아르곤 국립 연구소의 추가적 확인으로 중성류의 존재가 완전하게 확인되었다.[5]

W와 Z보손[편집]

세른은 입자물리 분야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업적들을 남겼고 지금도 계속 남기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 업적을 꼽으라고 하면 힉스 보존의 발견과 더불어 W, Z 보존의 발견을 꼽을 수 있다. W, Z 보존은 약력을 매개하는 입자로, 질량이 각각 80.4 GeV, 91.2 GeV에 이르는 매우 무거운 입자들이다. 이 무시무시한 질량은 사실 약력이 왜 '약한가'에 대한 결정적인 이유이다. 반응 중간에 생성되는 입자의 질량이 반응 전체의 총 에너지에서 많이 벗어나 있으면 벗어나 있을 수록 그 반응이 일어날 확률, 혹은 그 반응의 세기가 급격히 작아지는데, 약력 반응인 원자핵의 베타 붕괴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이들 보존들의 질량에 비하면 턱없이 작기 때문에 약력이 약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만약 W, Z 보존의 질량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한 점에 집중시키면 약한 상호작용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 질량 주변에서만 세기가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것은 어떤 피크(peak) 혹은 공명(resonance)이 생긴다는 것인데, 보통 이런 피크를 입자물리학자들은 해당 입자가 생긴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그러한 피크를 봤다는 것은 그 피크에 해당하는 어떤 입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게 W/Z 보존을 찾은 것이다.

특히 W 보존과 Z 보존의 발견은 입자 발견 외에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데, 바로 표준 모형의 결정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표준 모형, 그 중에서도 양-밀스 이론(Yang–Mills theory)과 힉스 매커니즘이 맞다면 약력의 매개 입자가 아주 무거운 입자이어야 하며 W/Z 보존이 바로 그 예견된 입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입자들이 발견됐기 때문에 힉스 입자 발견이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 입자들은 LHC의 할아버지 격인 SPS에서 발견되었다. 카를로 루비아(Carlo Rubbia)와 시몬 반 데르 미어(Simon van der Meer)에 의하여 실험이 진행되어 1983년에 둘 다 몇 달을 간격으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듬 해에 이 두 사람에게 노벨 물리학상이 돌아갔다. 노벨상이 보통 오랫동안 진행이 된 실험에 돌아간다는 걸 생각하면 꽤나 이례적으로, 그만큼 이 발견이 엄청나다는 것을 의미한다.[6]

힉스 입자[편집]

2012년 7월 4일 세계 과학계가 뜨거운 흥분에 휩싸였다. 세른의 거대강입자충돌기(LHC)에서 드디어 힉스 입자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표준 모형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로 여겨지던 힉스 입자를 발견한 것이다.[7]

역사상 물질의 근원에 대한 고찰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원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이라고 주장했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 헤라클리에토스는 '불'이라고 했고, 엠페도클레스는 '물, 공기, 불, 흙'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물질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로 이뤄졌다"며 원자설을 내놨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설'은 2000년이 지난 1803년 돌턴에 의해 부활했다. 하지만 원자설은 부활한 지 96년 만인 1899년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에 의해 깨진다. 러더퍼드가 얇은 금박지에 높은 에너지를 가진 알파입자를 충동시키는 실험을 통해 '원자 내부에 무엇인가 단단한 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원자 안의 단단한 물질'은 바로 원자핵이다. 더불어 원자핵 속에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양성자와 중성자 속에 쿼크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쿼크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기본입자다. 과학자들은 이 쿼크보다도 더 작은 입자가 있다고 생각, 이를 쪼개기 위해 노력한다. 입자들을 가속시켜 충동시키는 실험을 위해, 점점 더 빨리 가속할 수 있는 그리고 더 강력한 힘을 얻기 위해 가속기는 규모와 성능이 발전했다. 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세상 존재에 대한 답이 표준모형(Standard Modul)이다. 물질 구성 기본입자 12개, 힘 매개 기본입자 4개 등 16개 입자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물리학자 피터 힉스(Peter Higgs)는 1964년 빅뱅 후 기본입자에 질량을 부여하고 사라졌다는 힉스입자를 주장한다. 결국 힉스입자는 사라진 입자·신의 입자로 불렸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시도가 줄을 이었다. 2008년 9월 10일 세른이 힉스입자를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를 위한 준비에만 14년, 100억달러(약 11조)이 투입됐다. 우주탄생 직후 1조분의 1초 상태를 재현하가 위해 지하 100m 터널에 둘레 27㎞에 달하는 대형 강입자 충돌기를 건설한 것이다. 이 기기를 통해 광속으로 날아가는 양성자를 서로 충돌시켜 충돌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입자를 찾는 실험을 계속했다. 그 결과 2012년 7월 4일 '힉스입자를 99.999994% 확률로 발견했다'고 발표했고, 이후 추가 실험과 데이터 분석을 거쳐 2013년 3월 14일 힉스입자 발견 소식을 전 세계에 공포했다. 더 나아가 힉스입장의 물리적 특성까지 규명됐다. 10월 4일 도쿄대와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 등이 참여한 국제연구팀이 힉스 입자가 붕괴해 다른 소립자로 변하는 패턴을 조사한 결과 힉스입자 존재를 확정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힉스입자의 질량은 양자(수소 원자핵)의 134배인 125.5GeV(기가전자볼트)이며, 힉스입자의 스핀(소립자의 자전) 값은 당초 힉스가 제안한 이론대로 0이다. 이날의 발표 덕에 피터 힉스 에든버러대학 교수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힉스입자의 물리적 특성이 규명되기까지는 49년이 걸렸지만, 힉스의 노벨상 수상은 불과 7일만에 결정났다.[8]

세른의 힉스입자 발견 선언은 그동안 채워온 원자를 구성하는 표준모형(Standard model) 구성입자 중 12개에 질량을 부여한 입자를 과학자들의 예상대로 찾아냈다는 의미다.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를 설명하는 표준모형은 3개의 커다란 범주, 즉 무거운 입자인 강입자(hadron·하드론)를 구성하는 더 작은 입자인 쿼크 6개, 가벼운 입자인 경입자(렙톤)6개, 그리고 이들 입자가 밀고 당기면서 결합할 수 있게 해 준 매개 입자인 글루온, w보손, z보손과 광자 등 16개 입자로 구성됐다. 여기서 쿼크입자와 렙톤입자 12개에는 질량이 없었다. 그래서 여기에 질량을 부여한 힉스입자를 찾는 것은 이들에게 질량을 부여하고 입자에 우주의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LHC 과학자들은 표준모형 이론을 완성할 궁극의 입자인 힉스입자를 발견하고자 했고 이번에 그 존재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우주의 모든 물질에 질량을 부여한 137억년 전, 즉 신이 “빛이 있으라”했을 그 시점, 즉 우주가 형성된 빅뱅시점의 입자를 찾았다는 점에서 말그대로 신의 입자라 할 수 있다.[9]

각주[편집]

  1. 유럽입자물리연구소 ( 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r Research , ─粒子物理硏究所 )〉, 《두산백과》
  2.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 《위키백과》
  3. Our Member States〉, 《CERN Accelerating science》
  4.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세계를 하나로 묶는 연결의 시작〉, 《ETRI웹진》, 2019-04
  5. 블핵홀, 〈'신의 입자'를 정명해 낸 CERN은?〉, 《티스토리》, 2013-11-05
  6. CERN〉, 《나무위키》
  7. 이창욱 기자, 〈(프리미엄리포트) 10년간 힉스 입자 1000만개의 외침 “표준모형이 옳다”〉, 《동아사이언스》, 2022-12-17
  8. 최동진 기자, 〈(생활속 과학이야기)신의 입자 '힉스'를 밝히다〉, 《헬로디디닷컴》, 2014-06-30
  9. 이재구 기자, 〈도대체 힉스입자가 뭐야?〉, 《지디넷코리아》, 2012-07-07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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