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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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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리투아니아어: Lietuva, 영어: Lithuania)는 리투아니아 공화국(리투아니아어: Lietuvos Respublika)의 약칭이며 북유럽에 있는 나라이다. 동쪽과 남쪽은 벨라루스, 서쪽은 발트 해, 남서쪽은 러시아(월경지 칼리닌그라드주)와 폴란드, 북쪽은 라트비아에 닿아 있다. 발트 3국 국가 중에서는 인구와 영토가 가장 많고 넓다.

개요[편집]

리투아니아 국기
  • 수도: 빌뉴스
  • 면적: 65,300 km2
  • 인구: 2,870,000명 (2016년)
  • 공용어: 리투아니아어
  • 정치체제: 공화제
  • 대통령: 기타나스 나우세다(리투아니아어: Gitanas Nausėda)[1]

지도[편집]

역사[편집]

리투아니아라는 이름은 1009년의 라틴 연대기 Annales Quedinburgenses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1253년 7월 6일 민다우가스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처음으로 통일 국가를 수립하였다.

1386년 요가일라(Jogaila)가 폴란드의 여왕 야드비가와 결혼하면서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는 동군연합(同君聯合)을 형성하게 된다. 리투아니아-폴란드 연합군은 1410년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튜턴 기사단을 무찌름으로써 독일인들의 동방 팽창을 저지하였고, 리투아니아는 이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동일한 운명을 걷게 되어(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폴란드 분할 결과 1795년 리투아니아 지역은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고 말았다. 리투아니아인들은 1795년, 1830년, 1863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리투아니아는 1918년 2월 독립을 선언하였다. 애초에는 뷔르템베르크 공국 출신의 군주를 영입해 군주제로 독립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러시아 혁명과 독일 제국의 패망으로 독립되어, 공화국으로 출발한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1918년 독립을 선언한 이후에, 공산당 세력, 보수 세력, 농민 세력 등 복잡한 이념 세력들의 정권 쟁탈 투쟁으로 국내사정은 극히 혼란하여 정권 교체가 잦은 불안이 계속되어왔었다.

그 틈새를 타서 민족주의자가 점점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하게 되었는데, 1930년대 즈음 들어오면서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 3국 국가들은 민족주의자가 반란으로 집권하여 반소, 반공 독재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1939년 8월 23일 소련은 나치 독일 과 리벤트로프-몰로토프 밀약을 맺어 중앙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각각 분할하기로 하는 비밀 의정서를 만들었다. 리투아니아는 1939년 9월 두 번째 밀약에서 소련의 몫으로 추가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 이후, 소련이 리투아니아를 처음으로 점령한 것은 1940년 6월 15일이었는데, 소련의 내무인민위원회 요원은 리투아니아의 국경 초소를 급습하였고, 리투아니아군을 몰아낸 뒤 소비에트 간부단으로 대신하였다. 의회와 여타 정부 부처의 공직자를 뽑는 선거에서는 명부에 후보자가 한 명씩밖에 없었는데, 선거의 공식 결과에서 친(親)소련 후보가 99.2%의 표를 얻었다. 그렇게 구성된 의회는 곧 소비에트 연방에 가입할 것을 요청하였으며, 소련의 승인을 얻어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병합되었다. 국제 사회는 소련의 리투아니아 병합을 불법으로 보고 비판하였다. 1941년 독-소 개전 이후 독일군에 점령되기도 하였다. 1944년 나치 독일이 패퇴하면서 다시 리투아니아를 점령한 소련군은 독일에 협조하였다는 이유로 리투아니아인들을 박해하여 29923가구가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되었고, 12만 명이 국외 추방되거나 북유럽, 미국 등지로 망명하였다.

1990년 3월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1991년 1월 소련군이 리투아니아를 침공하여 13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부상하였으나, 리투아니아는 1991년 9월에 독립했고 1991년 9월 17일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함께 유엔에 가입하였다.

현재 리투아니아는 반러시아적인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2008년 11월 27일에 리투아니아는 신임 총리로 안드류스 쿠빌류스가 새총리로 당선되었다. 2009년 5월 17일에 대선에서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다.

지리[편집]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가운데 가장 영토가 넓고, 인구도 많다. 북유럽에 위치하는 리투아니아는 99km 정도의 모래 해안선이 있으며 이 중 38km만이 발트 해와 접한다. 나머지는 쿠로니아 사주와 맞닿고 있다. 리투아니아의 가장 중요한 부동항인 클라이페다(Klaipėda)는 쿠로니아 사주와 아주 가까우며 남쪽으로는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주와 접한다. 네만 강이 가장 중요한 강이며 강의 지류가 국제 선박의 이송로로 쓰인다.

리투아니아는 빙하로 조각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높은 곳은 서부와 동부의 고지대인데, 300m 이상인 곳은 없어서 가장 높은 아우토자스(Aukštojas Hill) 언덕으로 294m 정도이다. 많은 습지와 호수가 있어서 삼림을 포함하여 전체 국토의 30%가 숲이다.

인구[편집]

리투아니아 인구의 84.2%가 리투아니아인이며, 리투아니아어를 사용한다. 폴란드인은 6.6%이며 주로 리투아니아 동부에 거주한다. 이들의 조상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 폴란드에서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등으로 이주한 사람들이거나 폴란드화된 리투아니아인 귀족들이다.

소련 불법 점령 기간 동안 러시아 등에서 노동자로 유입된 러시아인은 5.8%로 타 발트 3국에 비하면 러시아인 문제가 적은 편이다. 벨라루스인은 1.2%, 우크라이나인은 0.5%다.

리투아니아의 공용어, 국어리투아니아어이다. 리투아니아어는 라트비아어와 함께 현존하는 2개의 인도유럽어족 발트어파의 하나다. 폴란드어, 러시아어, 벨라루스어 등도 지역적으로 쓰인다. 2001년 국세 조사에 의하면 모국어 화자는 리투아니아어 82.0%, 러시아어 8.0%, 폴란드어 5.6%, 벨라루스어 0.5%, 우크라이나어 0.2%, 로마니어 0.1%, 라트비아어 0.1%가 되고 있다.

모어 이외의 언어로서는, 러시아어는 공용어가 아닌데도 소련 지배의 영향으로 인구의 85.4%가 할 줄 안다. 그 외 24.0%가 영어, 14.5%가 리투아니아어, 12.5%가 폴란드어, 11.6%가 독일어를 말할 수 있다.

각주[편집]

  1. 기타나스 나우세다〉,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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