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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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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 국기

라트비아(라트비아어: Latvija 라트비야, 영어: Latvia)는 는 북유럽에 있는 공화국으로서, 공식 명칭은 라트비아 공화국(라트비아어: Latvijas Republika 라트비야스 레푸블리카, 영어: Republic of Latvia)이다. 북쪽은 에스토니아, 동쪽은 러시아, 남쪽은 리투아니아와 접하고 있으며 서쪽은 발트 해와 리가 만에 닿아 있다.

개요[편집]

  • 수도: 리가
  • 면적: 64,559 km2
  • 인구: 1,960,424명 (2016년)
  • 공용어: 라트비아어
  • 정치체제: 공화제, 내각제
  • 대통령: 에길스 레비츠

지도[편집]

라트비아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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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편집]

기원전 2000년 경부터 핀우그르계의 리브인들과 레트족이라고 불리는 발트인들이 이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말부터 독일인들이 리가만 연안에 진출하기 시작하여, 1201년 이들에 의하여 리가 시가 건설되었다.

1558년 러시아의 이반 4세가 리보니아 전쟁을 일으키자, 이 지역을 지배하던 독일 기사단은 라트비아를 리투아니아의 보호령으로 양도하였고, 1561년 리투아니아의 보호를 받는 리보니아 공국과 쿠를란트(Courland) 공국이 성립하였다.

그 후 1600년부터 1629년까지 이 지역을 둘러싸고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스웨덴이 전쟁을 벌였다. 스웨덴은 1621년 리가를 점령하였고, 1629년 리보니아 공국은 스웨덴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쿠를란트-젬갈레 공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향 하에서 독립을 유지하였다.

예카프스 케틀레르스(Jekabs Ketlers) 공작이 지배하던 시대(1642-1682)에는 동방의 네덜란드를 만들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발전을 꾀하였다. 이 시기에는 쿠를란트 공국의 선단이 대서양을 누비고 다녔으며, 서인도 제도의 토바고와 아프리카의 감비아에 해외식민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1700년부터 1721년까지 계속된 스웨덴과 러시아 제국간 북방전쟁의 결과 리보니아 지역이 러시아의 지배에 들어갔고, 이어 쿠를란트 역시 1795년 폴란드 분할의 결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러시아가 독일에 패하자, 1918년 11월 18일 라트비아는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라트비아는 농지개혁을 실시하고 경제, 문화, 교육 전반에 있어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1934년에 일어난 쿠데타로 초대 대통령이었던 카를리스 울마니스(Kārlis Ulmanis)가 4대 대통령으로 다시 취임하였다. 1939년 8월 23일 소련은 나치 독일과 리벤트로프-몰로토프 밀약을 맺어 중앙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각각 분할하기로 하는 비밀 의정서를 만들었다. 이 의정서에서 라트비아는 소련의 영향권에 두기로 인정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뒤, 소련은 1940년 6월 중순, 발트 3국을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소련의 내무인민위원회 요원은 라트비아의 국경 초소를 급습하였고, 라트비아군을 몰아낸 뒤 소비에트 간부단으로 대신하였다. 의회와 여타 정부 부처의 공직자를 뽑는 선거에서는 명부에 후보자가 한 명씩밖에 없었는데, 독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명분 아래에 치러진 선거의 공식 결과에서 친(親)소련 후보가 97.6%의 표를 얻었다. 그렇게 구성된 의회는 곧 소비에트 연방에 가입할 것을 요청하였으며, 소련의 승인을 얻어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병합되었다. 국제 사회는 소련의 발트 3국 병합을 불법으로 보고 비난하였다.

소련으로의 편입 과정에서 약 13만 명의 라트비아인들이 해외로 망명하였고, 1953년까지 약 12만 명의 라트비아인들이 죽거나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었다. 한편 약 75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보다 산업환경이 좋은 라트비아로 이주하여, 라트비아인의 비율은 총인구의 52% 선으로 감소하기에 이르렀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99년에는 제6대 대통령으로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Vaira Vīķe-Freiberga)가 선출되어 라트비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으며, 친미, 친서방 정책을 펴고 있다. 2012년 2월에 러시아어를 제2의 공용어로 지정하는 것을 정해놓은 투표가 실시되었으나, 거의 대부분의 인구가 러시아어를 제2의 공용어로 지정하는 것에 반대표를 던졌다. 2012년 8월 28일에 라트비아의 국방장관이 소련군 기념비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러시아계 정치인들이 반발했다.

지리[편집]

발트 해 동쪽에 있는 라트비아는 동유럽 평원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국토 전체가 매우 평탄한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저지대로, 비옥하며 숲이 우겨져 있다. 주위에는 다우가바 강, 리엘루페 강, 가우야 강이 있다. 해안선의 길이는 총 531km이다.

습윤한 대륙성 기후이다. 그러나 발트 해와 접하고 있어 비교적 온화한 기후를 띤다. 여름에는 따뜻하고 봄과 가을에는 아주 온화하지만 겨울은 북쪽에 있어 다소 춥다. 강수량은 8월에 가장 많다. 러시아 일대의 북쪽 기압골의 영향으로 겨울이 되면 칼바람이 몰아치거나 눈보라가 치는 일도 많으나, 북위 60도에 가까운 위도를 감안하면 상당히 기온이 높은 편으로 같은 위도의 러시아 내륙에 비하면 훨씬 따뜻하다.

인구[편집]

2011년 시점에서 주민은 라트비아인이 62.1%, 러시아인이 26.9%, 벨라루스인이 3.7%, 우크라이나인이 2.3%, 폴란드인이 2.4%, 리투아니아인이 1.4%, 라트갈레인인 포함한 기타가 2%이다. 300여명 정도 밖에 남아 있지않은 소수 민족 리보니아인도 대부분이 라트비아에 산다.

라트비아는 다민족, 다언어국가이지만 라트비아어가 라트비아의 국어, 공용어이다. 독립 직후부터 라트비아어의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민족주의적인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라트비아어가 공용어이나, 리가 등 도시에서는 러시아어 사용자(러시아인, 벨라루스인 등)가 많고 높은 러시아어 사용률에 의해서 러시아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81.2%의 주민이 러시아어에 능통하며, 37.5%가 모국어로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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