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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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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국기

에스토니아(Estonia)는 북유럽에 있는 국가이다. 정식 국가명은 에스토니아 공화국으로서, 에스토니아어로는 에스티 바바리크(Eesti Vabariik)라고 한다. 동쪽으로는 러시아에 붙어 있고, 북쪽으로는 핀란드를 마주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작은 영토와 인구를 가진 나라이지만, 정보통신 분야에 집중 투자하여 에스토니아 전자정부를 구축하였으며, 세계적인 정보통신 선도국가로 꼽히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고대부터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땅이었다. 1227년 독일에 점령되어 기독교화되었으며, 이후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붕괴된 후 1918년 2월 24일 에스토니아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했다. 하지만 1940년 다시 소련에 강제 편입되었다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 등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1991년 8월 20일에 노래 혁명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얻었다. 8월 20일은 에스토니아의 독립 기념일이다.[1]

개요[편집]

  • 수도: 탈린
  • 면적: 45,227km²
  • 인구: 1,330,068명(2021년)
  • 공용어: 에스토니아어
  • 정치체제: 공화제, 의원내각제
  • 대통령: 알라르 카리스

지도[편집]

역사[편집]

에스토니아는 상고적부터 핀우그리아어파의 언어를 사용하는 우랄계 민족인 에스토니아인들의 땅이었으며, 리보니아발트족과도 관계를 주고받았다. 중세에 독일의 프라테스 밀리치아이 크리스티(Fratres militiae Christi) 기사단의 리보니아 원정에 의해 1227년 정복되며 기독교화되었다. 이후 덴마크의 지배를 받다가 17세기 스웨덴-러시아 전쟁의 결과로 스웨덴령으로 넘어갔다. 18세기부터는 러시아 제국에 의한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19세기 초부터 이른바 국민계몽(Ärkamisaeg)으로 불리는 민족주의 부흥 시대가 시작되며 민족 독립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0월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난 뒤 1918년 2월 24일 에스토니아는 독립국가가 되었다. 1934년에 초대 국무총리였던 콘스탄틴 패츠(Konstantin Päts)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1939년 8월 23일 소련나치 독일과 리벤트로프-몰로토프 밀약을 맺어 중앙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각각 분할하기로 하는 비밀 의정서를 만들었을 때 같은 의정서에서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영향권에 두기로 인정받았다. 소련은 1940년 6월 중순에 에스토니아를 점령하여 소련의 내무인민위원회 요원은 에스토니아의 국경 초소를 급습하였고, 에스토니아군을 몰아낸 뒤 소비에트 간부단으로 대신하였다. 의회와 여타 정부 부처의 공직자를 뽑는 선거에서는 명부에 후보자가 한 명씩밖에 없었는데, 독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명분으로 선거가 치러져 선거의 공식 결과에서 친(親)소련 후보가 92.8%의 표를 얻었다. 그렇게 구성된 의회는 곧 소비에트 연방에 가입할 것을 요청하였으며, 소련의 승인을 얻어 1940년 8월 6일,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병합되었다. 국제 사회는 이와 같이 진행된 소련의 발트 3국 병합을 불법으로 보고 비판하였다.에스토니아는 1941년 6월 하순부터 1944년까지 나치 독일군에게 점령되었다. 1991년 8월 20일 노래혁명과 소련의 붕괴로 독립을 되찾았으며, 8월 20일은 에스토니아의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다.

소련 군대가 에스토니아를 떠난 1994년 8월 31일 이후 에스토니아는 서유럽과의 관계 정상화에 노력을 기울여 2004년 3월 29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2004년 5월 1일 유럽 연합(EU)에 가입했고, 2011년 1월 1일부터 유로를 공식화폐로 도입했다. 에스토니아는 세계에서 최초로 휴대폰으로 투표를 치르게 되는 방식을 2012년에 도입하여 주목을 받았다.

정치[편집]

에스토니아는 의회 공화제를 채택한 단일 국가이다. 단원제 입법부로 리기코구 (Riigikogu)가 있으며, 행정부로는 에스토니아 정부를 두고 있다.

리기코구는 에스토니아의 의회로, 총 101인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4년이다. 매 선거마다 18세 이상의 에스토니아 국민이 투표에 참여하며, 전원 비례대표로 선출된다. 리기코구는 에스토니아 정부를 승인하는 역할을 맡으며, 통상적인 입법 활동, 국가예산 수립, 국회 감사활동 등을 수행한다. 또한 에스토니아 대통령의 승인을 거쳐 에스토니아 대법원장, 에스토니아 은행 총재, 감사원장, 법무관, 총사령관을 임명할 권한도 지닌다.

에스토니아 총리는 대통령의 권고에 따라 에스토니아 정부를 수립하며, 의회의 승인으로 공식 출범한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총리가 수장을 맡으며, 자국 현안과 대외정책을 펼쳐 나간다. 중앙정부 산하 부처에는 장관을 수장으로 각자 부문에 대한 업무를 관할한다. 한편 별도의 소속부처 없이 활동하는 '무임소 장관'도 가끔씩 임명된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여러 정당이 내각에 참여하는 연립내각 체제를 띄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원내에서 한 정당이 과반 의석수를 차지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의 국가원수는 에스토니아 대통령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동시에 의례적인 역할을 맡는다.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국민에 의한 직접선출이 아닌, 의회에서 특별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의회에서 통과된 법을 승인하는 권한을 지니며, 법안을 의회로 돌려보내 새 토의와 결의를 진행토록 하는 승인 거부권 행사도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의회가 다시 한번 통과시킬 경우, 대통령은 해당 법안의 위헌심판을 청구할 권리를 지니게 된다. 이밖에도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을 맡는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전자정부 구축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전체 행정 서비스의 99%가 하루 24시간 언제든지 온라인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였다. 2005년 에스토니아는 지방선거에 즈음하여 세계 최초로 인터넷을 통한 전자투표를 실시하는 국가가 되었다. 가장 최근인 2019년 총선에서 전체 투표수 중 44%가 온라인 투표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가장 최근 선거인 2019년 에스토니아 총선에서는 총 다섯 개 정당이 국회의원을 배출하였다. 에스토니아 중도당의 당대표인 위리 라타스가 에스토니아 보수인민당, 이사마당과 함께 연립내각을 이루며 총리 연임에 성공하였다. 나머지 에스토니아 개혁당과 사회민주당은 야당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2021년 1월 라타스 총리가 부패혐의로 실각하고, 에스토니아 개혁당의 카야 칼라스 당대표가 에스토니아 최초의 여성 당대표로써 에스토니아의 총리로 선출하였다. 칼라스 총리는 야당이 된 에스토니아 중도당과의 연립내각을 통해 원내 1·2당이 참여하는 안정적인 정치 기반을 확보하였다.

에스토니아 헌법에서 국민투표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실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나, 1992년 헌법 제정 이래 실시된 국민투표는 2003년 유럽연합 가입 국민투표가 유일하다.

지리[편집]

에스토니아는 국토 전체가 빙하침식에 의한 평야 지대이다. 남쪽으로 라트비아와 접하며, 동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는데 이쪽에 페이푸스호가 있다. 서쪽으로 발트해, 북쪽으로 핀란드만을 끼고 있기도 하다. 평균 해발고도가 50m에 불과하고 가장 높은 지대라고 해도 318m에 지나지 않는다.

유혈암(오일셰일)과 석회석 그리고 전체 국토의 7%에 해당하는 삼림이 국가 경제의 주 원동력이 되고 있다. 에스토니아에는 1,400여 개나 되는 작고 큰 호수가 있다. 거의 대부분은 작지만 가장 큰 호수는 3,555km2에 이르는 페이푸스호(Lake Peipus)이다. 강 줄기도 많아서 162km의 지류인 버한두강(Võhandu), 패르누강(Pärnu) 등이 있다.

에스토니아 인근의 도서 지역은 1,500여 개 이상인 것으로 추측되며 가장 큰 두 섬은 사레마섬(Saaremaa)과 히우마섬(Hiiumaa)이다.

냉량습윤한 해양성기후이며, 평균기온은 1월 -5.9°C, 7월 16.8°C이고, 연강수량은 600~750mm다.

행정 구역[편집]

에스토니아의 행정구역은 15개 주(maakond)로 구성되었다.

행정 구역 주도 면적(km²)
하르유 주(Harju maakond) 탈린 4,327
라플라 주(Rapla maakond) 라플라 2,765
래네 주(Lääne maakond) 합살루 1,816]
발가 주(Valga maakond) 발가 1,917
버루 주(Võru maakond) 버루 2,773
래네-비루 주(Lääne-Viru maakond) 라크베레 3,696
이다-비루 주(Ida-Viru maakond) 여흐비 2,972
빌랸디 주(Viljandi maakond) 빌랸디 3,420
사레 주(Saare maakond) 쿠레사레 2,938
얘르바 주(Järva maakond) 파이데 2,674
여게바 주(Jõgeva maakond) 여게바 2,545
타르투 주(Tartu maakond) 타르투 3,349
패르누 주(Pärnu maakond) 패르누 5,419
펄바 주(Põlva maakond) 펄바 1,823
히우 주(Hiiu maakond) 캐르들라 1,032

경제[편집]

1929년까지 에스토니아의 화폐인 크론이 에스토니아 은행에서 발행되었지만 소련에 합병된 후 발행이 금지되었고, 서유럽에 초점을 두었던 무역도 금지 되었다. 1940년대에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농업으로 어느 정도 성장을 하는 국가였지만, 1940년 소련의 합병과 나치의 만행으로 경제적으로 피폐해졌다. 전쟁이 끝나고 독립을 한 1991년부터 에스토니아는 자국을 동유럽과 서유럽을 이어주는 문으로 활용하였고, 서유럽의 경제 체제를 본따 경제 개혁을 시작하였다. 1994년 밀턴 프리드먼의 이론에 기초를 두어 에스토니아는 일률 과세를 도입하였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2004년 말 자국의 유로화 디자인을 완성했고, 2011년 1월 1일 도입하였다. 1999년 에스토니아는 1991년 독립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는 1998년에 있었던 러시아 금융위기가 이유가 되었다. 이후 1999년 11월 유럽 연합의 도움으로 세계 무역기구에 가입하였고, 2002년 유럽 연합의 동의를 받아 2004년 가입하게 된다. 2010년 OECD 가입으로 한번 더 경제대국이라는 것을 알리게 되었다.

에스토니아가 자원이 부족한 국가로 알려져있지만, 곳곳에서 소규모의 자원이 발견되어 사용하고 있다. 유혈암과 석회석이 주를 이루며 이 국가의 48%를 덮고 있는 숲도 이에 포함된다. 유혈암과 석회석 외에도 에스토니아는 인회암, 우라늄과 화강암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채굴하지 않고 있고, 그나마 채굴 하고 있는 곳도 소규모에 불과하다. 최근에, 에스토니아 여론은 원자력 발전소를 짓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동쪽 나르바에 있는 발전소들이 노후화되어 전기 공급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2016년까지 재건되지 않으면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다고 한다.

식품 제조업, 건설업 그리고 전기 산업이 에스토니아의 산업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또 이 나라의 주요 산업은 제조업과 화학 산업인데, 이다비루 주탈린에 많이 있다고 한다. 에스토니아는 첨단 산업의 중심지라고도 불리며 정보 산업으로 크게 발전한 국가이다. 이는 90년대 중반, 정부에서 실시한 트리그리후페 프로젝트 때문이다. 또한 스카이프가 바로 에스토니아에서 만들어졌는데, 창설자가 에스토니아인이고 본사가 탈린에 있다고 한다.

블록체인 기술 개발[편집]

에스토니아는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한 국가이다. 에스토니아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전자정부 시스템을 구축했으나, 러시아계로 추정되는 세력에 의한 디도스 공격이 지속되자, 탈중앙 분산 방식으로 작동하는 인터넷 구조를 고안하였다. 2007년 4월부터 약 3주간 진행된 대규모 디도스 공격으로 엑스로드(X-Road)라는 에스토니아 정부의 전산 시스템이 1주일 이상 마비되자, 에스토니아 정부는 기존의 중앙집중식 데이터 관리 방법으로는 디도스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에스토니아는 디도스 공격에 대처하기 위해 해외 클라우드 서버에 정부 행정 데이터를 이전하는 한편, 가드타임(Guardtime)이 개발한 키 없는 서명 인프라(KSI, Keyless Signiture Infrastructure)라는 기술을 도입했다. 가드타임은 2007년 악터 불다스(Ahto Buldas)와 마틴 루벨(Martin Ruubel)이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탈린에 설립한 보안 기술 전문 업체이다. 가드타임은 2007년 해시를 이용하여 데이터의 위변조를 방지하고, 해시 데이터를 여러 서버에 분산 저장함으로써 탈중앙화를 이룰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2008년에는 KSI 기술 테스트를 시작했고, 2012년에 에스토니아 정부 및 민간 서비스에 실제로 적용되었다.

에스토니아의 가드타임이 개발한 KSI 기술은 비트코인에서 적용한 블록체인 기술과 매우 유사하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백서를 작성한 것은 2018년 10월 31일이었고, 실제로 비트코인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2009년 1월 3일이다. 하지만 에스토니아의 가드타임은 그보다 1년 빠른 2007년에 이미 블록체인과 거의 동일한 KSI 기술을 자체로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가드타임의 이보 로흐무스(Ivo Lõhmus) 부사장은 사토시 나카모토보다 자신들이 먼저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한 것은 맞지만, 사토시 나카모토가 자신들의 기술을 참고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2]

주민[편집]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에스토니아를 차지하는 에스토니아인은 전체 인구의 88%를 차지했다. 1934년 통계에 따르면 12%를 차지하는 소수 인에는, 러시아인, 독일인, 스웨덴인, 라트비아인, 유대인, 폴란드인, 핀란드인이 주를 차지하였다. 소련 아래에 있던 1945년부터 1989년까지, 에스토니아를 차지하는 에스토니아인은 전체 인구 61%대로 떨어졌고,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그리고 우크라이나인의 대거 유입으로 도시화가 시작되었다. 1989년까지 에스토니아의 소수인들은 에스토니아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인의 전출로 인해 지금까지도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공용어로는 에스토니아어가 있다. 에스토니아어는 우랄어족의 한 갈래인 핀어군에 속하며, 핀란드어와 유사하다. 이웃국가에서 사용하는 스웨덴어, 라트비아어, 러시아어는 모두 인도유럽어족에 속하기 때문에, 소수의 어휘를 차용한 점을 제외하면 언어의 기원상 관련이 없다. 유럽의 언어 중에서도 인도유럽어족이 아닌 몇 안되는 언어이기도 하다.

에스토니아에서 제2외국어 중에는 영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택하는 경우가 많으며, 핀란드어, 스페인어, 스웨덴어도 인기가 있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에스토니아〉, 《위키백과》
  2. 전명산, 〈비트코인 이전에 에스토니아에 블록체인이 있었다〉, 《코인데스크코리아》, 2018-12-06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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