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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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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체코어:Česko, 영어: Czechia)는 중앙유럽에 있는 내륙 국가이다. 공식 국명은 체코 공화국(체코어:Česká republika, 영어: Czech Republic)이다. 북서쪽과 서쪽은 독일, 남쪽은 오스트리아, 남동쪽은 슬로바키아, 북동쪽은 폴란드와 닿아 있다.

체코는 크게 보헤미아(체히), 모라바, 실레시아(슬레스코) 세 지방으로 나뉜다. 체코라는 이름은 보헤미아의 체코어 표기인 '체히'(Čechy)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개요[편집]

체코 국기
  • 수도: 프라하
  • 면적: 78,866 km2
  • 인구: 10,650,000명 (2019년)
  • 공용어: 체코어
  • 정치체제: 의회제, 공화제
  • 대통령: 밀로시 제만

지도[편집]

역사[편집]

9세기 말부터 14세기 초까지 프르셰미슬 왕조가 다스렸다. 이후 룩셈부르크 왕조가 다스리는 중에 카렐 1세가 신성 로마 황제 카를 4세로 즉위하였다.

15세기 이후 후스파의 종교 개혁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17세기의 보헤미아는 로마 가톨릭 국가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하에 있었고,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 교도들 사이에 여러 차례 불협화음이 일어났으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개신교도의 세력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신앙을 인정해 주었다.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겸 보헤미아의 왕 마티아스(황제 재위: 1612~19년, 보헤미아 왕 재위 : 1611~17년)도 양쪽 진영에 대한 융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열렬한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인 페르디난트 2세는 보헤미아 왕에 선출(재위: 1617~37년)되는 동시에 개신교에 대한 탄압을 실시했다. 그 와중에 프라하 대주교령에 있던 개신교 예배당들이 철거되었고, 개신교 신자들은 이에 항의하였으나 묵살되었다. 결국에는 탄압에 반발한 개신교 시민들이 프라하의 왕궁을 습격해 국왕 고문관 3명을 왕궁의 창문에서 던져버리는 프라하 창밖 투척사건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으며(1618년), 개신교 신자인 보헤미아 제후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단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30년 전쟁(1618~48년)의 시발점이 되었다.

반란군 제후들은 다른 개신교 제후에게 협력을 호소하였고, 개신교 제후 연합의 찬성을 얻어냈다. 황제 마티아스가 사망하고(1619년), 보헤미아 왕 페르디난트 2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도 겸임(재위: 1619~37년)하게 되자, 보헤미아의 제후들은 페르디난트 2세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고, 개신교 제후 연합의 중심적 존재였던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를 의회에서 보헤미아의 왕(재위: 1619~20년)으로 선출하고 황제에게 대항하였다.

하지만 개신교 동맹측이 개혁파 교회(Reformed church)와 루터교회의 대립으로 발이 묶인 사이,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로마 가톨릭 교회 세력의 연대를 강화해 교황의 원조금과 스페인-합스부르크 왕가의 지원군 및 바이에른 대공 막시밀리안 1세(재위: 1623~51년) 등의 로마 가톨릭 교회 제후의 원조를 받아 틸리 백작 요한 체르클라에스를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군대를 파견했다.

사실상 로마 가톨릭 교회 동맹세력이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이 시점에서 승부는 이미 결정되었다. 1620년 11월 8일 개신교 동맹측의 보헤미아군은 백산(白山) 전투에서 틸리 백작이 이끄는 로마 가톨릭 교회 동맹군에게 괴멸적인 대패를 당했고,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는 저항하지 못하고 항복했다.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보헤미아 지배는 강화되었다. 곧이어 1627년 신(新)영지조례법에 의해 의회는 권력을 모두 빼앗기게 되어 사실상 속령이 되었다. 이로 인해 다수의 보헤미아 귀족 및 개신교도가 망명하여 유럽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한 재산몰수 및 국외추방이라는 가혹한 전후 처리는 다른 개신교 제후의 이탈을 초래하게 되었고, 전쟁이 장기화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전쟁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 가톨릭 지배가 강화되었고 그대로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帝位)를 독점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체코를 1918년까지 지배하였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하였으나 1938년 나치 독일에 합병되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점령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1945년에 소련의 위성국이 되어 공산화됐다.

1980년대 후반 중앙유럽 민주화 물결을 타고 비폭력 혁명인 벨벳 혁명을 통해 민주화에 성공한 후, 국민 투표를 통해 1993년에 슬로바키아와 분리하였다.

지리[편집]

체코는 지리적으로 꽤 다양한 편이다. 서쪽의 보헤미아 지방에는 엘베 강과 블타바 강이 흐르는 분지 지역이 낮은 산릉으로 둘러싸여있다. 자국 내에서 가장 높은 산인 스네슈카 산(체코어: Sněžka, 높이 1,602m)이 이 곳에 있다. 체코의 수도이자 체히의 수도인 프라하는, 블타바 강과 엘베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모라바 사이로 모라바 강이 흐른다. 모라비아 서쪽의 일부는 실레시아(체코령 실레시아)라고 불리는 역사적인 지역이며, 나머지는 현재의 폴란드이다.

체코는 내륙 국가인데 영토 내를 흐르는 강은 북해, 발트해, 흑해로 흘러 들어간다. 체코 자국 외에 함부르크 갑문 중간에 3만 제곱 미터의 조차지인 몰다우하펜이 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슬로바키아와의 분리 전에 체코슬로바키아에 귀속된 것이다.

체코는 산, 완만한 고원과, 저지대, 동굴, 협곡, 넓은 평원, 습지, 호수, 연못, 댐 등 정말 아름답고 다채로운 자연을 자랑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지독한 대기 오염과 극치에 이른 산성비 오염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19세기 무분별한 산업화의 영향이다. 경작을 위해 수세기에 걸쳐 나무를 베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체코의 1/3은 여전히 숲으로 둘러 싸여 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천연의 숲은 대부분 경작이 불가능한 산악 지역에 있다. 수목 한계선(1,400m)이상으로는 초원, 관목림, 지의류 등이 있다 곰, 늑대, 스라소니와 그 외 야생고양이, 마멋, 수달, 담비, 밍크 등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숲과 습지대에는 꿩, 자고, 오리, 야생거위 등 사냥조류들이 서식하는데, 이들은 주로 사냥감이다. 독수리, 콘돌, 물수리, 황새, 느시, 뇌조 등도 극히 드물게 눈에 띈다.

체코의 대부분 지역은 습기 많은 대륙성 기후이므로 여름엔 따뜻하고 비가 많이 내리며, 겨울엔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완만한 기온 변화를 보인다. 가장 더운 달은 7월이고, 가장 추운 달은 1월이다. 12월에서 2월까지는 저지대도 영하로 떨어지고 산악지방은 정도가 더 심하다. 사실상 '건기'라는 것은 없다. 겨울에는 40에서 100일정도 눈이 내리고(산간지방은 130일 정도), 저지대는 안개까지 낀다.

정치[편집]

1992년 12월 채택된 신헌법에 기초한 자유 민주주의 체제다. 국가수반은 임기 4년의 총리인 내각책임제 국가이다. 의회는 임기 4년의 하원과 임기 6년의 상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다. 또한 다당제 국가로 시민민주당·공산당·체코사회민주당 등의 주요 정당들이 있다. 현재는 ANO 2011, 체코 사회민주당, 보헤미아 모라바 공산당이 연립내각을 구성하고있다.

인구[편집]

체코 공화국에 거주하는 주민의 90.4%는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체코인 (참조: 체히 지방)으로, 3.7%는 모라바인 (참조: 모라바 지방)으로 생각한다. 방언 차이가 있으나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모두 체코어로 분류된다. 1989년 벨벳 혁명 직후에는 자신을 모라바인으로 생각하는 인구의 비중이 높았으나 점차 그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두 나라로 분리되면서 체코에 남은 슬로바키아인은 전체 인구의 2% 정도를 차지한다. 이외의 소수 민족으로 폴란드인, 독일인, 로마인, 헝가리인, 우크라이나인이 살고 있다.

참고자료[편집]

  • 체코〉, 《위키백과》
  • 捷克〉, 《百度百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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