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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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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펀드(Quantum Fund) 로고
퀀텀펀드(Quantum Fund) 로고와 글자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짐 로저스(Jim Rogers)

퀀텀펀드(Quantum Fund)는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Jim Rogers)와 조지 소로스(George Soros)가 1969년 공동 설립한 헤지펀드이다. 이 헤지펀드는 설립 후 10여 년간 4,200%의 수익률을 기록해 월가의 전설로 통한다. 주식, 채권, 상품, 외환 등 투자 대상이 광범위하며 고수익·고위험 투자 방식을 고수하고 과감하게 베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퀀텀펀드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를 투매해 10억 달러를 벌어들였는데, 당시 영국 중앙은행은 퀀텀펀드에 대항하다 항복을 선언한 바 있다. 1997년에는 태국 바트화를 대량 공매도해 바트화가 폭락하면서 아시아 외환위기를 촉발시켰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후 퀀텀펀드는 해체하였다.

개요[편집]

퀀텀펀드는 대표적인 헤지펀드 중의 하나로 짐 로저스가 미국 예일대와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뒤 1969년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공동 설립했다. 2011년 펀드를 완전 청산한 후 소로스펀드 매니지먼트(Soros Fund Management)로 명칭을 변경하고 패밀리 오피스 형태로 소로스 가문의 자금만을 운용하고 있다. 소로스펀드 매니지먼트는 글로벌 마켓에서 다양한 유가증권, 외환시장과 상품시장, 벤처캐피탈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투자를 담당하고 있다.[1]

주요 인물[편집]

짐로저스는 1942년 10월 19일생으로 미국에서 출생했다. 그는 그의 나이 다섯 살에 야구장에 버려진 빈병 모으기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앨라배마 주 데모폴리스(Demopolis)에서 자란 로저스는 예일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 뒤 옥스퍼드 대학교(University of Oxford) 베일리얼 칼리지(Balliol College)에 다니면서 조정팀의 키잡이로서 기네스북에 생애 첫 번째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 투자 파트너십인 퀀텀펀드(Quantum Fund)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한 그는 1970년대 스탠더드앤푸어스(S&P) 수익률이 47%였던 당시 4,20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37세에 투자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여전히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로저스는 투자 활동을 계속하는 동안 컬럼비아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교수직을 지냈으며 WCVS-TV와 FNN에서 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맡기도 했다. 자신의 오랜 염원이던 세계 일주를 하면서 6개 대륙에 걸쳐 무려 10만 마일 이상의 일정을 모터사이클로만 소화해 기네스북에 생애 두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자신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1994년 발간한 책이 '월가의 전설 세계를 가다'(Investment Biker)이다. 1999~2002년에는 아내 페이지 파커(Paige Paker)와 함께 두 번째 세계 일주를 떠났는데, 116개국(내전 중이던 열다섯 개 나라 포함) 15만 2,000마일을 돌아 생애 세 번째로 기네스북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그가 쓴 두 번째 책인 '어드벤처 캐피탈리스트'(Adventure Capitalist)는 그의 믿기 힘든 세계 일주 여정을 일대기 방식으로 그려낸 책이다.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싱가포르에 정착한 그는 현재 다양한 미디어에 출연하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강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19년 1월에는 KBS1 '오늘밤 김제동'에 출연했다.[2]

2018년 12월에는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Jim Rogers)가 국내 리조트 업체 아난티의 사외이사로 선임되었다.[3]

동구권의 개방지원과 자선사업을 목적으로 '열린사회기금'을 설립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 뒤 일선 펀드 운용에서 한발 물러나 기금 운용에 힘을 쏟고 있다. 2018년 4월 조지 소로스는 "암호화폐는 거품"이라는 기존 입장을 버리고, 암호화폐에 직접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조지 소로스는 이미 오버스탁(Overstock)을 통해 간접적으로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있었으며, 이후 본격적인 직접 투자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퀀텀펀드가 일으킨 위기[편집]

1990년대 초 유럽 연합 내의 연계 환율에 발맞추어 파운드 환율이 높은 수준으로 고정되어 국제 통화 투기꾼들의 공격을 유발하기 위해 퀀텀펀드가 먼저 난색을 표하고 시장에서 파운드화를 대량으로 매도하기 위해 독일 마르크를 매입하였다. 잉글랜드 은행은 독일 마크가 파운드를 사들여 금리인상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퀀텀펀드의 공격에 밀려 물러났고 파운드화는 유럽통화환율 체계에서 밀려나 자유로워져 1개월 만에 파운드화 가치가 20% 하락했다. 얼마 뒤 이탈리아도 같은 운명을 맞았고, 퀀텀펀드가 그 주역이되었다.

  • 아메리카 멕시코 금융위기

1994년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멕시코 페소를 공격했다. 1994년까지 멕시코 경제적 양성 성장은 중단기 외자 대출에 지나치게 의존할 수 있는 기반 위에 세워졌다. 페소화 환율은 멕시코 국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평가되어 달러화에 연동돼 움직이고 있었다. 퀀텀펀드가 일으킨 페소 공격으로 멕시코 외환보유고가 단기간에 바닥나 달러와의 연계를 포기하고 자유변동에 나서면서 멕시코 페소와 멕시코 국내 증시가 붕괴된데 비해 퀀텀펀드는 적지 않은 소득을 얻었다.

  • 아시아 1997년 동남아 금융위기

1994년 멕시코와 마찬가지로 태국, 말레이시아, 한국 등 중단기 외자 대출에 의존해 국제수지 균형을 유지하고, 환율이 높아 대부분 달러화나 패키지 통화와 고정 또는 연계된 환율을 유지하는 동남아 국가들이 많아 국제 투기자금을 유치했다. 퀀텀펀드가 저격수 역할을 하면서 태국 화폐 바트를 대량으로 팔아치우는 것으로부터 태국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달러와 연동된 고정환율을 포기하고 자유로워지면서 태국 금융시장에 유례없는 위기를 초래했다. 위기는 곧 모든 동남아 통화가 자유롭게 환전되는 국가들로 파급되어 홍콩 달러를 제외한 모든 동남아 주요 통화의 단기간에 급격한 평가절하를 강요했다. 동남아 각국의 통화 체계와 주식시장의 붕괴 그리고 그로 인한 외국인의 대량 유입과 국내 인플레이션에 대한 엄청난 압력이 이 지역의 경제 발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4]

퀀텀펀드의 종말[편집]

설립 후 31년간 반역사적으로 퀀텀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30% 이상에 달했으며 퀀텀펀드의 휘황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1998년 이후 투자 착오로 퀀텀펀드는 큰 손실을 입었다. 1998년 러시아 채무 위기 및 엔화 환율 추이에 대한 소로스의 오판으로 퀀텀펀드가 큰 손실을 본 뒤 미국 증시에 투자한 인터넷 주식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로써 소로스의 퀀텀펀드 피해는 총 50억 달러에 육박하는 등 퀀텀펀드의 인기가 크게 떨어졌다. 2000년 4월 28일 소로스는 산하 양대 펀드인 퀀텀펀드와 쿼터펀드(QuotaFund)를 폐쇄하고 펀드 매니저인 드루켄 밀러와 로디티를 사임시켜야 했다. 퀀텀펀드라는 세계적인 헤지펀드는 이로써 끝이 났다. 또 소로스는 펀드 자산의 일부를 새로 조성하는 '퀀텀 기부 펀드'로 전환해 운용하겠다고 선언했고, '퀀텀 기부 펀드'는 투자 전략을 바꿔 저위험 저수익의 헤지 거래에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4]

각주[편집]

  1. 주식공작단, 〈주요 펀드 매니지먼트 포트폴리오: 소로스 펀드〉, 《네이버 블로그》, 2018-06-23
  2. 이예지 기자, 〈짐로저스, ‘오늘밤 김제동’ 출연…‘로저스홀딩스 회장’〉, 《톱스타뉴스》, 2019-01-24
  3. 조효민 기자,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 韓 리조트 업체 아난티 사외이사 선임〉, 《데일리한국》, 2018-12-11
  4. 4.0 4.1 量子基金〉, 《MBA智库百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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